코로나-19 사태가 바꾼 한국 기독교의 ‘주일성수’

2020. 3. 6.종교

한국 기독교는 유독 주일예배를 중시한다. ‘주일성수’(主日聖守)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이것은 원래 있던 신학용어가 아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말로 1970년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말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일요일에 교회에 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 권유가 아니다. 주일예배에 빠지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개역한글, 출애굽기)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한국 기독교 신자는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위협적으로 강요하는 종교는 흔치 않다.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강압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슬람조차 종교 활동을 이정도로 강제하지 않는다. 이란은 이미 2월 말에 예배를 금지했다.(CNN) 사회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특정 장소에 가서 특정 인물의 설교를 듣도록 강제하는 것은 사교(邪敎)에서나 볼 수 있는 속성이다.

뿐만 아니라 주일성수는 조직내 정쟁의 수단이었다. 박윤선(1905~1988)을 몰아낸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 이 시기부터 주일낮예배를 강조하게 되었다.(참고) 이후로 주일성수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자신들을 옭아매는 원칙이 되었다. 또한 일주일에 1번이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 매일새벽 등 끝없이 신자의 참여를 강요했다.

이러한 참여 강요는 개인이 성찰하고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들게 만들었으며, 절대화는 또다른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 기독교에서 이단시하는 안식교는 이렇게 절대화한 주일이 사실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자를 설득한다. 즉 한국 기독교 스스로 절대화 해서 주입한 교리가 바로 틀린 교리였다는 모순을 지적한다.

영상예배에 대한 태도도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미국은 교회를 안 나온 시청자도 즐기라는 의미이지만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예배를 빠지는 사람의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한 고해성사다.

교회에서 직접 예배를 못하고 영상을 통해 했다고 울거나 화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편하게 집에서 영상을 통해 안부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인가? 그만큼 한국 기독교 신자는 예배라는 행위와 교회라는 건물을 중시한다. 그 속에 깃든 마술적인 힘을.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주일성수는 사회와 가족의 안전보다 가치가 낮은 기계적인 행위라는 공감대가 싹텄다. 예배라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라는 건물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경직된 한국 기독교가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마 기독교라는 종교의 원래 뜻도 지역 사람들끼리 도와가면서 소규모로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엽적인 논리를 끌어올 필요가 없다.

1953년 영화 우주전쟁에서는 교회로 피난한 사람들을 세균이 구해준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