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가?

2019.03.29정치와 사회

Ⅰ.

근년에 유시민이 방송에서 해서 유명해진 말로 ‘자연이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권력도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방송을 보지 않아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한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인터넷에서 본 단편들로 추론하건데 권력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편재성(遍在性)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치학적인 맥락에서 이 ‘진공’의 의미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용되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power vacuum’은 어떤 지역에 있던 국가가 망하거나 최상위 권력이 약해지면 그 자리를 다른 국가나 정치 세력이 노린다는 의미로, 또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의미로 사용되었다.(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 용례가 있었다. Political nature abhors a vacuum, which is what often exists for a year or two in a party after it loses a presidential election. George Will, 2010년 2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 우리로 치자면 전임 대통령이 탄핵된 현재의 자유한국당 같은 상황을 말하는 것일 거 같다. 탄핵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소속 정치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즉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거기에는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다. 유시민이 ‘진공’을 채운다는 것을 매우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과 다르다. 어쩌면 이과와 문과의 감성 차이일 수도 있다.

둘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에는 국가 권력의 감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인류와 함께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정부적인 상태인 지역도 실제로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자명한 일일 것이다.

물론 무정부 상태인 지역은 곧 다른 국가권력이 노리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첫번째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 되며, 명목상으로 국토이지만 통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인간이 국가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상태도 있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편재성을 강조한 것은 아마 1990년대에 유행한 푸코의 영향 아닌가 싶다. 푸코가 상당히 근원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맞다고 보지만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정치학에 적용하고, 자연과학에 유비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유시민의 주장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강제성을 또한 주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통속적인 관점, 즉 정부가 국민을 다스린다는 관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정부 업무가 멈춰 있으면 국민은 생업을 합법적으로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정부의 미덕은 민원처리 속도 향상, 절차 간소화, 규제 완화, 민원 창구의 확대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의 자연스럽고 보편스러운 관점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사회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피하고자 정부와 교섭을 하고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이 땅을 이렇게 사용하고 싶은데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보통 돈이다. 화폐의 유통이 국가 권력과 연관이 있다.

공식적인 사회와 관련이 없는 부분은 정부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행동을 일일이 정부에게 허락이나 제어 받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따져보면 사회라는 것의 실체도 기본적으로는 지역사회다. 즉 중앙 정부가 아니라 지역의 자치단체와 교섭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유시민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관념이 별로 없다. 그 근원은 잘 모르겠다. 조선과 일제의 중앙집권적 고압적 태도에서 근원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에 근대적 체제를 이식한 일본의 경우도 우리만큼 정부의 권력에 맞춰 개개의 국민이 사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Ⅲ.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뉴스가 해외에서 간혹 들리는 것이다. 공무원이 파업을 했다거나 혹은 공무원을 정리해고 했다거나, 경찰 파업을 소방관이 진압했다거나.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사건인 것이지만 이 조직들 각각이 협상이 가능한 독립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정부 기관을 독립적인 조직으로 가정하지 않는다면, 기관이 잘못을 했을 때 견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결국에는 정부 기관은 무오한 국가 권력을 시행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모순적으로 더 높은 절대권력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빌게 된다. 또 기관들 간의 견제도 어려워진다. 다 옳은 곳이니까 잘못을 알아도 그저 놔두는 수 밖에 없다.

성역이 존재할 수는 있다.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한선이 있을 수 있다. 왕실이라던가 어쩌면 세금을 걷거나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언제나 협상 가능한 유동적인 기관으로 보는 것이 더 근대적인 관점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이 계약을 맺었다는 사회계약설 같은 주장이나 사회적 이익이 된다면 죄인도 재판정과 협상을 한다는 관점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Ⅳ.

그리고 우리는 정보원(情報源)을 쉽게 혼동한다. 정치인이나 방송인으로서 유시민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그를 정치학이나 철학을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나도 그가 과거 역사학자연(然)한 책을 읽고 헤맸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