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음양, 오행, 주역의 차이

2019.07.07한문과 중국고전

음양, 오행, 주역의 발생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은 전시대 중화인민공화국의 학자들이 열성적으로 논증했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로 중국철학자들은 음양, 오행, 주역이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인양 취급하고 있다. 유가의 덕목들조차 이들과 하나로 묶인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것들의 차이를 논하는 사람은 없고, 어떻게 하면 통일된 관점으로 설명을 할까에만 골몰해 있다. ‘중국판 대통일장이론’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의학 자료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음양, 오행, 주역, 나아가 육기, 삼음삼양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것이다.

음양은 변화하는 자연에 대한 인식적 기반이다. 아도르노의 변증법처럼 자연은 바뀐게 없어도 인간사에서 갑자기 마술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주역은 일종의 점술이다. 점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현은 역동적인 변화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은 한순간만을 포착한 사진과 같은 것이다. 취상이란 것은 한 순간을 본다는 것이다.

같은 색을 보더라도 다른 기운을 느낀다는 중국 미학의 관점은 이것에 대한 곡해일 수도 있다.

오행은 세상의 다이나믹한 구성에 대한 이해다. 내가 조직을 운영하는데 무엇이 약점이고 어디를 보강해야 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서 동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보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점술과 다르다.

오행설이 전국시대 막바지에 가장 각광받고 한대에 정치적으로 채용된 것은 이러한 관계성과 조작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운은 하늘에 대한 상상력의 소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잘 모르겠다. 마치 화성은 불이 많겠거니 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육기, 삼음상양 역시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러한 이론들은 다른 이유로 만들어졌으나 그 정치적 독립성이 약하기 때문에 음양오행설에 부착된 이론인 듯이 해석되고 있는 것일 거다. 또는 그 존립 근거를 음양오행설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음양오행설이 변환된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거 같다. 한의학 같은 경우는 어쩌면 음양오행설이 대의이고 삼음삼양, 육기 등은 현실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다. 일부는 이름도 없이 해석의 가운데에 흔적만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십간 같은 것이 그러한 이론들일 수도 있다.

이점 역시 중요한 중국철학의 특성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이론을 흡수할 때, 그 이론이 기존 이론의 변환된 이론임을 증명하여 상하관계를 만든다는 것.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이론의 존립 근거를 기존 유력 이론에 위탁한다는 것. 또는 상위 이론은 체가 되고 하위 이론은 용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 이론들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상황에 대해 각각의 이론으로, 또는 각각 다른 층위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근대 학문이 하나의 사안을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다르게 보는 분업적인 태도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