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박경리의 일본에 대한 인식

2019.09.11전통과 민족

김선생! 일본을 긍정적으로 볼려면 반드시 실패헙니다!

일본은 야만입니다. 본질적으로 야만입니다. 일본의 역사는 칼의 역사일 뿐입니다. 칼싸움의 계속일 뿐입니다. 뼈속깊이 야만입니다.

박경리. 신동아 1990년 2월호 「金容沃칼럼 檮杌世說 '제4회': '굼발이'와 '칼재비'」에 실린 김용옥의 인터뷰. 『도올세설』(1990)에 다시 실림.

박경리는 1982년경 『토지』 4부 연재 시기부터 일본문화에 관한 인터뷰를 자주 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생각해보니 최소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사회 질서에 복종하면서도 개인주의 또한 강한 일본인의 성격을 깊이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안 그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아주 작은 차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계곡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저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의 가능성보다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상황을 더 크게 느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러고보면 어렸을 때 들은 ‘왜정’(倭政) 때 이야기들도 일본인들과 싸웠다거나 일본인들 정치가 이랬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아니라 하나같이 일본인과 한국인의 작은 차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어려서부터 사회의 예절을 엄밀하게 지키도록 키워진다는 것과 일에 집중하지만 잔인한 면도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 문학보다 일본 문학과 일본어 번역을 더 많이 보고 자란 윗세대는 일본 문화에 감명받고 동화되었으며 매우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화가 되지 않는 이질감의 정체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경리는 일본 소설로 얼마나 많은 문학 수업을 쌓았겠는가.

사실 이러한 말을 만년에 한 것도 일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외의 다른 나라 사람이 아무리 싸가지 없이 굴어도 욕하고 지나갈 뿐이지 그것을 고치라고 말하거나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일본과의 관계의 특수성과 관련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에 대한 이런 인식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위의 글들은 대부분 일본이라는 나라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인용된 경우가 많지만, 제3국의 입장에서는 같은 특성이라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을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시했을 때 발생하는 오해를 피하는 데 사용하면 아마 일단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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