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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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슈퍼7 사태를 이렇게 봄 |
길(길성준)이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이나 다른 보도들을 보면, 공연을 멋지고 크게 하려고만 했지 정작 관객에 대한 고려는 적음. 즉 기본적인 기획이 부족함. 사실 그정도로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약간의 언플로도 사태를 충분히 넘길 수 있었을텐데, 출연하는 TV 방송 등에 공연에 대한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았음. 홍보의 부재. 그리고 기획사의 문제로 공연이 취소되었다면, 기획사가 일단 모든 책임을 져야 할텐데, 공연 취소로 생긴 손해를 출연자들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일반적인 기획과는 약간 달랐던 거 같음. p.s 이들이 전통적인 예술 쟝르, 예를 들자면 클래식, 하다못해 만담이나 가요에라도 속해 있었다면 단순히 공연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연예인과 TV의 종속 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다. |
| 『세계군가전집』 |
왜 사고 싶지?;; ‘군사애호가, 나치오타쿠, 공산취미자 필견’이라는 광고가 참 재미있네요;; |
| 유홍준 |
이런저런 활동 많이 하면서 공부를 쌓기는 사실 쉽지 않다. 오히려 목소리 크게하는 스킬만 키울 수 있는 게 우리 환경. |
| 하이데거 |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 농부들의 노고가 느껴진다면 당신은 하이데거주의자(?)다. 이건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 공식이나 어떠한 민족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을 보며 조상들의 고생을 상상해낼 수 있다면 이미 최고 수준의 하이데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생산자의 노력으로 변주한 것이 마르크스다. |
| 랑랑 |
http://www.langlang.com/us/news/music-i-played-white-house 한국에서는 전혀 이슈가 안 되고 있는데, 피아노 연주자 랑랑(郎朗)이 후진타오 주석이 참석한 백악관 만찬에서 반미의 의미가 담긴 곡을 연주해 가쉽거리가 되고 있다. 하긴 뭐 랑랑이 홈페이지에 밝힌 대로 중공에 보급된 노래들이 대부분 혁명가곡이라서 어렸을 때 듣고 자란 게 그런 거 밖에 없긴 할 거다. 근데 또 중공에서 예술가들을 일종의 선전도구로 밀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랑랑 정도 되려면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예술가 자신 역시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선 나치 독일과 협력 예술가라는 주제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므로 참고하면 됨.) 랑랑이 연주한 곡은 한국전쟁 중 중공군이 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한 것으로 알려진 1952년 상감령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上甘岭」(1956)의 주제곡 「我的祖国」이다. 위키백과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고 설명을 안 붙였으므로 괜찮다고 실드 처주는 사람도 있다. 하긴 남한에도 이 노래 내용(중공군의 승리, 즉 남한의 패배)은 생각 않고 유명한 중국 노래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거 같다. 모두의 주장이 진실하다면… 연주자가 곡의 의미도 모르면서 중요한 무대에서 연주하겠다고 나선 게 문제인 거 같다. 그리고 곡 자체가 중국 문화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내놓기에는 좀 선동적인 내용 아닌가.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국 언론이 약하게 나가는 것도 좀 의심스러움. |
| 서복관 |
오히려 예전에 알지 못했던 서복관의 삶이 감동적이다. 그는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59세의 나이에 현실 정치 세계에서 벗어나 학문에 집중한다. 그로부터 그의 다양한 저작들이 나온다. 이 책, <중국예술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이 나오기 7년 전, 그는 잠들기 전에 새로운 책들을 보거나 부담 없는 책들을 들춰본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미술총서>이다. 이 미술총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예술 서적들을 읽으면서 그는 점차 그의 생각을 구체화한다. <그런 뒤에 장자의 소위 도(道)라는 것이 인생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며 바로 숭고한 예술정신이며, 심재(心齋)의 노력을 통하여 파악되는 마음이 실제로 예술 정신의 주체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노학(老學)과 장학(莊學)으로부터 발전되어져 나온 위진현학, 그것의 진실한 내용과 결과는 바로 예술성의 생활과 예술상의 성취이다.>라는 생각을 이 방대한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서복관 글만 봤지 생애에 대해 접할 일이 없었다. 사실 내 생각에도 서복관 글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데, 그 생애가 진정 예술인 거 같다. 중공의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도 학문을 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그 반대로 중공의 사회 분위기와 반대되는 사람은 학문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고. (결론: 중공의 학문은 정치가 반영된 것) |
| Jim Morrison — Ode to Nietzsche (1968) |
| 「オオカミはブタを食べようと思った。」(2007) |
세상엔 대단한 아이디어가 참 많다. - 작가 竹内泰人(TAKEUCHI Taijin) 홈페이지 <http://dokugyunyu.boo.jp/> - ニコニコ動画 <http://www.nicovideo.jp/watch/sm6706012> |
| 예언 |
| 인용 |
가장 큰 욕심이라면 진짜 사진가가 되고 싶다. |
| 예술 이론 |
철학자에게 '동양철학'을 묻는 건 워낙에 범주가 다르니 웃어 넘길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사주 팔자 보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예술 이론을 하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해 놓은 거 쫓아다니는 게 일이라서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기본적으로 예술 이론을 하는 사람은 무슨 형이상학을 하지 않는 이상 비전공자의 예술 평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게 실험 데이터니까. 게다가 매니아들은 예술가보다 예술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고, 관객들은 자신의 감정이 예술혼이라고 믿는다. 장한나가 고클래식 회원보다 지휘자들의 스타일과 기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서편제를 만든 임권택이나 현의 노래를 쓴 김훈이 국악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더 중요한 건 일반인이 느끼는 예술혼이 예술가들의 창작욕과 뭐 꼭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프로보다 더 뛰어난 감각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고. 사실 예술 행위라는 게 인생과 너무나 밀접하고, 아무거나 하면 다 현대 예술 아닌가. 현대 미학은 인간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고 보고 또 그 수준 차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비전공자나 아마추어를 무시하는 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고. 또 그렇다고 세속의 모든 예술평을 받아들이기에는 각 개별 학문이 그렇듯 쉽지 않은 일. 어떻습니까, 아주 어려울 거 같지 않습니까? |
| 개미집 |
http://labaq.com/archives/51151677.html 인간이 자랑하는 거석 문화나 건축 조형물은 의외로 동물에게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그 자체가 동물적인 행동이거나. |
| ‘아는 만큼 보인다.’ |
| 제일 싫어하는 예술 쟝르 |
제일 좋아하는 예술 작품이 뭐냐, 제일 좋아하는 예술 쟝르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참 생각하겠지만 제일 싫어하는 쟝르가 뭐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있다. 한국 건축. 가장 진보가 없고, 가장 돈과 권력에 많이 휘둘리고,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눈꼽만큼 찾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언제나 봐야한다는 게 괴롭다. |
| 오늘부터 인형극 연습해도 될까요? |
| 외국어 |
대충 아는 외국어로... 영화를 보면 뭔 소린지 모른다. 스토리를 아예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음. 만화를 보면 내용은 알겠는데, 재미있지가 않다. 아~ 그래 웃긴 얘기구나 하고 끝. 음악을 들으면... 멜로디에 집중해서 음악이 더 좋게 들린다! |
| tmp |
http://postaletrice.blogspot.com/2008/11/un-actor-chino.html |
| 오디오 기술의 놀라운 발전 |
불행히도 기록과 보존에 소홀한 우리의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 '산울림 1977-1996'의 작업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다. 작업에 대한 음반 업계의 인식은 물론이며, 마스터 테이프의 온전한 보관과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그 모든 문제들을 나열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우리 현실에 대한 보고가 될 것이다.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란 것은 당시 녹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후 바로 편집한 테이프로서 이것으로 들으면 정말 눈앞에서 바로 스튜디오 창을 넘어 실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섬뜩하게 들 정도로 놀랄만한 음질을 내 준다. 다행히 30년이 지난 현재도 그 음질의 변화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산울림의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 들은 김창완님의 자택에서 잘 보존 되어 왔다. 70년대 우리 가요와 포크가 전성기 이었을 때 그 주옥같은 노래의 마스터 테이프가 상당 부분 없어져 버려 CD를 재발매 할 때 음원을 LP에서 복각하여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10년 후 음질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
| 서양 악기 |
서양악기들이 에로틱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 말처럼 인간의 장기(臟器)를 본따서, 혹은 서양 음악이 가지고 있는 권력적 함의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냥 그 자체가 섹시하게 빠졌기 때문인 거 같다. 비슷한 것으로는 무기(武器)가 있다. |
| 정대균 — 울게 하소서 |
아마 서양은 물론이고 동양 역시 중세에는 이런 노래 듣는 걸 낙으로 삼았을 거다. |
| KanYe West — Good Morning |
뮤직비디오 마음에 든다. 한국에 iTunes Store 있으면 하나 샀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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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학과 풍자 |
그러니 그것마저 빼앗으려 들지 마라, 그들의 권리이니. |
| 臨敵先進爲將義務 |
안중근이 마지막으로 쓴 글씨라고 한다. 이와 동일한 글귀가 적혀있는 족자가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이 역시 여순감옥에서 쓴 것인데, 중국에서 한 무역인이 구입해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여순감옥에서 쓴 글씨가 70여점 남아 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이 글씨를 진상하고 싶다. p.s 안중근의 사상도 누가 좀 연구해서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
| 「ヒロシマというとき」(1976) |
〈ヒロシマ〉というとき 물론 조선은 안중에도 없다. |
| 미국의 2차대전 포스터 |
미국의 2차대전 때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 군대문화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들어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부시 정권이 미국 국민에게 왜 지지받는지도 알것 같은 느낌. |
| 「허리까지 오는 늪지대에서」(1967) |
Pete Seeger, 「허리까지 오는 늪지대에서」(Waist Deep In The Big Muddy) (1967) (via 김영진) 오래 전 1942년이었지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 중이던 1967년에 CBS의 코메디 프로(;)인 the Smothers Brothers Comedy Hour에서 부르려고 하였으나 방송국 측이 반대하였다가, 다음해인 1968년 다시 방영되었다. 작곡은 1963년에 했다고 한다. |
| Mercedes-Benz.tv |
우와 이거 장난 아닌데 웹브라우저만으로도 TV 보는 느낌. 그 유명한 Mercedes-Benz Mixed Tape도 MP3 다운로드 가능하고. * 그간의 MP3 방출은 이것을 위한 포석이었단 말인가? * 이런 컨텐츠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자주 업데이트 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 비싼 차 파는 회사니까 가능할지도? * 이거 잘되면 이제 자동차에서 볼 수 있는 TV로 발전하는거다;;; * mixed tape 19 마음에 드는데요? |
| 백남준의 클린턴 대통령과의 에피소드 |
일부러 그랬다에 백 백남준은 조카 이름도 참 코스모폴리탄 프로그레시브 하구나. 잠깐, 이름은 저런데 한국말로 인터뷰 했단 말인가? |
| 뉴욕 필하모니 평양 공연 |
북한이 공산권의 예능 교육 덕분에 서양 악기와 음악이 많이 보급되어 있을텐데도 말이다... |
| 건축이 서예와 비슷한 점은? |
건축이 서예와 비슷한 점은? 두 장르 모두 ‘젊은 천재’가 드물다는 것이다. 연륜과 삶에 대한 통찰이 쌓인 뒤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건축사의 거장들 가운데에는 환갑 이후에 대표작을 남긴 경우가 수두룩하다. 오토 바그너는 60대에 빈 우체국 저축은행을 남겼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60대에 낙수장을, 70대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다. 난 다르게 생각한다. 서예의 경우 작품의 평가가 명망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대가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블라인드 테스트로 평가하면 젊은 천재들 많이 나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예는 몸에 익혀야 하는 재주라서 오랜 세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역시 한편으로는 특정 스타일, 특정 규범, 명망있는 작가의 모방인 셈이다. 또 그만큼 창의력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 밖에 없다. 스타일에 대한 강조가 없다면 젊은 천재들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문외의 사람—심지어 같은 서예가라도—이 스타일에 대해 모르면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섬세한 재주라서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래도,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음악이나 무용보다 수십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더래도 30대 후반이면 젊은 천재가 등장하기 충분한 나이이다. 한자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가가 기준이 될 수도 있는데, 조선시대 10대 후반의 수준이면 충분할 것이다. 결국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 하고, 또 그러한 평가 문화의 부재, 있다손 치더래도 서예의 스타일 내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건축의 경우는 젊은 건축가가 대형 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무명의 젊은 작가가 내놓은 작품을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 이 역시 예술적인 수준 뿐 아니라 기능적인 디자인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인데, 잘은 모르겠지만 건축 쪽도 20대 중반 정도부터 설계, 시공 일을 두루하며 10~15년을 보내면 기능적으로 못할게 없을 듯. 물론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일인 만큼 정치적인 이유도 많을 것이다. * 인용문은 건축가 유걸에 관한 기사 앞부분인데, 아마도 이번에 창간한 건축 전문잡지 「와이드」에 유걸이 첫번째 특집으로 실렸기 때문에 나온 기사인거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