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머리말과 결론(丧家狗 「自序」和「总结」)

2019.07.12한문과 중국고전/논어와 공자

『집 잃은 개』(丧家狗, 2007)의 머리말(自序)과 책의 맨 마지막 「결론 3 공자의 유산: 유토피아에서 이데올로기까지」(总结三 孔子的遗产:从乌托邦到意识形态)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거 같다.

나머지 부분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이 책의 유행이 어떤 경전해석의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기보단 2000년대 초에 있었던 중국의 논어열풍의 결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적인 논어 해석을 원한다면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나, 성백효의 새로운 번역을 읽는 것이 우리에겐 더 의미있지 않을까 싶다.

머리말은 논어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사회의 상황, 그리고 이것을 평가하는 본인의 태도 같은 것들이 진솔하면서도 무언가 지적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은이가 어렸을 때 논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어수선하고 질서가 없으며, 맹탕으로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던 느낌,(杂乱无章,淡流寡水) ‘뒷부분을 볼 떄는 앞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렸고, 또 많은 부분이 밑도 끝도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는(看到后边,前边就忘了,还有很多地方,没头没尾,不知所云) 경험은 나도 동일한 경험을 했던 거 같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4절의 5·4운동에 대한 저자의 평가인 거 같다. 내용이 길지만 여기에 인용해 두려고 한다.

인용(22~25쪽)

고서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홍콩이나 타이완 사람들은 항상 대륙인들은 고서를 읽지 않고 전통을 중시하지 않으며, 고고학을 제외하고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14 그것은 5·4와 문혁이라는 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5 대륙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듣고서는 역시 맞장구를 치면서 ‘맞아, 맞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돼, 우리는 그런 점에서 손해를 봤어’라고 말한다. 나는 타이완과 홍콩에 가본 적이 있다. 그들의 전통문화는 어떠한가? 연구 수준은 어떠한가? 내 마음속에서는 매우 분명하다. 그렇게까지 허풍을 떨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그것들은 특히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 고서는 내가 줄곧 읽고 있다. 지금도 ‘삼고(三古)’(고고, 고문자, 고문헌)로 먹고살고 있다. (1권 22~23쪽)

说起读古书,港台人常说,大陆人,不读古书,不重传统,除了考古,一无是处,[1]这是中了“五四”的毒,“文革”的毒。[2]大陆的人听了,也跟着起哄,说是呀是呀,千不该万不该,我们就是吃了这个亏。台湾、香港,我去过,他们的传统文化怎么样?研究水平怎么样?我心里清楚,没必要这么吹。更何况,这条对我不适用。古书,我一直在读,现在也是靠“三古”(考古、古文字、古文献)吃饭。 (6쪽)

14 이 말은 맞지 않다. 고고학의 성취는 대부분 조상의 덕을 본 것으로서 중국 대륙의 고고학은 이론과 방법에서 보면 결코 다른 학문에 비해 특별히 뛰어나다가고 할 수 없다.

15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전에 미국에서 타이완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쓴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대륙의 엉터리 같은 글자는 읽을 수가 없다. 공산당 간부가 인쇄공에게 총을 겨누고 그들에게 식자(植字)하도록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사실을 거꾸로 말한 것이다. 1950년대 이후에 번체자를 식자하려고 해본다면 억지로 한번 밀어붙여봐도 간체자를 익힌 실력으로는 오히려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때문에 나는 막 번체자를 배우고 나서 곧 다시 간체자륿 애쒀고, 막 주음부호를 배우고 나서 곧 한어병음을 배웠다. 몇십 년 동안 두 종류의 문자는 다투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고대에도 간체자가 있었고, 일본에도 간체자가 있는데, 그들은 왜 욕을 하지 않을까? (641쪽)

[2] 有个故事,我还记得,从前,在美国看大湾报纸,

오늘날 5·4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여전히 존경심이 넘친다.

今天说“五四”,我还是充满敬意。

5·4운동은 계몽운동이다. 계몽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무슨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것인가? 관건은 서학 혹은 신학(新學)의 주도적 지위를 확립하는 것이다. 당시 공자에 대해서 얼마나 지나친 말을 했든 모두 당시의 환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현대화는 얻어맞으면서 이룩된 현대화로서 저항의 기술만 있고 되받아치는 힘은 없었으며, 화하(華夏) 전통의 정교한(약삭빠른) 장난감을 한쪽으로 밀쳐놓지 않고서는 수동적인 국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 한 걸음은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지 않았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며, 가지 않았다면 옛것을 보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공자가 성인이었을 때 그가 의탁했던 과거제라는 가죽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는데 털이 어디에 붙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두 공자를 성인의 지위에서 내려오게 하여 그로 하여금 제자백가와 나란히 서게 했는데, 그게 뭐가 좋지 않단 말인가? 이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자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준 것과 같은 것이다. (23쪽)

五四运动,是启蒙运动。启蒙启蒙,启什么蒙?关键是确立西学或新学的主导地位。当时对孔子,不管说过什么过头话,都要从当时的环境来理解。中国的现代化,是揍出来的现代化,只有招架之功,没有还手之力,不把华夏传统的小巧玩意儿搁一边,就无法摆脱被动局面。这一步,非走不行。不走,不能迎新;不走,不能保古。更何况,孔子当圣人,他依托的科举制,这张皮都没有了,毛将焉附?大家把孔子从圣人的地位请下来,让他与诸子百家平起平坐,有什么不好?无形中,这等于恢复了孔子的本来面目。

5·4는 공부자를 구해냈고 전통문화를 구해냈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현재 사람들은 모두 거장(巨匠)을 원하는데 그들은 몯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한번 조사해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 중 몇 명이나 순수하게 제대로 만들어졌고, 원래의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해협 저쪽의 사어소(史語所)(역사연구소)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타이베이대학(臺北大學)은 어떻게 해서 성립된 것인가? 후스(胡適), 푸쓰녠(傳期年)은 어떤 사람인가? 장제스는 5·4를 욕했는데 후스는 왜 반대했는가? 신학과 구학은 어떤 것이 더 우수하고 어떤 것이 더 열등한가? 모든 것은 매우 분명하다. (23~24쪽)

“五四”挽救了孔夫子,挽救了传统文化。我一直这么看,今天也没有变。现在,大家喜欢讲大师,他们都是怎么来的?你们不妨查一查,他们有几个是纯粹土造、原汁原味?还有,海峡那边,史语所是怎么来的?台大是怎么来的?胡适、傅斯年是什么人?蒋介石骂“五四”,胡适为什么反对?新学旧学,孰优孰劣?一切都清清楚楚。 (6~7쪽)

전통의 중단, 그것은 일부러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해 쏟아내는 말이다.

传统中断,是危言耸听。

어떤 회의 석상에서 나온, 도가를 몹시 좋아하는 천구잉(陳鼓應) 선생의 발언이 기억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내가 도가를 좋아하는 것은 감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바로 감정에 따랐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내가 타이완에 있을 때 국민당이 매일 우리에게 인의와 도덕을 설교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친구를 감금했고, 작은 솔을 가지고 그의 생식기를 고문했다.(형벌의 일종) 나는 유가의 책을 보기만 하면 그 작은 솔이 생각난다.” 그의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미워한 것은 국민당이지 공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자는 그저 기호일 뿐이다.

孔子只是符号。

대륙은 전통문화를 갖고 있지 않고 타이완과 홍콩 역시 아니다. 양안 세 곳 모두 피차일반이다. 이른바 전통문화라는 것은 현대화를 전제로 한 것이고,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고려한 것으로 오직 현재화의 압력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공자가 “이러 것들을 실천하고서도 여력이 있으면 곧 글을 배운다”고 말했던 것처럼. 과거에 중국 대륙의 현대화는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기초는 박약했고 태도는 몹시 급진적이었으며 수준은 지극히 낮았고 서구화는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옛것을 보호하는 데 힘쓰지 않았는데, 당시의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현재는 일단 한숨 돌렸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만족하여 모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4~25쪽)

大陆不是传统文化,台湾、香港也不是。两岸三地,彼此彼此。所谓传统文化,都是以现代化为前提,都是现代化的边角料,只有摆脱现代化的压力,才能腾出手来保一保,就像孔子说的,“行有余力,则以学文”(《学而》1.6)。过去,中国大陆的现代化,孤立无援,基础薄弱,态度最激进,水平最低下,西化不强,保古不力,乃环境使然,现在喘过一口气,不要忘乎所以。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인 체계로 하늘은 파오(몽골인의 이동식 주택)같이 온 사방을 덮고 있다. 이 세계에는 오직 ‘주류 국가’와 ‘비주류 국가’만이 있고,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런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전통’(과거에는 ‘봉건’이라고 불렀음)의 꼬리는 잘라 내버리려고 해도 잘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찍부터 ‘사회’가 되지도 못했다.

资本主义是个全球化的体系,天似穹庐,笼盖四野。这个世界,只有“主流国家”和“非主流国家”,名字叫什么,喜欢不喜欢,并不重要。“传统”(过去叫“封建”)的尾巴就算割不断,也早就不成其为“社会”。

1980년대에는 모두 중국은 너무 전통적이다(‘너무 봉건적이다’ 도는 ‘너무 전제적이다’)라고 욕했고, 오늘날에는 또 중국은 너무 전통적이지 않다(‘너무 민족적이지 않다’ 또는 ‘너무 세계적이지 않다’)고 욕하는데, 도대체 어떤 말이 맞을까? 자기가 자기 뺨을 잡아당기고 있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잡아당겨야 하는 것일까? 일부러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두 말은 모두 전통문화를 과대평가했다.

1980年代,大家骂中国太传统(“太封建”也“太专制”),现在又骂中国太不传统(“太不民族”也“太不世界”),到底哪个说法对?自己抽自己耳光,到底能抽几回?两种危言耸听,都高估了传统文化。

전통은 과거일 뿐 시조로 모시고 받들 필요가 없다. 만약 좋든 나쁘든 가릴 것 없이 듣기만 한다면, 무조건 절하고 누구도 감히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면 과거 시절의 ‘반혁명’과 같은 것이다. (25쪽)

传统就是过去,没必要当祖宗供着,不分好坏,闻之必拜,谁敢说个不字,就跟当年的“反革命”一样。 (7쪽)

근대화가 고전에 대한 열의를 살려놓고 있다는 이 역설적인 ‘현상’은 확실히 정확한 관찰이다.

인용(1329쪽)

더 민족적인 것일수록 더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나는 홍콩에 갔을 때 식민지일수록 국수적인 것을 더 강조한다는 것을 체험했다.43 (1329쪽)

(주43은 노신의 「述香港恭祝聖誕」(1927)을 참고하라는 내용.)

인용(1327쪽)

국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국학이 바로 “국가가 국가다움을 유지해 갈 수 없을 때 발생하는 학문”40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첫째 서학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국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것은 고의로 서학을 쥐어짜면서 생겨난 것이다. 둘째, 이른바 국학은 모두 중국도 아니고 서양도 아닌 학문이다. 너무 중국적인면 국학 측에 들지 못하고, 너무 서양적이어도 국학 축에 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고증학은 너무 옛것이라서 청대의 학술에 귀속시켜야 하고, 고고학과 비교언어학은 너무 새로운 것이라서 순수한 서학이다. 내가 인정하는 국학의 대가는 모두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사상 혹은 새로운 학술로써 구학(舊學)을 개조한 사람이다.

대가는 모두 따로 새롭게 시작하여 풍조를 바꾸어놓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한동안 명성을 떨친 대가 중에서 신학(新學)을 완전히 거절한 사람은 아마도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있다 하더라도 그저 허명일 뿐이다.

국수(國粹)란 무엇일까? 국수 역시 서구화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서구화는 해변에서부터 내륙으로 옮겨갔고, 도시에서부터 농촌으로 옮겨갔다. 서구화의 물결이 닿지 않은 대부분의 지역이나 분야는 조금도 변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른바 국수이다. 무술(武術)과 방술(方術), 중의(中醫)와 중약(中藥), 두메산골, 차이나타운, 노인들이 즐겨 듣는 지역극(地域劇), 일반 민중이 믿는 각종 미신 등은 특히 국수 중의 국수이다.41 (1327쪽)

41 전통이 다 정수는 아니고, 대부분은 “국사(國渣)”, 즉 나라의 찌꺼기라고 불러야 한다. (1372쪽)

(이 글들에 나오는 말들은 20세기초 중국 국학에서 사용한 말들이 많다. 國渣라는 말도 胡適이 사용했다. 옮긴이 주 40의 國將不國도 曾朴의 말이다. 이렇게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쉽다.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설명 없이 이해할 정도로 유명한 말들인 건가? 그럴 가능성은 낮을 거 같다.)

공부자를 숭상하던 청나라가 과연 도덕적이었냐는 앞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인용(19쪽)

나는 도덕과 질서 중에서 질서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문혁’을 보면 도덕이 없었기 때문에 질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질서가 없었기 때문에 도덕이 없었던 것이다. 도덕은 매우 취약하고 또 무척 실제적이다.

我理解,道德和秩序,秩序更重要。比如“文革”,不是因为没道德才没秩序,而是因为没秩序才没道德。道德很脆弱,也很实际。说好就好,说坏就坏。比如,挤公共汽车,人太多,车太少,秩序大乱,谁排队,谁甭想上;火车,千里迢迢,不是一时半会儿,汽车可以让座,火车就没人让,里面的道理很简单。道德,甭管多好,社会一乱,说垮就垮,越是没道德,才越讲道德。 (4~5쪽)

도덕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질서와 혼란을 거듭해왔고, 도덕은 때로는 좋은 것이었고 때로는 나쁜 것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오래된 일이라 말은 안 하겠지만, 명저 말년은 어땠으며, 청조 말년은 어떠했는가? 야사의 기록과 구소설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나빴거나 심지어는 더 나빴다. 그 당시 도덕을 누가 관장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공부자(孔夫子)이다.

道德不是讲出来的。历史上,国家一治一乱,道德时好时坏,太正常。远了不说,明朝末年怎么样,清朝末年怎么样?野史笔记、旧小说还在,人和现在一般坏,甚至更坏。您别忘了,那时道德归谁管?正是孔老夫子。 (5쪽)

오늘날의 ‘공자열’에서 뜨거운 것은 공자가 아니다. 공자는 그저 기호일 뿐이다. (19쪽)

现在的“孔子热”,热的不是孔子,孔子只是符号。

이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과 홍콩에 비해 전통이 뒤졌다는 컴플렉스를 묘하게 변호해주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을 제도화 시켜주고 산업기반을 만든 것이 바로 일본이므로 감사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이 떠오른다. 당연히도 이것은 기존 사회를 파괴한 후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과 한번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저자 역시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용(17쪽)

20세기를 둘로 나눈다면 나는 후반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세대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과 함께 경극 및 대고(大鼓)(큰북)와 상성(相聲)(중국식 만담) 등을 들었는데, 상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계속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쿵딱딱쿵딱딱 꺽꺽꽥꽥거리면서 이어지는 길고 느린 곡조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영화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조금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나의 태도를 회상해보면 오늘날의 ‘1980년대 이후 세대’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내가 그들을 볼 때 눈에 거슬리는 것처럼 나의 아버지가 나를 볼 때도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이런 일은 대륙인가 대륙이 아닌가, 혹은 타이완인가 타이완이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화 속에서 나타나는 매우 보편적인 문제이다. 설령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일찍부터 고전 교육을 한쪽으로 밀쳐버렸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철저하게 몰락했다. 누구든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더욱 전통적이라고 과장한다. 전통은 고귀한 것이고 어떤 것은 빈사 상태에 처해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찬성한다. 그러나 전통을 선양하여 공자의 깃발을 기필코 온 세계에 꽂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흥미가 없다. (17쪽)

上个世纪,一劈两半,我是后半截的人,代沟肯定存在,没什么了不起。小时候,我跟大人听京戏、大鼓和相声,除了相声,几乎都听不下去。我总觉得,哐呔呔,哐呔呔,咿咿呀呀,长腔慢板,远不如电影吸引人。有点兴趣,那是后来的事。我的态度,回想起来,和如今的“80后”,有程度差异,无本质不同。我看他们看不惯,我爸爸看我也看不惯。这不是大陆不大陆,台湾不台湾,而是现代化下很普遍的问题。即使欧美国家,也是早就把古典教育撇一边,二次大战后,彻底衰落。谁也别吹,自己比别人更传统。你说传统是宝贝,有些东西,处于濒危要保护,我赞成;但非要弘扬,直到把孔子的旗帜插遍全世界,我没兴趣。 (4쪽)

우리도 사회에서 유교의 욕을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것이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 온 것인지 역사를 넓게 보고 저자처럼 그 매커니즘을 밝히려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다. 물론 우리 사회에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중국만큼 공자의 그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민공화국은 공산화 과정에서도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공자의 그림자가 무척이나 강했다. 보수적인 관점을 강조할 때는 공자가 거론되며, 전통을 타파할 때도 그 대상은 공자가 된다.

인용(1301쪽)

신성화된 공자와 도덕화된 정치는 전통적인 “중국의 이데올로기”이다. (1301쪽)

神圣化的孔子和道德化的政治,是传统的“中国意识形态”。 (374쪽)

이 책에서 얻는 두번째 지식은 이러한 중국 정치와 문혁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 시기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책을 통해 조금씩 그 이해를 넓히게 되는 거 같다. 얼마전에 읽은 이택후의 인터뷰도 당시 사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공자가 또 끼어있다는 것. 이러니 저러니 해도 중국 최고의 위인은 공자이며 사상의 근원 또한 공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공자가 각광받는 현재의 모습은 전지구적인 우경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타당하다고 본다.(现在的世界,革命革伤了,革命革怕了,全都向右看齐,保守主义浪潮和复古风席卷全球。)

결론3의 4절인 「공자의 대통일」(孔子与大一統)은 한대에 유교와 종교가 어떻게 분리되었는지에 대한 추측이다. 진한대에 사당을 세워 종교에 대한 통합 노력이 있었으나 이것이 왕망에 의해 황실 제사로 통합되고 민중들의 그 빈 부분을 도교와 불교가 채웠다는 발상은 물론 헛점이 많겠지만 이런식으로 해설해보려는 것 자체에서 참신함을 느낀다.

머리말 이외의 부분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논어를 다룬 후속작 『논어, 세 번 찢다』(纵横读, 2008)도 마찬가지다. 이 생동감의 원인은 저자의 인생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와 얽힌 공자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보편적인 사회적 특성까지 도출해내는 지성과 관찰력인 거 같다. 우리의 경우는 중국만큼 강하게 공자의 사상을 사회에서 논한 것도 아니고 그걸 뼈속 깊이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글이 나오지 않았던 거 아닌가 싶다.

저자는 대륙이 홍콩이나 대만보다 못할 게 뭐냐고 항변했지만, 이 책 자체가 중화인민공화국의 고전 해석 상황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사회를 뒤돌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서구화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기 때문에 서구의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청나라 말기 학자들처럼 전통을 기반으로 활기차게 해석할 수도 없음을.(어쩌면 모택동도 전시대의 마지막에 서 있었기 때문에 고전을 마음대로 인용할 수 있었던 것일 수 있다.)

전통적으로 ‘喪家之狗’는 ‘상가집 개’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로 ‘집 잃은 개’(丧家狗)라는 해석도 맞다. 집 잃은 개와 들개(野狗)는 어떻게 다른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전통을 잃은 상황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다.

덧붙임

위 인용문 중 질서에 관한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에도 반복된다. 즉 이것이 이 책의 주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인용(1332쪽)

유토피아의 기능은 현존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현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50 유토피아에서부터 이데올로기까지의 과정은 지식인의 숙명이다.

(주50은 카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 실린 글을 周宁의 『孔敎乌托邦』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乌托邦的功能是否定现存秩序,意识形态的功能是维护现存秩序。[1]从乌托邦到意识形态,是知识分子的宿命。

공자는 중국을 구제할 수 없고, 세계를 구제할 수도 없다.

孔子不能救中国,也不能救世界。

애초부터 구세주 따위는 없었고, 또 신선이나 황제에 의지하지도 않았었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 (1332쪽)

从来就没有什么救世主,也不靠神仙皇帝。要创造人类的幸福,全靠我们自己。 (390쪽)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이 『논어심득』과 함께 유행했음을 알았다.(1376쪽) 논어심득을 읽어야 이 책이 왜 유행했는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 같다.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