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사마천이 쓴 공자의 기록을 보면…

2019.07.14한문과 중국고전/논어와 공자

사마천이 쓴 공자에 대한 기록을 보면… 재미가 없다!

사마천은 분명히 재미있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기의 많은 부분은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 그리고 본인 혹은 선대에 이루어졌을 자료조사와 실제 취재는 생동감이 있으며 그 매체의 신뢰성과 세간의 평가에 대해 비평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본인도 공자를 존경했겠지만 황제가 직접 지정한 황제와 같은 사람이니 주의해서 쓰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미 목숨이 한번 날아간 사마천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공자와 중국 정치와의 관계는 오래되고 복잡하다. 중국이 아무리 공산화되고 문화혁명을 겪고 과거와 단절되었다고 해도 그 과정과정에서 공맹이 호명되지 않은 적이 없다.

반면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근대의 어려움을 겪을 때 공자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공자를 버리고 새로운 신을 찾을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정약용 형제는 어떻게 공자를 신봉하는 동시에 자발적인 카톨릭 신자일 수 있었는가?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청나라가 들어서자 소중화를 주장했다는 조상님들의 생각은 신주를 옮겨야 하지 않겠냐는 단순한 발상이던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면 고대에는 타 지역이나 민족의 신 또는 유명인을 자신들의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공자는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남의 이야기인게 맞다. 그것을 마치 우리 이야기인양 받아들이는게 우리 민족의 습성인 거 같다. 아마 예수에 대한 믿음도 어쩌면 공자에 대한 믿음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거나 거기서 훈련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자건 예수건 우리가 아무리 사랑해도 우리의 역사적 맥락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남의 이야기임에는 변함이 없다.(이런 맥락에서 한 말도 아니고 실제 그렇게 발전한 것도 아니지만 각 민족마다 선지자가 따로 있다는 마호매트의 주장이 떠오른다.)

아니면 기독교계 신흥종교의 경우처럼 자신들의 종교가 아무런 역사적 맥락이 없는 것처럼 말하거나 확장에 필요한 부분만을 중요한 교리인양 취사선택한 새로운 유교가 나타날 수 있다. 어쩌면 원전에 대한 강조가 바로 밑도끝도 없이 본인들이 초대교회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와 이미 같은 행동일 수 있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포기는 유혹적인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과거의 누군가를 갑자기 호명해서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감정적인 충족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기의 다른 부분에 비해 생동감이 없고 딱딱하고, 실재했던 인생이 주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사마천의 기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어렵게 태어난 고아나 마찬가지인 아이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제자들도 얻고 벼슬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귀족들이 상담할 정도의 위치가 되고 중국 학문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극적이고 감동적이지 않은가? 아마 공자가 아니었다면 사마천이 독자들이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거나 통쾌한 이야기로 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그렇게 건조한 서술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사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믿기 힘든 신이(神異)가 등장하는 민중의 전승이나 기존의 믿음과 반대되는 내용은 설명없이 생략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