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생물학적인 자살의 이해』(1999)

2018.11.26심리학과 정신건강

저자 본인의 조울증 경험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간 봤던 어떤 책보다 자살에 대한 의학적, 심리학적, 역사·문화적, 경험적 지식을 종합적으로 전달해 준다. 아마도 자살에 관한 제반 지식을 문학과 개인의 경험을 섞어서 쉽게 전달하려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상당히 성공적인 면이 있다. 직전에 읽었던 『조증』(Hypomaniac Edge)이 전문분야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부분에서 실망스러웠던 것과 비교된다. 또,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복합적인 책을 저자 역시 다시 손대기 어려워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읽으면서 든 생각을 메모해 봤다.

  • 우울증이라는 정신병 증상이 많은 자살의 원인이라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 상황이 되어있을때 저자 본인도 이성적인 대처를 할 수 없었다던 경험이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조증 증상에 대한 설명 역시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어떤 면에선 더 무섭다.
  • 자기가 어디가 안좋아서 의사가 되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좀 위선적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는데, 이 책의 저자의 이야기는 솔직한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 물에 뛰어든 사람에게 배를 타고 가면 구해달라고 한다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밀면 놀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이러한 충동적인 자살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어떤 격한 흥분을 겪고 나면 그 반동이 오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다른 사회적인 요인이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직후에 자살을 다시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 책에 인용된 윌리엄 코퍼(William Cowper, 1731~1800)의 시는 사실 이해가 안 된다. 즉 나는 그러한 병적인 증상을 경험하지 않은 건강한 상태인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선택한 것을 볼 때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이러한 시에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 인간의 죽음이 이런 화학적인 이상 상태에서 연유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실존적인 가치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서 35세 이하 자살자수가 급증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자살을 주로 다룬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들어 자살자수가 늘었는데 국지적인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나라의 변화 추세와 원인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는 우울증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자살에 대한 이야기나 소설이 이상할 정도로 적은데, 그나마 연관이 있는 것은 심청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청이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물에 뛰어들었다는 점이 자살을 연상시키며, 긴 항해가 우울증과 관련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이 인신공양을 해야 할 정도의 모험은 아닐 거 같고 아마 외국의 다른 이야기와 긴 선상생활의 경험이 섞인 것 아닌가 한다. 또 심청이 분명히 죽었지만 가족들이 장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점도 자살을 연상시킨다.
  • 자살을 터부시하는 사회의 경향을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억압이지만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맥락으로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물론 현대에는 이러한 경향이 역전되었다.
  • 원제는 『Night Falls Fast: Understaing Suicide』이며, 2004년에 이문희가 번역하고 뿌리와이파리에서 펴낸 책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생물학적인 자살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2012년에 신경정신과 의사 박민철(1950~)이 번역하고 의학교재 전문 출판사인 하나의학사에서 펴낸 책은 『자살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기회가 있으면 정신과 의사의 번역도 읽어보고 싶긴 하지만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또 교수 같은거 하시는 분들을 보면 번역 작업에 시간을 많이 쏟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번역의 질이 꼭 좋으라는 보장도 없어서 읽게 될지 안될지는 잘 모르겠다.
  • 번역자가 확실히 ‘삽화’(揷話, episode) 같은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을 모르는 거 같다.
  • Night Falls Fast’는 권두에 나오는 에드나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1892~1950)의 「Not So Far as the Forest」 1연에 나오는 싯구이다. 책 분위기상 역시 우울증이나 자살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이 시 역시 뭔 의미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어쩐지 저자가 이 시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 당연한 얘기지만 심리검사에서 사용되는 ‘최근 1년동안 자살 생각해본 적이 몇번이냐’ 같은 질문도 나름 학술적 연구 성과에 의한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받는 사람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 자살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이 사람이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 혹은 사고사인지 결정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이 책이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 과정에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 이 책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울증에 관한 책이다. 『조증』(2011)을 보고 저자를 알게되고, 번역된 저자의 책 중 흥미있어 보이는 것을 고른 것인데, 모 지자체장이 형제를 조울증으로 강제입원 시킨 사건이 우연찮게 뉴스에 오르내려서 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 『조증』에서도 그렇고 생각보다 한국의 의료 통계가 자주 언급된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살 직전에 몇차례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어쩌면 자살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학 작품으로 설명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청소년의 조숙과 사춘기가 일찍 오는 것이 정신질환 발병률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 어렸을때 뛰어난 능력으로 칭찬받은 사람들, 완벽주의자 이것이 오히려 병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공자가 안회를 사랑한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뛰어난 젊은이일수록 약할 수 있다. 천재라는게 따로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이지만 자신을 소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건강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천재와 광기가 함께 이야기되는 이유가 전혀 근거없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 실직과 자살의 연관은 불명확하지만 정신건강이 안좋은 경우 실직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외부를 차단하려는 행위를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 모든 자살을 정신병리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 자살한 사람의 유서가 비상식적으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느끼는 일종의 종교적인 희열을 경험하는 사람이 조울증에 있다. 어쩌면 종교가 정신병리적인 면과 관련이 생각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
  • 한편으로는 한국 문학에 대해서 생각도 하게 한다. 한국 문학에는 이런 개인의 절망적인 감정을 담은 작품이 얼마나 남겨져 있는가? 과거에는 고문을 따라야 한다며 좋은 글들이 나오지 않았고 근세에는 순수문학을 해야 한다며 솔직한 글들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다. 솔직한 문학을 해야 한다는 마광수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