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대중의 침술에 대한 요구

2019.06.12건강과 의학/한의학

1. 요즘 침술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건 침술을 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노인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침술의 잠재 고객이다. 예를 들어 다리를 삔 것과 같은 증상에는 젊은 사람들도 침술을 먼저 떠올린다.

① 다리를 삐었을 때, 병원을 찾아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작은 가능성 때문에 환자가 복잡하고 힘들게 병원을 가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② 그리고 병원에 가도 다리를 삔 것 같은 작은 증상에는 이렇다할 뾰족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침을 맞으면 뭔가 치료를 받은 거 같고 회복도 빠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효과를 봤다는 주위사람도 많다.

③ 나아가 다리를 자주 삐는 경향이 있을 때, 이것을 서양의사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주눅이 든다. 용기를 내어 말해봤자 뭔 헛소리를 하는건가 하는 무관심에 마음만 상할 뿐이다. 반면 오히려 한의사나 침구사는 경험적으로 그런 ‘체질’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준다.

(덧붙임: 이동연 서울대 교수 등이 Journal of Pediatric Orthopaedics 2018년 10월호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어렸을 때 염좌 등으로 인대에 뼈조각이 붙어서 자란 경우 잘 삐게 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작은 연골 조각들은 엑스레이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는 잘 몰랐다고 한다.)

④ 시술이 간단해 보여서인지 침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관심이 있다면 집근처에서 수지침을 가르친다는 광고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교육하는 곳을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2.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보면, 서양의학의 권위적인 태도, 비인간적인 취급, 복잡한 절차(이것은 북미에서 walk-in clinic으로 구현되고 있긴 하다.), 높은 비용, 프라이버시에 대한 걱정 등이 침술을 비롯한 민간요법을 찾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의학이 권위와 전문성은 얻었지만 그만큼 대중과 멀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단점은 서양의학만의 특징이 아니다. 옛날옛날에 돈을 밝히는 한의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비싸고 귀한 약재를 권해서 혼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역사책에서 본 거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에서 밀려난 한의사는 현재 서양의학의 단점을 보완하는 위치로 자리잡는 것이 순리인 거 같다.

한의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약사 역시 의약분업 이후 수동적인 역할을 하게된 거 같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네약국이 서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의사가 써 준 처방전에 있는 약을 꺼내주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약사의 커리큘럼도 시대에 맞춰 전문 분야가 세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업을 위한 과정, 신약 개발을 위한 각 과정 등으로.

약국이 병원 역할을 한 것은 어쩌면 일제시대 약종상들의 역할에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찰이라는 무형의 서비스는 공짜고, 서비스 요금은 약값이라는 현물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3. 우리 사회는 뭔가 중간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의료 서비스가 다양해질 수 있고, 또 그것이 주는 장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분야에서도 사람들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거 같다. 왜 사회가 이런 경향을 갖게 되었는지는 차차 생각해볼 문제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한의사도 이러한 권력싸움 대열에 동참해 있다. 의사의 공격을 민족의학에 대한 신념으로 겨우 방어해낸 후 침구사 같은 다른 민간요법을 몰아내는 데는 의사와 같은 편이 되기도 한다.

또한 한의학은 언제나 주류의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커리큘럼도 의대와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의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쩌면 의사 제도와 통합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된다면 아마 한의사가 아닌 다른 민간요법들이 지금의 한의학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민간요법이라는 것은 주류 의료체계 뒤에 생기는 그림자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도라는 것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서양의학 우위 체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를 위한 이익단체가 매우 권위적인 성향을 띄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대체 의학들이 전복을 꿈꾸는 것보다 어쩌면 이런 독점적인 체계를 견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4. 침술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그에 맞춰 침술을 직접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이전에는 단순히 민간요법을 원하는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고려수지침, 뜸사랑 등 대중적인 강의를 하는 곳의 수강생을 합하면 수십만 단위이고, 전문적인 침술을 가르치는 학원의 수강생도 예상외로 매우 많다. 물론 이중 일부는 침술을 더 배우려는 한의사가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런 자격이 없는 일반인들이 매우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는 사람이 매우 많다. 정확한 통계는 없겠지만 아마 교육기관들을 모두 합하면 매년 몇만명은 될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경제 형편이 나아진 사람들이 자가 치료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욕망으로 분석하긴 어려운 문제일 거 같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이러한 침술학원들이 1960년대에도 성행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마 침구사 제도의 부활을 예상하고 다닌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현재도 일부는 침구사를 인정하는 외국에서 개업하기 위해서, 혹은 이미 개업한 사람이 기술을 더 배우기 위해서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보급되어 있는 자가치료 방법은 많은데 왜 침술에 많이 몰리는 것일까? 일단은 수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치료법이라는 믿음과 그것이 주는 매력 같은 것에 끌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강한 수단을 본인에 익히게 되면 남에게도 영향을 미치거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우리나라만큼 제약이 없는 외국에서의 영업을 위해서 배우는 사람도 많은 거 같다.

침술과는 거리가 있지만 안마도 뭔가 비슷한 점이 있다. 최근 10년정도에 안마시술소나 사실상 안마시술이나 마찬가지인 업태가 무척 많이 늘었다. 이것은 안마 역시 사람이 가볍게 서비스 받고 싶어하는 전통적인 치료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5. 어떤 기술이나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었지만 대중적인 요구가 있을 때, 변칙적인 방법으로 서비스가 되는 것은 역사에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변칙적인 서비스 중에 하나는 교육이라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에 사서삼경을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교육하는 것으로 유지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행위일 수도 있다.

6. 큰 돈을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근대 기술들의 특징일 것이다. 거기서 현대 사회의 복잡함이나 배금주의에 대한 이탈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전근대 기술들을 보급하는 경우에 과학 등 현대적인 기술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도 그러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전근대 기술도 주류였을 때는 그러한 부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보다 세상 일이 정치적인 부분에서 속성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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