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다’

2019.08.31미분류

Ⅰ.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일본 에도시대 사상가인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1685~1744)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마도 일제 때 이 말이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이루어진 신분제 폐지와 맞물려 일종의 근대화의 상징적인 말로 자리잡은 거 같다. 즉 우리에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내포하는 것은 더이상 신분사회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신분사회를 긍정하면서 그 직업을 존중하고 천착하라는 일본식 직업관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23년 동아일보 연재 소설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직업을 잘하고 못하는데 있다’고 말해서 일본의 직업관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Ⅱ.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고대사회의 직업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직업이 모두 의미가 있었고, 그 직업이 없다면 사회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직업이 귀천이 없이 모두 중요한 것이다.

이시다 바이간도 사농공상이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귀천을 나눌 수 없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다.(확실한 건 아님…) 즉 고대사회에서 각 계층 또는 직업에 모두 역할이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Ⅲ.

그럼 현대사회에서는 어떨까? 현대사회의 직업은 모두 의미가 있을까?

현대사회의 상당수의 직업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시장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새로 생겼다가 다시 사라지는 직업도 많고, 단순히 돈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소득을 얻는 사람도 있으며, 전통적이지 않은 문화나 종교활동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고대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러한 직업들은 천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이 영원하진 않지만 구성원들은 각자 생계를 꾸린다는 점에서 묘한 상황이다. 시장경제이론엔 사농공상이 없다.

많은 직업들이 또한 뭔가를 한번 익혔다고 해서 그것만을 반복해서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직업 자체가 사라져가는 사회일 수도 있다.

Ⅳ.

반대로 과거의 기준이 더 세분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자면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가 표면만 바뀌어서 유지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사회의 상황과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러나 몇몇 개념들은 현대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중에서 특히 현대에 의미가 강해진 것은 상인과 기술자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상인이 더 영향을 많이 미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기술자가 더 근원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많은 경제·경영 이론에서 핵심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기술자다. 그리고 현대문명의 특성이 과학기술이다. 상업이 발전하면 기술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일까? 어느정도는 그렇겠지만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Ⅴ.

그래서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는 얘기냐 없다는 얘기냐? 그것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 혹은 근대적인가에 따라 답이 다를 것이다.

예를들어 고대사회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직업은 사회 구성에 필요한 완벽한 요소이므로 귀천이라는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중세 정도에 사는 사람에게는 사회에 구체적인 작용을 하지 않는 직업들은 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은 귀천이라는 개념 자체가 머리에 없고 시장과 돈을 중시할 것이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은 돈이 있으면 귀하고 없으면 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귀천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