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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2 개신교 이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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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일부다처제
카톨릭의 이혼에 대한 관점과 함께 가쉽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다. 인터넷을 살짝 검색해봤다.


1. 중혼의 조건은 기존 부인과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할 수 없을 때, 성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불임인 경우, 고아나 과부를 부양하기 위한 경우에 가능.

2.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에도 기존의 부인의 승낙이 있어야 하며, 결혼 후 차별이 있어서는 안됨.

3. 4번째 부인까지 가능


이 내용들은 코란에 명시되어 있는데, 전반적인 느낌으로는 과부와 고아에 대한 부양 의무, 자식을 갖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해결의 관점이 강하다. 실제로도 전쟁 후 남자가 많이 줄어든 상황을 염두에 둔 서술.

그런데 현대의 예술작품이나 이슬람 국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사랑이 여럿일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거 같다. 그러나 전통적인 관점은 아닐 것이다.

이혼은 코란에서 제시하는 이유와 절차에 따라 가능. 단 남편과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르다. 이 경우도 부인의 부양 의무, 위자료에 대한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개종도 이혼의 조건이다.

이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카톨릭과 달리 교단에 확인받을 필요 없이 당사자가 결정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

한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혐호하는데, 그에 비해 축첩에 대해선 매우 관대한 모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두번째 부인이 된다는 것은 첩이 된다는 것이라서 한국 사람은 혐오하는 것 아닐까.
유대교와 기독교
철학자 퍼트남(표준어 퍼트넘)과 MIT의 에릭 랜더의 종교관을 인용한 글을 우연히 보았다.
http://271828.egloos.com/795109
http://271828.egloos.com/778215

이 둘은 이성을 중시하는 과학자 또는 철학자이고, 이들의 학문 경향은 무신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 자신들의 전통적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

한국 기독교 신자들의 모순적인 입장을 옹호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내 생각엔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대교는 특정 민족의 종교로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또 발전 과정에서 내용에 대한 보충과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유대교에 비하면 기독교의 교리는 모순적이며 교단은 억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이 종교와 지성의 조화보다는 모순과 반목을 보여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없지 않을 거 같다.
카톨릭의 재혼
몇 해 전 재혼을 성당에서 한 친구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천주교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곳 아닌가. 신기해서 검색을 좀 해봤다. 왜 갑자기 이게 생각났는지는 나도 모른다.


1. 천주교는 알려진 대로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이혼을 해도 천주교에서는 신자가 아직 부부인 것으로 본다.

한편 결혼의 경우에도,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거나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도, 천주교에서 인정하는 예식을 거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보며, 나아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부부 행세를 하는 비윤리적인 상황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신부는 그렇게 본다.

즉 결혼의 기준은 소속 성당에서의 인정이다. 혼인식 직후 파혼을 해도 결혼 상태로 보며, 이혼은 물론 인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동성동본 결혼 같은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결혼을 인정하기도 했다.


2. 그러나 비신자의 결혼은 상관이 없다.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은 결혼은 결혼도 아니라는 뜻이기도 한데, 그래서 결혼 상대나 본인이 개신교를 포함한 비신자 상태에서 이혼을 한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주교는 신자가 비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비신자는 반드시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

예외로 비신자인 결혼 상대의 이전 배우자가 천주교 신자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인정하지 않는다.(그러나 천주교 신자인 이전 배우자가 재혼을 먼저 하면 뒤에 이야기 할 바오로 특전이 적용되어 문제가 없다.)


3. 이러한 공고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천주교가 현실 사회에서 권력이 없으므로 여러 형태의 이혼과 재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예외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소속 성당의 신부나 교구 책임자의 허락, 내부 법원의 판결, 교황의 권한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결혼을 ‘관면혼’이라고 한다.

글들을 보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과거의 혼인에 대한 무효 소송이다. 마치 현실 사회의 법률 용어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천주교 내부의 교회법원(교구법원)이 판결을 한다. 각 상황에 따라 교리의 적용이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 일의 전문가는 천주교 성직자, 즉 자신들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천주교 신자는 결혼 전에 자신의 결혼이 교리에 합당한지 소속 성당 신부와 상담하여야 하고, 신부는 실제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결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4. 천주교에서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을 ‘조당’(阻擋, impedimentum)이라고 한다. 최근엔 ‘혼인 장애’(impedimentum matrimoniale)로 순화하여 말을 바꿔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조당이 말도 짧고 친숙해서 신자들은 계속 사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비신자, 이혼한 신자 등도 모두 혼인 장애에 해당한다. 성교 불능, 심신 미약 등도 혼인 장애로, 사회의 통념과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영어 위키백과 항목을 참조. 한국의 천주교에서 만든 웹페이지도 분명 있을텐데 못 찾았음.
http://en.wikipedia.org/wiki/Canonical_impediment#Impediments_to_marriage

추가: 한글로 쓰여진 것은 이게 제일 구체적인 거 같다: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tionary.asp?name1=혼인장애


5. 이미 결혼을 한 비신자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영세를 받아 카톨릭 신자가 된 경우에도 이혼을 할 수 없다. 이 결혼은 ‘혼인 유효화’(Sanatio in Radice, 근본 유효화)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단, 이혼의 사유가 비신자인 배우자 측에 있을 때는 이혼을 할 수 있다. 이를 ‘바오로 특전’(Privilegium Paulinum)이라고 한다. 물론 적용에는 천주교 성직자들의 해석과 허가가 필요하다.

비슷한 것으로 ‘베드로 특전’(Privilegium Petrinum)이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정 시기 세례를 받은 개신교도와 영세를 받은 천주교도간의 결혼을 허가한 것에 관한 것으로 현재 한국의 상황과는 큰 관련이 없는 거 같다. 아무튼 이 경우도 개신교도인 배우자가 이혼을 원할 때 천주교도인 배우자가 이혼할 수 있게 해주는 규칙.

6. 이 모든 규칙과 느슨한 적용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는 신자는 어떻게 하는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냥 그대로 신자 생활을 하게 하는 거 같다. 아마 뭔가 제약이나 벌칙이 있을텐데 그것까진 못 찾았다.

실제 천주교 성직자들이 교리 관련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도 신자들의 결혼 부분 문제 해소인 거 같다.


이러한 규칙들은 규칙을 그대로 지키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규칙들을 곧이 곧대로 지키는 신자는 별로 없는 거 같고, 또 성당에서도 가능하면 예외를 인정해주는 쪽으로 처리를 해주는 거 같다.

아무튼 인간사를 지배하던 카톨릭의 권력은 약해졌지만 그 규칙은 자신들이 아직 지키고 있다. 이들이 권력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은 현대 이슬람 국가들의 문화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는 신부가 왜 주례를 서는가에 대한 아이러니도 신부가 동사무소 직원 내지는 지역 자치단체장의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신교 이단사
1.

문선명도 그렇고 정명석도 자신의 책에서나 평소 말 할 때 자신의 교리는 독자적으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문선명의 원리강론에서는 김백문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고, 정명석의 30개론은 통일교의 영향을 받았다.

생명력있는 독립적인 사상이나 종교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자기만의 생각으로 종교를 만들었다기보다 이전 세대 종교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물론 그 개인들의 노력과 능력도 대단한 것이겠지만, 핵심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거 같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스승을 밝히는데 인색하다.

최근 가장 극적인 사례는 이만희일 것이다. 그는 유재열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그가 장막성전을 만든 과천을 신성시하지만, 유재열은 비난한다.

2.

한국 개신교는 이단 배척 과정에서 자유주의 신학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맹신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맹신만은 돈에 대한 맹신, 권력에 대한 맹신, 미국에 대한 맹신, 신비에 대한 맹신으로 그 종류를 늘려갔다.

조금이라도 자유주의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곳을 찾으면 그곳은 이단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3.

기독교 계통은 아니지만 말세론이라는 키워드에서 대순진리회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개신교가 통일교를 싫어하는 이유
한국 개신교가 통일교를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는, 완벽한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교주의 신격화, 기업체와 언론사 소유, 신도들이 기부하는 돈과 노동, 기독교 성경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결혼을 통한 신도의 사생활 통제, 대학교에서 적극적인 선교, 미국에서 완벽한 성공, 정치적 영향력, 정권과의 밀월, 반공주의, 강제적인 개종, 교회의 상속, 유명인 초청, 탈세...

끝없이 따라하고 있다.
카톨릭
카톨릭의 역사가 2천년이라면, 그 중 1500년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고, 500년은 권력 가진자들의 종이되고자 노력한 것.

한국에서 이미지 관리를 잘해 평화의 종교가 되었지만,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건 카톨릭을 따라갈 자가 없을 거다.

매스컴에 빠지는 날이 없는 개신교가 최고의 반이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최종 보스는 로만 카톨릭일 것이다.
염수정 대주교 용산참사 유가족 면담 거부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29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나기 거부하는 종교를 인정할 필요가 있을까?


『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2005)


1.
... 이내 나는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본문의 온전한 의미와 뉘앙스는 그것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읽고 연구할 때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후에 히브리어를 배워 구약성서를 공부할 때에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어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나는 성서의 축자영감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만일 성서를 그리스어(그리고 히브리어)로 연구할 때에만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고전어를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이런저런 것들을 알기를 바라며 성서를 주셨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울러 그렇다면 축자영감의 교리는, 수준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고전어를 배워 성서를 원문으로 읽으면서 연구할 여유를 가진 학문적인 엘리트들에게만 해당되는 교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기만의 모국어로 다소 어색하게 번역해 놓은 것 말고는 성서 말씀을 전혀 읽을 수 없다면 그 번역된 말씀은 과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서문, 30쪽)

... I came to see early on that the full meaning and nuance of the Greek text of the New Testament could be grasped only when it is read and studied in the original language (the same thing applies to the Old Testament, as I later learned when I acquired Hebrew). All the more reason, I thought, for learning the language thoroughly. At the same time, this started making me question my understanding of scripture as the verbally inspired word of God. If the full meaning of the words of scripture can be grasped only by studying them in Greek (and Hebrew), doesn't this mean that most Christians, who don't read ancient languages, will never have complete access to what God wants them to know? And doesn't this make the doctrine of inspiration a doctrine only for the scholarly elite, who have the intellectual skills and leisure to learn the languages and study the texts by reading them in the original? What good does it do to say that the words are inspired by God if most people have absolutely no access to these words, but only to more or less clumsy renderings of these words into a language, such as English, that has nothing to do with the original words?
2.

저자는 일부러 'anno domini' 대신 'common era'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역자는 이것을 모두 '주후'로 옮겼다. 이래서야 번역을 믿을 수 있나. 그런데 'common era'에 대한 1장의 4번 주석같은 것은 그대로 옮겨서 읽는 사람들 헷갈리게 만든다.

166쪽의 인용문은 원래 ‘운다’가 대문자로(‘GRIEVE’)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강조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도 주석은 그대로 살아있어 혼란을 준다.

이 책 자체가 책의 주제인 필사와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도적이거나 우연한 변개를 실증하고 있다.

4.
... 왜냐하면, 고대사회에서 ‘글을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혼자서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책을 직접 읽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해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1장 5절, 91쪽)

... For in the ancient world “reading” a book did not mean, usually, reading it to oneself; it meant reading it aloud, to others. One could be said to have read a book when in fact one had heard it read by others. There seems to be no way around the conclusion that books—as important as they were to the early Christian movement—were almost always read aloud in social settings, such as in settings of worship.

... <클레멘스 2서(2 Clement)>라는 문서가 있다. 2세기 중반에 쓰인 이 문서는 사실 많이 알려져 있는 문서는 아니다. 이 서신의 저자는 “지금껏 기록된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요구를 내가 너희들에게 읽어준다. 너희들이 너희 자신뿐만 아니라, 이 글을 너희들에게 읽어준 그 사람을 구원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클레멘스 2서> 19.1)라고 말한다. (92쪽)

... In a lesser known book called 2 Clement, from the mid second century, the author indicates, in reference to his words of exhortation, “I am reading you a request to pay attention to what has been written, so that you may save yourselves and the one who is your reader” (2 Clem. 19.1).

5.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요한계시록 22:18-19).

I testify to everyone who hears the words of the prophecy of this book: If anyone adds to them, God will add to him the plagues described in this book; and if anyone removes any of the words of the book of this prophecy, God will remove his share from the tree of life and from the holy city, as described in this book. (Rev. 22: 18-19)
종종 이 구절은, 독자가 이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믿어야 한다는 위협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은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이 책을 베끼는 필사자들에게 던지는 전형적인 위협이었다. 이 책에 어떤 말을 덧붙이거나 빼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이와 비슷한 저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장 3절, 113쪽)

This is not a threat that the reader has to accept or believe everything written in this book of prophecy, as it is sometimes interpreted; rather, it is a typical threat to copyists of the book, that they are not to add to or remove any of its words. Similar imprecations can be found scattered throughout the range of early Christian writings.

... 우선 이 편지는,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비서격인 누군가에게 불러주어서 받아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마지막 단락에서 바울은 자신의 필체로 직접 추신을 덧붙임으로써, 수신자들에게 그 편지가 바울의 것임을 알렸다. 이와 같은 관행은 고대 사회에서 편지를 쓰는 일반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라디아서 6:11). 다시 말하자면, 외관상으로도 바울의 필체는 그 편지를 받아쓴 사람의 필체보다 더 컸을 뿐만 아니라 필사 전문가적인 특징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장 7절, 121쪽)

... To begin with, it appears that this letter, like others by Paul, was not written by his hand but was dictated to a secretarial scribe. Evidence for this comes at the end of the letter, where Paul added a postscript in his own handwriting, so that the recipients would know that it was he who was responsible for the letter (a common technique for dictated letters in antiquity): See with what large letters I am writing you with my own hand (Gal. 6:11). His handwriting, in other words, was larger and probably less professional in appearance than that of the scribe to whom he had dictated the letter.

6.


http://www-user.uni-bremen.de/~wie/Vaticanus/note1512.html

2장 4절(116쪽)에서 언급되는 Codex Vaticanus 히브리서 1장 3절에 대한 노트(낙서?). 책에 실린 그림은 작아서 큰 걸 찾아봤음.

αμαθεστατε και κακε, αφες τον παλαιον, μη μεταποιει.
amaqestate kai kake, afes ton palaion, mh metapoiei.

7.

현재 남아있는 성경—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발견되는 명확한 오류들은 불가타에서 비롯되었다. 불가타의 저자는 그리스어 필사본에 대한 검증이나 대조를 하지 않았다.(불가타는 히브리어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최소한 신약에 관해서는 그리스어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 불가타의 권위에 그리스어를 나란히 배치한 에라스무스의 대역본은 라틴어가 그리스어 필사본을 정확히 베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라틴어를 다시 그리스어로 번역해 빠진 부분을 채워넣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요한계시록의 끝부분과 요한일서 5장의 삼위일체 관련 부분.

저자가 은근히 킹 제임스 성경을 까는데, 왜냐면 일부 신자들은 킹 제임스 성경을 맹목적으로 믿지만, 킹 제임스 성경 역시 이 왜곡된 판본들을 저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반론을 제시한 것은 존 밀(John Mill)이 1707년 출판한 『Novum testamentum græcum, cum lectionibus variantibus MSS. exemplarium, versionun, editionum SS. patrum et scriptorum ecclesiasticorum, et in easdem nolis』으로써, 그리스어 필사본과 고전의 인용문들을 대조해 3만여 이문(異文)을 실었다.

8.

4장은 원문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대표적 인물들에 대한 정리. 5장은 약간의 방법론 소개. 그러나 이들의 방법론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뛰어난 학자들이 왜 쉬운 원칙을 세우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종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혼자서 길을 개척한 고힐강이 떠올랐다.

저자가 현대에도 읽을 가치를 부여하는 고전은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1825~1901)과 호트(Fenton John Anthony Hort, 1828~1892)가 1881년에 출판한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당연히도 이 책은 한국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데, 재미있게도 여호와의 증인에서 이 책의 그리스어 본문에 영어 번역을 붙인 『그리스어 성경 왕국 행간역』('왕국 행간역', The Kingdom Interlinear Translation of the Greek Scriptures)을 1969년에 출판해서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인용되고 있다.

참고: http://www.watchtower.org/ko/20080501a/article_01.htm

방법론에 대한 더 구체적인 내용은 저자의 다른 책인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Its Transmission, Corruption, and Restoration』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거 같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6, 7장은 교리에 의해 원문이 변개된 예시.

9.

역자는 '독법'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한국어로 '독법'(讀法)이라는 것은 글자를 어떻게 소리내어 읽는가 또는 책을 접근하는 자세를 뜻한다.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독법'이란 개념어를 사용한 번역이 더욱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본들이 어떤 독법을 지지하는지, 그래서 어떤 독법이 원독법일 가능성이 가장 많은지 판단할 때, 우리는 해당 독법을 지지하는 사본들의 수를 세보려는 유혹을 받는다. (239쪽)

In thinking about the manuscripts supporting one textual variant over another, one might be tempted simply to count noses, so to speak, in order to see which variant reading is found in the most surviving witness.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란 말도 나에겐 좀 어색하다.

이게 문제가 되는게, 'text reading' 즉, 그냥 책을 본다는 뜻을 '본문 읽기'라는 새로운 개념어로 대치해서 번역해서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397쪽) 그냥 '문헌비평', '책을 읽을 때' 정도로 새기면 문제가 없었을 거 같다.(text criticism을 literary criticism과 동의어로 보는 사람도 있고, literary criticism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10.

저자는 본문비평을 일반인에게 쉽게 설명한 책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몇몇 책들이 있었다.

기독교쪽에서 문헌비평을 언급할 때, 자신들의 믿음을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평이 되어버린다. 이 책 역시 어떤 결론을 제시하진 않는다.

저자가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개신교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도 그런 이유 같다.

이 책의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성서 문헌 비평학의 대중적인 개론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수 평전: ‘진리’라고 불리던 사악한 사제가 예수였을까?』(2010)

1.

이 책의 부제는 사해 문서에서 발견된 「하박국서 해석」(하박국 주석서, Pesher Habakkuk, Habakkuk Commentary)에 등장하는 인물을 말하는 것인데, 재미있게도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와 매우 비슷한 행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글이 기원전 수세기 전에 쓰여졌다는 것만 빼고.

저자가 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

2.

이 책은 예수의 생전 상황에서부터 사후(신자들은 부활이라고 하겠지만)까지 인생을 시간의 순서대로 적은 것이다. 사실 예수의 행적은 별로 드러나있지 않으므로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역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예수에 관한 책이 드물다. 대부분은 신앙에 치우쳐있다.(예수에 관한 기록이 신약성서에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종교학에서 언급되는 표준적인(?) 전기(?)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 종교학은 역사나 철학이 아닌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라서 그런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자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신약성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나 비관적인(사실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신약성서의 성립 과정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또 참고문헌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 읽어야 할 자료 소개가 인색하다.(그럼에도 저자를 배척하는 신자들이 있을 듯)

3.

나에게 유대교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자기들끼리 믿는 폐쇄적인 종교이고, 또 워낙에 이스라엘이 지탄 받을 행동을 해서 별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현재의 유대교도 만들어진 과정이 있었다. 그게 우연히 기원전후 지중해 사회와 겹쳐서 매우 흥미롭다.(유대교 입장에선 기독교를 짝퉁으로 여길 만도 할 거다. 그러나 유대교 역시 그 이상으로 자기들을 지배하던 나라들의 영향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의 애국심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겠지만 실은 로마 제국을 먼저 공격한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고, 지금 남은 사람들은 그들과는 대립적인 입장에서 로마에 투항한 사람들이다.(우리로 치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친일파만 남아서 애국애국 하고 있는 격이랄까?) 오죽하면 결정적인 투항을 이끈 랍비가 미래를 보는 초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이완용 후작이 미래를 보는 식견이 있어 한일합방을 추진했다고 후손이 역사학자가 되어 꾸준하게 주장한다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일까?)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제국의 노예로 끌려다니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는 평화를 강조하고, 남을 노예로 삼지 않을 것을 가르치나 이 역시 현실에서는 굉장히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4.

신의 이름을  ‘주님YHWH’와 같은 식으로 옮겼는데, 참신하면서도 아쉽다.

우리가 너무 ‘하느님’, ‘하나님’ 하던 것을 적당히 타자화해서 좋긴 한데, 내 생각엔 각각의 이름을 써서 개념을 더 명확히 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대의 신에 대한 개념도 기원 전후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유대교(히브리어)의 개념으로 보면 쉽게 이해되는 구절이 신약성서에도 많이 있다.

마가복음의 ‘조상들의 전통을 따라 걷는 길’이 ‘토라’임도 예시하였는데(64쪽), 아닌게 아니라 그 비슷한 구절들을 ‘토라’로 새기니 매우 명확하게 읽혔다.(저자는 일러두기에서 『개역한글판』을 쓸 것이라 명시했는데, 이 구절은 『개역한글판』이 아닌 『공동변역성서』의 번역이다. 하긴 『개역한글판』에는 ‘장로들의 유전’으로 옮겨져있어 이해가 매우 난해하다.)

요한복음의 ‘다른 위로자’도 유대의 예언자인 메낙헴(menachem, 므나헴 등으로 읽힘)을 말하는 것이고,(149쪽) 요세푸스의 저술에 따르면 1세기 중반에 유대교 대사제 중에 메낙헴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자는 그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그런데 이 구절도 일반적인 번역이 아니다. 일반적인 성경에는 ‘보혜사’(保惠師)로 옮겨져 있다. 이해하기 진짜 힘들다. 게다가 이건 라틴어 paracletus를 옮긴 건데, 그 의미가 또 다르므로 사람 헷갈리게 만들기 딱 좋다. 영어 성경들도 라틴어를 중심으로 번역해서 딴 의미로 적고 있는 거 같다.) 묘하게도 이 사람도 다른 사제들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후 사흘 후에 승천했다.

우리가 보는 성서라는 것이 히브리어를 중역, 삼역, 사역한 것이라 답답한 점이 있다. 기독교의 대중화가 한국에서는 어느정도(심하게) 이루어졌으니, 원전(신약성서의 히브리어 원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에 더 가깝게 번역한, 원전을 느낄 수 있는 성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관련된 글이 있어 옮겨 놓는다. 아쉽게도 누가 쓴 글 인지 모르겠음:

도스토예프스키 사상의 원류인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한글성경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라틴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글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도 독학했던 나는 히브리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히브리어를 익혀 자신있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그후 15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대학시절 성경공부를 지도해 준 선교회의 지도자에게 히브리어 공부를 해서 성경을 제대로 읽고 싶다고 했다. 히브리어를 공부해 본 적도 없는 그는 이미 영어 번역본도 수십종이 나와있어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충분히 알 수가 있는데 그 어려운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뭣하겠느냐고 충고를 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서히브리어라는 것을 공부했는데 여기서 히브리어에 질리고 말았다. 교수방법이 엉터리였던 것이다. 수백 페이지나 되는 문법책을 삼주간에 걸쳐 달달 외워 히브리어를 통달하라고 윽박질러 대니 이런 교수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리고 모르면 말이나 하지 말지 현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와 아주 달라서 현대 히브리어 가지고는 성서를 읽을 수 없다나?

나는 이스라엘에 가서야 비로소 현대 히브리어를 배우면 히브리어 성서를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성서를 읽어야 성서가 제대로 머리속에 들어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도 본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히브리어를 잘 모르거나 무시하는 인간들이 헬라어 번역본과 라틴어 번역본을 가지고 서구 기독교 신학의 뼈대를 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서구 기독교 신학이 히브리어를 무시했기 때문에 비성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서구신학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다른 종교에서 진리를 찾는 혼돈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나는 신약성서신학연구를 포함해서 모든 영역의 신학연구가 히브리적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히브리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유대인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 히브리어를 배워서 그것으로 성경을 읽은 사람 만이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성경보다 헬라어 신약성경의 현대 히브리어 번역본이 읽기가 더 쉽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도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 유대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적어도 히브리어와 독일어를 섞어 만든 이디쉬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 인용문에서도 느껴지지만 유대교는 현대 한국의 기독교도나 사서삼경교 신자보다 더욱 심하게 경전을 절대시한다. 이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까.

6.

이 책은 신약성서를 유대교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지식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유대교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은 그간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밝혀준다.

다만 저자 자신이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어서인지 신약성서를 오류가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견강부회한 것이 없지 않은 거 같다.

예를 들자면 누가복음에서 심온은 왜, 어떻게 아기 예수의 미래를 예언했는가? 저자의 답은 어머니 마리아의 혈통이 다윗과 아론 양쪽에 있어서 혼란을 야기할것이라서. 굉장히 믿음이 안 가는 해설이다. 사실 저자 역시 글의 처음에는 후대에 맞춰 적은 거 같단 말도 한다.

아마도 가장 정확한 예수의 전기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손에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 문화를 생각하면 신자가 이런 해설서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신앙을 모두 걸고 쓴 것인 거 같기도 하고, 그냥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학술적으로 쓴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7.

이제 기독교 성경에 대해 아는 척 하려면 히브리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대가 왔음. 불교계도 팔리어 경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을 보면 시대가 같이 바뀌는 듯.

이 책의 주요 논제 중 하나는 예수가 사두개냐 바리새냐 엣세네냐 하는 건데, 보면서 드는 재미있는 생각은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였 듯 예수도 바리새였을 것이라는 거.



* 이 책을 읽으려는 분께: 만약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교회에서 추천하는 간증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으세요. 믿음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믿는 사람이 누군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아니라면 저자가 예전에 번역한 『선조들의 어록』도 한번 보셔요.
오도송
학식이 없던 중도 갑자기 중국 고대 문어(文語)로 시를 짓는다.

흔히 말에는 집착하지 않는 종교로 알려져 있어서 모순되게 느껴진다. 인도로 알려진 이 종교의 진짜 연원이 어디에 있는 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상.

비슷한 경우로 미국어를 쓰는 중동 종교가 있다.
수정 교회 파산. LA 본당 카톨릭에 매각
http://articles.latimes.com/2011/dec/18/local/la-me-orange-diocese-2011121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01944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61
『비밀 일기』
가끔, 특히 겨울에, 이 촌구석에도 있는 3~4층짜리 대형교회 지부들을 볼 때 『비밀 일기』의 이 구절이 떠오른다.

It is traditional for the homeless to sleep in church porches so why don’t vicars make sure that their porches are more comfortable? It wouldn’t kill them to provide a mamttress, would it?
— 『The Growing Pains of Adrian Mole』(1985)

교회는 평일에 왜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쉴 곳을 개방하지 않을까? 하루 3번 기도시킬 수 있으면 자기들한테도 만족스러운 일일텐데.
카톨릭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00&Total_ID=6916929
http://blog.daum.net/woore72/5170889

카톨릭에게 절대로 권력을 쥐어줘서는 안 된다. 없는 것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꾸미고 믿는 무리.

이건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일본군 출신 김수환이나 마찬가지. 자신의 종교를 세상의 모든 것보다 위에 둔 사람들이다.
Say No To Jejus Campaign

http://www.saynotojesus.bravehost.com/
종교:
하나의 거짓 체계.

실제적인 기능은 특정 인물이나 사회의 계층에 대한 권력 또는 부의 집중.

다만 부작용(副作用)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 그러나 가장 영민하고 존경받는 지도자도 신자의 행복을 제어하거나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심지어 공감을 할 수도 없다.
사경(寫經)
석가모니가 사경(寫經)을 하라 말한 적은 없다. 가르침을 정확히 기억하라 하였고, 그렇게 가르침을 보지하한 수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재가자의 공덕이라 하였다.

또, 알려진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체적인 행동지침이지, 철학처럼 어려운 관념어의 나열이 아니다.

사경의 대상은 보통 반야심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같은 것인데,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으로, 내 생각엔 석가모니의 원래 의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거 같다.
『미래에 오는 미륵불』(2000)

기독교 관련 동화들만 보다가 불교 동화를 보니 신선하다. 게다가 주제가 무려 ‘미륵불’.(『미륵하생경』을 바탕으로 한 것)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현재 인도인(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것. 그런데 시대는 먼 옛날 같다. 미륵이 우리가 살고 있는 겁(劫)에 오는 것이 아니니 시대의 모습은 어떻게 표현하든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과거를 설명할 때 현재와 비슷한 사람, 나라, 도시, 자연 등이 있었다고 말했으니 미륵이 오는 시대 역시 현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익숙한 듯 낯선 SF 같은 모습일 것이다.(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적 상상력이 불교에서 나온 거 같기도 하다)

오랜 세월 사회 속에서 다듬어진, 또는 선교의 목적으로 재구성된 기독교 동화와 비교해서는 조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미륵불’이라는 소재가 어린이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모호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후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의 소재로는 얼마전 본 『발심집』 같이 동양의 역사 속에서 나온 옛날이야기가 더 어울릴 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것이 부족한 듯 해도 일단 구현되면 예상치 못했던 감동과 다의적인 해석을 불러오는 법이다. 이 책을 보니 『미륵하생경』을 볼 때 강하게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운미래의 이상향을 느끼게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머리 속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미륵하생경』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예술로 강화되어 다가온다. ‘그날이 오면’ 뭐 이런 느낌? 확실히 경전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어떤 요소를 분명히 품고 있는 거 같다. (그런데 미륵신앙을 어린이에들게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윤리적 의문이 든다, 마치 기독교에서 어린이들이게 편협한 종교적 개념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문학동네 어린이 불경동화」라는 시리즈가 그 뒤로 더 나오지 않고, 저자 역시 불교 동화 관련 작업을 계속하지 않은 거 같아 아쉽다.
“추수꾼이 없는 교회가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신천지는 2002년부터 추수꾼을 파송하기 시작하여 2005년부터 피해가 늘고 있다. 한국교회가 5만교회라는데 추수꾼 5만5천명쯤 파송이 됐다. 그러다 보니 추수꾼이 없는 교회가 없는 실정이다. 신천지는 2006년 들어 해외의 한인교회에도 추수꾼들을 파송하기 시작했다. LA만해도 4백명이 파송했으며, 뉴욕에도 많다. 기성 한인교회들에게도 신천지 추수꾼들이 들어가 있다.
— 진용식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의회 회장, 아멘넷

1. 신천지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좁은 땅에서 어쩌면 이렇게 래디컬(?)한 종교들이 많이 있을까.

2. ‘5만5천명’이라는 것이 직접 세어본 숫자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모든 교회의 핵심에 신천지가 잠입해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개신교는 왜이리 피해의식이 쩌는지 모르겠다. 이슬람, 몰몬교, UBF… 등등 적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들 종교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정작 적을 만들고 있는 건 자신들일 것이다.

3. 개신교 자체가 신자를 현혹당하기 쉽게 개조시키는 거 같다. 그래서 결국 조금이라도 광명을(그게 출세든 구원이든 논리든 평안이든) 보여주는 교회가 있으면 쉽게 옮김.
불교와 기독교
고등학교 다닐 때 불교는 순환적 세계관이고 기독교는 직선적 세계관이니 하면서 동서양의 대비처럼 배웠는데,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다는 불교나 죽고나서 천국 간다는 기독교나 사실 거기서 거기다. 거의 같은 거로 봐도 됨.

동서양 나누고 뭐 이런 건 거의 70년대 이전 미국책 베낀 거라고 봄. 그리고 혹여나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이 그런 인식을 갖을 필요가 있을까 싶음. 즉 서양인들이 동양을 인식하려고 만든 개념을 동양인이 동양을 인식하는데 사용하면 정확할리가 없음. 그리고 서양에 대한 설명은 자기들 얘기니까 그 속에 없음.

사실 석가모니가 천국간다거나 더 좋은 세계에 환생한다는 이런 개념을 싸잡아 비판했는데, 이 개념들이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 석가모니 죽고 불교 교리가 이런 걸 인정하도록 바뀐 거임.
『일본 중세 불교 설화—발심집(發心集) 譯』(2002)

1.

『방장기』(方丈記(ほうじょうき)), 『무명초』(無名抄(むみょうしょう)) 등으로 유명한 헤이안 시대 말기에서 가마쿠라 바쿠후 초기에 살았던 중 가모노 조메(鴨長明(かものちょうめい), 1155~1126. 일본어 외래어 표기법 왜이리 어렵냐)의 당시 불교 설화 채록집.

곁에 두고 자기를 채찍질하기 위해 썼다고는 하나 교훈적인 결론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생생하고 확실한 불교의 이적을 모아 포교를 위한 목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모노 조메이가 죽은 후에 원고(?)가 발견되서 혼자 보려고 했다는 견해가 생긴 거 같다.

게이안(慶安) 4년(1651), 간분(寛文) 10년(1670) 간행본과 진쿠 분코(神宮文庫) 소장본 등이 있는데,[13~14쪽] 이중 게이안 판본에 미키 스미토(三木紀人(みきすみと))가 주석을 붙인 『方丈記・発心集』(東京: 新潮社, 1976)을 저본으로 다른 판본과 교감하여[14쪽] 20분야 102화 중에서 56화를 선별한 후 3부류로 나누어 편집한 것이다.[7쪽]

2.

한국이 일본의 고전 문학 소개를 너무 등안시해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떠나서 이런 이야기들은 한오백년전부터 교류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덕분에 한국이 일본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못 하는 거 같다.

나도 일본 고전에 대해서 『고사기』는 거짓말이라는 말 밖에 듣지 않고 살다가 『겐지 이야기』를 보고 굉장히 충격 받았다. 남아있는 일본의 중세 문학은 고려나 조선보다 훨씬 풍성한 것이었다.

『발심집』은 내용이나 저자의 직업, 발표 시기 등에서 우리의 『삼국유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발심집』의 사건 진행이 좀 더 자세하고, 저자의 견해가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이것은 『삼국유사』가 주로 고대의 신화와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과거의 왕과 고승을 다룬 것에 비해, 『발심집』은 최근의 내용을 수집하여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또 『발심집』의 저자는 불교를 포교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이야기에 등장한 중들처럼 모든 것을 바쳐 극락왕생하고자 한다. 반면 『삼국유사』는 여유있고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신화나 과거 왕들의 행적이 결국 부처의 뜻이었다고 담담하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3.

중국이나 인도의 이야기보다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더 중시하기도 한다. 우리 전통에서는 보기 힘든 대목.

지금 이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인도·중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우리 나라와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이 책에 싣지 않는다. 또한 부처님과 보살에 관한 설화의 경우 내 능력이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제외했다. 다만 일본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기록할 작정이다.

今これを云に、天竺震旦のつたへきくはとをければかゝず、佛菩薩の因縁は分にたへざればこれをのこせり。たゞ我國の人のみゝちかきをさきとして、うけ給ることのはをのみしるす。

그러므로 아마 오류가 많고 진실은 적을 것이다. 또한 재조사할 수 없는 이야기의 경우에는 그 곳의 이름과 인명을 기록하지 않는다. 이것을 비유해서 말하면 구름을 손에 쥐고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중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와 관련하여 반드시 확실한 근거를 찾아낼 것도 없다. 길 가에서 주워 들은 하찮은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한 번 마음먹었던 발심을 일으켜서 평안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 「발심집 서문」, 22쪽.

れば、さだめてあやまりはおほく、まことはすくなからん。もし又二たびとふにたよりなきをば、ところの名・人の名をしるさず。いはゞ雲をとり風をむすべるがごとし。たれ人かこれをもちひん。しかあれど人信ぜよとにもあらねば、かならずしもたしかなる跡をたづねず。道のほとりのあだことの中に、わが一念の發心をたのしむばかりにや、といへり。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만을 모은 것도 주목할 점.

아무튼 어쩌면 세월이 오래 흘러도, 심지어 근대화 후에도 잘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민족이나 국가 혹은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유전적(?)인 요인이라기보다 어떠한 사상이 발현되었나의 차이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고…

4.

『발심집』에 등장하는 중들의 처지는 우리와 다르다. 공직을 가지고 있고[승하, 평등], 귀족의 자손이고[천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며[남축자], 결혼하여 부인과 사랑을 나누고 자식도 가질 수 있다.

즉 이미 중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그 상황에서 다시 종교적 결심을 새로이 하는 것이고, 출가자지만 재산과 지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이 더 어렵게 그려진다.

아마 신라의 불교가 이런 모습이었을 거다. 귀족의 자제들이 중이 되고, 외국 유학을 가고, 사찰과 땅을 갖고.

5.

대승불교의 특징이 강하다. 이를테면 해탈을 하는 것이 아니라 9단계로 나뉘어진 극락으로 환생한다.

그 후 선명 스님은 꿈 속에서 각존 스님을 만났다. 우선 “어느 품계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까?”라고 묻자 각존 스님은 ”최하위의 하품하생(하품하생)입니다. 거기에 왕생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나 당신 덕택으로 이룬 것입니다. 항상 그런 것처럼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길을 만들기도 하는 행동만으로는 왕생할 수 없었겠지요. 당신의 권유에 따라서 때때로 염불을 했기 때문에 왕생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その後、夢に覚尊上人があらわれた。仙命上人がまず第一声に「どの品だった?」と尋ねると、「下品下生だよ。かなりギリギリの線だったけど、お宅の徳に預かって往生できたんだ。日頃橋を作ったり道を作ったりしているばかりでは、叶わなかっただろう。勧めに従って時々念仏を唱えていたお陰だ」と答えたそうだ。

또한 선명 스님이 “나는 왕생할 수 있습니까.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각존 스님은 “왕생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미 최상위의 상품상생(상품상생)에 왕생한다고 결정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 「선명 스님, 각존 스님 이야기」, 86쪽.

また、「僕は往生できるかな?」と尋ねると「その事は確実だ。早くに上品上生に定められておられますよ」と答えた。

또 정해진 수련이 아닌 각자의 방법에 의해서 왕생을 할 수 있다. 특히 염불이 중요하다. 법화경, 반야심경[221쪽] 등이 특히 중시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법화경이든 열반경이든 이것을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법이 미묘한 것을 귀로 듣고 입으로 제창한 것만으로 현명한 자든 무지한 자든 구별 없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업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백단향은 약간 만진 것만으로도 냄새가 진하고 칼은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것이든 자를 수 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일본과 중국의 전기에 있는 것처럼 예를 들면 어리석다고 해도 조그마한 공덕으로 커다란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모두 극락왕생의 기원을 이루는 것이다. — 「하무라는 여자가 상주불성 네 글자를 가지고 왕생하다」, 151쪽.

왕생은 지혜의 유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는지 어떤지에 의한 것도 아니다. 다만 열심히 공덕을 쌓은 자가 이처럼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여국의 재가신도가 왕생하다」, 107쪽.

그리고 왕생 여부는 인간이 짐작할 수 없다. 기독교를 연상시킨다. 죽기 직전에 마음을 돌려도 되는 것도 비슷하다.

조우 승정이 오랫동안 쌓은 행동과 덕은 조중이 한 마디 읊은 염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이하지만, 승정은 악도에 머무르고 조중은 정토에 태어났다. 이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범부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사람의 행동과 덕망의 정도를 헤아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 「조중이 단 한 번의 염불로 왕생하다」, 97쪽.

6.
게다가 천경(天慶) 시대 이전에는 일본에 염불이 드물게 행해졌는데, 공야 스님의 권고에 따라서 사람들이 염불을 하게 되었다. 항상 아미타불을 외우면서 걸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공야 스님을 아미타스님이라고 했다. 한편 공야 스님은 그 때 마을에 살면서 모든 갖가지 불사를 권했기 때문에 고을의 은자라고도 했다. 일체 다리가 없는 곳엔 다리를 놓고 우물이 없어서 물이 부족한 마을에서는 우물을 팠다. 이 스님이 일본 염불의 조사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스님이 법화경과 염불을 신봉하여 극락에의 업보와 인연으로써 왕생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 모든 책에 보인다. — 「공야 스님이 옷을 벗어서 송미신사의 제사신에게 바친 이야기」, 147~148쪽.

7.

이러한 대승불교의 논의들이 현대 일본의 불교(와 신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 종교는 매우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의 목숨을 던지면서 불법을 추구하는 것에서 무사도를 연상시킨다. 대승불교는 무사도의 철학적 배경이다.

또한 법화경에 “만약 마음으로 발심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생각한다면 손가락, 발가락을 불에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하라. 나라의 성, 처자 및 왕자, 국토 혹은 여러 가지 재물과 보화로써 공양하는 것보다 자신의 손가락 한 개를 태우는 쪽이 훌륭하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의 몸을 태우는 냄새는 지저분하고 역하다. 이것은 부처님께 어떤 이득이 될까. 단지 한 송이 꽃에도 뒤떨어지고 하나의 향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지만 뜻이 깊고 고통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에 훌륭한 공양이 된다는 것이다. — 「서사산의 객승이 단식해서 왕생하다」, 125쪽.

또한 인체를 무심하게 보는 위빠사나의 수련법은 무술의 실제적인 지침이 되기도 한다.

8.

일본어를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모두 옮겼는데, 읽기는 편하지만 약간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경도시’[52, 55쪽 등]라고 한자도 없이 적은 것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반면 ‘미노와’[108쪽] 등은 본문에 한자가 없어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50 헥타르’[45쪽]라는 단위로 옮긴 것도 너무 현대적인 거 같다. 원문은 ‘五十町’인데 정확하게 단위가 변환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거 같다.

제사장하기 정말 쉬움
옆 마을에 재난이 생기면 -> 그놈들은 나를 안 믿어서 변을 당한 것임. 니들은 나 믿어서 화를 면한 거니 성의를 보여라.
내 마을에 재난이 생기면 -> 니놈들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런 거임. 나에게 더 성의를 보이라.
경기도, 신천지 사단법인 설립 불허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741278
아미타불

작년 말에 초기불전연구원에서 펴낸 불경 몇 권을 보고 난 뒤로 간혹 불상 중에서 아미타불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아함경에 아미타불 얘기는 안 나오는데 왜 그런 능력이 생겼는 지 모르겠음. 뇌의 신비. 아마도 아미타불은 기존 불상과 조금 다른 포즈로 만들기 때문인 거 같다.

* 사진은 에나미 노부유키(江南信國 또는 T. Enami, 1859~1929)가 찍은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仏). 입체 사진을 한 장으로 합성한 것. T-enami.org에서 가져옴.
뉴질랜드 지진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
TV에서 뉴질랜드 지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리비아에서는 시위 때문에 뒤숭숭한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구나… 안타깝다… 이런 마음이었는데,

‘Christchurch’라는 지명을 듣자 순간적으로 김홍도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가 예전에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별로 관심있던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1초도 안 돼 마치 본능처럼 생각나버렸다…

교훈이 있다면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걸 거다, 하긴 조신할 사람은 그런 말을 애초에 꺼내지 않겠지만.(특히 기독교는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런 식의 주장은 변명이 궁색해지기 쉽다. 서울에 천재지변 나면 교회들 다 문 닫아야 한다, 목사가 하나님과 딜을 못 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君子之道.

그리고 자연은 무정하다. 교황청에도 피뢰침이 있고, 악인이 천수를 누리며 사는 걸 찾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지혜로운 종교는 인생에 대한 재판은 죽음 후(또는 죽음과 동시)에 있다고 가르친다.
서울대 교수의 간증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서울대 교수의 간증.

… 저는 1980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1981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여 오던 중 1984년 고교 때 떠났던 주님을 다시 영접하고 1987년 성령세례를 체험한 후부터 잃어버린 영혼 구원에 그동안 힘써 왔습니다. CCC와 YWAM의 지도교수를 맡아 오면서 제 연구실에 배치된 학부 및 대학원생들은 전원 주님을 영접시켜 제자훈련을 거쳐 졸업시키는 일을 오늘날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허물도 많고 부족한 점이 많으나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깨어진 마음을 주님이 제게 많이 부어 주신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저녁집회 끝 무렵 갑자기 “사랑하는 자야! 나를 위하여 이 교회에 나와 줄 수 없니? "라고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일만 본교회에 나가고 큰믿음교회로 옮기라”고 말씀하셔서 무척 당황했습니다. 교회를 옮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어서 그날도, 끝날인 그 다음 날에도 참석하여 여러 차례 다시 주님께 물어 보았으나 “It's Me(바로 나란다!)”라는 대답만 계속 들려왔습니다.

… 지난번 찰리 로빈슨 목사님의 집회 때는 본교회 성도가 되고 처음 참석하는 집회라 마음 편하게 참석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금니와 생니의 창조적인 기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의 재료공학의 지식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중략)

… 뉴욕에서 신학대학원(CM&A) 다니는 저희 아들은 우리가 큰믿음교회에 등록했다고 하니 상당히 놀라면서도 자기도 며칠 전 변 목사님 설교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다가 금니 2개가 생기는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는군요. 온 가족을 큰믿음교회의 흐름을 타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중략)

목사의 행복
목사의 인생 목표는 압구정동이나 분당 같은 신흥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크게 성공해서 연봉(?) 수억씩 받으며 외제차 모는 거 아닐까? 교회돈으로 상납도 많이해서 협회에서 떵떵거리고.

목사이기 이전에 한명의 CEO. 교회 땅값도 신경써야 하고 문화센터와 요양시설을 만들어 교인을 늘리는 한편 정부지원금도 노려야 한다.

다른 사업들 못지 않게 경쟁이 심하기에 그때까진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인건비도 줄이고 다른 경비도 ‘성직자’임을 내세워 최대한 할인 받아야 한다. 종교인과 말다툼하는거 좋아하는 장사치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야 빨리 성전 짓는다.

물론 해외시장 개척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기왕이면 국민소득이 높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진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렇게 어렵게 일궈놓은 사업을 자식(여자가 목사되는 건 불경한 일이므로 딸이 있으면 사위)에게 물려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반열반경」(유행경) #3/「대선견왕경」『디가 니까야 2』
『디가 니까야』에서 대반열반경 직전까지 석가모니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자신이 발견한 초월적인 수련법을 꼭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설명하였고, 사회의 윤리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반열반경에서는 초월적인 신앙에 대한 요구가 많이 나온다. 가르침을 얻으러 찾아온 사람에게도 다른 경에서처럼 자상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히려 수밧다는 4달의 견습기간을 4년으로 늘려서 수행하겠다며 기뻐한다. 마지막을 두어 석가모니의 ‘직전 제자’라는게 존재한다는 걸 강조한 부분도 이상하다.

석가모니가 직접 4대 성지를 지목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 깨달음을 얻은 곳,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 자기가 죽는 곳. (여행한번 가봐야 겠다. 신자들을 위한 관광상품이 있을거다;;) 특히 석가모니가 죽은 꾸시나라는 아주 외진 시골이었던 모양이다. 석가모니가 이미 자신의 죽음을 3달 전에 예언하였으므로, 아난존자는 대도시에서 죽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오히려 석가모니는 이 꾸시나라가 옛날에는 마하수닷사나라는 전륜성왕이 다스리던 꾸사와띠라는 수도였다고 이야기한다. 「대반열반경」 바로 뒤에 이어지는 「대선견왕경」이 꾸사와띠의 장엄함과 전륜성왕의 이적을 다룬 경이다. 게다가 마하수닷사나는 석가모니의 전생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이야기 뒤에는 꾸사와띠가 같이 엄청난 도시도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무상에 대한 가르침이 뒤따르고 있긴 하나, 그 도시와 전륜성왕에 대한 묘사가 자못 신비함을 자아낸다. (칠보(七寶)에 관한 이야기도 여기 나온다) 후대의 많은 왕들이 이 전륜성왕 이야기를 따르기 위해(그냥 군대 이끌고 가면 적들이 항복을 하니) 얼마나 헛짓을 하였던가. (우리의 신라 역시 이런 불교 설화를 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천상에 대한 묘사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큰 문제가 없지만, 지상의 크샤트리아 왕에 대한 묘사는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전륜성왕에 대한 이야기 역시 범천에 대한 이야기처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륜성왕이라는 말은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물론 그가 작은 나라의 왕자여서 충분히 그런 예언의 대상이 될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전륜성왕이 될 수 있었으나 부처가 된, 석가모니가 만든 불교라는 종교는 그 이후로 권력과 이중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반대로 불교를 통해 전륜성왕이 되고자 노력한 왕도 만들었고, 중 자신이 전륜성왕이 되려고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티벳 불교가 아마 그러한 예가 될 거 같다. 궁예도 생각난다.

원래 종교라는 건 권력이나 사회 체계와 아주 밀접한 것이다. 신라를 통해 불교가 널리 퍼지기 전에 무속이 국가를 움직였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세계종교는 반대로 권력과 거리를 둔 경우가 많았다. 유대교는 자기들만의 규칙이지만, 초기 기독교는 민족과 율법을 무시한다. 또 권력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걸 세금 따로 십일조 따로로 해석하는 한국 교회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석가모니의 죽음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는 아누룻다도 이상하다. 그는 일종의 제관 또는 죽은 혼령의 뜻을 전하는 무당의 역할을 하는 거 같다.


* 초기불전연구원에서 펴낸 『디가 니까야 2』를 읽으며 든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대반열반경」(유행경)『디가 니까야 2』 #2
여래가 일겁(一刧)을 살 수 있지만 아난존자가 부탁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책망이 두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한다. (실제 사건의 묘사와 과거의 회상. 장아함의 다른 경들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 이 대반열반경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자면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났는데, 이건 나중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만났노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렇게 이중으로 이야기됨. 어쩌면 이게 사건을 진실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특이한 특징.)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오는 설명처럼 여래와도 결국 헤어지는 것이 연기의 법칙이고, 육체가 낡는 것은 부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3천년 넘게 욕을 먹을 아난존자가 불쌍할 따름이다. (아난존자가 석가모니와 나이가 비슷한 가까운 친척이란 이야기가 있는데, 어쩌면 그런 것이 장수를 쉽게 빌지 못한 배경일 수도 있다.) 이 불경에서 특히 아난존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푼이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아난존자 덕분에 불경이 전해질 수 있었던 거 아니었던가? 아난존자의 회한이 불경으로 남은 건 아닐까. 또 죽음에 대한 논란이 3개월 전의 석가모니 자신의 예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신비한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시기 석가모니가 중병을 한번 앓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되었으리라. 게다가 석가모니는 불경 곳곳에서 빼어난 의학 지식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렇게 이 대반열반경(유행경)은 여러 사건이 꽤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여러 시점으로 나타나므로 불경은 누가 어떻게 쓴 것인가 상상하게 만든다. 중간에 1차결집때 넣은 합송이라고 주석서에서 설명한 부분도 있다.

소승불교의 수행법은 한국에서는 도교나 선도로 통용되는 것들과 유사한 것이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의 수행법인 참선, 화두선, 절하기(요가), 주문(불경) 외우기, 타악기 연주하기, 부처에게 빌기, 중에게 의지하기, 돈 바치기, 과학이나 철학으로 연구하기, 사주보기 같은 것은 오히려 석가모니가 반대한 수련법이다.

이런 모순 때문에 80년대에 위빠사가나 종교가 아닌 수행법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 같다. 한편으로는 도교의 수련법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성립된 것이란 생각에 배신감 비슷한 것도 느껴진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급된 이런 식의 수련은 한가지 방법, 단편적인 것이라는 데 부작용이 있는 거 같다. 석가모니는 당시의 이런저런 수련을 모두 포용하고, 거기에 자신의 방법을 천명한 것에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또 그 수련방법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라는 거.

또 단순하게 설명하는 대승불교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깊은 논의나 이해가 사회에 부족한 거 같다. 불교와 관련된 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에세이집 제목 ‘무소유’는 분명 ‘무소유처’라는 불교 개념에서 나온 것일텐데 그저 ‘소유하지 않음’으로 이해된다. 중인 저자 역시 분명히 그 개념을 알텐데 그 이상의 개념을 드러내지 않는다.


* 초기불전연구원에서 2006년에 펴낸 『디가 니까야 2』를 읽으며 든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대반열반경」(유행경)『디가 니까야 2』 #1
「대반열반경」은 다른 경과 달리 비교적 긴 시간을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통일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그래서 ‘유행’(遊行)경으로 한역(漢譯)되었다. 이 경의 부분부분이 다른 경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역자는 이것들을 대반열반경의 보유(補遺)로 보았지만, 반대로 대반열반경이 이런 짧은 경들을 모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경에서와는 다르게 짧은 계송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는 그렇게 끝나는 하나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편집된 의도는 비교적 명확한데, 석가모니가 죽기 전 마지막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반열반’(般涅槃, parinibbāna, 산스크리트어 parinirvāṇa)경으로 한역되었다.)

마가다국의 아자타샤트루(아사세)왕이 북쪽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왓찌(발지)국을 침공하기 전에 석가모니에게 의견을 묻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석가모니는 왓찌가 (1)정기적으로 자주 모이고(역자는 주174에서 이것을 ‘민주적 절차’라 설명했는데, 승가의 계율을 참고하면, 만장일치제, 직접민주주의, 공동소유 등이 규칙이다. 이것을 현대 한국의 ‘민주’로 설명하는 건 좀 무개념한 거 같다) (2)화합하여 모이고(역자는 이것을 인화(人和)로 봤는데 이 역시 좀 부족한 설명이다. 승가의 화합이란 게 친하게 지내라는 뜻인가? 혹은 한국의 대기업들 조직처럼 움직이라는 뜻인가?) (3)공인한 것을 잘 지키고(역자는 ‘준법정신’이라 주했다. 추상적인 법이라는 권력과는 시스템 상의 차이가 크다.) (4)연장자를 존중하고(뒤에 승가에 대해 설명이 나오지만, 군대 하루 먼저 갔다고 공경하라는게 아니라 장로들을 존중하라는 의미다. 역자는 이걸 ‘위계질서’라 주했다. 이 역시 군대 갔다온 한국 남자 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상상이라 할 수 있겠다.) (5)남의 집안의 아내와 딸을 강제로 아내로 삼지 않고(역자는 이걸 ‘건전한 성도덕’이라 주했는데, 한참 다른 얘긴 거 같다) (6)탑묘를 숭상하고 (7)비구들을 보호하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동아시아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춘추전국 시대의 경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을 점치는 모습에서 전국시대 추연도 생각난다. 그런데 「범망경」(범동경)에 이미 전쟁의 승패를 다루는 점술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것은 석가모니가 멀리하라고 말했던 풍습이다. (아자타샤트루 왕이 석가모니를 불교 신자들이 생각하듯 특별 취급한 것이 아니라 일반 바라문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석가모니의 주장을 잘 몰랐을 수도 있다. 시험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더군다나 이 7가지 덕목은 다시 비구 조직, 즉 승가의 덕목으로도 투영된다. (5)는 갈애에 구속받지 않음, (6)은 숲 속의 거처에 대한 관심으로, (7)은 동료 비구에 대한 친절로 등이다. 그 뒤에 수행 덕목, 칠각지 등으로 연결되기도 하나 연관성은 많이 줄어든다. 국가적인 차원의 덕목이 작은 조직, 또 개인에게 연결되는 모습 역시 중국 고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탑묘(쩨띠야(cetiya), 산스크리트어 짜이땨(caitya), 주228) 숭배가 인도에 원래 있던 풍습이었고, 일종의 조상 숭배라는 것도 우리의 풍습을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처럼 휴식처의 역할도 한 모양이다. 주228에 따르면 불교의 탑묘인 스투파(thūpa, 산스크리트어 stūpa)는 원래 시체를 묻는 묘지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후대에는 불교 사원에서도 쩨띠야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일반 거주지는 위하라(vihāra))

놀라운 것은 이 7가지 덕목을 석가모니가 왓찌에게 직접 가르쳤다는 이야기다. 왓찌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석가모니에게 귀의했다는 얘긴데, 좀 안 믿긴다. 또 거기다 석가모니를 극진히 모시는 마가다 왕은 왜 석가모니에게 귀의한 왓찌를 침범하는가. 그래서 석가모니에게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인가? 비윤리적이면 침략해도 되는가? 이상한 이야기다.

마가다 왕의 사자는 물러가면서 전쟁이 어렵다면 분열책을 쓰겠다고 말하는데, 장아함이 전반적으로 전지적인 시점에서 서술되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과는 달리 바로 침략을 위한 거점 도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상하게도 전쟁을 준비하는 도시라면 당연히 요새일터인데, 이 빠딸리뿟따(현재 비하르 주도인 파트나)는 상업 도시이다. 성곽 도시의 상업이 발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긴 하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이 도시의 미래를 점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상하다. 도시의 이름까지 예언한다. 이런 점 치는 행위를 석가모니는 반대하지 않았던가.

또 책의 몇부분에 석가모니 자체를 종교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보이는 것도 이채롭다. 자칭 타칭 상수제자 사리불과 아난존자가 그렇다. 역자는 이것을 ‘청정한 믿음’(주192)이라 했지만, 내가 보기엔 석가모니가 답답하게 여겼을 거 같다. 그러나 ‘법의 거울’이라 이름붙인 내용에서는 석가모니 자신이 그러한 믿음을 권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공양을 하면 신 역시 그를 연민하여 복을 받는다는 계송도 나오고, 계를 지키면 재물을 얻는 장점이 있다;;; 는 가르침도 나온다.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라기 보다 각 계급의 이익을 얻는다는 뜻에 가까운 거 같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개신교는 돈 버는 걸 너무 확대 해석한 것.

석가모니의 승가에 대한 태도도 이채로운데, 아무튼 현대 우리가 생각하는 조직관과는 많이 다르다.

“Kiṃ panānanda, bhikkhusaṅgho mayi paccāsīsati? Desito, ānanda, mayā dhammo anantaraṃ abāhiraṃ karitv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Yassa nūna, ānanda, evamassa: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so nūna, ānanda, bhikkhusaṅ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eyya.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Sa kiṃ, ānanda, tathāgato bhikkhusaṅ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issati?”

佛告阿難衆僧於我所須耶若有自言我持衆僧我攝衆僧斯人於衆應有教命如來不言我持於衆,我攝於衆豈當於衆有教令乎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여, 여래가 [가르친]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師拳]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아난다여,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당부할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여래에게는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을 당부한단 말인가?”

참 철저한 사람임. 난 이상하게 석가모니가 조직 관리하는 대목들에서 묘한 현실감을 느낀다.

“Ahaṃ kho panānanda, etarahi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 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Seyyathāpi, ānanda, jajjarasakaṭaṃ veṭhamissakena yāpeti, evameva kho, ānanda, veṭhamissakena maññe tathāgatassa kāyo yāpeti. Y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o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ekaccānaṃ vedanānaṃ nirodhā animittaṃ cetosamādhiṃ upasampajja viharati, phāsutaro, ānanda, tasmiṃ samaye tathāgatassa kāyo hoti.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阿難我所說法內外已訖終不自稱所見通達吾已老矣年粗八十譬如故車方便修治得有所至吾身亦然以方便力得少留壽自力精進忍此苦痛不念一切想入無想定時我身安隱無有惱患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 간다고 여겨진다.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이런 [세속적인] 명확한 느낌들을 소멸하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무는 그런 때에는 여래의 몸은 더욱더 편안해진다.”

마치 소설 주인공의 죽음처럼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난 아직 불경의 1장 1절도 다 못 본 건데;;

우리의 인생은 고인가? 혹은 원죄에 물들어있는가? 한국 사회가 그리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악에 물들어 구원 만을 기다린다거나 고령자 OECD 자살율 1위지만 생노병사를 무서워만 한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에서의 공헌으로 나름대로 겪어낼 만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적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웃 중공이나 일본의 사람들, 그들의 문학 작품을 볼 때 그들 역시 괴로움이나 죄의식에 시달리는 거 같지는 않다. (이게 유교의 전통인지는 또 따져봐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침공하기 전에 평화롭게 살던 세계는 많았으니까) 석가모니가 말한 ‘고’가 불교 신자에게는 일반적인 진리이겠지만, 서구의 기독교와 통하는, 아마도 중동이나 지중해 연안에서 발원한 문화적인 전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내세관은 어떤가. 우리는 주로 원한이나 출세에서 전생을 떠올린다. 불교의 엄밀한 연기관과는 다르다. 오히려 샤머니즘의 저승관에 더 가깝다. 내세는 어떤가. 흑인 노예들이 믿었다는 개신교처럼 현세의 고통을 내세로 감내하는가? 독실한 신자들은 그렇겠지만 대부분은 그러하지 않다. 오히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한다. 나는 이 역시 샤머니즘의 저승관과 더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불교를 괴로움을 없애고 싶은 사람이 사회를 떠나 숨는 은신처와 같은 이미지로 남게 한 거 같다. 그러나 동남아나 인도의 불교는 생활에서 그리 멀지 않다. 출가도 인생에서 한번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지 사회를 등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신라와 고려 초기의 불교가 그리 탈속적이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귀족 자제가 사회에 머물며 공부를 하기 위한 선택 중에 하나였다.

비구 승가에 대한 이미지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종교인 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무협지에 등장하는 개방에 더 가깝다.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

是故阿難當自熾燃熾燃於法勿他熾燃當自歸依歸依於法勿他歸依 …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

주225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등불’로 옮기는 팔리어 단어는 ‘dīpa’(위의 문장에서는 ‘dīpo’로 격변화)인데, 상좌부 불교의 주석서에는 이것을 모두 산스크리트어 ‘dvīpa’, 즉 섬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이를 산스크리트어 ‘dīpa’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는데, 등불이라는 뜻이다. 섬에 확실히 홀로 꿋꿋이 선다는 느낌이 있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통하는 거 같고, 등불에는 남까지 비춘다는 뜻이 있어서 대승불교와 어울리는 거 같다. (그런데 Wikipedia 따르면 인도 신화에서 dvīpa는 작은 섬이 아니라 지구 상에 떠있는 7개의 대륙(sapta-dvīpa) 또는 4대부주(四大部洲)를 의미한다고 한다. 스케일 큰데? 실제로 뒤에 지진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대지(원문은 ‘mahāpathavī’)는 물 위에 떠 있다고 묘사한다. 한국말로 번역할 땐, 섬의 이미지보다는 ‘태산처럼’, ‘산맥처럼’ 같은 말이 어울릴 거 같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절에 가면 ‘삼귀의’를 강요한다. 난 삼귀의 노래(찬송가를 흉내내 80년대에 보급된)를 들을 때마다 기독교의 사도신경을 연상한다.

궁금한 구절은 한역 장경과 대조해가며 읽고 있는데, 한역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우선 번역을 참 잘한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잘 몰라서 제대로 평가는 못 하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산스크리트어를 중국 사람들이 배웠는지 놀랍다. 방대한 분량도 경탄스럽다. 오히려 현대의 중공을 비롯한 속칭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는 서양의 책을 제대로 번역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는데 1천년 전 중국 문화는 외래 문화를 이렇듯 주체적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반면 근세에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말로 번역해주었다. 이런 것들이 미래를 좌우한 것은 아닐까. 기독교 신자들도 성경무오류설을 따질게 아니라 매년 사해문서로 성경 번역을 새로 하는 게 앞으로 미래를 열 신앙의 길 아닐까.

두번째로는, 한역된 불경을 보면, 우리에게 친근한 한자말로 변경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인도의 문화가 탈색되어 있다.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3천년 전 글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21세기에는 한문 중역이 아닌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겨진 팔리어 경전을 보는 게 한국 불교의 중요한 사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영어 번역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번역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대승 경전 역시 산스크리트어 번역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초기불전연구원에서 2006년에 펴낸 『디가 니까야 2』를 읽으며 든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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