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2008. 8. 17.철학과 사상/사상

@book{
title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subtitle =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통찰—촘스키와의 대화},
author = {드니 로베르 and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illustrator = {레미 말랭그레},
translator = {강주헌},
address = {서울},
publisher = {시대의창},
year={2003},
price = {9800 KRW},
isbn = {8989229499}
}
2008년 8월 13일

요즘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버리려고 쌓아둔 책더미를 뒤져 다시 읽는다. 찾기 좀 힘들었다.

2008년 8월 14일

이 책을 처음 샀을 때 그리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촘스키 자신이 쓴 글도 아니고, 환경이 다른 외국 사람이 정리한 것인 데다가, 내용 자체가 촘스키의 다른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진득함과 끈기보다는 선전용 팜플렛에 가깝다고 느꼈다.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도 한 몫 했다. Rémi MalinGrëy, 내 눈에도 익숙할 정도면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일 듯.)

그런데, 다시 읽으니 왜 이렇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지? 최근의 사회 상황 경험이 책을 새롭게 한다. 너무 절절하게 느껴진다.

촘스키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민중들에 대한 여론 조작으로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인들인데, (예로 든 것은 미국 정부의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CPI), 영국과 함께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을 종용하는 여론 조작을 했다. 영국의 타겟은 미국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여론 조작은 수준은 전문적인 지식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든 '교묘함'의 단계는 아닌 거 같다. 촘스키는 영국과 미국은 자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무력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조작을 교묘하게 전개한다고 본다. 반대로 전체주의의 경우 이런 복잡한 조작이 필요없고, 기술(;)도 발전하지 않아서 흥미(;)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한국의 상황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조사하고 밝혀내야 할 것이다.

2008년 8월 15일

요즘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일 듯: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런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부에서 주로 시행됩니다. — 109쪽

따라서 당신이 그럴 듯한 힘을 쥐고 있다면 법 때문에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내법은 문제조차 되지 않습니다. 국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이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런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데도 그런 것을 협정이라 칭하는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 무역 협정의 목표는 투자자, 달리 말하면 다국적 기업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고 증대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협정은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짓입니다. — 127~128쪽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시키면서, 가난에 신음하는 어머니들에게 식량배급표를 나눠주며 사회보장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사는 법을 배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만큼 못된 사람들이 있을까요? 희대의 사기꾼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는 공공자금을 최대한 빼돌려 조지아의 부자들에게 나줘주고 있습니다. 언론이 이런 작태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 107쪽

법이 존재하고 사법권이 운영되지만, 권력자에게는 커다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국민의 거대한 압력이 행사되어 사법권에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105쪽

기층 조직의 압력이 있을 때에야 정부가 기업을 조사하니까요. — 119쪽

2008년 8월 16일

다시 봐도 그간의 촘스키의 주장을 잘 정리한 선전 팜플렛같다는 느낌이다. 프랑스에 촘스키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책같다. 2장은 아예 프랑스에서 있었던 촘스키와 관련된 이슈였던 포리송 사건에 대한 변론으로 할애되어 있다.

우리는 프랑스를 박애 사상이 넘치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의 선진국처럼 생각하는데, 2002년에 촘스키를 소개하고, 또 그에 대한 오해를 풀려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촘스키 역시 프랑스를 대하는 태도 역시 민주주의의 후진국이자 언론에 대한 연구도 부족한 곳으로 본다. 또 과학이나 철학 이론을 받아들이는데도 매우 보수적인 국가로 평가한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프랑스가 확실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근데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번역을 한 한국은 대체 뭥미?)

촘스키 책은 집에 하나 두고 가끔씩 다시 읽어서 정신 무장(;)에 사용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다. 일단 촘스키의 다른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이 책을 책꽂이에 계속 꽂아둬야 할 듯. 나중에 촘스키의 정치활동에 대한 소개서로서 다른 사람에게 권할 때 사용할 수도 있을 듯.

촘스키의 주장 중에 재미있는 것은 좌파 지식인들이 사회를 보는 눈과 자본가들이 사회를 보는 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고서에 마르크스주의적인 표현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다를 뿐.

더군다나 일반인도 지식인들만큼 사회의 구조를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개인의 희생이 두려울 뿐. 어쩌면 이것이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인 폭력일 수도 있겠다.

… 대중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이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혁명까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습니다. … 요컨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 169쪽

1 ···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