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과 중국고전 =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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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철론 |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과거준비 사서삼경에 너무 얽매어 있음. 제자백가, 한나라, 청나라 책은 아주 찬 밥. 서문에서 유가와 법가의 대립으로 설명했지만, 법가는 유가의 실천일 뿐이다. 나라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이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으면 되는가?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국민들은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가? 즉 이 논의는 법가대 법가로 볼 수도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동양에서도 기원전에 이런 구체적인 논쟁이 있었다. 지금 국회에서 해도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로 현실감 있다. |
| 내가 삼국지연의에서 느끼는 매력 |
조조와 제갈량은 모두 법가 스타일의 통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용에는 차이가 있다. - 조조: 새로운 법을 자세하게 만든다. - 제갈량: 전통을 바탕으로 법을 간략하게 만든다. - 조조: 법에서 자기는 언제나 열외. - 제갈량: 읍참마속. 조조는 초법적인 아주 나쁜 법가인 셈. - 조조: 황제는 허수아비. - 제갈량: 황제를 극진히 대함. 법가에서 황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다. - 조조: 많은 수의 책사를 두고 있으나 말을 듣지는 않는다. 자기가 전쟁하고 있는 동안 성을 잠깐 맡겨놓을 도구일 뿐. - 제갈량: 지방 세력들을 잘 구슬리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 조조: 내부에 첩자를 두어 감시함. 외부 정보는 돈으로 샀다가 낭패 보는 경우가 있음. - 제갈량: 내부는 엄한 규율과 여론 조작으로 다스림. 대신 외부에 첩자를 보냄. 여기서 얻은 정보가 전투 승리에 큰 도움이 됨. 내 생각에 연의의 저자는 법가의 이런 성질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거 같다. 읍참마속을 클라이막스에 배치한 건 법가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거 같다. 2. 제갈량의 전술 연의를 여러번 읽은 사람도 제갈량이 왜 전투에서 이기는지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마술과 블러핑을 써서 이기는 걸로 이해한다. 그리고 대부분 정사에는 없는 얘기다. 그래서 제갈량 안티가 되고 조조빠가 된다. 적벽대전을 눈대목으로 여기는 이유도 규모가 크고 전황을 가르는 중요한 전투이기도 하겠지만, 제갈량(과 주유)의 전략이 한 단계씩 묘사되는 구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내 생각에 제갈량의 전술은 지금의 게릴라전에 가까운 거 같다. 병력을 나눠서 파상적인 타격을 준다. 그래서 언제나 이길 수 있었던 거 같다. 직접 별동대를 몰고 다니던 조조와도 비교되는데, 조조의 경우는 전술상의 특이점이 없는 병력의 집중인 거 같다. 조조도 동탁의 대군을 이긴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대규모 정규전이나 수성전을 이끄는 장면이 잘 안 나온다. 초반에는 거점이 없고, 후반에는 패전만 한다. 연의의 저자는 분명히 이런 제갈량 전술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파악 하고 글을 쓴 거 같다. |
| 『논어, 세 번 찢다』(2008) |
| 30개의 바퀴살 |
자전거 바퀴를 보면서 이 구절을 자주 떠올린다. 32개의 스포크가 받치는 자전거 바퀴와의 유사성. 30이라는 숫자도 묘하다. 30개의 바퀴살을 배치해보면 살들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가 아니다. 아마도 이게 축의 중심을 유지하는 비결일 수도. 그리고 자전거처럼 좌우를 고려해서 설계했을 수도 있다. 그럼 한쪽에 15개씩, 나무로 제작하는데 무리가 없는 구조다. (바퀴살이 목재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는 어디선가 ‘깎는다’는 표현이 나왔던 거 같아서) 물론 32개를 두리뭉실하게 30개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고… 조금더 비약하면 중국인의 수 관념에 32나 16, 8 심지어 4 같은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도덕경에 ‘4방’ 이런 말 안나온다) 그래서 그냥 10의 배수인 30으로 적는 게 자연스럽고 믿음직하게 느꼈을 수 있다는 거. 3x10이니까 3에 대한 신앙은 있얼으리라 추측. 바퀴를 만드는 기술이 철기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도 놀랍다. |
| 한국에서 한문 꽤나 읽는 사람들의 해석을 볼 때마다 아쉬운 점 |
(http://tinis74.egloos.com/2764469을 읽다가 든 생각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한문 꽤나 읽는 사람들의 해석을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은, 책 전체, 나아가 한문고전 전체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형이상학적 전제를 너무나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공자느님에 대해서는 이분이 무조건 옳고, 정확하며, 예의 바르다고 본다. 그래서 그분이 남긴 문장 하나하나는 흠결없는 인과 예의 결정판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똘마니들은 자기들 생각과 다른 해석을 보면 자신들이 상정한 근거불명의 형이상학이 없다며 히히덕거린다. 현대의 우리가 고전에 대해 그런 교조적인 가치관을 품을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본다. 독선적이기로 유명한 기독교조차도 성경을 문헌해석의 관점에서 본 지 오래되었다. 가장 교조적으로 보이는 종파들에서조차 이런 역사의 테두리 속에 있다.(성경 구절을 ‘해석하고’, 또 신자들에겐 ‘생각하고 느끼기’를 권한다. 목사가 히브리어, 아람어, 라틴어 이야기를 안 꺼내고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게다가 경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성리학 이후에 성립된 것 조선만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로는, 경전들이 철학적으로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지부터 검증하는 것이 철학적 논의를 시작하는 순서일텐데, 책 전체를 두고 하는 비판은 보기 어렵다. 대개는 자신의 학식이 부족하다는 탓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해석을 할 때 현대 과학이나 서양 문명을 한마디로 재단하곤 한다는 거.(물론 그 사람이 서양문명 전체를 완벽히 공부했는데 사서삼경은 제대로 공부 못해서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러나 논어나 도덕경의 성립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아우르는 하나가 있다기보다 나뉘어진 파편들이라고 보는게 옳을 거다. 머우쭝싼은 병신 같지만 한국 동양철학계(?) 전체가 그 하나보다 못하다. 이것은 또한 지적인 예속성과 관련이 있다. 선생의 해석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엔 또다시 중공에 예속될 것이다. 그 반대에 있는 사람도 일본과 미국 따라하기가 될 거다. 그런 면에서 김용옥(도올 논어, 노자와 21세기 등)이 한국 역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그의 자만심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조차 결국엔 공자와 그 일당들에 대해 지지와 찬양일색으로 마감한다. 아니 대체 노자가 21세기와 무슨 관련인데? 왜 공자는 나쁜 놈이거나 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경전에 대한 존경과 무조건적인 신앙은 구별하는 게 좋겠다. |
|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 편지』(2009) |
1.
내 아버지가 정약용이었다면 짜증났을 거 같다.
나라에서 믿지 말라는 천주교 믿고, 친척은 역적질해서 직장 짤리고, 그러면서 왕 타령은 맨날 하지. 얼굴 보기 싫은 친척들 매일 만나라고 하지.
연좌제로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도 없는데 교도소 면회가면 말끝마다 공부하라고 하지, 숙제 검사까지 한다.심지어 무슨 돈벌이를 하겠다고 하면 성리학으로 사업하고 그에 관한 책을 쓰고 시까지 지으라고 한다. 2.
참 대단한 학자 나셨다. 그죠?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김영희 톤으로) 3.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편지 부분이 최근 왜이리 많이 번역되었는 모르겠다.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가? 4. 52장 「문명세계를 떠나지 마라」(176~178쪽)은 다산의 교육관을 나타내는 구절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글인데 번역을 부드럽게 해서인지 성리학적 도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어가 생각난다. 번역을 잘한 거 같다.(그런데 과연 지은이가 번역을 했는 지는 의심스럽다. 다산의 글을 읽을 정도의 한문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문 번역서는 없다. 교수가 원래 남의 이름으로 책 잘 내는 직업이라 더욱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나 이솝 우화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원본을 직접 번역했는지 확실치 않다) 다른 글들에서 자식들이 성리학에서 멀어지는 것을 무척 걱정하는 걸 보면 논리적으로 맞는 해석 같다.
언젠가 다산의 글을 조용히 앉아 읽으면서 정확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5. 다산이 성리학적 원리주의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어쩌면 천주교 이원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좀 찾아봐야겠다. 6. 이렇게 성리학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자 이전의 유학을 탐색한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안 맞으면 주자는 물론이고 고전적인 대가(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들 까는데 주저함이 없음. 심지어 공자 말도 의심함. 자기 땅의 선배들 글을 찾는 걸 강조하기도 함. 그러나 그 이유도 성리학자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음. * 강정규가 옮긴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 편지』(영림카디널, 2009)를 보며 든 생각을 적었습니다. ‘아동문학가’가 번역해서 그런지 비교적 윤문이 잘 되어 있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가 읽을만큼 쉬운 말로 일관성있게 번역되지는 않았다. |
| 「손자대전」(2010) |
중공 CCTV 제작 35부작 드라마. 몇몇 케이블 채널에서 현재 방영 중.
2008년에 나온 「병성(兵圣)」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병성은 무협영화 감독 작품 답게 고증보다는 매회 흥미있게 다음 회를 기대해가며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해준 것에 비해, 손자대전은 중공식 물량투입으로 장대한 화면을 보여줍니다. 역사를 충실히 고증하겠다고 제작의도를 밝히기도 했고요.
근데 손자병법은 훌륭한 고전이지만, 정작 저자인 손무에 대해서는 역사에 그리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짜피 손무에 대한 이야기는 픽션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도 이런 대형 드라마를 제작하는 중공의 모습에서 국가적 자긍심 고취하려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공에서 꼭 내세워야 할 사람이겠죠.
또 한편으로는 중국 공산당식 영웅 만들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왕 전문 배우라고 불러야할 장풍의(장펑이)를 기용한 것부터, 드라마의 재미보다는 영웅 이미지 만드는 데 신경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자서, 합려 같은 배역도 장풍의 나이에 맞춰 나이 먹은 사람들을 기용한 거 같고요. 반면 여배우들은 아주 어립니다. 손무 부인 역의 경첨(징톈)과 장풍의는 33살 차이인 게 화제에 오를 정도. 중공에서도 여자들 상품화 시키는 거 같아서 웬지 씁쓸함. 또 한편으로는 중공의 전통적인 혁명 여인 상 같은 걸 가져온 거 같음. 포스터 보면 갑옷 입고 있음.
그리고 사람 많이 나오고 화면 장대한 것은 좋은데, 약간 허전함. 중공도 건국 초기부터 영화 선전을 중시해서 노우하우가 있을 것 같지만 이게 선전용이다보니 세계시장에 먹힐 예술이라기보다 뻔한 선전용 화면만 나오는 듯. 리펜슈탈 따라가려면 멀었음. 그리고 화면이 장대한 만큼 작은 장면에서는 예술적인 재미를 선보여야 볼 맛이 날텐데 별로 그렇지를 못 함.
내 생각엔 한국사람들에게 그닥 인기를 끌 거 같진 않아 보인다. 재미로 치면 병성이 한 수 위고. 그리고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만 알지 손자병법 원문이나 손무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거 같다. 하긴 유교 국가라고 떠들면서 공자와 논어에도 관심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 원제:
孙子大传 |
| 권중달 옮김, 『자치통감 1』 |
제 얘기네요. 이 글을 읽고나서야 『통감절요』와 『자치통감』이 전혀 다른 책이라는 명확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로 수업 시간에 『통감절요』를 쫓아가면서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통감절요』는 『자치통감』을 충실히 요약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글을 보고 문장을 비교하며 읽어 보니 완전히 다른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자치통감』이 수준 높은 논문이라면 『통감절요』는 입시용 요약정리 같은 느낌. p.s 한국에서 이렇게 『통감절요』가 읽히는 건 조선 시대 성리학의 영향이라고 한다. 복잡한 군주론이 아니라 단순하게 충절을 정리한 통감절요가 성리학의 입맛에 더 맞았기 때문인 거 같다.(정확히는 주자느님이 선택했다) 심지어 『자치통감』을 멀리하기도 했던 거 같다. 덕분에 현대의 우리도 한학자들의 의도대로 원본인 『자치통감』을 접하기 어렵게 되었다. 조선 성리학의 폐해는 끊이지 않는구나.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1.3. 巧言令色鮮矣仁 |
이런 사업이나 저런 프로젝트를 하자고 유창하게 제안하는 사람 중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꾸준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이익은 남들보다 잘 챙겨간다. |
| 내맘대로 번역하는 논어 1.11. 三年無改於父之道 |
‘아버지’는 분명 분명 당시의 왕공들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전 정권의 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꾸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충분할 거다. 이전 정권의 정책에 시시비비가 있겠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걸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면 국가의 운영에 좋은 효과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 될 거다. 한국은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니 한 1~2년은 그 정책의 추이를 지켜보고 분석하지 않으면, 3년 후에는 자기가 뒤집은 정책을 다시 내세우는 꼴을 당할 수도 있다. |
| 유교 |
유교는 네트워크 속에서 평안하다. 가족 속에서 자기 위치가 있을 때, 관직 속에서 자기 계급이 있을 때, 동문수학 하는 동료가 있을 때, 이런 조건들을 나와 비슷하게 갖춘 가문의 부인이 있을 때. 그러나 이 구성요소들이 하나라도 빠지면 끝없는 혼란의 근원이 된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만났을 때, 왕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스승에게 배울만한 도가 없을 때, 결혼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을 때. 2. 이 중 왕만 만들면 만족하는 사람은 우익이 된다. 3.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중국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이다. 그는 한달에 한번 잎을 바꾸는 풀을 심은 후 이에 맞춰 백성들에게 돈을 걷어가는 방법을 발명했다. |
| 춘추시대 후기 |
공자, 안자, 손자는 거의 동시대 인물인데, 여태까지 그들의 저술을 하나의 시대 속에서 서로 연관시켜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 바보가 맞나보다. 물론 이들의 생몰시기와 남아있는 책들이 과연 그들의 저작인지는 미스테리이긴 한데, 위작이라도 후세 사람들이 이 시기의 권위를 빌리고 싶을 만큼의 무엇인가가 있었던 때임에 분명하다. 열자, 장자, 맹자, 순자 등으로 이어지는 제자백가의 시발점이 된 거 같다. |
| 『좌구명의 국어』(신동준 옮김, 2005) |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그러나 송양공의 업적을 패업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는 패자를 자칭하기는 했으나 결코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제푸들을 호령하는 수준까지 올라서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송양공은 패업을 이루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직 이념적으로 왕도를 추구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소위 송양지인(宋襄之人)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패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치도 못한 인물이었다. 그를 ‘춘추5패’의 일원으로 간주한 것은 성리학자를 비록한 후대 왕도주의자들의 자의적인 분류에 불과하다. (「들어가는 글」, 10쪽)
무력으로 권력을 잡아 강력한 지배력을 보여줘야 의미가 있는 것일까? 후대 유학자들(『백호통의』와 『한서』의 저자를 ‘성리학자’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을 싸잡아 폄하할 정도로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관점 자체가 후대 맹자의 사상으로 시대를 재단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한편으로 ‘권력(Regime)’에 민감한 것은 저자가 정치학 박사인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그의 약력 한귀퉁이에는 「월간조선」도 끼어있는데, 권력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 태도를 갖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잡았더래도, 죽기 전에 잃으면 패자가 될 수 없다는 희한한 생물학적 기준도 가지고 있다.
물론 오왕 부차를 선정한 것을 놓고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그는 초기에 천하를 (10쪽) 호령하는 패업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월왕 구천에게 비참하게 패함으로써 순수한 의미의 패업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11쪽)
뒤이어 제국에 대한 찬양도 이어진다.
중국 2천년 역사를 한마디로 추단하는 대범함.
동양에서 주대의 봉건정과 유사한 통치체제를 유지한 나라로는 유일하게 일본이 있었다. 일본은 12세기 말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鎌倉) 막부를 세운 이후 19세기 중반 에도(江戶) 막부가 명치유신으로 도막(倒幕)될 때까지 무려 6백70여 년 동안이나 봉건질서를 유지했다. 통치제도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비록 명치유신 이후 급속한 개혁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고 극히 미개한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13쪽)
아 이건 그 유명한 사회진화론. 이런 봉건시대를 거치지 않은 우리나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는 그런 시대를 거치지 않았지만, 고려 때 중앙집권적 체제를 완비했으니 중국을 따라 먼저 발전한 것이라 보는 듯 하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읽으면서 『국어』를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좌전』이나 『사기』는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국어』는 이름만 들었지 실제 볼 생각을 하지 못 했었다. 번역서도 없었고, 뭔가 한국에서 외면당한 책이었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좌구명이 이 책을 썼다는 의견을 부정하는데, 책 제목은 ‘좌구명’의 국어인 것이 좀 이상하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이 썼다는 말이 대충 이해는 간다. 우선 책에서 다루는 시대가 춘추시대 후기까지다. 마지막 몇십년이 빠져있는데, 공자의 활동시기이기도 하다. 또 한나라 때의 책에서처럼 유교가 아직 절대화되어 표현되지 않아서, 한 이전에 쓰여진(혹은 흉내낸) 것으로 보이고, 예를 강조하기 때문에 노나라 사람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리라. (책의 순서도 주나라 다음으로 「노어」(魯語)가 나온다. 「진어」(晉語)의 분량이 가장 많으므로 진나라 사람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으로는 오행설 등이 완전한 모습으로 등장하므로 전국시대 이후의 글처럼 보이기도 하나, 유가와 법가, 도가의 주장이 섞여있는 것으로 봐서는 최소한 공자 시대의 글 또는 그 시대를 흉내내낸 글 같기도 하다.
번역에 약간 불만이 있다. 우선 의역이나 설명을 위해 끼워넣은 말이 많은데, 그게 한결같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방금 읽은 다음 구절의 경우:
분명히 원문에 없는 말을 더해 풀어 쓴 것인데, 어려운 말을 더해 읽기 어려워졌다. ‘반사’라는 말은 또 매우 문어적이고 고풍스러워서 마치 원문에도 있을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독자가 읽기 쉽게 하는 것도, 원문을 살리는 것도, 당시의 역사적 단어를 살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원문에 없는 단어나 수식어가 들어간 부분이 적지 않다.
후대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도 많은데, ‘중도’(中度)와 ‘충’(忠)을 모두 ‘충서의 도’(忠恕之道)로 해석한 말도 있다. (주어 상, 59쪽) 고설에 따르면 좌구명은 분명 증자는 물론이고 공자 이전의 사람인데 이런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중도나 충이 충서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왜 이런 식으로 뒤죽박죽 번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게 태동 스타일? 그건 아닐 거 같고) 의역된 중공 책을 따르다 그리 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본다.
저자가 참고한 책을 메모해 둔다:
일본 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2010년 6월 28일 월요일
「오어」(吳語)와 「월어」(越語)는 분량도 짧지만, 모든 내용이 부차와 구천의 전쟁, 더 자세히 말하면 그것도 모두 구천의 관점에서 본 전쟁의 기록 뿐이며, 같은 주제를 반복하여 서술했다. (구천이 주인공인 것은 역사의 승리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복수의 과정에서 나라를 잘 다스렸기 때문이리라. 반대로 부차는 오만한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 오나라와 월나라의 역사서를 참고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고, 그저 전해내려오는 전설 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인 거 같다. 그러나 한 사람의 창작이라면, 이렇게 동일한 내용을 중복해서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분량을 늘여 구색을 맞추려고 그런 것일까?
「제어」 역시 춘추시대 제나라의 위상을 고려해 볼 때, 내용이 적다. 이 역시 유명한 제환공과 관중 얘기만 중복해서 다루고 있다.
『국어』 전체를 보면, 「진어」(晉語)를 빼고는 내용이 대부분 소략하다. 「주어」(周語)와 「노어」(魯語)도 간략하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정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오어」가 월나라의 관점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노어」와 「정어」도 주나라의 관점을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즉 각각의 나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을 분리한 거 같다. 아무래도 진나라의 역사를 중심으로, 주나라의 역사를 참고해 만든 책인 거 같다.
『춘추좌전』과 쌍을 이루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춘추』의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이 굳이 이런 책을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또 역사를 대화로 정리한 것도 특이하다. 기서(寄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교훈을 주려는 목적도 강하다. 그 교훈이 완전히 유교적이지 않고, 법가나 도가 등의 사상과 통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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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병법」(兵圣, 2008) (2) |
다행(?)인 건 이게 하루에 3번 방송한다는 거. 아침, 점심, 저녁(07시, 14시, 23시) 그래서 편한 시간에 띄엄띄엄 봐도 된다는 거;;; 거의 VHS 비디오 빌려다 보는 느낌입니다. 내용도 어짜피 대충 아니까 아무데서나부터 끊어봐도 되요. 혹시 놓쳐도 주말에 몰아서 다시 보여줘요. 고증이 대충이라는 게 좀 아쉽긴 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도 공자왈 맹자왈하다보니 춘추전국시대가 마치 우리나라 역사처럼 느껴져서 그런 거 같아요. 근데 뭐 춘추전국시대는 누가 극화해도 잘하기 힘들겠죠. 그리고 당시를 다룬 역사서를 참고해보면, 히어로는 단연 오자서여야 할텐데. 이후 민간에서 평판도 그렇고. 여기선 손무 발목만 잡는 머리가 한박자 떨어지는 사람으로 나오죠. 키도 처음엔 아주 큰 걸로 나오더니 뒤로 갈 수록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손무가 제갈공명 뺨치는 전략가에 인품도 좋은 걸로 나오지만, 사서의 내용으로 구성해보면 좀 나쁜 놈으로 나오죠. 냉혹하기도 하고. 약간 소인배 기질도 있고. 실용적인 성격이 유가의 분노를 샀겠죠. 아 드라마에서 왕궁 씬이 나올 때 문신과 무신이 서로 다투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 많은데, 당시는 문신이라고 해서 전쟁에서 열외될 수 없는 시대였죠. 오히려 실리를 중시한 법가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유가의 대립으로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손자병법이라는 책도 경전이나 실용서라기 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라는 계몽서죠. 이런저런 인물이 등장하는 건 참 재밌습니다. 중간에 파티하는 데 월왕 구천도 나오더군요;;; |
| 「손자병법」(兵圣, 2008) |
춘추전국시대라는 배경도 새롭고, 등장인물도 많습니다. 오늘 주인공 같았던 인물이 내일 막 죽고 그럽니다. 손무랑 오자서는 끝까지 남겠지만, (나중에 한판 붙으려나?) 이 사람들도 그렇게 영웅처럼 그려지지 않아서 신선합니다. (모든 것은 안자(晏子)의 손에... ㅎㅎ) 다른 중국 드라마처럼 뻥이 심한 거 같지도 않고. 시대 고증은 뭐 대충이죠. 의외로 중국 사람들이 자기들 역사에 무지합니다. 일부러 현대와 연속성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감독이 그 유명한 장기중(張紀中)이네요. 그래서 무협지처럼 다음편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는 거 같습니다;;; |
|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2007) |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난 한국에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입으로 조선시대 과거시험 학습서를 되뇌이기만 하고, 일제 때, 이승만 때, 박정희 때, 전두환 때, 그 이후에도 언제나, 정의로운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나마 그 일부가 나서서 목숨을 버린 것도 의병이 끝이었다. 그뒤로는 시시껄렁한 동네 깡패나 할 일에 이름을 내건다. 그들의 개명된 후예들도 믿지 않는다. 조선의 유교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 하면서, 서양에 의해 억압된 엄청나게 좋은 그 무엇이라고 조용하게 주장을 계속할 뿐이다. 그러면서 분석의 틀은 자신들도 잘 모르는 서양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한다. 오늘날 유학은 보수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또는 봉건적인 남성중심주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언제부터 생겼던 것일까요? 나는 그것을 서양 문명의 도래에서부터 찾고자 합니다. — 책을 시작하며, 5쪽.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는 독자를 초등학생으로 잡았는지, 중학생으로 잡았는지도 모르겠고, 설명하는 언어들은 상식적인 서양철학의 말들을 정말로 상식적으로 사용한다. (저자가 본래 서양철학 전공자라는 게 무색하다) 그런데 유학 사상은 과연 철저하게 부정되어야 할 낡은 관념일까요? 나는 여러분에게 대답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급하게 대답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과거의 유학자들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 6쪽.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지 책에서 설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초등학교 위인전이나 학습서 쓰듯이 대충 써넘기면 이제부터 나는 그걸 읽고 그들을 존경하게 되는건가? 나는 현대의 유학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유학자들 자신 때문이라고 본다. 뭐 하나 제대로 말하고 설명하는 게 없다. 하다못해 잡지필자나 TV토론 스타라도 하나 배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책에서 유용한 것은 각 장의 끝에 달린 참고서적 목록인 거 같다. 왕양명이나 이토 진사이 같은 인물도 다뤘다는 것이 의미있는 거 같다. (저자는 이통(주자의 스승)에 관한 작업도 했다) 몇몇 인물의 참고도서를 메모해둔다. 이미 본 책도 많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볼 필요 없이 참고했으면 한다. 사실 이것도 저자의 매우 주관적인 견해에 기초하고 있는데, 한국말로 된 책들이 워낙에 없다보니 (그러니까 한국 유학자들이 참 기초적인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 도움이 되는 거 같다.
p.s 그리고 명칭 통일이 필요한 거 같다. 누구는 이름이고 누구는 호고, 누구는 '자'짜 돌림으로 부른다. 친숙한 순서로 고른걸까? 주희와 주자, 왕수인과 왕양명은 어떤 게 더 친숙한가? |
| 『논어한글역주 2』 |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저자가 1권과 2권을 떼어놓고 집필한 것도 아닐텐데, 1권에 비해 2권은 현저히 필력이 저하되어 있다. 중의적인, 명료하지 않은 번역도 있고, 불교의 이론을 적용하기도 한다. 어쩌면 3권은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다.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논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권에 원문과 주요 주석을 담은. 2010년 4월 25일 일요일 해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하나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는 것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저자가 여러 분야의 예시를 들지만,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 아쉽지만 우리 시대는 여러 분야에 정통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논어는 공자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공자는 뭔가 한가지를 가지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이 공자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일 것이다.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지식인 또는 학자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근거없이 연관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예수와 공자를 연결시키는 것 만큼 세상을 오염시키는 일이 또 있을까. 또 그 설명은 당위가 아니어야 한다. '부모가 중요하지, 그러니까 효도해야지, 콜?' 싸구려의 면모다. 아쉽지만 『논어한글역주』 3권은 구입하지 않을 거 같다. 현재 읽는 2권도 읽어나가기가 매우 고역이다. 세트가 되야 중고로라도 팔텐데, 어정쩡하게 되었다. 김용옥의 평가에 대해선 왈가왈부가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김용옥의 제자로서 널리 알려질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점. 남은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살짝 보면 별로 궁금할 것이 없을 거 같다. 가장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논어가 이럴진데, 효경이나 대학은 말 그대로 딱 한 문장 만 보면될 거 같다. 이 책으로 논어를 처음 접하려는 분들이 계시면 좀 말리고 싶다. 그리고 통나무 출판사는 좀 까여야 한다. 글꼴이 대체 이게 뭐냐? 벽자(僻字) 처리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동양고전 출판이냐? 출판사, 아마 분명히 사장 문제일텐데, 자체에 굉장히 의심이 간다. (나한테 컨설팅을 부탁하면 저렴하게 한번 봐줄 용의는 있음)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4. 里仁 |
그러나 이런 대립적인 관점보다는 공자 시대 이전에는 유가와 도가가 굳이 구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유가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라는 것이 공자에 의해서, 공자에 자극받아서, 공자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내 생각엔 이 「이인」(里仁)편이 도가의 색채를 짙게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논어』의 다른 장과는 달리 이 장에서 말하는 ‘인’(仁), ‘지’(知), ‘도’(道), ‘의’(義) 등은 절대불변의 추상적인 진리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인간의 기호(嗜好)나 감정의 무상함을 지적하는 것도 도가와 닮았다. 4-1. 子曰里仁爲美擇不處仁焉得知 맹자가 이 「이인」편에 의거해 이원론적 관점을 확립했는지도 모른다.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3.8. 繪事後素 |
子夏問曰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何謂也 이 구절에 대한 주자느님의 해석은 이렇다: “선생님, ‘저 여자 입술도 곱고 눈도 참 곱구나, 흰 바탕을 쓰니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시는 대체 무슨 뜻인지요, 흰색 화장품을 덧 발랐다는 뜻인가요?”, “그림은 흰색 물감을 바탕으로 먼저 칠했기 때문에 화려해 지는 것이다.”, “아, 예(禮)도 흰 바탕을 갖춘 연후에야 배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군요?”, “너도 이제 뭘 좀 아는구나.” 이 대화에서 감동이 느껴지는가? 나는 별로. 이 구절에서 동양미학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던데, 나로서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유치한 교리문답 정도로 느껴진다. “쓰나미로 사람 죽은 게 왜 기독교 안 믿어서인가요?”, “하나님은 모든 것에 관계하신다.”, “아하~ 그렇구나. 아이티에 지진난 것도 믿음 때문이로군요!”, “아멘!” 내 생각에 이 문장은 감동의 연속이어야 한다. (1) 우선 내용이 모호한 싯구가 등장한다, 보통 사람은 지나칠 수 있는(우리도 유행가 가사 안 따지잖나). 이 때 관객에게 호기심과 의문을 던진다. (2) 선생님의 해석은 이 구절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3) 자하의 한발자욱 더 나아간 깨달음은 선생님 또한 감동시킨다. 주자의 해석에 이런 구석이 있는가? 그저 평평한 도덕교과서일 뿐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우리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말에 무한도전 본방사수 하려고 테레비 앞에 앉아있다 치자. 선전이 길어지는데, 중학교 다니는 자식 놈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빠, ‘춘래불사춘’이 뭐야?” 놀랍지 않은가? 애기인 줄 알았던 자신의 자식이 이런 질문을 던지다니. 아버지의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노조 새끼들은 봄만되면 파업이나 하려고 하니 최루탄 냄새가 나서 봄을 즐길 수 없다는 뜻이지” 혹은 “일제 때 나라를 잃으니까 사람들은 봄이 와서 날씨가 화창해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걸 이르는 말이지.” 등등 자신의 경험과 비유로서 자식과 대화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사교육비에 등골 휘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빚을 내서라도 자사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자식과 뭔가 소통했다는 느낌에 뿌듯할 것이다. 거기다가 자식의 대답이 이렇다면? “아, 그거 씨물라씨옹이네요.” 아빠도 모르는 말이 자식의 입에서 나왔다면, 아버지는 아 나도 이제 자식에게 배울 나이가 됐구나 하며 인문학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식 눈치를 볼 거다. 바로 이런 상황이 공자와 자하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사제 간의 끈끈한 소통을 넘어 자하의 재기발랄함이 드러나야 하는 해석이어야 한다. 이 구절을 해석하려면 ‘素’의 의미와 비유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근데 난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소박함? 일단 이걸 그냥 X라고 하겠다. “선생님, 이 싯구절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웃는 입술 귀엽구나/아름다운 눈동자 섹시해/XXX하니까 아찔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중에 XXX를 하는 법이다.”, ”아하, 공부 역시 배운 후에는 XXX를 해야겠군요?”, “너 이자식 이제 내가 너에게 배워야겠구나, 허허.” X에 대체 뭐가 들어가야 극적인 구성이 이루어질까? 잘 모르겠다. 2. 논어를 처음 배울 때, 조금 어렵다 싶은 글자에는 읽는 법과 뜻이 주석에 적혀 있어서 아 이거 참 공부하기 편하라고 신경 많이 썼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르치던 선생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소한 글자에 붙어있는 주석은, 바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옛글이라서 그냥 옮기긴 했는데, 지금은 그 뜻이 분명치 않은 것을 주석가들이 적어 놓은 것이다. 즉 이 글자들은 대부분 중요하지 않은 것이고, 명확한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거. 그러니 이런 글자들의 해석을 주석에 얽메일 필요가 없다. ‘倩’이니 ‘盼’니 하는 말에 무엇인가 깊은 공자의 사상이 숨어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주석가들의 문화적 배경을 유추하는 자료가 될 뿐이다.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2.11. 溫故而知新可以僞師矣 |
공자가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느냐가 스승의 자격이라 하였다. 서양 학문과 문화는 고전이 있고, 이 고전들을 꾸준히 해석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들을 따라 배우는 것이 곧 온고(溫故)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의 전통에 대한 온고는 과거에 대해 종교적인 신념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어떤 체계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신적인 원동력이지만, 만들고 적용하고 해석해야 할 새로운 재료는 되지 않는다. |
| 내맘대로 번역하는 논어 1.11. 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
평소에 아버지의 행동과 말씀을 유심히 살펴 아버지의 뜻을 짐작해버릇하여 아버지의 사상을 배우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아버지께서 어떻게 처신하셨었는지 곱씹어보며 객관적으로 평가해 자기의 행동 기준으로 삼아, 자식의 행동거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행동거지에 비추어 어그러지지 않았으며 또한 사업을 잘 운영하고 있다면 아버지를 잘 이은 것이라고 공자가 말했다. 근데 요즘 세상에는 어려서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직접 배우는 일이 드문 거 같다. 왕가(王家)의 이야기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왕자 시절엔 부왕의 치세를 깊이 이해하고, 왕위를 이은 후에는 ‘아버지라면 어찌 하셨을까’하는 생각으로 세심하게 정사를 돌보는 것이 한 해, 두해 지나면 나라는 당연히 안정되고, 신하와 백성들도 칭송할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깊이있는 통찰력과 행동방식(‘道’)를 따른다는 것이지, 아버지가 해놓은 건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1.9. 愼終追遠民德歸後矣 |
증자가 죽음을 경건히 여기고 고인에게 예의를 다하면, 나라는 저절로 안정된다고 했다. 주(註)들을 보면 대개 ‘민간에 장례와 제사 의례를 보급하라!’로 되어 있는데, 억지로 의식을 보급하면 백성들이 좋아해서 정치가 잘 될까? 아마 그때만 무서워서 조용해지는 거 아닐까? 혹은 나라의 높은 분들이 장례와 제사를 잘 지내면 국민들이 예의바르게 될까?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장관 쯤 되는 사람의 아버지가 운명하셨는데 광화문 네거리에서 상여가 삐까뻔쩍 지나가느라 한낮에 교통통제를 한다면? 제사를 지내는데 호텔을 빌려서 한다면? 별로 좋은 효과를 얻지는 못 할 거다. 아니면 장례를 치를 줄도 모르는 몽매한 백성들을 교화하라는 뜻일까? '유교'를 가가호호 보급하라는 뜻일까? ‘追遠’은 분명히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일텐데, 춘추전국시대 백성들이 조상을 얼마나 멀리 알았을까? 아니면 멀고도 먼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요순이나 주공(!)이라던지. 아무튼 내 생각엔 이런 것은 별로 현실성 없는 제안들인 거 같다. (일본 덴노에게는 아주 현실성있다;;;) 단군상 목이 잘리는 한국에서는 특히나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遠’도 ‘終’처럼 문학적인(?) 표현으로 보자. 논어에 나오는 언명을 보면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하곤 하지만, 일반 백성에게는 주로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이 구절은 구체적인 행정행위인 거 같다. 난 이 구절을 한국 정부가 꼭 들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용산참사 때 희생자들을 죄인 취급할 것이 아니라 불행한 사고사로 보고 정부 차원에서 장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했더라면, 공식적인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높은 분들 다니는 교회에서 장례 예배라도 했더라면, 그걸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시를 받아 KBS가 전국에 중계했더라면, 한국 사람 치고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 이름없는 백성들 뿐만 아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장례식을 경복궁 마당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할 게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서 삐까뻔쩍하게 치루고 수사를 CSI 불러다 세밀히 했더라면 노무현 지지자들의 한은 없지 않을까? 좌빨들 나와서 데모하는 게 민심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인가? 한편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우리는 적절한 대우를 하고 있는가? 군인(가까이는 서해교전, 멀리는 학도병 생각하면 쉬울 듯)이나 경찰(용산참사 때 경찰도 죽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사람들.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의 측근이 만들었다는 국사 교과서는 오히려 이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아닌가? 사회는 이런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불리하게 성장한 사람을 ‘루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가 국민의 죽음을 중하게 여기고, 죽은 사람들의 희생을 제대로 기린다면 나라가 혼란해지고 싶어도 혼란해지기 힘들 것이고, 민심도 정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
| 『논어한글역주 1』 |
![]() 지나친 창조성(originality)에의 충동은 때로 망발에 머물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서장에 엄청난 글이 나온다, 「인류문명전관」. 무려 '인류' '전체'의 '문명'을 논한다. 김용옥 책을 적지 않게 봐온 나였지만 거대한 스케일에 오금이 저렸다. 거대한 이야기는 거대한 당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빈 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늘 말해오던 과학이나 수학 뿐 아니라 역사학에 대해서도 의외로 부족한 점이 많다. 솔직한 생각으로는 이 책 앞 200페이지는 빼던지, 다른 책, 이를테면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 서' 정도로 따로 나와줬으면 한다. 책값이 2만원이 넘는데, 만원을 여기에 냈다는 게 매우 아깝고, 번역까지 가는데 공연한 곳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어느날 화나면 정말 앞 200페이지는 잘라서 버릴 거 같다) 『노자: 길과 얻음』(1989)의 간결함이 그립다. 2009년 1월 2일 토요일 김용옥 특유의 문헌 해설은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보가 된다. 사실 한국 사람은 다 주희 주석만 읽지 않는가. 감정의 이입이 없이 고전을 대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다. 오랜만에 김용옥 글을 보니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특징이 눈에 보인다. 그것은 자료를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내 생각엔 그것은 김용옥의 종교 체험에서 비롯된 거 같다. 이를테면 기독교 성경을 읽을 때, 신자에게 그것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하나의 깨달음, 즉 내면의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구절구절에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 지도자의 강요와 암시에 의한 것이면 바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또 예술과도 비슷하다. 악보나 대본을 연주하고 연출할 때, 연주자는 그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 중에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해서 보여줘야 한다. 자신의 virtuosity를 보여주면 그 공연은 관객 하나하나에게 또다른 예술로 태어난다. 김용옥은 이런 부분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남들의 학술서를 자신 속에서 알맞게 꿰었을 뿐이다. 인기 가요 메들리가 명곡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명작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느껴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폭력이 또 있을까?(실은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학교, 학원 수업이 그렇다.) 물론 이것이 대중성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예술이나 인문 관련 베스트셀러는 고전을 이렇게 저렇게 보라고 주장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김용옥이라는 이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실제로 난 지금도 고려대 교수 이름을 거의 모른다) 첫장의 해석이 내가 한 해석과 비슷해 약간 기분이 나빴는데, (혹은 내가 이 책을 베꼈을 거라는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더 생각해보니, 내가 김용옥의 영향을 받은 게 맞다. 어느 수업시간에 그가 나에게 논어 앞구절을 외워보라고 하더니 '학이시습지'에서 '학'과 '습'이 그냥 공부라는 뜻일까? 그 때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하고 계발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나도 그때부터 논어의 기존 해석을 의심하고 '습'이 '육예'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역시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자기가 잘 되는 것은 모두 선생,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게 역시 현명한 자세다. (잘 되지 못하는 것도 선생, 부모 탓이 크다고 보긴 한다;;;) 가끔씩 쓰다 만 『도올 논어』의 내용과 겹쳐 화딱지가 날 때도 있지만, 논어의 잔주까지 해석을 한 번역서는 아마 이게 처음 아닐까? 참고서로 소장할만하다고 본다. 그리고 나도 논어의 주석을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 웹사이트로 만드는 게 더 쉬울 것이다. 2009년 1월 3일 일요일 한글 고어의 글꼴이 비트맵으로 되어서 깨져 있다. 일부러 그렇게 디자인했다고 보기엔 너무 아름답지 못 하다. 예전부터 느끼는 건데 통나무 출판사가 기술이 좀 부족한 거 같다. 하긴 90년대 중반까지 납활자가 최고네 하던 곳이니 그럴 만도 할 듯. (김용옥의 주장이기도 함) 남(유한킴벌리 사회공헌 연구사업)의 돈으로 만든 책인데 보기 좀 그렇다. 대학교 앞 문화사보다 못한 거 같다. 주희를 위시한 송유(송나라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에 맞춰 텍스트를 해석한다는 비판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김용옥이야말로 자신의 생각대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있다. 김용옥의 생각이 눈에 잘 안 띄는 것은 그것이 정형화된 이론체계가 아니기 때문일 뿐. 어떠한 역사적 사실이 꼭 운명적인 거대한 흐름 속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 난 김용옥의 이런 경향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 났을 때 법을 따르지 않고 실랑이 하는 것은 유교적’(426쪽)이란 해석은 80년대말, 90년대초에는 우리를 보는 매우 참신한 관점이었지만, 이러한 감상이 현재 우리들에게 대체 어떤 효용과 의미가 있는가. 그 분석 과정도 매우 치졸하다. 교통경찰과 실랑이하는 것은 유교적이고 반대로 벌금을 내는 건 법가적이라서 나쁘다. 뉴욕 맨하탄에 갔더니 거기도 분위기가 안 좋은 게 우리도 조심해야 한다. 이게 대체 준엄한 13경 주석서에 나올 만한 분석인가? 법가와 유가에 대한 자신의 편협한(한국인들이 전반적으로 법가에 대해 교육받은 내용이기도 한데) 이해를 드러내서, 다른 부분의 법가에 대한 서술도 믿음이 깎인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이 『논어』를 처음 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좀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보자를 위한 한자 해석도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가끔 아주 쉬운 한자 해석을 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식인가?) 사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논어』 선생은 99% 주자의 해석을 신성시 하는 사람들이라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지만, 이 책이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동으로 씌어진 면이 있으므로, 그런 해석을 먼저 만나는 게 『논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거 같다. 내가 남에게 『논어』에 대해 설명할 입장은 아니지만, 최근에 우연히 사쿠 야스시(佐久協)가 지은 『고등학생이 감동한 논어』(김영사, 2008)(원제: 高校生が感動した「論語」, 祥伝社, 2006)을 조금 보았는데, 공부가 아니라 삶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읽을만한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집에는 내가 주로 있지만)이 새해 벽두부터 내가 김용옥의 이 책도 보고 한자로 된 논어집주도 뒤적이고 있으니까 왜 읽느냐고 묻는다. 사실 내가 논어를 지금 본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또 실제로도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논어가 뭔가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읽고 있다. 한편으로는 옛사람들이 말하던 논어의 효용,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을 느끼고 있다.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1.3. 巧言令色鮮矣仁 |
동지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 중에 사귈만한 친구는 없다.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1.1.3. 人不知而不溫不亦君子乎 |
그러니 자기 공부가 쓰이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않으면 바로 된 사람일세. p.s 예전엔 잘 몰랐는데 학이편 1장의 세 문단은 서로 인과 관계가 있는 거 같다. (1) 혼자해도 즐거운 것이 공부 (2) 잘 만나지 않더라도 친구가 있어 즐거운 것이 공부 (3) 그러므로 벼슬자리 안 준다고 화내는 놈은 공부를 한 것이 아니지. |
| 내맘대로 하는 논어 번역 1.1.2. 有朋而自遠方來不亦樂乎 |
묵묵히 전통을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또 있을 것이니 외롭지 않다. |
| 내맘대로 번역 — 논어 1.1.1. 學而時習之不亦說乎 |
공자가 고전을 공부하며 때에 맞춰 육예(六藝)를 익히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했다. ... 내 맘대로 해보는 번역;;; p.s 주들을 보면 하나같이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니까 틈틈히 복습해야 좋은 것이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고 복습을 철저히 하면 일류대 간다. 띵호와. 라고 적혀 있는데, 공자가 과연 그런 과외 선생같은 생각을 했을까? 내 생각엔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상은 그런 것이 아닐 거 같다.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 각종 기본 관습을 충실하게 훈련하며, 남는 시간에는 성현의 글들을 읽는 것. 이게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공자가 바라는 일상 아닐까? 또는 여기서 배움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연주와 같은 기예일 수도 있다. 공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또 그것을 연습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
| 삼국지 |
삼국지연의가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까니까 '새로운' 해석은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쉽긴 할 거다. 근데 그 해석들에는 원작자가 왜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깠는지 의견이 없다. 새로운 해석을 하려면 원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저 나관중이 역사를 왜곡했다고만 주장한다. 자신들이 정확한 역사를 찾아봤다고 말한다. 그들이 찾고있는 역사란 이런 것이다. 홍길동은 미천한 출생에 사술을 익혀 백성을 현혹한 도적 괴수. 일제는 조선을 근대화 시킨 관대한 제국. 재벌은 국가와 국민을 먹여살리는 고마운 존재. |
|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했는가? |
섬서성 서안시 임동구 진시황릉 근처의 분서갱유 유적지(!) <http://maps.google.co.kr/maps?f=q&source=s_q&hl=ko&geocode=&q=%E5%9D%91%E5%84%92%E9%81%97%E5%9D%80&sll=34.365756,109.212942&sspn=0.050161,0.052099&gl=kr&ie=UTF8&t=h&ll=34.324158,109.143677&spn=0.802973,0.833588&z=10> 어제 누가 '분서갱유'가 뭐냐고 묻길래 집에 있던 한문책(통감절요)을 뒤적여 가며 폼나게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이럴수가! 진시황이 '분서갱유'했다는 말이 없네요;;; 우선 갱유라 할 수 있는 일은 진시황 35년 기축년(기원전 212년)에 후생(侯生)과 노생(虜生)이 진시황을 비방[譏議]하자 관련자 460여명을 함양에 묻은(;;;) 사건. 근데 노생과 후생은 방사로 소개되는 사람들이고, 460명으로 유가의 대가 끊겼다는 말은 좀 믿기 어렵다. 한비자에는 전국시대 유가가 매우 번성한 것으로 나온다. 큰아들[長子] 부소가 이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 것 뿐이라는 간(諫)을 하는데, 이 역시 유가가 그 당시 널리 퍼졌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한나라 때 방사가 유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분서갱유를 강조했겠지요) 분서라 할 수 있는 일은 한 해 전인 진시황 34년 무자년(기원전 213년)에 승상 이사가 의약, 점술, 농업[種樹] 책을 제외한 나머지 시서, 백가서, 진나라 이외의 역사서를 없애자고 건의한 것을 추인한 사건. 근데 이사가 제시한 근거가 그럴 듯하다. 과거에 전쟁을 일삼았던 것은 나라마다 다른 학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는 군현제로 나라를 다스렸고, 실제로 문자의 통일을 이루기도 했다. (전국시대까지는 한자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즉 이것도 유학을 탄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갱유 사건보다 오히려 먼저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정책 자체도 순우월이 군현제에 반대해서 이를 묻으려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책과 학문이 사라진 것은 진시황 이후 혼란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탄압의 수순이었는 지도) 진시황 최대의 사치로 알려진 아방궁은 완공되지도 못했고, 주요 건설 목적 중에 하나는 암살 시도를 피하고자 한 것이다. 최대 토목공사로 알려진 만리장성도 진시황 죽기 바로 직전에 짓기 시작한 것이다. (기원전 210년. 진나라가 기원전 206년에 망했으니 4년 남짓 공사한 것 뿐이다.) 덕분에 지금도 진시황과 관련된 각종 음모론이 판치고, 역사책은 오히려 진시황을 옹호하는 듯 하다. 이런 역사 서술은 2세 황제 호해에 대한 가차없는 비방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왕조를 만든 것은 잘난 놈이고 망하게 한 것은 나쁜 놈이라는 중국 역사의 공식이 적용된 것일 수도. p.s 인터넷에서 이 주제로 검색해보니 음모론(;;) 관련 글들이 대부분인데, 비슷한 내용을 말한 사람도 있군요. 대표적인 글 2개를 소개합니다. * 김진환, 진시황과 분서갱유 그리고 만리장성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30> * 신용복, 나의 동양고전 독법: 천하통일과 이사 <http://www.shinyoungbok.pe.kr/work/withsoop/board/view.php?id=lecture&no=20> p.s 이상하게 이런 책은 심심할 때 혼자서 읽는 게 제일 재밌다. 수업으로 들으면 최악이고. |
| 공짱구 선생과 그의 아들 공잉어 군. |
아마도 공자에 대한 우리의 기존 편견을 깨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생각해보니까 이 이름들은 일종의 아명(兒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똥이', '소똥이'처럼 아이들의 이름을 천박하게 짓는 풍습은 중국에서 유래한 모양이다. 또 이 이름들은 자연물을 본딴 것이기도 하다. '구'에는 '짱구'라는 뜻도 있겠지만 그가 태어난 '니구산(尼丘山)'의 이름과 관련있을 테고, '잉어' 역시 자연물이다. 달이나 꽃이름은 그럴듯 하게 들리고, 잉어 같은 물고기 이름은 유치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 같다. 오히려 잉어는 귀한 물고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출생의 내력과 관련이 있는 이름들. 공자가 자기를 '구'라고 부를 때도, '짱구 박사'라는 우스개가 아니라 자기의 출신 내력을 밝히는 자랑스러운 호칭이었을 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