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찌빠」와 「로봇 삼등병」

2019.04.05만화와 SF

2015년 9월에 수정된 나무위키 로봇 찌빠 항목에는 「로봇 찌빠」가 1976년 일본에서 방영된 「로봇코 삐ー톤」(ろぼっ子ビートン)의 부리킨(ブリキン)이라는 로봇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적혀있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글쓴이는 ‘정설’이라고 표현했으나 이전에 그런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16년의 IT조선 기사도 이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불마크(ブルマァク)사의 부리킨 프라모델 박스아트. 어렸을땐 너무나 갖고 싶었는데.

부리킨과 찌빠가 닮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공통점으로 드는 외제 로봇이라는 점도 근거로 삼기에는 빈약하다. 아마 찌빠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절이라고 단정하고 비슷한 시기 비슷한 디자인의 로봇을 찾다가 무리수를 둔 것 아닌가 싶다.

로봇 찌빠와 디자인이 유사하고, 캐릭터의 성격도 비슷해 보이는 작품이 있긴 하다. 마에타니 코레미츠(前谷惟光)의 「로봇 삼등병」(ロボット三等兵)이라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화 되지 않았고 워낙 오래전 작품이기 때문에 현재의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로봇 삼등병 ©前谷惟光

이 작품은 1955년 나와 대본소에서 인기를 끌고 1958년 월간지 연재로 이어진 당시 상당한 인기작이었다. 현재는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코가 막대 모양인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로봇을 연상시키는 일본 만화 캐릭터가 이 로봇 삼등병의 오마쥬인 경우가 종종 있다. 로봇 삼등병이 오즈의 마법사의 영향을 받은 걸 수도 있다.

로봇이 바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아톰」이나 「철인28호」 같은 동시대 다른 작품의 슈퍼로봇들과 대비되는 점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찌빠도 마찬가지다. 찌빠가 연재될 당시 컴퓨터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반해 찌빠는 엉뚱한 짓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말만 기계처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이 매우 강한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인간처럼 잠도 자고, 꿈도 꾸고, 감정을 느낀다.

오랜 기간 연재하면서 여러 에피소드를 다뤘는데, UFO를 타고 외계인 왕을 만난다는 『トッピ博士の珍冒険』(1958) 같은 것은 찌빠의 비슷한 에피소드를 연상시킨다.(소년중앙 1979년 12월호 별책부록 제6회)

마에타니 코레미츠의 아버지는 「子供の科学」를 창간한 과학 칼럼니스트 하라다 미츠오(原田三夫)로, 과학이나 우주여행 관련 부분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에타니는 어머니쪽 성이다.

로봇 삼등병은 일본의 전쟁 당시 상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 자신이 악명높은 버마 전선에서 생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하라다 미츠오는 1966년에 쓴 자서전에서 분명히 죽었을거라 생각한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참고)

그러고보면 동원되어서 고생을 했지만 10대 초반에 전쟁을 겪은 데즈카 오사무와 20대에 징병되어 직접 전쟁을 경험한 윗세대와는 인식의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에타니 코레미츠나 미즈키 시게루 같은 경우는 작품에서 전쟁의 부조리를 구체적으로 고발하나, 앞에서 언급한 아톰이나 철인28호에서 전쟁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이 전쟁에서 자국의 부정적인 면을 잘 묘사하지 않고 막연한 추억으로 회상하는 지금의 일본 만화의 경향을 형성한 것일 수도 있다.

찌빠에도 필리핀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미군 출신 로봇이 나오기도 한다. 찌빠에 묘하게 국제관계 같은 것이 자주 언급되었던 거 같은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