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의 침체기

2019.02.25만화와 SF/만화

일본 만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독자들도 데즈카 오사무를 무조건적으로 신(神)으로 떠받드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돌이켜 보면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고 부침(浮沈)이 있었다.

데즈카 오사무 본인도 슬럼프, 딜레마 등으로 표현하는 침체기(일본에서는 주로 低迷라는 표현을 쓰는 거 같다.)는 60년대말에서 70년대 중반 정도일텐데, 원인은 전형적인 것이었다. 바로 직전 「철완아톰」 만화영화의 엄청난 성공과 과도한 투자였다.

즉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후속작의 성공 압박이 커졌으며, 대규모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바람에 작업실에서 조용히 앉아서 만화를 그리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큰 사무실 겸 공장을 두고 자기는 작은 방을 세를 얻어 만화를 그리게 된다.

일본 만화들을 보면 이 시기를 낭만적으로 묘사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돈은 많지만 사무실을 버리고 작은 집에서 작업하는 정서적인 불안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작업장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연락하기도 번거로웠다. 어쩌면 의사로서 본인이 살기 위해 격리를 선택한 것일까? 원래의 작업장이 교외에 신축한 자택(위 사진 배경)이었기 때문에 가족과도 멀어진 것 같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는 60년대 후반 일본에 불어닥친 68혁명의 영향과 학생운동을 작품에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사회적인 관심도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데즈카 오사무의 침체기는 아마도 70년대 후반 「블랙잭」의 성공부터 벗어난 거 같다. 본인이 보여줄수 있는 개성으로 만드는 세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 중요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는 1978년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다시 궤도에 오른 시점인 거 같다. 그리고 이 때는 프로덕션과 같은 건물에 개인 작업장을 가졌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인기가 없던 이 침체기의 작품들이 현재 국내 시장에 먼저 소개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2000년대 초반에 국내에 처음으로 정식 출판된 데즈카 오사무의 번역판들이다. 초기 대표작을 제외하면 이 침체기의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발표연도 제목 발표연도 제목
1950 밀림의 왕자 레오 1968 노만
1952 우주소년 아톰 1969 아폴로의 노래
나의 손오공 1970 키리히토 찬가
1953 리본의 기사 1972 아야코
1961 넘버7 붓다
1965 마그마 대사 1973 미크로이드 S
1966 뱀파이어 블랙 잭
1967 불새 여명편 1979 돈 드라큐라

이것은 이 번역판이 참고한 데즈카 오사무 전집의 구성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한 이것은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이 시기 작품들이 재평가 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현재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으로 취급받는 이 작품들이 연재 당시에 성공을 거둔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도로로」는 후에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 중 하나인데, 연재 당시에는 인기가 높지 않았고 조기 연재 종료를 하기도 했다. 신이라고 불리는 만화가가 인기가 없어서 연재 중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불새」도 상당한 명작으로 취급받지만 연재 당시에 반향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데즈카 오사무가 재기한 후에 과거 작품 중 종교적 깊이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서 재발견되었고 그것이 영화화와 애니메이션화가 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20대에 우연한 데뷔, 30대에 큰 성공, 40대에 실패 후 50대 재기, 그리고 60대 죽음. 신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드라마틱하고 인간적인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년에 작업에 집착하고 작품을 고쳐그린 것도 어쩌면 이런 인간적인 상황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그의 전기(傳記) 작품들이 대부분 소년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장년기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평가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