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과 중국고전/민족문화추진회 = 8.0
2007/03/16 민추단상 #3 (2)
2007/03/12 중국사 (1)
2007/03/08 민추단상 #2
2007/03/06 민추단상 #1
민추단상 #3
7.

드디어 처음으로 결석했다.

대략 1주 반을 다녔는데, 정신적으로는 한달 반을 다닌거 같은 느낌이다;

하루 3시간 수업이라는게 만만찮다. 수업시간은 객관적으로 계산해야 겠다.

시험 과락이 60점이었던거 같은데,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준비를 해도 부족할거 같은 느낌이다.

8.

금요일 8시에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던데,

청강생은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가서 청강생이라고 소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9.

수업시간에 한문이나 한자의 기본적인 내용은 잘 언급되지도 않는다.
(민추 다닐 생각 하시는 분들은 충분히 고려하셔야 할 듯)

학생들이 일정수준이라고 가정하면 '강의 효율'은 높아진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정보량이 더 늘어날 뿐이고, 경쟁만 가열된다.
SketchUp 으로 그려본 중국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SketchUp 으로 그려본 중국사.

적당한 툴이 아닌거 같다;
중국사
강의를 들으면서 중국사에 등장하는 나라들이 헷갈린다. 그냥 아는대로 정리해봤다.
틀린게 있으면 누가 좀 지적해주시길.

- 하
- 은(상) : 중공에서 은허 발굴 이후로 '상'이라는 표현을 자꾸 쓰니까 나도 '상'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러나 민추 공식 용어는 '은'인 듯. 고전 해석에도 이게 더 편리할거 같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상나라' 라고 하면 전공자 빼고는 알아듣는 사람 별로 없을 듯.
- 주
- 춘추 : 주나라의 천도(낙양, 동주)와 진의 분열(한, 위, 조)등으로 시작되는 제후국 간의 경쟁 시대. 전체의 패권을 잡았던 제후들을 춘추오패(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송 양공, 진 목공)라 부름.
- 전국 : 전국칠웅(삼진, 연, 제, 초, 진)으로 편성. 잘 알려지다시피 후에 진이 독주.
- 진 : 제후국을 세우지 않고 직접 통치. 금방 망한다.
- 혼란기 : 초한지의 배경
- 한
- 신 : 왕망
- 후한
- 혼란기 : 위, 촉, 오, 삼국지의 배경
- 위
- 진
- 남북조 : 내가 이 시기에 대한 이해가 좀 많이 떨어지는 거 같다.
- 수
- 당
- 북송 : 이 부분도 좀 이해도가 떨어짐.
- 남송
- 원
- 명
- 청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보통 중국의 역사를 통일과 분열이라고들 말하나, 이렇게 말해버리면 몽고나 동북지역, 남쪽지역은 필요에 따라 들어갔다 빠졌다 한다. 최근의 통일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도 영토분쟁이 적지 않고, 중앙정부의 통제가 지방에 얼마나 미치는지도 미스테리다. 두리뭉실하게 언제나 혼란 중인 땅이 아닐까? 어찌 생각해보면 동아시아사 전체를 아울러서 서술하는 수 밖에 없는거 같기도 하다.

대략적인 경계를 히말라야 산맥과 베트남, 대만, 유구, 한반도로 잡아서 정리해보고 싶다; 아... 근데 원나라까지 생각하면... 유럽까지 처리해야 한다;;;;;
민추단상 #2
5.

논어를 읽다보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논어의 구성 자체에 그렇게 만드는 요소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논어를 약간 삐딱하게 보면 처세술 같기도 하다. 그런데, 논어가 문화 전반에 영양을 미친 영향이 크다 보니, 논어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논어 식으로 처세를 하게 된건지, 논어 자체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던 것인지 헷갈린다.

6.

예상외로 연수원 분위기가 은근히 사람 조인다...

같이 수업 듣는 70여명이 기본적으로 일단 내 수준과 비슷하거나 높다고 생각하는 것만도 후달리는데,

작정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은거 같다;

소문에 의하면 시험 등수 발표도 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공부로 경쟁하는 공간에 들어섰다;
논어 1-02 (2007/03/08 목)
已, 所, 可 등을 한문투로 번역하지 말라.

有 - 허사의 경우 해석안해도 됨

첫시간에 선생님께서 '우리말로 번역하라'고 여러차례 강조하셨지만, 발표하는 학생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전통'적인 축자역을 해버린다. 유교경전은 2천년 넘게 이땅에서 우리말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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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유교경전 언해의 역사:

설총의 이두
권근의 구결
세종, 언해를 명하였으나 완성에 관한 기록이 없음
세조, 간경도감에서 불경언해, 그러나 유교경전은 빠져있음, 대신들의 구두작업.
중종, 백성 계몽을 목적으로 번역소학 의역
이황, 경서석의
선조, 경서교정청

구체적으로 조사해봐야 겠다.
민추단상 #1
1.

생각보다 차가 막혀서 몇분 늦을거 같아 헐레벌떡 뛰어갔다니, 장학생이라는 분들이 앞에서 쇼를 하고 계셨다. 허탈하기도 했거니와, 쇼가 별 재미가 없었다. 반장 지명 광경을 보는건 참 오랜만. 그리고 은근히 장학생들과의 거리감이 생긴다. 왜일까?

2.

노트를 준비해야 겠다.

모르는 한자를 적을 노트도 준비해야 겠다.

3.

논어 서문이 의외로 논어를 개괄하는 성격이 강한거 같다. 혹 남에게 논어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서문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거 같다.

4.

선생님이 '이곳은 어떤 종교나 사상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번역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래서그런지 선생님들이 전반적으로 격식차리기보다는 밝고 친절하신거 같다.
논어 1-01: 서문 (2007/03/05 월)
교재에 대해 별 말이 없었는데, 그냥 아무 논어집주나 보면 되는거 같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재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나는 성균관대에서 예전에 만든 사서모음을 사용할 예정. 우연히도 내 옆자리에 앉은 학생도 같은 책을 가져왔는데, 내 책은 무려 1976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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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박소동) 말씀:

1. 선행학습 꼭 해올 것.
2. 번역본 보지 말 것.
3. 수업이 일찍 끝나도 정해진 시간까지 자습하고 갈 것.

예전의 교육방식은 학생이 먼저 토를 달아오면, 훈장이 점검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머리로 공부하고, 외국어에 능숙해졌는데, 요즘 강의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이런 장점이 없어졌다고.

토의 중요성. 우리는 한자의 사성으로 의미를 구별할 수 없으므로, 토를 달아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한다. 상소문, 조서, 돈 관련 문서에는 모두 토를 붙였다. 구(마침표)두(쉼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 입에 오르도록(上口) 읽어야 한다. 외우지는 않더라도 부드럽게 돌아갈 정도로 읽어야 하며, 이것은 머리속에서 의미를 연상해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스로 독해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논어를 배우면 배운만큼 문리가 있어야 한다. 문리는 사서를 기본으로 하고, 삼경은 이걸 이용해 읽는 것. ('사경을 헤맨다')

연수원의 원래 목적은 문리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에게 번역 기술을 가르치던 것이었는데, 80년대이후 서당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거의 사라지고, 대학생들 위주로 오자, 이 문리를 가르치는데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한문속성법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다독(그러고보니 읽는다는 것이 소리내어 읽는 건가보다), 다작, 다상량. 또 많이 읽는게 아니라 조금을 읽더라도 깊이있게 할 것. (독서탐다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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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시간 무작위로 발표 (성적 10%)
결석, 조퇴 사전 연락 (휴대폰 번호 알려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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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화 훈련을 해야 한다.

旣: 이미, 벌써 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과거형으로 써도 충분. '돌아오고나서'
亦: '너도 또한 그러냐' 반복해서 사용할 필요 없음
將: 미래의 뜻, '장차'를 꼭 넣을 필요 없음
是: 우리말로 '그'가 될 수도 있다.

不可不知: '모르면 안된다.' 우리말이 더 간단.

及: '바로'의 뜻도 있음. 비로서, 이윽고

與: 예로도 읽힘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2006/03/02)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다닐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평일 저녁시간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거... 특히 야근하는 직장은 다닐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고민이었습니다.

나이도... 과정을 다 수료하면 40댄데;;; 30대의 마지막 밤들을 한문수업 들으면서 보내야할까? 하는 생각...

등록금과 교재비도 의외로 부담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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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그만두더래도 일단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한문 교육기관 맛도 좀 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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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로 운영되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돈벌이가 되는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빤딱빤딱하지요.

'한국고전번역원'은 물건너간 눈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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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조순이 원장이더군요; 다니기로 했으니 원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되나;

생각난김에 웹에서 검색해보니 1988년 경제부총리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후에, 서울시장, 민주당, 한나라당 총재, 국회의원 등을 거쳐 2000년 이후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듯 하더군요. 정치활동 기간이 생각보다 짧고 덧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고로 저는 조순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천상병 지도교수였다는 겁니다;;;

그다음은 뭔소린지 못알아먹겠는 조순+정운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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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름만 익숙하던 성백효 선생님 얼굴도 처음 본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아주 젊은 나이에 국역 사업에 투신하신 셈이더군요. 평소에 연세 지긋한 한학자를 연상했는데, 어쩐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실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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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껴보는 국민의례의 어색함;;;

p.s 조순 원장님 이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육군사관학교 영어과 교관으로 1951~1957년 재직했는데, 이때가 묘하게 전두환(육사 11기, 1951~1955)의 육사 재학(?) 기간과 겹친다. (아니, 그보다도 이때는 한국전쟁 중이잖아?) 또 30대에 가족을 한국에 두고 9년이나 유학을 갔던 것도(1959~1967) 특이하다. 50년대 후반 미국유학이 많기도 했지만, 9년이라니;;; 거의 첫번째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미국유학 교수가 되었으며, 케인즈 주의를 수입했다고 한다. 내가 그간 너무 모르고 살았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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