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가사 자료 정리

2019. 10. 28.전통과 민족/창가

내가 봐도 내용이 너무 많아서 요약을 따로 정리했습니다.


애국가의 이름을 가진 곡과 자료는 매우 많기 때문에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여기서는 윤치호의 『찬미가』(1908)에 실린 3곡과 관련된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 뎨一 ‘우리황상폐하 텬디일월갓치’(Korea)
  • 뎨十 ‘승자신손천만년은’(무궁화가)
  • 뎨十四 ‘동해물과백두산이’(현행 애국가)

자료 목차

  1. (『새문안교회70년사』)
  2.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와 『배재팔십년사』)
    • 죠션가(Korea)
    • 독립가(Independence)
    • 진보가(March)
  3.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자 개국 505회 긔원졀 기사
    • 츅슈가(Praise)
    • 무궁화 노ᄅᆡ(National Flower)
    •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Korea)
  4. 독립신문 1899년 6월 29일자 배재학당 방학례식 기사와 이익채 유품 협성회 무궁화가
    • 무궁화 노ᄅᆡ(無窮花歌)
  5. (안춘근 소장 『幾設』과 金壽垣書 愛國歌)
  6.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7. 대한매일신보 1907년 10월 30일자
    • 공옥쇼학교 ᄒᆡᆼ보가(攻玉小學校行步歌)
    • 무궁화가(無窮花歌)
  8. (第十四 無窮花歌二)
  9. 태극학보 제18호, 1908년 2월 24일 발행.
    • 愛國歌
  10. 공립신보 1908년 3월 11일자
    • 애국가
  11. 대한학회월보 제3호, 1908년 4월 24일 발행.
    • 詩歌
  12. 해조신문 1908년 5월 26일자
    • ᄋᆡ국가
    • 운동가
  13. 『찬미가』 (1908)
    • 뎨一 ‘우리황상폐하 텬디일월갓치’(Korea)
    • 뎨十 ‘승자신손천만년은’(Patriotic Hymn No. III.)
    • 뎨十四 ‘동해물과백두산이’(Patriotic Hymn)
  14. 보중친목회보 제1호, 1910년 6월 10일 발행
    • 愛國歌(KOREA)
  15. (손봉호 필사 『唱歌』)
  16.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
    • 국민가
  17.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
    • ᄋᆡ국가 ‘슬푸도다우리민죡아’
    • 병식ᄒᆡᆼ보가
    • 부모은덕가
  18. 지사 안창호군 환영 예식 안내장(1911년 10월 13일)
    • 환영가
    • ᄋᆡ국가
  19. 『最新唱歌集 附樂典』(1914)
    • 國歌(동해물과백두산이)
  20. 『애국창가』(1916) 악보집
  21. (『애국창가집』)
  22.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1931)
    • 国歌
  23. (항일가사집)
  24. 「大韓愛國歌」(1936)
  25. Korean Research Bulletin, Vol.1, No.2, September, 1943.
    • 애국가
  26. 신한민보 1943년 11월 25일자
    • 애국지사의 노래
  27. (윤치호 필사본)
  28. 「韓中英文 中國版 韓國愛國歌」(1945)
(괄호로 표시한 것은 시기가 불명확한 것.)

애국가 가사 자료

『새문안교회70년사』

1958년에 발간한 『새문안교회70년사』에 따르면, 고종황제 탄신일(만수성절)인 1896년 음력 7월 25일(양력 9월 2일. 고종실록에 따르면 이 날짜는 다음해에 음력에서 양력으로, 그 다음해에 양력에서 음력으로 다시 바뀐다.)에 행사를 위해 가사를 지어 불렀다는 기사가 있다.

이 고종의 탄신일에도 새문안 교인은 황제의 만수 무강을 기원하는 한편, 기념 축하 대회를 열어 그 집회를 이용하여 전도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먼저 언더욷 목사는 고종에게 교섭하여 허락을 받았고 교회에서는 집사와 청년들이 인근 교회들과 합력하여 이 대회를 준비하였다.

그 때 여러가지 준비가 있었는데 그 중 특히 주목 할만한 것은 고종 황제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축가(祝歌)를 지어서 불은 일이다.(33쪽)

일반적으로 이 가사를 최초의 창가로 본다.

이 상황은 언더우드의 기록에서도 확인이 된다.(언더우드의 기록을 보고 이 부분을 서술했을 수도 있다. 머리말에 1884년부터 1904년까지의 기록은 외부 자료를 모으고 외부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적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일부 서술에서는 마치 언더우드가 고종을 위해 직접 노래를 지은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나 이 가사의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신문 9월 1일자와 3일자에 후술할 다른 행사와 달리 오전에는 서울시내 각 교회에서, 오후에는 모화관에 모인다는 정도의 내용만 간단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 『새문안교회70년사』에 실린 가사는 현대어 표기이고, 제목도 붙어있지 않다. 그러나 과거 표기인 ‘놉흐신 상쥬님/ᄌᆞ비론 상쥬님/궁휼리 보쇼셔/이 ᄂᆞᄅᆞ 이 ᄯᅡᆼ을/지켜주옵시고/오 쥬여 이 ᄂᆞᄅᆞ/보우 ᄒᆞ쇼셔/우리의 ᄃᆡ군쥬/폐하 만만세/만만세로다/복되신 오늘ᄂᆞᆯ/은혜를 ᄂᆡ리ᄉᆞ/만수무강케/하야 주쇼셔’로 변환된 내용이 널리 인용되고 있는데, 그 출처는 알 수가 없다. 과거의 가사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바꿔 쓴 것 아닌가 싶다.

또한 일반적으로 부르는 「황제탄신경축가」라는 제목도 누가 붙인 것인지 찾지 못하였다.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와 『배재팔십년사』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사용한 노래 가사가 적힌 전단지로, 이현표가 2013년 공개하였다.

이 자료는 실제 사용된 것일 수도 있고, 이 자료가 끼워져 있던 『The Korean Repository』 Volume 3이 출간 또는 재출간될 때 같이 만들어진 것이거나 관련 자료라서 누군가 끼워넣어둔 것일 수도 있다. 책과 자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응원 구호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아 다른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운동회와 함께 치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다른 행사이거나, 정초식에서도 운동회가 함께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전단지에는 한 면에 다음 3곡과 2개의 구호가 인쇄되어 있다.

  • 죠션가 第一 ‘내나라흘위ᄒᆡ 샹쥬ᄭᅴ빔니다’
  • 독립가 第二 ‘깃분날깃분날 우리나라독립ᄒᆞᆫ날’
  • 진보가 第三 ‘각국즁죠션이 긔이ᄒᆞ다’
  • 환호 第四 ‘만셰만셰만만셰/우리셩쥬만만셰/쳔셰쳔셰쳔쳔셰/독립협회쳔쳔셰’
  • Rah! Rah! Rah!/P. C. S., P. .C S./H‧OR‧AN‧GI!’

이것은 독립신문 1896년 11월 24일자의 배재학당 학생들이 ‘죠션 가’(Korea), ‘독립가’(Independence), ‘진보가’(March)를 부르고 ‘대군쥬 폐하를 위하야 만셰를 불렀다’(hearty cheers for His Majesty, and the Independence Club)는 기사와 일치한다.

또한 The Korean Repository 1896년 11월호, 즉 이 자료가 끼워져 있던 The Korean Repository, Volume 3, 458쪽에 실린 Editorial Department: The Corner stone of Independence Arch.의 식순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1965년 발간한 『培材八十年史』에는 작사가와 곡조에 대한 언급이 있다.

독립문 정초식을 거행하던 당시, 그 식순 중에 唱歌 곧 愛國歌를 培材學堂이 맡아서 하게 되어, 갑자기 부를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때에 가사는 尹致昊 박사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벙커 교사가 스코틀랜드의 놀래라이 곡을 붙여서 연습시켜 정초식에 부른 것이다.

이 서술을 바탕으로 죠션가가 현행 애국가와 같은 노래이거나 후렴이 사용된 노래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자료에 현행 애국가가 189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적혀있는 이유이다. 심지어 대한제국 이전이므로 ‘죠션사람 죠션으로’라는 가사였다는 추측을 확정적인 사실인 양 적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전단지가 정확한 자료라면 현행 애국가 후렴의 창작 연대는 1897년 8월 13일 개국 505회 기원절 「무궁화 노ᄅᆡ」로 1년 늦춰지게 되며, 현행 애국가의 창작 시기는 더 뒤가 된다.

또한 현행 애국가는 올드랭사인 곡조를 사용하여왔으므로, ‘스코틀랜드의 놀래라이’는 올드랭사인을 잘못 적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전단지에 올드랭사인에 맞춰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없다.(애국가는 올드랭사인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이라는 선입견은 현재의 우리도 가지고 있다. 조서연의 「윤치호 번역의 『찬미가』(1908) 연구」의 경우 악보의 분석까지 싣고 있지만 America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올드랭사인에 맞춰 부르는 노래로 혼동해서 표기했다.)

죠션가 第一

죠션가는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의 십오편 「국가(나라를위ᄒᆞᄂᆞᆫ노ᄅᆡ)」와 가사가 같고, 이 노래는 「America」('Tis of Thee) 곡조에 맞춰 부르도록 되어있다. America라는 제목을 따서 Korea(죠션가)로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다.

이 가사는 1896년 9월 2일 고종황제 탄신일에 새문안교회에서 불렀다는 작자미상의 「황제탄신경축가」와 매우 유사하다. 「황제탄신경축가」를 수정한 것일 수도 있다.

「황제탄신경축가」와 이 「죠션가」는 기독교 신에게 비는 찬송가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이것은 원곡인 God Save the Queen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행사 노래에는 기독교적 의미를 담지 않은 윤치호의 경향과 다르다. 그러나 윤치호 역시 새문안교회 건립에 참여하였으므로 교회용으로 지은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후에 기독교적인 부분을 빼고 찬미가 뎨一을 새로 지은 것일 수도 있다.

독립가 第二

이 곡은 독립신문 1896년 10월 31일자에 실린 농샹 공부 쥬ᄉᆞ 최병헌의 「독립가」와 매우 유사하다. 어쩌면 이 곡이 최병헌의 곡을 수정한 것일 수도 있다. 최병헌은 다음해에 배재학당에 입학하기도 한다.

최병헌의 「독립가」가 『찬미가』(1895) 제60장 「참깃분날 하나님이」(O Happy Day)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는 것은 송현호의 「독립신문 소재 개화기시가의 찬송가 영향攷」(관악어문연구 제8집, 1983, 264쪽)와 김병선의 박사학위논문 『韓國 開化期 唱歌 硏究』(1990, 56쪽)에도 언급되어 있다.

최병헌의 「독립가」는 「참깃분날 하나님이」의 곡조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이 전단지의 「독립가」는 「참깃분날 하나님이」 에 맞춰 부를 수 있다.

깃분날깃분날
예수내죄다씻신날
빌고흔방비ᄒᆞᄂᆞᆫ법
예수ᄇᆞᆰ히ᄀᆞᄅᆞ쳤네
깃분날깃분날
예수내죄다씻신날
깃분날깃분날
우리나라독립ᄒᆞᆫ날
우리나라독립ᄒᆞᆫ날
일월ᄀᆞᆺ치빗나도다
깃분날깃분날
우리나라독립ᄒᆞᆫ날

※ 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 가사들이 찬송가를 번안한 노래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America를 Korea로 옮긴 것이라던가, God Save the Queen의 가사와 모티브가 비슷하다거나. 아마도 영어 찬송가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무궁화가에는 원래 내용과 전혀 무관한 가사를 붙이게 되었고, 그것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애국가가 되었다.

진보가 第三

진보가를 어떤 곡조에 맞춰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생각해볼 수 있는 후보로는 「Happy Land」가 있다. Happy Land는 민요 기반의 5음계 곡으로, 초기 찬송가집에도 실려있다.

영어 찬송가집에는 「Happy Land」에 Indian Air, Hindoo Air, Telugu Melody 등의 설명이 붙어있기도 한데,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다. 작곡자는 스코틀랜드 사람인데, 어쩌면 이것이 배재80년사에서 언급된 ‘스코틀랜드의 놀래라이’일지도 모르겠다.

응원 구호

이 전단지에 나오는 배재학당의 구호는 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의 응원 구호에 나오는 ‘Rah Rah Rah’, ‘Tiger’ 등을 따라한 것이다. 이 전단지에는 없지만 ‘sis-boom-bah’도 배재대학에서 현재 사용된다. 프린스턴 대학의 응원 구호는 19세기 말의 대표적인 응원 구호로 위키백과에 언급되어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응원 구호는 한 종류가 아니라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여러 변형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Princeton과 Pai Chai도 묘하게 이름이 닮은 것 같다.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자

독립신문 광무 원년(1897년) 8월 17일자 3면 1단 잡보 섹션 기사에 실린 노래 제목과 가사의 일부.

◯ 대죠션 ᄀᆡ국 오ᄇᆡᆨ 오회 긔원졀 츅ᄉᆞ를 팔월 십삼일 오후 셰시에 독립관에셔 ᄒᆡᆼᄒᆞᄂᆞᆫᄃᆡ 국긔를 놉히 달고 그 아ᄅᆡ 화쵸로 단쟝 ᄒᆞ엿ᄂᆞᆫᄃᆡ 졍부 대쇼 관인과 여러 학도와 인민이 만히 모혓시며 각국 공 려ᇰᄉᆞ와 신ᄉᆞ와 부인들이 각기 례복을 ᄀᆞ쵸 으고 계계히 안졋ᄂᆞᆫ지라 그 츅ᄉᆞ ᄒᆞᄂᆞᆫ 졀ᄎᆞ를 보니 쳐음에ᄂᆞᆫ ᄇᆡᄌᆡ 학당 학원들이 츅슈가를 불너 ᄀᆞᆯᄋᆞᄃᆡ 오ᄇᆡᆨ 여년 우리 왕실 만셰 무궁 도으쇼셔 찬송 ᄒᆞ니 외국 부인이 악긔로 률에 ᄆᆞᆺ쵸아 병챵 ᄒᆞ더라 둘ᄌᆡᄂᆞᆫ 회쟝 안경슈씨가 ᄀᆡ회 ᄒᆞᄂᆞᆫ ᄯᅳᆺ을 연셜 ᄒᆞ고 셋ᄌᆡᄂᆞᆫ 한셩 판윤 리ᄎᆡ연씨가 학부 대신 리완용씨를 ᄃᆡ신 ᄒᆞ야 국민의 당연히 ᄒᆞᆯ 직무를 연셜 ᄒᆞ고 넷ᄌᆡᄂᆞᆫ ᄇᆡᄌᆡ 학당 학원들이 무궁화 노ᄅᆡ를 불으ᄂᆞᆫᄃᆡ 우리 나라 우리
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ᄇᆡᆨ셩이 ᄒᆞᆫᄀᆞ지로 만만셰를 길거 ᄒᆞ야 태평 독립 ᄒᆞ여 보셰 ᄒᆞ니 외국 부인이 ᄯᅩ 악긔로 률에 ᄆᆞᆺ쵸아 병챵 ᄒᆞ더라 다셧ᄌᆡᄂᆞᆫ 미국 교ᄉᆞ 아편셜라씨가 영어로 죠션에 거류 ᄒᆞᄂᆞᆫ 외국 사ᄅᆞᆷ들을 대 ᄒᆞ야 각기 당연히 ᄒᆞᆯ 직무를 연셜 ᄒᆞ며 여셧ᄌᆡᄂᆞᆫ 의ᄉᆞ 졔손씨가 죠션 관민들을 대ᄒᆞ야 진보 ᄒᆞᄂᆞᆫ것을 연셜 ᄒᆞ고 일곱ᄌᆡᄂᆞᆫ ᄇᆡᄌᆡ 학당 학원들이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를 불으니 외국 부인이 ᄯᅩ 악긔로 률에 ᄆᆞᆺ쵸아 병챵 ᄒᆞ더라 여ᄃᆞᆲᄌᆡᄂᆞᆫ 젼 협판 윤치호씨가 긔원 졀일 문졔를 연셜 ᄒᆞᆫ 후에 탁지 대신 신샹훈씨가 졔손씨와 아편셜라씨의 연설 ᄒᆞᆫ것을 감샤 ᄒᆞ다고 말 ᄒᆞ더라 그 다음에 다과례를 ᄒᆡᆼ ᄒᆞ고 ᄂᆞᆯ이 져믄 고로 다 허여져 도라 가더라

* 중간의 공백은 ‘님군’이 앞에 오도록 줄바꿈 한 것. 왕을 높이기 위한 표기법이다.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밑줄은 내가 표시.

기사에 따르면 8월 13일 독립협회 주최 개국 505회 기원절 행사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외국인 부인 반주로 아래 3곡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1. 츅슈가(“Praise”) ‘오ᄇᆡᆨ 여년 우리 왕실 만셰 무궁 도으쇼셔’
  2. 무궁화 노ᄅᆡ(“National Flower”, in the tune of “Auld Lang Syne”, accompanied by Mrs. M. F. Seranton on the organ.) ‘우리 나라 우리 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ᄇᆡᆨ셩이 ᄒᆞᆫᄀᆞ지로 만만셰를 길거 ᄒᆞ야 태평 독립 ᄒᆞ여 보셰’
  3.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national hymn “Korea”, in the tune of “America” or “God Save the Queen”)

『국역 윤치호 영문일기 4』(2016)에서는 이를 각각 송가(頌歌), 국화(國花), 조선으로 다시 번역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총서 번역서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 1897년 8월 13일 참고)

무궁화 노ᄅᆡ(National Flower)

‘무궁화 노ᄅᆡ’는 ‘무궁화가’를 한글로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대부분 ‘무궁화가’로 쓰인다.

‘님군과 ᄇᆡᆨ셩이 ᄒᆞᆫᄀᆞ지로 만만셰를 길거 ᄒᆞ야’(임금과 백성이 한가지로 만만세를 즐겨하여) 역시 1899년 기사에 실린 ‘군민 공락(君民共樂) 만만셰에’를 한글로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부른 것은 1899년 기사에 실린 무궁화가와 같은 가사일 것이다. 이 풀어쓴 가사는 올드랭사인의 곡조에도 맞지 않는다.

‘무궁화 노ᄅᆡ’라는 이름을 생각해볼 때, ‘무궁화 삼천리’로 시작하는 후렴의 가사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무궁화가 이후 반복적으로 애국의 의미로 사용된 것도 이 노래가 시작일 수 있다.

무궁화가는 독립협회에서 주최했지만 대한제국 황실의 개국 기원절 행사를 위해 지은 노래이기 때문에 황실의 영원한 번영과 충성을 강조했다. 이 영원함과 충성이라는 주제는 현행 애국가로 이어진다.

또한 ‘황텬(皇天)이 도으샤’라는 신(神)에 대한 기원이 담겨져 있는데, 이 역시 현행 애국가의 ‘하나님이 보호하사’로 이어진다. 즉 현행 애국가가 기독교 신자에 의해 작사되고 교회에서 불렸지만 그 기원은 유교 관념인 상제(上帝) 또는 천제(天帝)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날짜 영문판(The Independent)에도 이 행사의 내용이 실려있다. 그리고 여기에 「National Flower」(무궁화 노ᄅᆡ)를 이 행사를 위해 Mr. T. H. Yun이 작사했고, 올드랭사인의 곡조에 맞춰 부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T. H. Yun은 뒤에 「The Day We Celebrate」(긔원 졀일 문졔) 강연을 하는 윤치호다.

독립신문 영문판 1897년 8월 17일자 1면 EDITORIAL NOTES.
EDITORIAL NOTES.

The exercises held at Independence Hall last Friday afternoon in commemoration of the Founder’s Day ought to be counted another feather on the caps of the members of that patriotic institution. The idea of celebrating the day in public was originated two years ago by the then progressive members of the Cabinet. We are told that His Majesty gave a grand fete to the diplomatic corps and to the members of the Korean Cabinet in that year. Last year the day was not publically observed owing to the disturbance which was upsetting the interior. However, as peace once more reigns in the country, the members of the Independence Club commemorated the day in a quiet but fitting manner in their hall near the new arch.
The hall was tastefully decorated with flags and bunting and on the table in front of the Chairman stood two tall bases filled with lotus blossoms. There were plenty of chairs and benches for the guests, and the floor was neatly covered with matting. A temporary platform was erected near the front entrance where the speakers of the day stood and spoke to the audience which was assembled both in and outside of the hall.
The guests were cosmopolitan as most of the prominent members of the foreign community in the capital were present. The representatives of America, Great Britain and Japan were among those present, besides the Ministers and Vice Ministers of State, Councillor and military officers of the Korean Government. A number of foreign ladies braved the heat and the threatening sky and graced the audience by their presence.
The programme was begun by a song “Praise,” which was rendered by the students of the Paichai School, after which the President of the Club, General An Kyengsu, made a brief address stating the object of the days celebration and welcomed the foreign guests in a cordial manner. He stated that the Minister of Education, Mr. Ye Wanyong, was to make an address on the subject of "Duties as Citizens of the Commomwealth" but owing to his ill health he was unable to stand the ordeal of making the speech, therefore, the Governor of Seoul, Mr. Ye Chayun would speak in his place. Governor Ye rose and delivered an able address in his usual oratorical manner. The substance of his speech was that he was there not us the Governor of the city but as a Korean citizen to celebrate the national holiday with his fellow countrymen.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cultivating public spirit which is one of the main obligations the citizens owe to the state. He advised his hearer to foster the idea of nationalism and love the fatherland above all others.
The Paichai boys sang a song “National Flower” which was composed by the poet lauriate of Korea Mr. T. H. Yun, for the occasion. They sang it to the tune of “Auld Lang Syne” accompanied by Mrs. M. F. Seranton on the organ.
The next speaker was the Reverend H. G. Appenzeller, the President of Paichai College, on the subject of “Obligations of Foreign Residents.” The speaker displayed remarkable tact in handling this difficult subject. His ideas were broad and delivery was graceful. We will print the abstract of the speech in the next issue with the author’s permission. The next speaker was Dr. Philip Jaisohn on the subject of “Korean Advancement” He pointed out that in spite of the multitudinous difficulties and innumerable drawbacks in carrying out reforms in Korea, the country has made wonderful progress in various departments. He stated that the most notable benefits which the country derives from the reform movement are the solvent condition of the national finance; the improvement of the public roads; the abolition of the barbarous methods of punishment in the law courts; and the existence of the public schools where both rich and poor can educate their children. He stated that there is plenty of room for further improvement in all of these Dep’ts, but they are in much better condition today than ever before.
The Paichai boys then sang the national hymn “Korea” in the tune of “America” or “God Save the Queen.” The last speaker was Mr. T. H. Yun on the subject of “The Day We Celebrate.” Mr. Yun’s speech was full of patriotic sentiment and his illustrations were very scholarly. He regretted that Korea has neglected in educating the people in nationalism. The people understand and study more of things foreign than their own. The consequence is that the people do not possess real love or pride for their own land and their own history. But he thought the day is not far off when this state of sentiment will be replaced by true patriotic ideas and lofty motives. He thought that the public celebration of the national holiday by the members of the Independence Club is the beginning of the coming change.
Mr. Yun’s speech completed the programme and the President invited the guests to remain in the seats for a few minutes, as the members of the Club desired to offer them some refreshments. The gentlemen on the refreshment committee busied themselves in passing around cold drinks and eatables. One of the members of the Club moved to pass a vote of thanks for Mr. Appenzeller and Dr. Jaisohn for their kindness of speaking to them on the occasion, and the motion was unanimously carried. About six o’clock the company dispersed.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Korea)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는 ‘애국가’를 한글로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은 이전에 이미 여러 「애국가」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했다. 그러나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의 「나라를위ᄒᆞᄂᆞᆫ노ᄅᆡ」 같은 제목처럼 한글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노래의 영문명이 ‘Korea’가 된 것은 애국의 뜻을 담고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미국 국가인 「America」('Tis of Thee) 곡조에 맞춰 불렀기 때문에 이에 맞춰 ‘Korea’로 제목을 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애국가라는 이름의 노래가 Korea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과 번역의 영향 아닐까 추측된다.

어쩌면 미국 선교사들 앞에서 미국 국가를 개사한 조선의 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미국 국가도 영국 국가의 가사를 바꾼 것이므로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 노래는 1896년 음력 7월 25일(양력 9월 2일) 새문안교회에서 고종황제 탄신일에 부른 「황제탄신경축가」(『새문안교회70년사』, 1958, 33~34쪽. 놉흐신상쥬님)으로 본다. 이유는 1896년 8월 13일 이전에 찬송가 America('Tis of Thee) 곡조에 가사를 붙인 애국적인 곡이 이것 하나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 행사를 다룬 9월 1일자 독립신문 기사에 아침에는 ‘대죠션 셔울 야쇼 교회’ 각 예배당에서, 오후 네시에는 모화관에 모두 모여서 ‘ᄋᆡ국가’를 부르며 ‘대군쥬 폐하 탄신 경츅회’를 한다는 말이 있으므로, 「황제탄신경축가」 역시 「ᄋᆡ국가」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에 실린 「죠션가 第一」(내나라흘위ᄒᆡ 샹쥬ᄭᅴ빔니다)와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에 실린 「십오편 국가(나라를위ᄒᆞᄂᆞᆫ노ᄅᆡ)」(내나라위ᄒᆞ야 샹쥬ᄭᅴ빔니다)도 America 곡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이며, 배재학당 학생들이 불렀으므로 이 노래일 가능성이 높다. 이 곡 역시 Korea(죠션)과 애국가(나라를위ᄒᆞᄂᆞᆫ노ᄅᆡ)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황제탄신경축가」와 비슷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독립신문 무궁화 노ᄅᆡ(1899)

독립신문 ‘광무三년’(1899년) 6월 29일자 3면 2단 잡보 섹션 「방학례식」 기사에 실린 가사. 「무궁화가」의 가사가 모두 실린 가장 오래된 자료이다.

◯방학 례식) 오ᄂᆞᆯ 오후 두시에 졍동 회당에셔 ᄇᆡᄌᆡ학당 학도들의 방학 례식을 거ᄒᆡᆼ ᄒᆞᆫ다ᄂᆞᆫᄃᆡ◯모든 학원이 노ᄅᆡ ᄒᆞ고 ◯김챵션 리유봉 량씨가 한문으로 시젼과 력ᄃᆡ ᄉᆞ략을 강 ᄒᆞ고 ◯유젼씨가 영어로 ᄯᅢ에 합당 ᄒᆞᆯ 일을 강 ᄒᆞ고 희락을 강 ᄒᆞ고 ◯ 리슈남 리대용 량씨가 국문으로 미이미교회 문답 디구 략론을 강 ᄒᆞ고 ◯ 리응진씨가 영어로 방학 권셜 ᄒᆞ고 ◯ 의원 슈에ᄆᆡᆫ씨가 풍유 ᄒᆞ고 ◯ 교샤 홀법씨가 권셜 ᄒᆞ고 ◯ 노병션 한광하 송언용 민찬호 남궁혁 졔씨가 교육 문답 ᄒᆞ고 본 학당쟝이 변셜 ᄒᆞ고 ◯ 교샤 ᄲᅮ룩쓰씨가 거슈 츅ᄉᆞ ᄒᆞᆫ다더라 ◯ 무궁화 노ᄅᆡᄂᆞᆫ 一셩ᄌᆞ 신손 오ᄇᆡᆨ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슈려 동반도ᄂᆞᆫ 우리 본국일셰◯후렴은 무궁화 삼쳔리 화려 강산 대한사ᄅᆞᆷ 대한으로 길히 보젼 ᄒᆞ셰 二ᄋᆡ국 ᄒᆞᄂᆞᆫ 렬심의긔 북악 갓치 놉고 츙군 ᄒᆞᄂᆞᆫ 일편 단심 동ᄒᆡ ᄀᆞᆺ치 깁허 三쳔만인 오직ᄒᆞᆫ ᄆᆞᄋᆞᆷ 나라 ᄉᆞ랑 ᄒᆞ야 ᄉᆞ롱공샹 귀쳔 업시 직분ᄆᆞᆫ 다 ᄒᆞ셰 四 우리 나라 우리 황뎨 황텬이 도으샤 군민 공락 만만셰에 태평 독립 ᄒᆞ셰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이날 「무궁화가」를 불렀다는 기사는 황성신문 ‘大韓光武三年’(1899년) 6월 30일자 2면 3단 雜報 섹션에도 실려있다. 행사 내용에 약간의 차이 있다.

◉(放學禮式)培材學堂學員의放學禮式을行ᄒᆞᆫ다ᄒᆞᆷ은前報에記載ᄒᆞ얏거니와昨日下午二時에貞洞會堂에培材學堂校長敎員學員이齊會제회ᄒᆞ얏ᄂᆞᆫᄃᆡ來賓은學部協辦學務局長編輯局長과內外國紳士와夫人이同叅ᄒᆞ얏고禮式은노ᄅᆡᄒᆞ고긔도ᄒᆞᆫ後에國漢英文의工課都講과敎育問答과勤勉演說이오工課優等學員을施賞ᄒᆞᄂᆞᆫᄃᆡ一等에李應鎭韓光河南宮爀三人과二等에閔粲鍋等十人을各英語字典一卷式頒給ᄒᆞᆫ後에無窮花歌로諸員이頌祝ᄒᆞ고下午五時에各歸ᄒᆞ엿더라

일반적으로 이 「무궁화가」가 1897년 8월 13일 독립협회의 개국기원절 행사에서 부른 「무궁화 노ᄅᆡ」(National Flower)와 같은 것으로 본다. 이 둘을 구분하여 이 무궁화가만을 ‘협성회 무궁화가’로 구분하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곡을 ‘협성회 무궁화가’로 부르게 된 것은, 배재학당 졸업생이자 협성회 회장을 역임한 이익채의 유품 중에 ‘𫝓成會 無窮花’ 라는 제목으로 필사한 이 노래의 가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익채 유품 협성회 무궁화가

1982년 단국대 국문학과 교수 진동혁이 이익채의 손자에게서 입수한 어머니께 보낸 간찰(편지)과 「樹德謌」, 「𫝓成會 無窮花」 두 곡의 가사가 실린 종이. 이 가사를 적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무궁화가」와의 연관성 때문에 이곳에 정리한다.

이익채(1873~1937)는 배재학당 1기 졸업생이자 협성회 회장 출신으로, 앞에 실려있는 「樹德謌」 마지막 줄에 ‘校友 李益采’라고 본인의 이름이 적혀있고, 「𫝓成會 無窮花」 마지막 줄에는 ‘會員一同 偶吟’이라고 적혀 있는 걸 봐서는 협성회 행사에서 사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표기법 상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공개된 간찰에 러시아 공사관 서기 근무 당시인 광무륙년임인(1902년)으로 적혀있어 시대를 올려잡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나, 편지의 표기법과 글씨체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함께 공개된 영문 일기는 1935년 2월 9일자로, 이 가사를 쓴 시기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이 「무궁화가」가 협성회 창립 시기인 1896년 11월부터 불렸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자료만으로 그런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이 자료는 한국학보 1982 겨울호, 제29집, 제8권 4호, 「<새 資料> 러시아紀行簡札 外」 212쪽에 실려있다.

𫝓成會 無窮花
聖子神孫五百年은
우리皇室이요

山高水䴡東半島는
우리本國일세
無窮花三千里
華䴡江山
大韓사람大韓으로
길이保全하세
忠君하는一片丹心
北岳가치놉고

爱國하는熱心意氣
東海가치깁헤
千萬人오직한마음
나라사랑하야

士農工商貴賤엄시
職分만다하세
우리나라우리。皇帝
上(?)天이도으사


君民共樂萬〻歲에
泰平富强하세
會員一同 偶吟

4절의 ‘上’ 자는 ‘皇帝’를 줄바꿔 쓰려다가 고쳐 써서 획을 틀리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

幾設 愛國忠誠歌(1903???)

안춘근(1926~1993)이 김연창에게서 1981년 3월 27일 구입하여 1981년 4월 공개한 幾設이란 제목의 필사본에 실린 가사.

『기설』은 필사본으로 4×6배판 크기의 120페이지의 한장본(漢裝本)이다. 경재잠(敬齋箴)으로 시작하는 본문은 38페이지까지는 순한문으로 교화를 위한 고문(古文), 이어 58페이지에 걸쳐 율시(律詩), 그리고 20페이지에 공성시(孔聖詩)가 적혀 있으며, 책 뒷부분 4페이지에 「운동가」, 「애국충성가」, 「운동가」, 「시흥학교교가」 등이 각 페이지에 실려 있다. 책의 권말에 ‘계묘오월하한귀호연초(癸卯五月下澣龜湖硯抄)’라고 명기돼 있다.(박대헌,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애국가 작사 미스터리>의 논쟁에 대한 고찰」 , 근대서지, 제11호, 2015, 481쪽. 박대헌은 이 자료를 실제로 보고 설명을 쓴 유일한 전문가이다.)

계묘년은 1903년으로, 언론에 가장 오래된 애국가 가사라고 보도되었고, 안춘근은 『韓國古書評釋』(1986)에 그 내용을 실었다.

그러나 박대헌은 「愛國 忠誠歌」의 글씨체와 먹 색깔이 다른 3개의 가사와 확연히 달라 다른 사람이 다른 시기에 적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가사 바로 앞에 실린 ‘明治四十四年十二月二十一日‘과 ‘明治四十四年十二月二十五日‘, 즉 1911년의 「토지매매문서 양식」이 있으므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이 1903년에 쓴 것이 아니며, 「愛國 忠誠歌」의 글씨 수준(‘호불호’)이 떨어지므로 위작으로 보았다. 또한 판매자인 김연창이 위작을 여러차례 판매한 전력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표기법에서도 약간 이질감이 느껴진다.

愛國 忠誠歌

一節 東海水와 白頭山에 ᄒᆡ돗코달ᄯᅳ니
臣民이保互ᄒᆞ샤 우리나라萬歲 후렴
二節 南山壽와青松竹은節介도놋프니
風雨霜露不変ᄒᆞᆷ은 우리氣象일ᄉᆡ 후렴
三〻 春夏秋冬 四季節은 分明코 발그ᄂᆡ
一片丹心 忠國誠 은 우리가슴일ᄉᆡ 후렴
四〻 天地臣民 忠誠心을 다할길 널브ᄂᆡ
자나ᄭᅢ나 愛國心은 우리皇帝일ᄉᆡ 후렴
후렴 無宆ᄒᆞᆫ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 大韓에셔 길리忠誠하ᄉᆡ


運動歌
大韓帝国隆熙日月冨强安泰는
国民敎育普給化??在ᄒᆞᆷ일ᄉᆡ

우리들은德을닥고智?널켜 社會上에허다事業 內部外體强健ᄒᆞᆷ이 工夫?
文明改化先導者가모야?시다 想當ᄒᆞ쟈면 一大清福이니 運動?

讀書 作文 習字 三班以下
地志 復習 歷史 算術

校歌一手

癸卯五月下澣龜湖硯抄

이외에 「校歌一手」로 언급된 時興學敎에 대해 조사한 글도 있다. 음악과 민족 제48호에 실린 홍정수의 「개념풀이: 무궁화가/애국가」로, 홍정수는 시흥학교가 문을 닫기 이전에 이 필사본을 사용한 교사가 현행 애국가의 작사자인 것으로 보았다.

金壽垣書 愛國歌(1904???)

안춘근이 1981년 8월 10일 공개한 비단 위에 한시처럼 쓰여진 가사.

이 기록은 甲辰(1904년)初夏로 돼있어 尹致昊의 애국가보다 앞서는 것이다. 이 애국가는 가로 23㎝, 세로 1m13㎝의 비단폭에 동양화를 그리고 상단에 붓글씨로 기록했다.(경향신문 1981년 8월 11일 11면 "愛國歌 가사는 尹致昊作詞 아니다")

신문 기사로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그림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비단 위에 겹쳐셔 글씨를 쓴 것이다.

박대헌은 실물은 보지 못하였지만, 여러 폭의 병풍에 있던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구도가 너무 어색하고, 화제(畵題)로 삼기도 어려우므로 이 역시 위작으로 보았다. 또한 병풍에 붙어있던 오래된 종이나 비단을 사용하는 것이 위작을 만들기 위한 수법 중 하나임을 지적하였다.

가사의 내용이 현행 애국가와 일치하고, 한자도 1945년 출판된 「金九 題 韓中英文 中國版 韓國愛國歌」에 실린 중국어 번역과 일치하는 점도 의심스러운 부분인데, 1981년 공개 당시에도 이미 지적되었다. 이에대해 국사편찬위 崔永禧위원장은 지금의 애국가가사는 거의 尹致昊의 작품으로 고증됐기때문에 이 한문애국가가 원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오히려 尹致昊의 애국가가사를 한역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 1981년 8월 11일자 6면 "漢文애국가歌詞 나와")

爱国歌

東海水兮白頭山兮至於流竭磨盡
萬有主宰保護我們使我國家萬歲
無窮花三千里華麗江山大韩
人民於大韓永遠保護勿怠

甲辰初夏

金壽垣 謹書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190?)

1985년 안창호의 가족이 독립기념관에 일괄 기증한 3129점의 유품(박걸순, 「국가지정기록물로서 도산 안창호 관련 자료의 역사적 가치」, 국가기록원 발행 기록인 2011년 겨울호, 제17호, 102쪽) 중 하나로, 표지와 앞 8쪽 이전과 뒤 31쪽 이후가 누락되어 출판 시기와 제목을 알 수 없는 서적.

이 책의 ‘편’은 곡의 순서가 아니라 쪽 수이다. 십이에서 십삼편은 권학가(무궁화가와한곡됴), 십오편은 국가(나라를위ᄒᆞᄂᆞᆫ노ᄅᆡ), 십륙편은 학도가 등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애국창가가 많이 실려있어서 이 책을 애국창가집으로 통칭한다.

가사 뒤 25쪽부터 30쪽까지는 「대한매일신보시사평론을번등」 이라는 설명 아래 4·4조로 적힌 글들이 있다. 「심쟝을변ᄒᆞ기어려움」 10편 「졍부를향ᄒᆞ야우노라」 8편, 「졍부를ᄭᅮ지져ᄭᆡ우침」 5편 등 모두 23편이다. 어느 기사와 관련있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은 한국학보 1987년 겨울호(제13권 4호, 제49집) 200~211쪽에 「[새 資料] 舊韓末 愛國唱歌集」으로 실렸고, 신용하가 「[解題] 島山 遺品 『舊韓末 愛國唱歌集』」(212~213쪽)를 썼다. 십일편 끝에 ‘졍부에셔 압슈한노ᄅᆡ’라는 글이 있어 1905년에서 1910년 사이에 비밀리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연갑은 이 책을 도산본 애국창가집으로 명명하고 대한매일신보 창간 시기인 1904년 이후, 현행 애국가가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1907년 이전에 발간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앞의 8쪽의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구한말 애국창가집’은 혼동되고, ‘도산본 애국창가집’은 익숙하지 않으니 여기서는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으로 부르기로 하겠다.(정확히는 ‘독립기념관 소장’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하는 ‘찬숑가’ 번호는 1908년에 감리교와 장로교에서 연합해서 발간한 『찬숑가』의 번호와 일치한다. 십팔편(18쪽)은 윤치호의 『찬미가』(1908) 뎨一 우리황상폐하 텬디일월갓치(Korea)와 같은 노래로, America('Tis of Thee)의 곡조인데 『찬숑가』(1908) 뎨206(피란쳐있스니)와 일치한다. 즉 이 책은 1908년 이후에 출간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창가집 압수는 1910년 4월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출간 시기는 더욱 뒤일 수 있다. 안창호는 1910년 4월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편~십일편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에 실린 「ᄋᆡ국가」 ‘슬푸도다우리민죡아’와 동일한 노래이나, 7절과 8절의 뒷부분이 서로 바뀌어 있고, 9절과 10절은 완전히 다르다.

九 우리의수족을근간ᄒᆞ면
남의게ᄭᅮᆯ것업스리로다
이ᄀᆞᆺ치ᄒᆞ고내것달나면
엇던젹한이항거ᄒᆞ리오

十 만일젹한이항거ᄒᆞ거든
한칼노션듯버혀바리고
태극국긔를놉히달고셔
독립ᄀᆡ가를불너봅셰다
九 ᄋᆡ국졍신과단톄힘으로
육단혈류를무릅쓰면서
원수가비록산과갓ᄒᆞ되
우리압흘 막지 못ᄒᆞ리

十 독립긔달고ᄌᆞ유죵칠ᄯᆡ에
부모의한숨은우숨이되고
동포의눈물은깃붐될이니
즁흥영웅이우리아닌가

십ᄉᆞ편 무궁화가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에 실린 「ᄋᆡ국가」 ‘슬푸도다우리민죡아’와 장식문자와 편집이 비슷하다. 신한민보가 이 책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추측을 해본다.

십ᄉᆞ편
☯무궁화가
一 셩ᄌᆞ신손五百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수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무궁화아삼쳔리
후  화려강산
렴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길이보죤ᄒᆞ셰
二 ᄋᆡ국ᄒᆞᄂᆞᆫ열심의긔
북악갓치놉고
충군ᄒᆞᄂᆞᆫ일편단심
동ᄒᆡᄀᆞᆺ치깁헤
三 쳔만인오직한ᄆᆞᄋᆞᆷ
나라ᄉᆞ랑ᄒᆞ야
ᄉᆞ롱공상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四 우리나라우리황뎨
황텬이도으샤
군민공락만만셰에
태평독립ᄒᆞ셰

대한매일신보 무궁화가(1907)

대한매일신보 1907년 10월 30일자 3면 3단 잡보 섹션 한글판과 국한문판에 각각 실린 가사. 앞에는 「공옥쇼학교 ᄒᆡᆼ보가」(攻玉小學校行步歌)가 실려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공옥쇼학교 ᄒᆡᆼ보가

산놉고물맑은우리동반도ᄂᆞᆫ
ᄉᆞ쳔년ᄅᆡ살아오ᄂᆞᆫ우리ᄯᅡᆼ

ᄉᆞ시긔후ᄒᆞᆼ샹됴코화평ᄒᆞᆫ데
우리그즁에셔호흡ᄒᆞ누나

나아가누나나아가누나
우리학ᄉᆡᆼ들이나아가누나

하ᄂᆞ님은됴흔텬디주셧스나
지금우리더욱힘쓸ᄯᅢ로다

젼일ᄐᆡ도급히버셔ᄇᆞ리고셔
강ᄒᆞᆫ용ᄆᆡᆼ으로다나가누나

지식을넓히고신톄을강케ᄒᆡ
부강흥셩ᄒᆞ는모든학문을

주야밧비촌음닷토아가면셔
풀무속에ᄇᆡᆨ련강텰이되게

약육강식험ᄒᆞᆫ오날당ᄒᆞᆫ셰계
열심ᄒᆞᄂᆞᆫ의긔우리갑쥴셰

ᄉᆞ면렬강들은호랑들ᄀᆞᆺ흐나
무릅쓰고마고모라나가셰

우리학ᄉᆡᆼ들은젼국방패되여
님군백셩위ᄒᆡ직ᄎᆡᆨ다ᄒᆞ여

이쳔만즁평ᄉᆡᆼ모도대한으로
태평ᄌᆞ작누려영영즐기셰
⬤攻玉小學校行步歌

산놉고물맑은우리東半島는
四千年來살아오는우리ᄯᅡᆼ

四時氣候恒常됴코平和ᄒᆞᆫ데
우리그中에셔呼吸ᄒᆞ누나

나아가누나나아가누나
우리學生들이나아가누나

하ᄂᆞ님은됴흔天地주셧스니
至今우리더욱힘쓸ᄯᅢ로다

前日態度急히벗어나ᄇᆞ리고서
强ᄒᆞᆫ勇猛으로나아가누나

知識을넓히고身體ᄅᆞᆯ强케ᄒᆡ
富國興成ᄒᆞ는모든학問을

晝夜밧비寸陰다토아가면서
풀무속에百練鋼鐵이되게

弱肉强食驗ᄒᆞᆫ오ᄂᆞᆯ當ᄒᆞᆫ世界
熱心ᄒᆞᄂᆞᆫ意氣우리甲胄일세

四面列强들은虎狼들ᄀᆞᆺ흐나
무릅쓰고마고몰아나가세

우리학生들은全國防牌되여
님군百姓위ᄒᆡ職責다ᄒᆞ여

二千萬衆平生모도大韓으로
太平自作누려永々즐기셰

▲무궁화가

셩ᄌᆞ신손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요

산고슈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기리보젼ᄒᆞ셰

츙군ᄒᆞᄂᆞᆫ일편단심
북악ᄀᆞᆺ치놉고

ᄋᆡ국ᄒᆞᄂᆞᆫ열심의긔
동ᄒᆡᄀᆞᆺ치깁헤

쳔만인오ᄌᆞᆨᄒᆞᆫᄆᆞᄋᆞᆷ
나라ᄉᆞ랑ᄒᆞ여

ᄉᆞ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우리나라우리황실
황텬이도으샤

국민동락만만셰에
태평독립ᄒᆞ셰
無窮花歌

聖子神孫五百年은
우리皇室이요

山高水麗東半島ᄂᆞᆫ
우리本國일세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세

忠君ᄒᆞ는一片丹心
北岳ᄀᆞᆺ치놉고

愛國ᄒᆞ는 熱心義氣
東海ᄀᆞ티기페

千萬人오ᄌᆞᆨ한마ᄋᆞᆷ
나라ᄉᆞ랑ᄒᆞ여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만다ᄒᆞ셰

우리나라우리皇室
皇天이도으샤

國民同樂萬々歲에
泰平獨立ᄒᆞ셰

※ 대한제국 시기 애국가 사용의 특이한 점은 학교의 운동회에서 운동가와 함께 불렸다는 것이다. 하기할 다른 자료에서도 애국가가 운동가와 함께 실려있는 경우가 많다.

第十四 無窮花歌二(190??)

1999년 안용환이 임채승에게서 받은 2쪽의 종이로, 안용환은 필적 감정 후 이를 도산 친필노트로 명명했다. 한 장에는 이 第十四 無窮花歌二와 第十五 國權恢復歌가, 다른 한 장에는 第十六 守節歌가 1절까지 적혀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안용환의 『(독립과 건국을 이룩한) 안창호 애국가 작사: 도산친필 ‘제14무궁화가 二’를 중심으로』(2016)에 있다.

그런데 이 자료는 너무나 절묘하게 그간 연구자들이 궁금해 하던 부분에 답을 하고 있다.

당시 가사나 악보들을 보면 제목이 중복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제목으로 실리는 경우도 많은데 비해, 이 가사는 앞서 나온 ‘무궁화가’의 두번째 판임이 명시되어 있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이것은 애국가가 무궁화가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웠던 연구자들의 고민을 덜어준다.

또, 이 필사본은 찬미가 뎨十四와 ‘마음’에 이음표(⁀)를 한 것과 순서까지 ‘제14’로 완전히 같으면서, 찬미가 뎨十四와 달리 아래 아가 많이 쓰였다. 즉, 이 자료는 연구자들이 궁금해 하던 찬미가 뎨十四의 이전 자료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애국가의 가사는 대부분 아래 아가 없는 윤치호의 표기법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 아래 아를 써서 창작한 작품을 윤치호가 표기법을 고쳐서 『찬미가』에 실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래 아를 사용한 다른 경우인 신한민보의 국민가(1910)와 달리 아래 아 이외의 부분에서는 찬미가 뎨十四와 동일한 것도 특징이다.

이 자료는 필적감정 이외에 안창호의 창작이라는 다른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권회복가와 수절가 역시 알려지지 않은 노래이다. 박재순은 국권회복가에 드러난 절박함과 부지런함, 주체의식과 책임의식, 공리공론을 버린 무실역행, 그리고 ‘뇌수’(가사에는 노슈)라는 단어의 사용 등에서 안창호의 작품으로 보았다.

편집과 밑줄 표시가 2016년 공개된 손승용 창가집과 비슷하다. 손승용은 독립신문 기자 출신이며 교사이자 감리교 신자로 애국창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第四十八 百萬名救援歌가 실려있으므로 기독교계에서는 1909년 벌어진 백만구령운동 이후에 사용한 것으로 본다.

第十四 無窮花歌二

一동ᄒᆡ물과ᄇᆡᆨ두산이말으고달토록
하ᄂᆞ님이보호ᄒᆞ샤우리대한만셰
무궁화삼쳔리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길이보젼ᄒᆞ셰
二남산우헤뎌쇼나무쳘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ᄒᆞᆷ은우리긔상일셰
三가을하ᄂᆞᆯ공활ᄒᆞᆫ데구름업시놉고
밝은달은우리가슴일편단심일셰
四이긔상과이마͡ᄋᆞᆷ으로님군을셤기며
괴로오나질거오나나라ᄉᆞ랑ᄒᆞ셰
第十五 國權恢復歌

一회복ᄒᆞ셰독립국권
대한독립국권
어셔밧비어셔밧비
회복ᄒᆞᄀᆡᆺ네
곤ᄒᆞᆫ것과어려움
견듸고도ᄎᆞᆷ아라
내나라독립국권
회복ᄒᆞᆸ셰다

안창호의 애국가(1908년 2월)

융희 2년(1908년) 2월 24일 발행한 태극학보 제18호 54쪽 文藝 섹션에 실린 가사. 愛國生은 안창호의 필명으로 알려져있다.

이 글에서 논하기로 한 곡은 아니지만, 현행 애국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주 언급되는 곡이어서 적어둔다.

『島山安昌浩全集 제1권 시문, 서한』(전14권, 2000)에 실려있다. 신동립은 이 곡과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에 실린 ᄋᆡ국가를 애국가 안창호 작사설의 발원으로 보았다.(신동립의 ‘잡기노트’ <529> 애국가 안창호 작사설의 허구①, 뉴시스, 2015년 7월 2일)

愛國歌
(찰셩시하나님ᄀᆞᆺ가히로同調)

愛國生

一 긴ᄂᆞᆯ이맛도록
생각ᄒᆞ고
깁흔밤들도록
생ᄀᆞᆨᄒᆞᆷ은
우리나라로다
우리나라로다
길이ᄉᆡᆼᄀᆞᆨᄒᆞ셰
길이ᄉᆡᆼᄀᆞᆨ
二 ᄂᆡ먹고마시며
의탁하여
모든족척들과
생댱ᄒᆞᆫ곳
우리나라로다
내일생사ᄅᆞᆼᄒᆡ
길이사랑ᄒᆞ셰
길이사ᄅᆞᆼ
三 나의부모형뎨
ᄀᆞᆺ치ᄉᆞᆯ고
조샹들의ᄒᆡ골
믓친ᄃᆡᄂᆞᆫ
우리나라로다
항샹닛지못ᄒᆡ
닛지못ᄒᆞ겟네
닛지못ᄒᆡ
四 ᄐᆡ산이변ᄒᆞ야
바다되고
바다가변ᄒᆞ야
들이된들
나라ᄉᆞᄅᆞᆼᄒᆞᄂᆞᆫ
내ᄆᆞᆷ변ᄒᆞᆯ손가
길이불변일세
길이불변
五 내나라를내가
ᄉᆞ랑ᄒᆞ지
뉘가내나라를
ᄉᆞ랑ᄒᆞᆯ고
내몸이죽어도
내나라보젼ᄒᆡ
길이보젼ᄒᆞ셰
길이보젼
六 우리나라문명
발달되고
우리나라록립
공고ᄒᆞ면
빗ᄂᆞᆫ영화로다
힝샹즐겁겟녜
나라영광ᄋᆡᆯ셰
나라영광

* ‘찰셩시’는 ‘찬셩시’의 오식. 책에도 펜으로 수정되어 있음. 「하나님ᄀᆞᆺ가히」는 『찬셩시』(1895/1898) 뎨오십이 「하ᄂᆞ님갓가히」인 것으로 생각됨. 원곡은 Nearer, My God, To Thee이며, 현재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으로 번역됨.
* 아단문고 참고.

공립신보 애국가(1908년 3월)

공립신보 1908년 3월 11일자 2면 1단 「慶祝 建元節」 기사에 실림.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一 셩자신손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슈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二 튱군ᄒᆞᄂᆞᆫ열셩의긔 북악갓치놉고 애국ᄒᆞᄂᆞᆫ일편단심 동ᄒᆡᄀᆞᆺ치깁허
三 쳔만인의오직ᄒᆞᆫ맘 나라사랑ᄒᆞ야 사롱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四 우리나라우리황실 황텬이도으샤 만민공락만〻셰에 태평독립ᄒᆞ셰
후렴 무궁화三千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이보젼ᄒᆞ셰

대한학회월보 詩歌(1908년 4월)

융희 2년(1908년) 4월 25일 발행 대한학회월보 제3호 35쪽 1단 文藝 섹션에 실린 시가.

詩歌

友古崔
山高水麗東半島는우리大韓帝國이오聖繼神承五百年은우리大韓皇室이라아느냐二千萬同胞들아忠君愛國。
白頭山아말드러라、東方太祖네아니냐、金剛九月智異妙香、帝國基地天城이라、뎌견너富士山놉다마라、海島一峯。

* 아단문고 참고.

이 시가는 한철수 편저 『(독립군시가집)배달의 맥박』(1984/1986)에도 실려있는데, 그렇다면 암송을 하거나 노래로 불렀을 수도 있다.

‘友古崔’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한학회의 전신인 태극학회에서 광무 11년(1907년) 4월 24일 발행(간기에는 5월 3일)한 태극학보 제9호 37쪽에 실린 「今日」이란 글에 山高水麗東半島ᄂᆞᆫ우리大韓帝國이오聖繼神承五百年은우리大韓皇室일세라는 동일한 문구를 쓴 友洋生 崔錫夏(1864~1912)일 것으로 생각한다.(최석하는 다음해인 1909년에 결혼하고 곧 아내와 헤어지고 죽게 되니 이 시가가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시가는 3년 뒤인 1910년에 등장하는 김인식의 애국가와 매우 비슷하다. 김인식의 가사가 이미 있던 시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해조신문 ᄋᆡ국가(1908년 5월)

해조신문(ᄒᆡ됴신문, ᄒᆡ죠신문) ‘大韓隆熙二年五月二十六日’(1908년 5월 26일)자 2면 3단에 실린 가사. 뒤에는 후렴구가 ‘우리 학생들이 나가누나’인 「운동가」가 이어진다.

ᄋᆡ국가

一 셩ᄌᆞ신숀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수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후렴)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길이보젼ᄒᆞ셰

二 츙군ᄒᆞᄂᆞᆫ열셩의긔
북악ᄀᆞᆺ치놉고

ᄋᆡ국ᄒᆞᄂᆞᆫ일편단심
동ᄒᆡᄀᆞᆺ치깁허

二 쳔만인의 오ᄌᆞᆨᄒᆞᆫᄆᆞᆷ
나라ᄉᆞ랑ᄒᆞ야

ᄉᆞ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四 우리나라우리황실
항텬이도으샤

만민공락만만셰에
태평독립ᄒᆞ셰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참고. 자료번호 HJ1908052602-08.

『찬미가』(1908년 6월)

『찬미가』는 원래 1892년 감리교 선교사가 출간한 찬송가집의 이름으로 악보가 없이 30곡의 가사만 실은 책이다. 판을 거듭하여 1897년부터는 한국인이 작사한 노래도 실리고, 1902년의 6판에는 205곡이 수록된다. 그런 상황에서 동일한 형태로 윤치호가 『찬미가』를 출간한 것이다. 감리교 찬미가는 1908년에도 8판이 출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치호가 이 책을 왜 출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학교 교육 등 실용적인 보급 목적으로 15곡이 실린 작은 분량의 책을 편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1908년은 윤치호가 『우순 소리』를 출간하는 등 열정적으로 영어 번역 작업을 하던 시기이다.

각 노래의 제목이 없고 영문 제목만 있는 것도 당시 찬송가집의 특징으로,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러한 형태로 편집했다는 것은 억측인 거 같다. 다음해인 1909년에 이러한 애국적인 가사가 실린 창가집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다.

간기에 재판인쇄(再版印刷)라 적혀있어서, 1905년에 초판이 나온 것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고, 1907년에 초판이 나온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초판은 전해지지 않고, 출간이 되었다는 근거도 없다.

한가지 가설을 세워본다면 「第十四 無窮花歌二」 또는 ‘손승용 창가집’이 필사한 수십곡 분량의 애국창가와 감리교 찬미가가 담긴 책이 만들어지다가 사정상 소책자로 출판한 것일 수도 있다. 1908년의 감리교 장로교 연합 찬송가집 출간과 1902년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의 정교분리 원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감리교와 윤치호 사이에 충돌이 있지 않았냐는 추측도 있다.

이 책은 조선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찬송가집이기도 하다. 선교사의 손을 떠나 조선인의 손으로 영어 찬송가를 번역하여 책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애국창가 3곡뿐만 아니라 영어를 번역한 나머지 12곡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뎨一 우리황상폐하

「황제폐하송」이나 「황제송(皇帝頌)」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황실가」로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창가들의 제목을 차용한 것 같다. 다른 악보에서도 애국가를 Korea로 적은 경우가 있는 것을 보아 이 곡 역시 제목을 애국가나 국가 또는 대한제국가 내지는 조선가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666. 6664는 미국 찬송가집에서 사용된 meter(운율) 표기인데, 664. 6664를 잘못 적은 것이다.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18편(18쪽)에도 실려있다. 곡조가 ‘二百六찬숑가 동’으로, 감리교와 장로교에서 연합으로 편집한 『찬숑가』(1908)를 참조하고 있다.

김연갑은 이 노래가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자의 기원절 행사에서 같은 America('Tis of Thee) 곡조에 맞춰 부른 「나라 ᄉᆞ랑 ᄒᆞᄂᆞᆫ 노ᄅᆡ」(Korea)로 주장한다.

그러나 내 생각엔, 1896년부터 이 곡조에 맞춰 부르는 가사가 「황제탄신경축가」(놉흐신상쥬님), 「죠션가」(내나라흘위ᄒᆡ) 등이 많았으나, 대부분 God Save the Queen의 번역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나라 형편에 맞는 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새롭게 작사할 필요할 필요를 느꼈던 거 같다. 그리고 책의 가장 앞에 배치한 것은 이 곡이 국가로 사용되길 바란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一 우리황상폐하 텬디일월갓치 만수무강 산놉고물고흔 우리대한뎨국 하나님도으사 독립부강
二 길고긴왕업은 룡흥강푸른물 쉬지안틋 금강쳔만봉에 날빗찬란함은 태극긔영광이 빗취난듯
三 비단갓흔강산 봄ᄭᅩᆺ가을달도 곱거니와 오곡풍등하고 금옥구비하니 아셰아락토가 이아닌가
四 이천만동포난 한맘한ᄯᅳᆺ으로 직분하셰 사욕은바리고 충의만압셰워 님군과나라를 보답ᄒᆞ셰

뎨十 승자신손천만년은

1899년 독립신문에 실린 무궁화가와 동일한 노래이다. 애국가와 구분하여 애국송(愛國頌)으로 부르기도 하나 무궁화가임이 명확하므로 이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다.

一 승자신손천만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슈려동반도난 우리본국일세
二 애국하난열심의긔 북악갓치놉고 충군하난일편단심 동해갓치깁허
三 이천만인오즉한맘 나라사랑하야 사롱공상귀천업시 직분만다하세
四 우리나라우리님군 황천이도으사 국민동락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후렴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뎨十四 동해물과백두산이

현행 애국가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一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사 우리나라만세
二 남산우헤저소나무 철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三 가을하날공활한대 구름업시놉고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四 이긔상과이마͡음으로 님군을섬기며 괴로오나질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김인식의 애국가(KOREA)(1910)

융희 4년(1910년) 6월 10일 발행 보중친목회보 제1호 129쪽 文藝 섹션에 실린 악보와 가사. 「무궁화가」의 일부를 개사했다.

김인식은 1908년 12월부터 1914년 3월까지 그리고 1916년과 1917년에 사립 보성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은경, 「한국 최초의 작곡가 김인식 연구」, 음악과 민족, 제19호, 2000)

김인식의 이 가사가 적힌 자료도 상당수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많이 불리워졌던 것으로 보이며, 사회 상황에 따라 무궁화가를 대체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愛國歌
金仁湜

一. 華麗江山東半島ᄂᆞᆫ
우리本國이오
稟質됴흔檀君子孫
우리國民일셰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셰
二. 愛國하ᄂᆞᆫ義氣熱誠
白頭山과갓고
忠君ᄒᆞᄂᆞᆫ一片丹心
東海갓치깁다
三. 二千萬人오직ᄒᆞᆫ마암
나라ᄉᆞ랑ᄒᆞ야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을다ᄒᆞ셰
四. 우리나라우리皇上
皇天이도으샤
萬民同樂萬萬歲에
泰平獨立ᄒᆞ셰

* 악보에는 ‘愛國歌 (KOREA)’로 영문 제목이 추가되어 있다.

김인식이 가사를 바꾼 부분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바뀐 부분은 ‘稟質됴흔檀君子孫 우리國民일셰’ 한 소절과 ‘白頭山’ 뿐이다. 이외의 부분은 기억에 의존해서 생긴 오류이거나 음악적 발성을 위해 다듬은 것일 수도 있다.

華麗江山東半島ᄂᆞᆫ 우리本國이오 稟質됴흔檀君子孫 우리國民일셰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셰
愛國하ᄂᆞᆫ義氣熱誠 白頭山과갓고 忠君ᄒᆞᄂᆞᆫ一片丹心 東海갓치깁다
二千萬人오직ᄒᆞᆫ마암 나라ᄉᆞ랑ᄒᆞ야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다ᄒᆞ셰
우리나라우리皇 皇天이도으샤 萬民同樂萬萬歲에 泰平獨立ᄒᆞ셰

그런데, 이전의 ‘Korea’라는 제목의 노래들은 「America」('Tis of Thee)의 번안곡인 경우가 많고, 의식에 사용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인 경우가 많았다. 김인식이 개사한 무궁화가를 선택한 것은, 이 노래가 국가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즉 1910년 시점에서 올드랭사인 곡조의 무궁화가가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있던 창가일 수도 있다. 아니면 김인식의 입장에서 이 곡이 국가를 잠정적으로 대신할 창가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 영향인지 1911년 동경 유학생들이 올드랭사인 곡조 애국가를 부를 것을 결의하였다는 조선총독부의 첩보 기록이 있다.

손봉호 필사 『창가』(1910)

로스앤젤레스 거주 윤조향씨가 2012년 10월 25일 연합뉴스를 통해 공개한, 표지에 隆熙四年(1910년) 7월 15일 孫鳳鎬라고 적혀있는 『唱歌』라는 제목의 필사본. 27편의 가사를 담고 있다. 2013년 3월 3일 방영 KBS 「TV쇼 진품명품」 제889회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자료에 대한 서술로는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장유정의 「옛날 노래책에 빠지다」(근대서지 제7호, 2013)과 「현전 최고(最古) 애국 계몽 가요집 손봉호(孫鳳鎬)의 창가 연구」(한국민요학 제59집, 2019)가 있다.

第一章 精神歌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에 「ᄋᆡ국가」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 가사로, 안창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一) 슯후도다우리民族아
四千餘年歷史國으로

子々孫々이福樂ᄒᆞ다가
오날날이지경이웬일인가

第二章 愛國歌

第三章 兵式行步歌

안창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곡이다.

(一) 妙ᄒᆞ도다우리學徒兵式行步歌
那(?)巴倫애軍人보다질긋업건네

第四章 愛國歌

이 가사는 「학도가」(汽笛一声新橋を)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도 애국가보다는 학도가에 더 가깝다.

(一) 妙ᄒᆞ고妙ᄒᆞ다우리大韓은
三千里江山이奇妙ᄒᆞ도다

代々로聖君은우리나라요
忠孝兼全ᄒᆞᆷ은우리學徒ᅟᅵᆯ셰

第五章 學徒惜時歌

(一) 學徒야〻〻〻靑年學徒야
壁上에掛鍾을드러보시오

第七章 學徒愛國歌

(一) 萬王의王우리ᄒᆞᄂᆞ님께옵셔
世界萬國들을創立ᄒᆞ실시

第九章 大韓國竟歌

이 가사는 「대한혼가」로 알려져있다.

(一) 화䴡ᄒᆞᆫ江山우리大韓은
三千里범위적지안도다(?)

白頭山으로漢拏山ᄭᅡ지
自然ᄒᆞᆫ경ᄀᆡ 그려ᄂᆡᆺ도다(?)

第十一章 乾元節慶祝歌

第十二章 愛國歌

1910년 6월 10일 발행한 보중친목회보 제1호의 김인식 작사 「愛國歌」와 같은 곡이지만, 가사가 약간 다르다. 보중친목회보가 발행된 지 한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보중친목회보에 싣기 전에 이미 이 노래가 알려진 상태였을 수도 있다.

第十二章 愛國歌

(一) 華䴡江山東半島
우리帝國이요

四千餘年檀君子孫
우리國民일셰

後 無窮花三千里華䴡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셰

 愛國ᄒᆞᄂᆞᆫ義氣熱誠
白頭山과갓고

忠君ᄒᆞᄂᆞᆫ一片丹心
東海갓치깁히

(三) 二千萬人오즉ᄒᆞᆫ맘
나라ᄉᆞ랑ᄒᆞ야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을다ᄒᆞ셰

(四) 우리大韓우리皇上
皇天이도으사

國民同樂萬〻歲에
泰平獨立ᄒᆞ셰

第十三章 運動歌

第十四章 乾元節慶祝歌

第二十一章 乾元節慶祝歌

신한민보 국민가(1910)

신한민보 大韓建國紀元四千二百四十三年(1910년) 9월 21일자 7단에 실린 가사.

윤치호 작사로 되어있고, 『찬미가』 뎨十四의 가사와 동일하나 아래 아가 쓰이는 등 표기법이 다르다.

▲국민가 [윤티호]
一동ᄒᆡ물과ᄇᆡᆨ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ᄂᆞ님이보호ᄒᆞ샤 우리대한만세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길히보젼ᄒᆞ세
二남산우헤뎌소나무 쳘갑을둘은듯
바ᄅᆞᆷ이슬불변ᄒᆞᆷ은 우리긔상일세
三가을하ᄂᆞᆯ공활ᄒᆞᆫ데 구름업시놉고
발근달은우리가ᄉᆞᆷ 일편단심일세
四이긔샹과이맘으로 민족을모호며
괴로오나즐거오나 나라사랑ᄒᆞ세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고.

신한민보 ᄋᆡ국가(1910년 10월)

신한민보 大韓建國紀元四千二百四十三年(1910년) 10월 12일자 4단에 실린 가사.

작자는 밝혀져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안창호로 본다.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9~11편(9~11쪽)에도 실려있으며, 『島山安昌浩全集 제1권 시문, 서한』(전14권, 2000)에도 실려있다.

신동립은 이 곡과 1908년 태극학보 제18호의 愛國歌를 애국가 안창호 작사설의 발원으로 보았다.(신동립의 ‘잡기노트’ <529> 애국가 안창호 작사설의 허구①, 뉴시스, 2015년 7월 2일)

이어서 「병식ᄒᆡᆼ보가」(兵式行步歌)와 「부모은덕가」가 실려있다.

☯ᄋᆡ국가

一 슬푸도다우리민죡아
ᄉᆞ쳔여녀력ᄉᆞ국으로
ᄌᆞ〻손〻복락ᄒᆞ더니
오ᄂᆞᆯ날이디경웬일인가

   텰사쥬사로결박ᄒᆞᆫ쥴을
후  우리의손으로ᄭᅳᆫ허바리고
렴  독립만셰우리소ᄅᆡ에
   바다이ᄭᅳᆯ코산이동케ㅅ네

二 일간두옥도내것안이오
슈묘뎐토도내것못되네
무리ᄒᆞᆫ슈욕을ᄃᆡ답못ᄒᆞ고
공연ᄒᆞᆫ구타도거져밧노나

三 남산초목도눈이잇ᄉᆞ면
비창ᄒᆞᆫ눈물이가드ᄒᆞ겟고
동ᄒᆡ어별도마ᄋᆞᆷ이잇스면
우리와갓치슯허ᄒᆞ리라

四 ᄒᆞᆫ치버레도만일ᄇᆞᆲ으면
죽기젼ᄒᆞᆫ번움작어리고
죠고만벌도남이닷치면
뎌를반다시쏘고죽ᄂᆞᆫ다

五 눈을드러ᄉᆞᆲ혀보니
삼쳔리강산에ᄉᆞ못ᄎᆞᆫ것은
우리부모의한숨소ᄅᆡ오
우리동포의눈물이로셰

六 금슈강산이빗을일코
광명ᄒᆞᆫ일월이아득ᄒᆞ도다
이것이뉘죄냐ᄉᆡᆼ각ᄒᆞ여라
네죄와내죄ᄭᆞᄃᆞᆰ이로다

七 ᄉᆞ랑ᄒᆞᄂᆞᆫ우리쳥년아
자든짓ᄭᆡ든지우리마ᄋᆞᆷ에
라타ᄒᆞᆫ악습과의뢰ᄉᆞ샹을
모도다ᄒᆞᆫ칼노ᄭᅳᆫ허바리고

八 ᄉᆞ랑ᄒᆞ난우리동포야
죽든지살든지우리마ᄋᆞᆷ에
와신샹담을잇지말ᄋᆞ셔
우리의국가를회복ᄒᆞᆸ세다

九 ᄋᆡ국졍신과단톄힘으로
육단혈류를무릅쓰면서
원수가비록산과갓ᄒᆞ되
우리압흘 막지 못ᄒᆞ리

十 독립긔달고ᄌᆞ유죵칠ᄯᆡ에
부모의한숨은우숨이되고
동포의눈물은깃붐될이니
즁흥영웅이우리아닌가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고.

안창호 환영식 팜프렛 ᄋᆡ국가(1911)

1911년에 10월 13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교민들의 「지사안챵호군 환영례식절차」 팜프렛 3단에 적힌 가사. 앞에는 「환영가」 가사가 실려있다. 안창호는 8월 런던에서 출발하여 9월초 뉴욕에 도착하고 9월말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순에는 ‘ᄋᆡ국가(일졀)’로 적혀 있다.

http://mehansa.com/p230/14754
ᄋᆡ국가
셩쟈신손오쳔년은
우리국민이오
샨고수려동반도ᄂᆞᆫ
우리조국일셰
무궁화샴쳔리
화려강산
대한ᄉᆞᄅᆞᆷ대한으로
기리보젼하셰

이 자료는 『島山安昌浩全集』(전14권, 2000)에 실려있다.

최신창가집 國歌(1914)

북간도 광성중학교에서 1914년 발간한 등사본 『最新唱歌集 附樂典』에 수록한 악보로, 가사는 1절만 적혀있다. 「目錄」에는 ‘국(동해물과백두산이)’로 적혀있으며, 맨 앞 1쪽에 실려있다. 이 책에는 ‘上帝난우리大韓을도으소셔’로 시작하는 대한제국 국가도 맨 뒤 164쪽에 실려있다. 다른 책과 혼동되므로 보통 ‘최신창가집’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ⅩⅥ) 日本篇④』(국가보훈처, 1996. 신용하 해제)와 『중국조선족사료전집 문화예술편 1권』(연변인민출판사, 2013)에 실려있다. 일본편으로 분류된 것은 아마 일본 간도영사관 압수자료에서 찾았기 때문인 거 같다.

國歌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한아님이보우하사 우리나라만셰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젼하셰

『애국창가』 악보집(1916)

‘主降生後一千九白十六年’(1916년) 5월 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발행된 것으로 표기된 등사본 창가집. 총 75장의 가사가 실려있는데, 일부 가사에는 악보도 포함되어 있어서 ‘애국창가 악보집’으로 부른다.

「애국가」라는 제목의 가사는 4곡이 실려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등록문화재 제475호. 독립기념관 소장.

애국창가집(1917?)

깁연갑이 2017년 공개한 출처불명의 노트 필사본 가사집. 속표지에 1917년이라고 적혀있으며, 애국가 11편과 애국 창가 18편으로 나누어서 총 29편이 적혀 있다.

노트에 Nippon Note Manufacturing & Co.라는 1916년 설립한 日本ノート製造株式의 영문 사명이 인쇄되어 있다.(1983년부터 2018년까지는 アピカ株式会社)

「ᄋᆡ국가」로 이름 붙은 11곡 중, 앞의 3곡은 각각 ‘동해물과 백두산이’(현행 애국가), ‘산고수려 동반도ᄂᆞᆫ’(김인식의 애국가), ‘긴날이맛도록’(안창호의 애국가)이며, 윤치호, 김인식, 안창호의 애국가가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 김연갑의 기존 주장을 뒷받침한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에서 일부 가사를 베껴둔다.(4~5쪽)

동ᄒᆡ보다깁다

3. 이쳔만인오직ᄒᆞᆫ맘
나라ᄉᆞ랑ᄒᆞ야
사롱공상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4. 우리나라우리황실
황쳔이도으사
국민동락만〻셰에
ᄐᆡ평독립ᄒᆞ셰

ᄋᆡ국가
1. 긴날이맛도록
ᄉᆡᆼ각ᄒᆞ고
깁흔밤들도록
ᄉᆡᆼ각ᄒᆞᆷ은
우리나라로다
우리나라로다
길이ᄉᆡᆼ각ᄒᆞ네
길이ᄉᆡᆼ각

2. ᄂᆡ먹고마시며
의탁ᄒᆞ니

항일가사집 国歌(192??)

김연갑이 2006년 2월 27일 공개한 원고지 필사본 가사집에 실린 8편의 가사.

김연갑이 항일가사집으로 명명하고, 아래 아가 많이 쓰이지 않은 점을 들어 1920년대로 추정하였다.

보중친목회보 제1호(1910)에 실린 김인식 작사 애국가와 동일하다.

国歌
一.華䴡江山東方道는우리国이오
品質조흔檀君子孫 우리国民일세
(후렴) 無窮花三千里華䴡江山
大韓사람大韓으로길이保存하세

二.愛國하는意気熱誠白頭山과갓
忠君하는一片丹心東海갓치깁다
(후렴)
三.二千萬人 오즉 한마음 나라사랑하여
士農工商贵贱업시職分을 다하세
(후렴)

세계명작가곡집(1931)

신인수가 2003년에 수집한 1931년 로스앤젤레스 종우서관에서 발행한 한석원(1928년 도미) 편저 등사본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에 실린 악보.

‘대한건국 四천二백六十三년’(1930년)이라고 적혀있다. 책 제목은 『무궁화』이나, 무궁화가 등과 혼동되므로 보통 애국가와 함께 언급될 때는 세계명작가곡집이라고 부른다.

애국가

윤치호 쟉시

SCOTCH FOLK SONG.

1. 동해물과백두산이 마르고달토록 하나님이보우하사 우리나라만셰
2. 남산우에저소나무 철갑을두른듯 바람풍월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3. 가능하날공활한데 말고구름업시 맑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긔상과이맘으로 충셩을다하야 괴로우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셰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전하세

Nov. 1, 1931.

대한건국 四천二백六十三년

대한애국가 악보(1936)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고 처음으로 교민들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악보.

1절과 2절만 실려있다. 후에 3절 가사가 ‘높고 구름없이’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1.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샤 우리나라만세
2. 남산우에뎌소나무 텰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샹일세

한국인 연구회보 애국가 악보(1943)

Korean Research Bulletin, Vol. 1, No. 2, September, 1943에 실림.

1.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샤 우리나라만세
2. 남산우에져솔나무 텰갑을두른듯 바람서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3. 가을하날공활한데 맑고구름업시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담심일세
4. 이긔상과이맘으로 충셩을다하야 괴로우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애국지사의 노래(1943)

신한민보 대한민국 25년(1943년) 11월 25일자 3면 2단에 실린 가사로, 안창호가 지은 애국가가 실려있다.

안창호는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으며, 신한민보는 민국 20년(1938년) 3월 17일자를 ‘고 도산 안창호션생츄도특별호’로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참고.

애국지사의 노래

ᄒᆡ옹

十一월 十七일은 순국 선렬 긔념일이오 그날 라셩에 잇난 ᄌᆡ미 한족 련합 위원회 에서 졍즁한 긔념식을 거ᄒᆡᆼ 할 ᄯᆡ에 리셩식 씨가 독창한 노ᄅᆡ는 고 도산 안창호 선ᄉᆡᆼ의 노ᄅᆡ오 그 노ᄅᆡ는 아ᄅᆡ와 갓다

一. 긴 날이 맛도록 ᄉᆡᆼ각 하고
깁흔 밤 들도록 ᄉᆡᆼ각 함은
우리 나라 로다 우리 나라 로다
길히 ᄉᆡᆼ각 하네 길히 ᄉᆡᆼ각
二. ᄂᆡ 먹고 마시고 의탁 하야
모든 족속들과 성장한 곳
우리 나라 로다 ᄂᆡ 一생 사랑ᄒᆡ
길히 사랑 하네 길히 사랑
三. 나의 부모 형제 갓치 살고
선조들의 ᄒᆡ골 무친 데는
우리 나라 로다 항상 닛지 못하네
닛지 못하네 닛지 못ᄒᆡ
四. ᄐᆡ산이 변 하야 바다 되고
바다가 변 하야 들이 된 들
나라 사랑 하난 ᄂᆡ 맘 변할 손가
길히 불변 하네 길히 불변
五. ᄂᆡ 나라를 ᄂᆡ가 사랑 하지
뉘가 ᄂᆡ 나라를 사랑 할고?
ᄂᆡ 몸이 죽어도 ᄂᆡ 나라 보존ᄒᆡ
길히 보존 하세 길히 보존

이 노ᄅᆡ를 듯고 탄식 하기를 이는 참 ᄋᆡ국지사의 마음에서 울어 난 소리오 모든 션렬들이 이와 갓흔 ᄋᆡ국심 에서 닐어나 국가 민족을 위하야 그 몸을 희ᄉᆡᆼ한것 이라고 하엿다

윤치호 필사본(1945)

해방 직후 윤치호가 딸에게 적어주었다는 필사본.

1945년 9월에 아버지가 써 주셨다는 딸의 메모가 한글과 영문으로 적혀 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대한만셰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남산우헤 저소나무
철갑을 두룬듯
바람 이슬 불변 함은
우리 긔상 일세

가을 하날 공활 한대
구름 업시 놉고
밝은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이긔상과이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야
괴로오나 질거우나
나라 사랑 하세

一九〇七年

尹致昊 作


1945年 9月에
아버지 께서 친희 써 주신것.
문희.

This is my father's Actual
handwriting in 1945. Moon hi Yun

金九 題 韓中英文 中國版 韓國愛國歌(1945)

중경에서 1945년 11월 12일 발행한 애국가 악보. 김구는 11월 23일 귀국하였다.

김구의 사진과 임정 주석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봐서는 해방 직후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임시정부가 애국가를 국가로 지정하였다는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

이 악보에 대한 해제로는 박원호의 「1945년 重慶임시정부 발행 「한국애국가」의 현대적 의의」(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4집, 2016)가 있다.

뒷면 김구 사진 아래에 애국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작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韓國愛國歌的故事:此愛國歌創作於五十年前出於韓國愛國之士之手筆但已其佚名初係採用西洋名曲塡詞和唱者其後韓國人士以爲不可乃十年前另有韓國靑年音樂家作此新調卽韓國復國運動中之代國歌也按安益泰君爲韓國著名作曲家及小提琴家早年留學奧京維也納專攻音樂斐聲歐美仍西斑牙攻讀現年四十二歲中譯者閔石麟君原係韓國臨時政府主席辦公廳主任現爲韓國駐華代表英譯者鄭桓範君爲英國劍橋大學博士

* 박원호의 글에서 재인용.

‘佚名’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데, 佚名은 작자 미상의 중국어식 표현이다.

등록문화재 제576호.

한국애국가
韓國愛國歌
KOREAN NATIONAL ANTHEM

佚名 作詞*

安益泰 作曲
閔石隣 中譯
鄭桓範 英譯

一.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사 우리나라만세
二. 남산우에저솔나무 철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三. 가을하늘공활한데 놉고구름없이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四. 이긔상과이맘으로 정성을다하야 괴로우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전하세

一. 東海水兮, 白頭山兮. 至於流竭磨盡. 萬有主宰保護我們, 使我國家萬歲.
二. 南山山上幽欎蒼松, 宛如披著鐵甲. 風雨雪霜傲然不變, 正是我們氣象.
三. 秋天空際廣闊無垠, 氣高而爽武雲. 一輪明月我胸襟, 耿耿一片丹心.
四. 以此氣象以次丹心, 盡其忠竭其誠. 快樂苦悶任何環境, 愛國矢志永貞.
合唱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人民壽我大韓, 永遠保護勿怠.

결어

근대화 시기 조선은 국가적 예식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노래 제창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여기에 급하게 반응한 사람이 윤치호다. 윤치호는 당시 미국 국가의 가사를 바꾸어 조선의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애국가 또한 작사하였다.

윤치호가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감리교 신자로서 미국의 찬송가 번역 작업을 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창가들은 한번에 창작된 것이 아니다. 조선가 같은 경우 황제탄신경축가→조선가→국가→찬미가 뎨一 형태로 조금씩 수정한 것이다. 애국가 역시 무궁화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상황에 맞춰 일부를 개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치적인 상황 변화가 반영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국가는 독립협회와 근대 학교를 통해 조직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조선에서는 금지가 된 곡도 해외에 나간 조선인들에 의해서 계속 발전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애국창가가 불려진 집회의 형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운동회 등에서 여러 곡을 부르는 형식이 정착되었다. 함께 부르는 곡은 교가나 운동가 등이었다.

애국가를 비롯한 애국창가들은 짧은 기간 동안 유행한 과도기적인 음악 형식으로, 20세기초 대중음악 발전과 함께 비중이 낮아진다. 안익태의 애국가 작곡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교

Korea

여기서 Korea로 통칭한 가사들은 같은 곡은 아니다. 그러나 America('Tis of Thee) 곡조에 맞춰 부르며, 가사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비교를 위해 함께 적는다.

William Hickson 1절 God bless our native land! May Heav'n's protecting hand Still guard our shore: May peace her power extend, Foe be transformed to friend, And Britain's rights depend On war no more.
새문안교회70년사 1절 높으신 상주님 자비론 상주님 긍휼히 보소서 이 나라 이 땅을 지켜 주옵시고 오 주여 이 나라 보우 하소서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 1절 내나라흘위ᄒᆡ 샹쥬ᄭᅴ빔니다 나라도아 도아주잔으면 나라망ᄒᆞ겟네 샹쥬ᄭᅴ빔니다 나라도아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1절 내나라위ᄒᆞ야 샹쥬ᄭᅴ빔니다 도읍소셔 아니도으시면 나라망ᄒᆞ겟네 쥬여우리대한 더욱권고

God Save the Queen 1절 God save our gracious Queen Long live our noble Queen God save the Queen Send her victorious, Happy and glorious, Long to reign over us God save the Queen
새문안교회70년사 2절 우리의 대군주 폐하 만세 만세로다 만만세로다 복되신 오늘날 은혜를 내리사 하여 주소서 독립부강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 2절 우리대군쥬를 오래향슈ᄒᆞ게 긔도ᄒᆞ세 옥테를보호ᄒᆞ야 강건하옵소셔 오래향슈ᄒᆞ게 긔도ᄒᆞ셰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2절 우리대황뎨를 오ᄅᆡ향수ᄒᆞ게 ᄒᆞ옵소셔 텬톄보호ᄒᆞ샤 강건케ᄒᆞ소셔 샹쥬ᄭᅴ빔니다 만슈무강
찬미가 뎨一 1절 우리황상폐하 텬디일월갓치 만수무강 산놉고물고흔 우리대한뎨국 하나님도으사 독립부강

새문안교회70년사 3절 상주의 권능으로 우리의 대군주 폐하 등극 하셨네 이 나라 이 땅은 영세 불멸 하겠네 대군주 폐하여 만만세로다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 3절 내대쥬ᄌᆡᄭᅴ셔 우리군쥬ᄅᆞᆯ 설립ᄒᆡᆺ네 성령감동ᄒᆞ샤 나라부강ᄒᆞ게 대군쥬ᄅᆞᆯ도아 도아줍시오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3절 샹쥬은덕으로 우리대황뎨를 셜립ᄒᆡᆺ네 셩령감동ᄒᆞ샤 나라영원ᄒᆞ게 대황뎨를도아 만셰향수

새문안교회70년사 4절 상주님 은혜로 오 주여 이 나라 독립 하였네 우리들 백성은 상하 반상 구별없이 오 주여 상주님 기도 하겠네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 4절 ᄌᆞ쥬독립된것 대쥬ᄌᆡ힘일셰 감샤ᄒᆞ셰 ᄌᆞ쥬독립되니 영원독립되게 신민일심으로 쥬ᄭᅴ빌셰
안창호 유품 애국창가집 4절 우리대한독립 샹쥬ᄭᅴ잇ᄉᆞ니 긔도ᄒᆞ셰 자쥬독립ᄒᆞ야 영원독립ᄒᆞ게 신민일심으로 쥬ᄭᅴ빌셰

새문안교회70년사 5절 홀로 한 분이신 만왕의 왕이여 찬미 받으소서 상주님 경배하는 나라와 백성들 국태 민안 부귀 영화 틀림 없이받겠네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 5절 홀노ᄒᆞ나신쥬 만물죠성ᄒᆡᆺ네 찬양ᄒᆞ셰 전국신민들은 ᄎᆞᆷ신만위ᄒᆞ면 나라부강ᄒᆞ고 참복잇네

* 새문안교회에서 고종황제 탄신일에 부른 노래 뿐만 아니라 독립문 정초식 전단지의 죠션가 가사 역시 국가라기보다 찬송가에 더 가깝다. 그러나 윤치호 본인은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찬미가 뎨一에는 기독교적인 의미가 없다. 이것은 무궁화가와 현행 애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궁화가

1절

독립신문(1899) 셩ᄌᆞ 신손 오ᄇᆡᆨ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슈려 동반도ᄂᆞᆫ 우리 본국일셰
대한매일신보(1907) 셩ᄌᆞ신손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요 산고슈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聖子神孫五百年은 우리皇室이요 山高水麗東半島ᄂᆞᆫ 우리本國일세
공립신보(1908년 3월) 셩자신손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슈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해조신문(1908년 5월) 셩ᄌᆞ신숀오ᄇᆡᆨ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수려동반도ᄂᆞᆫ 우리본국일셰
찬미가 뎨十(1908년 6월) 승자신손천만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슈려동반도난 우리본국일세
김인식(1910) 華麗江山東半島ᄂᆞᆫ 우리本國이오 稟質됴흔檀君子孫 우리國民일셰
안창호 환영식(1911) 셩쟈신손오쳔년은 우리국민이오 샨고수려동반도ᄂᆞᆫ 우리조국일셰

* 애국가 1절을 작사하였다는 김인식의 이야기는 무궁화가의 1절만 바꾼 것을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인식의 입장에서는 1910년에 이미 황실을 찬미할수는 없다고 인식하고 그자리를 단군자손이라는 민족적 개념으로 바꾼 것 같다. 2절의 백두산 역시 왕실을 상징하는 북악산을 이러한 맥락에서 바꾼 것일 것이다.

2절

독립신문(1899) ᄋᆡ국 ᄒᆞᄂᆞᆫ 렬심의긔 북악 갓치 놉고 츙군 ᄒᆞᄂᆞᆫ 일편 단심 동ᄒᆡ ᄀᆞᆺ치 깁허
대한매일신보(1907) 츙군ᄒᆞᄂᆞᆫ일편단심 북악ᄀᆞᆺ치놉고 ᄋᆡ국ᄒᆞᄂᆞᆫ열심의긔 동ᄒᆡᄀᆞᆺ치깁헤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忠君ᄒᆞ는一片丹心 北岳ᄀᆞᆺ치놉고 愛國ᄒᆞ는 熱心義氣 東海ᄀᆞ티기페
공립신보(1908년 3월) 튱군ᄒᆞᄂᆞᆫ열셩의긔 북악갓치놉고 애국ᄒᆞᄂᆞᆫ일편단심 동ᄒᆡᄀᆞᆺ치깁허
해조신문(1908년 5월) 츙군ᄒᆞᄂᆞᆫ열셩의긔 북악ᄀᆞᆺ치놉고 ᄋᆡ국ᄒᆞᄂᆞᆫ일편단심 동ᄒᆡᄀᆞᆺ치깁허
찬미가 뎨十(1908년 6월) 애국하난열심의긔 북악갓치놉고 충군하난일편단심 동해갓치깁허
김인식(1910) 愛國하ᄂᆞᆫ義氣熱誠 白頭山과갓고 忠君ᄒᆞᄂᆞᆫ一片丹心 東海갓치깁다

* 구절의 전후가 혼동되어 있다. 문맥상 북악 같이 높은 것은 열심의기, 동해 같이 깊은 것은 일편단심일 것이다. 이렇게 순서가 바뀐 이유는 북악이 왕실의 상징이고, 충군이 애국보다 앞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북악과 대비되는 것은 남산으로, 애국가 2절에 사용되었다.

3절

독립신문(1899) 쳔만인 오직ᄒᆞᆫ ᄆᆞᄋᆞᆷ 나라 ᄉᆞ랑 ᄒᆞ야 ᄉᆞ롱공샹 귀쳔 업시 직분ᄆᆞᆫ 다 ᄒᆞ셰
대한매일신보(1907) 쳔만인오ᄌᆞᆨᄒᆞᆫᄆᆞᄋᆞᆷ 나라ᄉᆞ랑ᄒᆞ여 ᄉᆞ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千萬人오ᄌᆞᆨ한마ᄋᆞᆷ 나라ᄉᆞ랑ᄒᆞ여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만다ᄒᆞ셰
공립신보(1908년 3월) 쳔만인의오직ᄒᆞᆫ맘 나라사랑ᄒᆞ야 사롱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해조신문(1908년 5월) 쳔만인의 오ᄌᆞᆨᄒᆞᆫᄆᆞᆷ 나라ᄉᆞ랑ᄒᆞ야 ᄉᆞ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ᄒᆞ셰
찬미가 뎨十(1908년 6월) 이천만인오즉한맘 나라사랑하야 사롱공상귀천업시 직분만다하세
김인식(1910) 二千萬人오직ᄒᆞᆫ마암 나라ᄉᆞ랑ᄒᆞ야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을다ᄒᆞ셰

* 정확한 인구조사는 없었으나 1896년 독립신문 기사를 시작으로 이천만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오히려 천만인이라는 말이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이다.

4절

독립신문(1897년 8월) 우리 나라 우리 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ᄇᆡᆨ셩이 ᄒᆞᆫᄀᆞ지로 만만셰를 길거 ᄒᆞ야 태평 독립 ᄒᆞ여 보셰
독립신문(1899년 6월) 우리 나라 우리 황뎨 황텬이 도으샤 군민 공락 만만셰에 태평 독립 ᄒᆞ셰
대한매일신보(1907) 우리나라우리황실 황텬이도으샤 국민동락만만셰에 태평독립ᄒᆞ셰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우리나라우리皇室 皇天이도으샤 國民同樂萬々歲에 泰平獨立ᄒᆞ셰
공립신보(1908년 3월) 우리나라우리황실 황텬이도으샤 만민공락만〻셰에 태평독립ᄒᆞ셰
해조신문(1908년 5월) 우리나라우리황실 항텬이도으샤 만민공락만만셰에 태평독립ᄒᆞ셰
찬미가 뎨十(1908년 6월) 우리나라우리님군 황천이도으사 국민동락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김인식(1910) 우리나라우리皇上 皇天이도으샤 萬民同樂萬萬歲에 泰平獨立ᄒᆞ셰

* 독립신문의 1897년 가사와 1899년 가사를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독립신문이 한자어를 한글로 풀어쓰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군민 공락 만만세에’를 ‘임금과 백성이 한가지로 만만세를 즐겨하여’로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애국가

1절

찬미가 뎨十四(1908)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사 우리나라만세
신한민보 국민가(1910) 동ᄒᆡ물과ᄇᆡᆨ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ᄂᆞ님이보호ᄒᆞ샤 우리대한만세
광성중학교 國歌(1914)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한아님이보우하사 우리나라만셰
애국가 악보(1936)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샤 우리나라만세
Korean Research Bulletin(1943)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샤 우리나라만세
윤치호 필사본(1945) 동해물과백두산이 마르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사 우리대한만세
김구題 한국애국가(1945) 동해물과백두산이 말으고달토록 하나님이보호하사 우리나라만세

* 애국가는 초기부터 아래 아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것은 윤치호의 표기법의 영향일 것이다.

2절

찬미가 뎨十四(1908) 남산우헤저소나무 철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신한민보 국민가(1910) 남산우헤뎌소나무 쳘갑을둘은듯 바ᄅᆞᆷ이슬불변ᄒᆞᆷ은 우리긔상일세
애국가 악보(1936) 남산우에뎌소나무 텰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샹일세
Korean Research Bulletin(1943) 남산우에져솔나무 텰갑을두른듯 바람서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윤치호 필사본(1945) 남산우헤저소나무 철갑을두룬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긔상일세
김구題 한국애국가(1945) 남산우에저솔나무 철갑을두른듯 바람이슬불변함은 우리기긔상일세

3절

찬미가 뎨十四(1908) 가을하날공활한대 구름업시놉고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신한민보 국민가(1910) 가을하ᄂᆞᆯ공활ᄒᆞᆫ데 구름업시놉고 발근달은우리가ᄉᆞᆷ 일편단심일세
Korean Research Bulletin(1943) 가을하날공활한데 맑고구름업시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담심일세
윤치호 필사본(1945) 가을하날공활한대 구름업시놉고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김구題 한국애국가(1945) 가을하늘공활한데 놉고구름없이 밝은달은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찬미가 뎨十四(1908) 이긔상과이마͡음으로 님군을섬기며 괴로오나질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신한민보 국민가(1910) 이긔샹과이맘으로 민족을모호며 괴로오나즐거오나 나라사랑ᄒᆞ세
Korean Research Bulletin(1943) 이긔상과이맘으로 충셩을다하야 괴로우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윤치호 필사본(1945) 이긔상과이마음으로 충성을다하야 괴로오나질거우나 나라사랑하세
김구題 한국애국가(1945) 이긔상과이맘으로 정성을다하야 괴로우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독립신문(1899) 무궁화 삼쳔리 화려 강산 대한사ᄅᆞᆷ 대한으로 길히 보젼 ᄒᆞ셰
대한매일신보(1907)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기리보젼ᄒᆞ셰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셰
공립신보(1908년 3월) 무궁화三千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이보젼ᄒᆞ셰
찬미가 뎨十(1908년 6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찬미가 뎨十四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김인식(1910년 6월)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ᄅᆞᆷ大韓으로 길이保全ᄒᆞ셰
신한민보(1910년 9월)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ᄅᆞᆷ대한으로 길히보젼ᄒᆞ세
안창호 환영식(1911) 무궁화샴쳔리 화려강산 대한ᄉᆞᄅᆞᆷ대한으로 기리보젼하셰
최신창가집(1914)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젼하셰
세계명작가곡집(1931) 무궁화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전하세
Korean Research Bulletin(1943)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윤치호 필사본(1945년 9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길히보전하세
김구題 한국애국가(1945년 11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대한으로 기리보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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