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

2020. 1. 12.건강과 의학/한의학

민간의술로 유명한 故 장병두 선생 인터뷰를 민간의술 연구자인 박광수가 편집하고 해설한 책이다. 인터뷰는 2009년 1월 경부터 자택에서 한 것으로 적혀있다.

책의 내용이 상당히 산만한데, 그것은 이 책이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진행된 의료법 위반 재판을 변호하는 의미로 급조되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책의 상당 부분에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 실려있다. 이 문제를 다룬 2008년 6월 21일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히포크라테스, 화타를 원하는가?」편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해방이전 생애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정보가 실려있지 않고, 의술을 배운 적없는 선생이 왜 의술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진료를 시작하였는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의술에 대한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어서 선생의 의술을 짐작할만한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른 언론보도를 참고하면 의술을 남에게 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거 같다.

장병두 선생은 등을 만지는 촉진으로 유명한데, 이 방법도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다. 전기를 보내서 반응을 본다는 설명이 나온다.

진찰을 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내 전기를 환자 몸에다 넣어가지고 통증이 와야 하거든. 그럼 저쪽에서 찌르르 해요. 그럴 때 나는 이건 무슨 병이고 어디 장기가 나빠서 시작되어 현재 이렇게 아프다고 진찰하게 되는 거에요. 또한 무슨 약을 이 환자에게 써야지 하고 처방을 생각하면 벌써 그게 그 환자의 몸에 들어가서 몸 상태를 돌려놓습니다. 그 처방이 맞다 싶으면 그 몸이 반응해서 전기가 다시 나에게 찌르르 되돌아와요. 근데 내 전기를 거기 보내서 거기 병 있는 놈을 찾아가지고 끄집어내서 없애야 하거든.

이렇게 지금 병이 있는 몸에다 손을 갖다 대면 그냥 답이 나오지요. 어디 어디 누를 때마다 전기가 어떻게 되돌아오나 보고 병이 있고 없고를 아는 거고, 또 어떤 약을 써서 이 병을 치료해야 할지도 순간적으로 알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나 가르칠 수가 없고 또 노력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은, 아니 배운 사람들일수록 내가 진찰하고 처방하는 법을 어떻게든지 증명하고 설명하려 하지만 내가 무식해서 그걸 해주질 못해요. 나도 어디서 배운 게 아니고 그냥 되는 거니까 내 속은 더 터져요. (207쪽)

이 ‘맥활법’을 하기 위해선 육경신(六庚申)을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209쪽) 이 책의 내용 때문인지 이후에 육경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전통의학자로 본인을 소개하는(231쪽) 인터뷰어의 해설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위의 맥활법도 인터뷰어는 오링테스트의 원리라고 설명을 하는데 적절한 설명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등을 촉진해 장부의 상태를 느끼고 이를 일반적인 한의학 원리인 오행의 상극 상생 작용에 맞추어 약을 쓰는 듯 하다. 인터뷰어는 수지침을 배웠으므로 이러한 해설을 했을 법도 한데 그러한 내용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또한 설명하는 내용들이 상당수가 과거 정신세계사의 베스트셀러의 내용들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서 정신세계사 책 홍보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다.(정신세계사의 이 베스트셀러들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때가 가까워 진 듯한 느낌도 든다.)

이렇게 중구난방인 내용이지만 몇가지 일화들로 장병두 선생의 의술을 짐작해보자면,

우선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전라북도 지역에서 유행했던 종교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는 것도 이 영향인 거 같다.

두번째로는 의술을 배우기 이전에 관상을 배운 듯 하다. 병을 진단하는 것도 관상에서 배운 어떠한 요령을 진찰에 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가가 몸을 보는 것은 미즈노 난보쿠(水野南北)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관련이 있다.

치료 역시 종교와 관상과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권두에 있는 김지하의 이야기에 실린 보자마자 갑자기 일갈을 하고 분노를 버리라는 처방을 내렸다는 이야기(9쪽), 마음보가 안좋아서 고쳐주기 싫었고 용서를 빌라고 했다는 이야기(185쪽) 등 이어지는 치료예들은 일반적인 의학과는 차이가 있고 첫눈에 상황을 맞추는 관상가들의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처방 역시 종교적인 맥락이 있다.(물론 환자의 마음을 살피는 것 역시 한의학의 전통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사암도인 침구요결』에도 ‘審七情之浮沈’이란 말이 있다.) 지시를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은 환자는 병을 못 고쳤다는 암시도 있다.(191쪽)

이에 대한 화답일까 환자들 역시 치료자를 나도 모르게 거의 운명적으로 깊이 깊이 신뢰하고,(김지하, 16쪽) 재판 과정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시위를 하는 보기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이러한 관계 속에도 일종의 종교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흥미있게 읽었던 요소는 과거 일화들이 돈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처방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법을 피해가는 일반적인 대체의학자들과 달리 직접 약의 재료를 구입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일을 계속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