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후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감상 1

2019.05.27전통과 민족

이 책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中国哲学如何登场?)는 2011년에 출간된 대담집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该中国哲学登场了?)의 속편이다. 전작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같은 인터뷰어(刘绪源)가 바로 다음해에 또 인터뷰를 하고 출간한 것이다.(한국어 번역자도 같다.)

3장까지 읽었지만 뒤는 언제 또 읽을 지 몰라서 감상을 메모해둔다.

1.

그동안 이택후의 책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었는데, 이 책을 보니 답안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택후가 그동안 간략하게 주장하기만 했던 내용들에 대한 전후 설명을 보니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요즘 대담이나 토론을 한 것으로 쉽게 책을 내기도 하지만 대담집이나 인터뷰를 책으로 내는 것도 이택후 레벨 정도는 되는 사람이 내야 후학들이 볼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실제로 아래 인용한 부분 같은 경우는 이택후 사상의 요약처럼도 느껴진다. 인터뷰어 역시 ‘선생님께서 평생 연구하신 것의 정화’(你一生研究的精华部分)라며 맞장구 친다.

“미로써 진을 연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도를 파악해 기쁨을 느끼고 미를 느끼는 순간에 발견과 발명과 창조가 생겨나고 진리를 인식하는 문이 열리게 되지요. 그리고 다시 개념으로까지 끌어올리면 결국 이성적 결론을 얻게 되고요. 처음 시작은 실천 활동 속에서의 느낌과 체득, 그리고 ‘도’입니다. 미(美)는 ‘도’의 자유로운 운용이지요. “도로 말미암아 미에 이르는 것”과 “미학은 제1철학”의 종점은 바로 종교를 대신하는 거엥. 형식감(形式感)으로써 불가지의 ‘물자체(物自體)’에 귀의하고 그것을 경외하는 겁니다. 또한 ‘이성의 신비’에 대한 깨달음이지요.

还有“以美启真”,也在这里了。你把握到度,感到愉快,感到美了,在这一瞬间,你就有了发现和发明,就有了创造,就开启了认识真理之门。再上升到概念,那你就有了理性的结论了。最开始的,还是实践活动中的感受、体悟,还是那个“度”。美是人对“度”的自由运用。“由度到美”和“美学是第一哲学”,其终点则是以美育取代宗教,是以形式感对那不可知的“物自体”的归依和敬畏,也就是我讲的对“理性的神秘”的感悟。

— 2장 5절 미는 ‘도’의 자유로운 운용이다.(美是人对“度”的自由运用) 74~75쪽.

이택후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가 20세기 초반부터 활동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발전을 함께 하였다는 점이다.

20세기 초부터 활동하였기 때문에, 19세기 철학들을 가깝게 생각하고, 20세기 철학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들과 학문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가 배운 고문(古文)들도 청대(淸代)의 전통에 가깝다. 어떻게보면 19세기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가 20세기를 경험하고 21세기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를 쉽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또한 주로 추억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19세기에서 20세기초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도 이택후처럼 과거 속의 인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작년부터 칸트에 관심이 생겨 책을 보고 있는데 어쩌면 이게 이택후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개국을 지켜보았으며 개국 초기 수십년 간의 혼란을 또한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과거 저작들과 주장들을 중공의 사회 분위기와 사상 유행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이전 중공의 상황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당시 중공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이 많다.

2.

이택후 책이 읽기 어려운 또하나의 이유는 젊어서부터 단정적으로 본인의 독자적인 철학이 있는 것처럼 글을 써왔다는 것이다. 이 대담집에서도 그 특성에 대해서 몇 번 언급이 된다.

이택후는 왜 어려서부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을까? 그것이 본인의 성격이었을까? 그것이 그의 공부하는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중국 철학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걸까? 예전부터 이택후 글을 읽다 보면 이런 부분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3.

이택후가 말하는 것은 결국 19세기 서양철학 이론을 현대 중국에 적용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과의 모순도 피해가면서? 구체적으로는 주정적(主情的)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뇌라는 물리적인 대상이 있다는 핑계로 피해가는 것 아닐까? 과학적인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의 ‘탈출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동양과 서양을 상반된 것으로 비교하는 생각.(1장) 이런 것은 참으로 오래된 것이지만, 그런 생각의 태동기부터 보고 서양학문을 실제로 중공에 소개하기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역시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것들은 너무나도 동양철학을 수동적인 입장으로 방어하기 위한 태도 아닌가?

만약 중국이 세계를 재패했고, 이택후가 발칸반도에서 태어났더래도 지금과 같은 주장을 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택후는 중국이라는 사회와 역사에 맞춘 상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나는 요즘 서구와 중국의 문화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 않고 그 힘의 우열만 종이장 같은 차이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치가와 철학가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3장 2절 후반의 주장도 흥미롭다. 이것은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직업군이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하며 서로의 권한을 침해하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풍우란과, 장개석이 등을 두드릴 때 흥분했다는 허린(賀麟)의 예를 들며 이들이 배움이 뛰어나면 벼슬을 한다(논어 19.13)는 공자(孔老夫子)의 전통인 전근대적인 ‘재상 심리’(宰相心态)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중공 건국 초기의 사건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직관적인 경험을 해야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본인의 주장과 대치되는 것 아닌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은 정치 참여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이택후는 분업화를 반대하지만 본인의 전공 이외의 학문은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book{author="李泽厚 and 刘绪源", title="中国哲学如何登场?:李泽厚2011年谈话录", publisher="上海译文出版社", address="上海", year="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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