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한의학의 위상

2019.06.05건강과 의학/한의학

1. 민간요법 연구자들이 한의학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노력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쉽게 한의학을 통달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각종 요법과 처방들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을 비판하는 아마추어 연구자들 또한 본인들이 한의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쉽게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전근대 문화에는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가치와 내면이 있다. 특히 의학은 그중에서도 객관적인 실체와 함께 전해졌다는 것에서 그 어떤 전통문화보다 연구해야할 구체성이 있다. 몇 천 년을 굴러온 그 체계는 다른 전근대 지식처럼 얕은 듯 하지만 깊고 혼란스럽다.

근대화 과정에서 무시당한 전근대 문화가 한둘이 아니지만 한의학이 특히 그 가치에 비해 너무 비하되었던 것 아닌가 싶다. 어쩌면 한의학 종사자 당사자들도 그런 면이 있어왔던 것 아닌가 싶다. 기술만 남기고 원리는 과학으로 대체하자는 태도 같은게 그런 것 아닐까.

예전에 금오 김홍경이 한의대생 중에 왜 황제내경을 들고 입산수도 하는 사람이 없냐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땐 공부를 독촉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라는 심오한 말이었던거 같다. 야나기야 소레이(柳谷素霊)는 이미 그런 행동을 했던 것 아닌가?

2. 또한 의학은 임상이 이론보다 선행하는 특성이 있다. 물론 이론적인 이해는 인간의 기억과 새로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만 이론으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또한 그 과정에서 직관을 쌓아간다. 이것은 서양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자연과학자나 철학자도 의사의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과학이 의학에 우선하지 않는다.

어떤면에선 기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훌륭한 기계공학자라고 해서 기계를 고치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면 기계를 조사하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기계가 복잡해지고 기계가 외부와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라면 분석하고 수리하기 곤란할 것이다. 기독교 신학적인 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왜 자가치료가 아닌 타자에게 치료를 맡기는가.

오래된 직업들은 타자와의 관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재단사를 오래된 직업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자기 몸에 맞는 옷이나 장식을 자기가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의사의 역할은 건강을 도와주는 것이지 건강비결을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해야할 것과 남이 도와주는 것 사이에 어떤 선이 있다.

의사가 건강 요법이라면서 대중매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당한 행위는 아닌 것이다. 이것이 의사의 위상을 깎는다. 과학적인 설명을 하기 옹색하기 때문에 한의사는 더 위상이 깎인다.

물론 공중보건을 위한 행위와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유행하는 병에 대한 예방과 대처법을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것도 심한 광고가 되어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5. 최근 서양의학사에 대한 연구 발전이 국내에서도 놀라운데, 한의학도 그에 걸맞는 역사와 철학적 배경이 필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본 몇몇 글들로 봐서는 약간 요원한 거 같다. 한의학계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 기본적으로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인데 이렇게 발전속도가 느린 게 잘 이해가 안 간다. 학문이란게 내 예상보다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