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1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도서관에서 빌림
90년대부터 국내에 자주 번역, 소개되는 미시사나 문화사, 풍속사 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는 음식 평론가의 일본 문화 소개(및 찬양)에 가깝다. 내용 또한 학문적, 문학적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지은이의 사상적 경향도 토쿄대 졸업, 35년간 대기업 근무, NHK방송대학 강사 등의 경력에 어울리게 보수적이다. (이런 경우 일본 전통 문화를 잘 모르는 일본인, 특히 젊은이에게 다른 일본인이 소개를 해주는 듯한 느낌)
일본 책을 읽다보면 조선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드는 반감 중에 하나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나 침략에 대해서 이렇다할 반성적인 언급없이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 그런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나아가 이랬더라면 전세
(戰勢)가 바뀌었을지도... 같은 말을 하곤 하는 것.
이런 특징이 객관적인 관점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비슷하기 때문에 번역의 뉘앙스 전달이 더 힘든 듯. 물론 한국인들도 이런 글들을 보며 자국과 민족,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이 남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낯뜨겁고 어색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책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각종 자료들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또 기본적으로 전통문화, 근대화 관련 자료가 일본은 한국에 비해 풍부하다.
달착지근한 샤브샤브나 전골 같은 것이 일본 고기 요리의 주종을 이루는 것에는 역사가 있었다. 우선 육식에 대한 금기가 있어서 요리 방법이 발달하지 못 했고, 적당한 도축과 고기 처리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고기는 주로 물에 끓여서 먹었는데, 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 된장을 넣었다. 이것이 기본이 되어서 고기가 인기를 얻은 이후에는 된장대신 간장(메이지 10년대)과 설탕, 그리고 파 등의 각종 양념(메이지 20년대)을 넣어 끓이거나 쫄여 먹는 것이 주종을 이룬 것 같다.
또하나의 대표적인 일본 고기 요리는 칸사이에서 발달한 스키야키이다. '스키'(
鋤)에 쟁기라는 뜻이 있으므로 쟁기 위에 고기를 구워먹는 방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스키야키는 날계란에 찍어먹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고기를 먹기도 한다. 아마 일본에서 수입한 방법일 듯.
일본은 텐무
(天武) 4년
(675년)에 덴노가 소, 말, 개, 원숭이, 닭에 대한 식용 금지 명령을 내린 이후로 육식을 금기시하는 전통이 이어져왔다고 하는데, 나는 『니혼쇼기』
(日本書紀)의 기록과 당시 일본의 지배 체제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 명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이후에도 여러 덴노가 육식금지, 살생금지, 방생 등의 명령을 내렸다.
(34쪽에 표로 정리. 山内昶, 『「食」の歴史人類学—比較文化論の地平』(人文書院, 1994) 인용)다만 불교와 정치적인 이유로 이러한 금기가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물론 일본인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음 일화는 일본인의 육식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瀧川政次郎, 『日本社会経済史論考』(日光書院、1939) 인용)살생계를 범하면서까지 쇠고기를 먹으면 무척 죄책감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어머니의 고향인 야마토고리 산에 놀러갔는데, 어른들은 안방의 부엌이 아니라 별채에 딸린 창고에 풍로를 가져다놓고 고리를 먹곤 했다. 불단에 스키야키 냄새가 스며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래 천수백 년 동안 지켜온 관습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다. (113쪽)
공공연히 육식을 즐기는 번주도 있었다. 일정양의 소고기를 주기적으로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일반인들 사이에서 육식은 '보약'이라는 은어로도 불렸는데, (사슴고기는 단풍, 멧돼지 고기는 모란, 소고기는 흑모란, 겨울모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 병을 치료하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고기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에도 역시 금기가 작동했다.
어른들이 아이들한테는 독이라고 해놓고 밤중에 화로를 뜰에 내놓고 몰래 수육을 삶는데,그 냄새에 아이들이 잠을 깨는 바람에 고기 한 점씩을 먹여 재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기를 삶으면 부정탄다고 자기 냄비는 놔두고 이웃집 냄비를 빌려다 썼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빌려주지마 냄비 머려'라고 빌려준 사람이 혼난 이야기도 있다. (38~9쪽)
일본 괴기 문화가 육식에 대한 금기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밤에 어른들이 모여서 몰래 고기 먹는 거 목격하면 충격받았을 듯. 게다가 어른들이 한 젓가락 준 정체불명의 음식은 왜이리 맛있었는지! 어른들은 그 음식이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그건 과연 뭐였을까? 어제 소 시체를 마당에서 봤는데... 뭐 이런 식;;;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서당에 다닐 무렵이니 대략 메이지 3~4년경의 일이다. 시코쿠(四國) 도사(土佐)의 시골에서 쇠고기를 팔러 온 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병들어 죽은 소의 고기였던 것 같은데 "보약 드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조그만 소리로 하인에게 말을 걸곤 했다. 하인은 고기를 몰래 사 마당 끝에 돗자리를 깔고 풍로와 냄비와 불을 모두 따로따로 해서 끓였다. 하인이 약이 된다고 해서 항아리 안의 고기를 한두 조각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 먹은 쇠고기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시중에 쇠고깃집이 생긴 것은 그보다 훨씬 훗날의 일이다. (113쪽, 『日本食肉史』(1956) 인용)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금기가 신도와 덴노 숭배와 결합하여 일종의 종교적 믿음을 형성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즉 덴노는 신성한 일본 영토에서 자라나는 곡식을 보호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1872년 메이지 덴노가 육식 해금을 선언하자, 황거에 자객이 침입하는 사건도 발생하한다.
(29쪽)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외국에서 향수병에 걸리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 등 이른바 일본의 '3대 양식'이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양식에는 메이지 시대 이래 선인들의 노력과 집념이 깃든 불가사의한 마력이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다. (10쪽)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요리들이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었고, 근대화, 개방과 관련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라멘, 규동도 비슷하다.
2009년 1월 11일 일요일지은이는 '서양요리'(
西洋料理)와 일본화 된 서양요리인 '양식'(
洋食, 또는 일본 양식)을 구별한다. 이게 일반적인 인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양요리를 먹고 싶을 때 일본사람들은 '양식집 가자'고 안 하고 '서양요리집 가자'고 하는가? 혹은 돈가스를 먹고 싶을 때 '양식집 가자'고 하는가?) 일본화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책인 거 같기도. (사전적인 정의는 이렇게 내리는 거 같다)
육식이 서양 문명 도입을 주장하는 세력과 반서양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나누는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름난 육식 매니아였다.
2009년 1월 12일 월요일빵의 수입은 군대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휴대와 보관이 쉽기 때문에 전투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 빵을 먹는 경우 각기병에 걸리지 않아 억지로 먹기도 하였다. 육군에서 개발한 고(甲) 빵(1905년), 오쓰(乙) 빵 등이 있다. 건빵
(乾パン)도 개발하였다. 한국군이 건빵을 먹는 게 여기서 유래한 걸까? (별사탕
(金平糖)까지 들어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 거 같다)
단팥빵(
あんぱん)은 메이지 7년
(1874년, 홈페이지에 의하면 메이지 8년, 1875년 4월 4일) 키무라 야스헤에
(木村安兵衛, 1817~1889)와 에지자부로
(木村英三郎, 둘째 아들)에의해 개발된다. 일본주의 주정을 사용하여 빵을 발효하여 익숙한 맛을 낸다. 이것을 서양과 동양의 성공적인 혼합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 단팥빵의 단팥소는 그야말로 중국적인 것이다. 이 빙과 바오쯔를 서구식 빵 안에 넣은 것이 바로 단팥빵이다. 따라서 단팥빵은 중국문화와 서구문화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것이 생겨난 곳은 중국도 서양도 아닌 일본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158쪽, 中尾佐助, 『料理の起源』(日本放送出版協会, 1972) 인용)
좀 받아들이기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치고, 한국에는 동도서기를 이룬 물건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봤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긴자의 이 상점은 지금도 있는 모양이다.
이전까지 일본인에게 빵은 그저 간식거리이고, 먹어도 배고픈 것으로만 인식되었다. 어쩌면 한국과 그리도 비슷한지. 한국에는 빵이 어떻게 수입되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단팥빵은 손쉽게 천황에게까지 진상되고 (키무라 야스헤에가 사무라이 가문이고, 공직에서 근무했던 거 같다) 벚꽃이 곁드려진 천황 전용 제품이 궁내청에 납품되다가 곧 일반인에게도 판매된다. (
桜あんぱん)
http://www.kimuraya-sohonten.co.jp/sakadane.html어렸을 때부터 서양음식인줄 알고 제과점에서 즐겨 사먹던 빵이 일본에서 개발된데다, 천황을 위한 상징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니 당혹스럽다. 앞으로 당분간 단팥빵은 먹지 않을 듯. (그러고보니제과점이라는 공간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인 듯)
키무라야는 계속해서 1900년에는 잼빵을 만들었고, 역시 제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슈크림빵은 신주쿠의
나카무라야(中村屋)에서 1904년에, 카레빵은 료코쿠바시
(両国橋)에 있는 메이카도
(名花堂, 현재의 カトレア洋菓子店)에서 1927년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또 식빵 역시 미국의 Pullman 빵을 본 따 일본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만화 '호빵맨'(원제: 단팥빵맨)에 등장하는 '잼아저씨'나 '카레빵맨', '식빵맨' 등이 서양 문물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현재도 일본 광고 시장에 우유 광고, 식빵 광고가 꾸준히 등장하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상징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쿠후는 처음에 프랑스 빵을 선호했는데, 바쿠후가 밀려나자 영국 빵이 득세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당시 영국 빵은 캐나다산 강력분을 사용해서 크게 부풀려진 모양이었다고 한다.
현재 책을 3분의 2
(전체 6장 중 4장)가량 읽었는데, 아직 돈가스 얘기는 안 나오고 있다. 5장부터 나오는 돈가스 얘기 재미없으면 막 화낼 거 같다.
내가 처음에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님을 강조했는데, 역시 뭐랄까 객관적인 조망이 빠져있는 느낌. 전개 과정도 약간 갈팡질팡하는 부분이 있고. 이것이 학문과 비학문의 차이점 아닐까?
Amazon.co.jp 소비자 평가 중에 코스게 케이코
(小菅桂子)를 언급한 것이 있었다. 코스게 교수는 이 책과 같은 시리즈인 『
カレーライスの誕生』
(講談社, 2002)라는 책도 썼다. 이 책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 겠다.
しかし本書は単なる邦書の継ぎ接ぎに過ぎない。
海外文献・資料の参照や、料理の経験上の考察もない。
同じ英語が出来ないにしても
小菅桂子氏などの持つ粘り強さくらいは欲しいところ。
2009년 1월 13일 화요일이 책의 주제인 돈가스의 탄생 과정이 담긴 5장, 「양식의 왕자 돈가스」의 내용이 기대만큼 정밀하지가 않다. 돈가스 탄생 이전의 비슷한 요리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현재 돈가스의 장점을 나열하면서 일본 음식의 우수함과 일본인의 지혜를 확인하는 것이 주 내용. 내 이럴 줄 알았어!
이전에 돈가스와 가장 가까웠던 요리는 '포크가쓰레스'였으며, 1907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에서 등장했다. '가쓰레스'는 커틀릿
(cutlet)을 이르는 말로, 1860년 후쿠자와 유키치의 『화영통어』에 그 단어가 보인다.
돈가스는 쇼와 4년
(1929년) 시마다 신지로
(島田信二郎)가 우에노의 폰치켄
(ポンチ軒)에서 팔기 시작하였으며, 뒤이어 1932년 우에노의 라쿠텐
(楽天), 1933년 아사쿠사의 키타하치
(喜田八, 다른 자료에는 喜利八로 적혀 있기도 하다.)에서 팔았다.
이런 가게들이 지금도 남아있다든게 신기하다. 사실 이런 전통이 없는 한국이 이상한 거다. 일제 때 한국은 어땠을까? 지금처럼 그저 수입에 급급하고 있지 않았을까?
돈가스는 기름에 넣어 튀기는데, 이 방법은 기름에 굽는 서양요리 방법과 차이가 나며, 뎀뿌라 요리 방법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돈가스에 곁드리는 양배추는 렌가테이 시절부터 있었는데, 따뜻한 야채를 사용하는 프랑스요리와 다르다. 아마도 느끼한 맛을 없애고, 요리를 빨리 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같다. 한국에서도 돈가스는 양배추와 함께 나오는데, 이것은 이 전통을 따른 것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된장국이나 돈지루도 느끼한 맛을 없애기 위해 사용되었다.
돈가스는 돼지고기에 옷을 입혀 튀긴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프라이도 아니다. 빵을 잘게 부순 빵가루를 황금색으로 입히는데, 그 빵가루옷이 입에 넣어 씹었을 때 바삭 하고 고기와 같이 부서지는 일체감, 이것이야말로 돈가스다. 돈가스를 한입 가득 먹고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 입 안의 기름기를 씻어낸다. 이 두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먹는데, 둘이 씹히는 느낌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도 서로 아주 비슷한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혀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 없이 돈가스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밥도 맛있고 술맛도 난다. (213쪽, 『1000円グルメの本』(山手書房, 1985))
관동 대지진 후 메밀국수 가게에서 메뉴를 넓히기 위해 돈가스와 카레라이스를 추가한다. 이 역시 현재 한국의 분식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습이다.
가스카레는 1918년 아사쿠사에서 포장마차 양식집을 하던 고노 긴타로(河野金太郎)가 가쓰레쓰와 카레라이스를 한접시에 담았던 것으로 시작했다. 가와킨 덮밥(河金丼)라고 불렀다. (212쪽)
가스동은 1921년 나카니시 게이지로가 만들었다. (194쪽) '가스동'을 '돈가스덮밥'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책에서 '돈가스'는 1929년에 개발된 것으로 나오는데 '돈가스덮밥'은 1921년에 개발된 셈이라서 혼란을 초래한다. 번역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단어들에 대해 우리말이 정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일지도.
우스터소스는 원래 영국에서 개발된 것인데, 1898년 전국간장대회에서 관심을 끈 후 1900년 일본식 우스터소스가 완성되었다. (228쪽)
돼지고기가 소고기에 비해 더럽게 인식된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돈가스는 부드러워서 잘 사용되지 않던 안심의 수요를 늘리는 역할도 했다.
돈가스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식당 주인이 도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서양 문물과 관련이 있어서 그랬을까? 일종의 유행이었을까?
마을 어디를 다녀도 돈가스 간판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 이렇게 돈가스집만 생기다 보면 도쿄는 기름 냄새 때문에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206쪽, 『식도락』 1932년 11월호)
여전히 고기 굽는 냄새에 대한 금기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일본에는 이 때 생긴 '기름을 쓰면 부엌이 더러진다고 해서 튀김요리는 꼭 고깃집에서 먹는 습관'(204쪽)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결어] 이 책을 통해 요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음식 역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더 재미있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다. 또 한국의 외식습관 중에 일본에서 발생한 풍습을 수입한 것이 많다는 것에도 놀랐다. '화혼양재'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 자체가 추천할 만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꽤 정성들여 정리한 책임에 분명한데도 뭔가 부족한 느낌. 그게 학문이랄까, 독서에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이 있다면 그것을 참고하는 게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