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직업으로서의 공부 =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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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 |
내가 21세기초에 만난 철학자(?)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막스 베버였다. 막스 베버가 자기 사회 쪽으로 유리한 이론을 전개하는 건 맞는데, 그 조사과정과 논리전개가 정말 미친듯이 치밀하다. 결론도 아주 미세하게만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내린다. 김용옥이 예술이나 과학에 식견이 부족하고, 그저 그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에 끝나는 것에 비해, 베버는 그 분야 세부 전공자도 혀를 찰 정도로 지식을 추구한다. 정보를 얻기 위해 그 분야 전공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 만약 베버 같은 사람이 주변국에 있다면 암살을 해야 그 나라가 위험하지 않을 거다. |
| 김용옥 |
| 주경야독 |
주경야독을 3년 이상 한 사람만 주경야독이란 말을 쓸 수 있도록 입법해야 함. |
| 어느 교수 |
낮에 우연히 어느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을 보았다. 그 논문집은 그 교수에 대한 아름다운 찬사일텐데, 내가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가 자기 이름이 걸린 수업에 두 학기 동안 단 한번 출석했었다는 거, 그 1시간도 강의가 아니라 기말에 레포트 이쁘게 장식해서 많이 내면 점수 잘 주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거. 교수실로 항의하러 찾아갔더니 조교가 접근을 막았던 거. 공립학교였으니 아마 그는 그 강의들에 대한 월급을 정부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정부에 고발했을텐데. 그땐 왜 그렇게 법을 잘 모르고 당하기만 하고 살았을까. |
| 철학이란 무엇인가 (부제: 이진경과 고병권) |
1. 세상의 보편성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두뇌를 명철하게 다듬어서 사회 생활에 보탬이 되게 하자 따위는 철학의 연구 분야도 아니고 철학의 목적도 아니다. 이는 자기'개발'과 처세술의 영역이다. 2. 자연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한다. 주장을 검증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론보다 전개 과정이 중요하다. 철학사를 배운다는 것은, 이 논리 전개를 복기(復棋)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피력하거나, 그 결론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을 개발하는 것은 철학이라기 보다 예술적 창작 또는 비평 행위에 가깝다. 최소한 유비(類比)라도 해야 한다. 3. 다른 철학자의 방법을 배워 자신의 논리 전개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관찰하거나 느낀 바를 스스로 재현하지 않고 기존의 주장에 밀어넣는 행위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다. 이진경과 고병권의 저작이 바로 내가 반례로 든 요소들의 집합체이다. 이들이 철학을 정규적으로 전공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사유와 목적성이 이러한 결과로 이끈 거 같다. 철학이라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수단인 셈이다.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가장 반긴 것은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p.s 과학(물리학, 수학)은 철학일까? 보편적인 공간을 다루고, 과학자는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글을 쓴다. 내 생각엔 아닌 거 같다. 과학은 행간의 함의를 해석하지 않는다. 연속된 작업일 뿐이다. 심리학(정신분석학)은 철학일까? 인간의 정신이라는 보편적인 세계를 탐구하고, 자연언어로 대화하고 정리하며, 분석자는 자신의 논리로 분석을 진행한다. 내 생각엔 애매한 경계에 있는 거 같다. |
| 왜 침략자는 |
| 『인문학 스터디』 |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미국의 대학 초년생을 위한 교양 학습 지침서. 각 주제별로 학문 분야에 대한 적당한 개괄과 처음 접할 때 도움이 될 참고 도서를 추천하고 있다. 영문학이라면 고전은 호메로스, 근대는 세익스피어 같은 식. 각 장의 끝에는 편역자들이 국내 서적을 정리해 두었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 소개한 것들이 좋은 책들이긴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좀 어려울 거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한국에는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개론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어로만 무얼 공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든다. (친절한 개론서가 없는 것은 한국이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편역자와 저자의 서문이 인상 깊다. 편역자 서문에서는 근대국가 성립과 공교육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 저자 서문에는 미국의 대학 교육제도와 공부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20년 전쯤에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된 것들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나이다. 현재 개편이 진행중인 한국의 대학교육 제도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학의 학부에서 자유전공 제도가 있는 것은 교양을 위해서이지만, 한국 대학에서의 자유전공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편역자 서문에 한국에 '자유 교양 대학'(Liberal Arts College, 'Liberal Arts'를 '자유 교양'으로 번역하는 건 좀 생각해 볼 일. 오히려 '인문학' 같은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와 같은 효과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얼핏 나오는데, 나도 그런 곳이 한국에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 (편역자들에 박사가 많으니 아마 이사람들이 나중에 만들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생각만큼 넓은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영문학(1장), 서양철학, 정치사상(2장), 역사학, 지성사, 과학사(3장), 기독교(4장). 핵심적인 분야를 간추린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분야들을 제시하는 것 자체도 큰 정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언젠가 편역자들이 모여서 이런 책을 만들지도.)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에 대해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반면,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기독교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글이기 때문인 거 같다.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에 거리를 두는 것도 그것이 학문의 지엽적인 면이기 때문인 듯. 반면 세익스피어 찬양은 도가 지나치다.) 또 서문에서 논하기도 하지만, '고전 읽기' 중심으로 책이 구성된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작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시대 순으로 배열한 것을 번역 과정에서 관계있는 내용끼리 묶였다. 몇몇부분은 다른 책에서 옮겨온 거 같다.
[이 책을 읽으려는 분께] 확실히 핵심적인 교양의 길잡이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대학 초년생 뿐만 아니라 똑똑한 중고등학생이나 일반인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시된 목록의 책을 혼자서 독습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p.s 이 책의 영문판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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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
| 독일어 |
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워서 독일어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미학을 공부하려고 생각하면서부터 독일어를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건 아도르노 책을 읽을 때. 번역문을 보다가 독일어 원문을 보니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아도르노가 글을 일부러 그렇게 썼던 거 같기도 하고. 또 일본이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독일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세상에 독일어를 배운다는 게 그리 효용은 없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문헌들도 고전들이고. 나이까지 생각하면 참. p.s 영어 번역판이 정확하니까 영어판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영어는 일상적인 언어와 평이한 서술로 전문적인 내용을 적는 경향이 있어서, 미국 문화에 푹 젖어있지 않고는 100%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많다. 그래서 깊이 있게 읽지 못 했던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영어로 번역된 책을 '원서'라고 부르는 게 싫기도 하다. |
| 자기 인생이 궁금하다는 것은 |
|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2000) |
2007년 1월 31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 2009년 1월 9일 금요일 도서관에서 빌림. 머리말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스에 넣어둔 책 중에 있는 지도. 「지식인 지도」(18~9쪽)라는 분류가 흥미롭다, 어쩐지 일본식이라는 느낌도 들고:
등장하는 인물이 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분류가 좀 도식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주로 모은 거 같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분류가 되는지도 좀 아리송하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인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룹은 비판적 자유주의, 물론 그 그룹에 속한 사람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보니 2007년에 사민주의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블루오션을 선점하려는 노력이었을 지도?) 머리말의 부제가 ‘‘압축근대’를 살고 있는 한국’이다. ‘압축근대’라는 말에 대해선 아직 설명이나 주석이 나오지 않았다. 난 이런 개념을 아직 이해하지(받아들이지) 못 한다. (근대화 과정에 정해진 순서나 단계, 기간이 있는 걸까? 강압적인 산업 구조 변경 과정일 뿐 아닌가?) 일본 학계와의 관련성을 설명해주는 것이 재미있다. 예를 들어 박현채(1934~)의 민족경제론은 오쓰카사학(大塚史学, 大塚久雄, 1907~1996)의 영향, 안병직(1936~)은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1931~)의 이론을 수용. (물론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이긴 하지만) 역사 서술이 학술적인 톤으로 이어져서 지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간 한국에서는 이런 정리를 찾기 힘들었다. 또 기존의 정리는 대부분 좀 편향된 면이 있었는데 비교적 넓은 범위를 객관적으로 아우르는 듯 하다. 이 책의 겉표지에는 옮긴이의 이름이 없다. 마치 제일교포인 그가 한국어로 직접 쓴 듯한 인상을 준다. 일종의 사기.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그 논란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던 사람도 적지 않을테고. 그러나 재일동포(지은이의 표현, 재일교포를 어떻게 불러야 할 지 고민을 자주 한다. 재일교포에 대해 알아갈 수록 더 고민이 된다. 예전에는 그냥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교포는 각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생각해야 하는 거 같다. 예를들어 중공의 조선족 같은 경우는 한국어가 유창하지만 한국인과 이해를 같이한다는 생각은 없이 민족 문화에 대한 애착만 있는 거 같고, 재일교포, 특히 총련계는 한국어(조선어)가 유창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민족적인 자각이 매우 강하다. 사회적인 강요에 의해서일 수도 있겠지만)인 지은이가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엘리트' 학자들의 출판물 위주로 조사를 한 듯 하다. 이것은 학술적인 글쓰기에도 부합하고, 그 사회에 속해있지 않은 연구자에게도 적당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수긍이 간다. 이 책은 철저히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이러한 개념은 일본의 저러한 개념과 말은 같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일본의 이러한 사건이나 개념을 연상하면 한국의 저러한 사건이나 개념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식. 만약 내가 일본의 상황을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분명히 일본에는 정리를 해놓은 책이 있을 것이므로 관련 서적을 몇권 읽는다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해주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나 중공의 사상흐름 역시 한국인의 책을 통해서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건들을 외부인의 눈으로 정리한 것을 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다른 시선이라는 것이 충분히 가치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거리감과 객관성, 우리와는 다른 시간의 호흡이 익숙한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다. 위에서 언급한 박현채, 안병직 등 한국 사상계의 많은 주요 인물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났고,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하며 자랐을 것이다. 또 해방이후에도 일본의 영향을 계속 받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어를 공부해 일본어 번역판으로 공부하고, 일본어 논문을 보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의 시선은 또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짜피 다 아는 내용 정리한 거 보는 거 같아서 읽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행간에 지은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놨으리라. 힘들지만 집중해서 읽어야 할 듯. 지은이의 배경이 궁금해서 책 말미에 실린 지은이의 자기 소개인 「연보/어찌 찢겨진 산하를 외면할 수 있으리」(364~81쪽)을 먼저 읽었다.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사실 나열이 계속되나 보니 아무래도 잘 안 읽혀서 도서관에 반납. 익숙한 사건들이라 안 읽히는 면도 있다. 한국 사상계의 흐름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무슨 '학생운동사'같은 거 보느니 이 책을 보는 것이 더 넓고 객관적인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
| 아 이 글 왜 이제서야 봤지? |
우선 님은 서른입니다. 그 나이에 어느 대학원에 들어가도 선생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만학도들 더러 있습니다만 그들의 지력은 거의 지리멸렬합니다. 동료로서 교류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스터디 끝나고 술마시며 신세한탄하자고 대학원가는 것 아니니 교류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금 대학의 교수들 너무 너무 바빠서 지도학생을 건사할 수 없습니다. … 서른살 때 봤어야 하는데... 근데 그때 봤으면 안 믿었을 듯? ... 공부는 남은 인생 여가 생활로 해야 할 듯. 아 씨 평균수명은 왜 이렇게 길어진 거야? p.s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미래는 어찌 되려는지 자못 걱정스러움;;; |
| 『주역』(周易) |
| 무제 |
그 순간 섬광처럼 커피의 쓴맛까지도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도록 쓰디쓰게, 후진국 지식인은 불행하게 살게끔 운명지어져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 김현 집안 사정 때문에 하게 된 귀국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라는 게 처량하면서도 현실감있다. |
| 지식인의 임무 |
어려울 때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 p.s 6.25나 선진국 같은 말을 들먹이라는 뜻은 아님. |
| 고전 |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전통과 관습에 의탁하는데, 전통은 고전에 의해 정당화된다. 근데 바쁜 분들이 고전을 공부해봤자 얼마나 했겠는가? 지식인들은 권력을 비판, 견제하는 수단으로 고전을 사용한다. 두번째로 세상에 도의가 사라졌을 때, 예를 들자면 생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폭군이 나타났다거나 할 때, 풍습의 복원을 위해서 고전의 지식을 사용한다. 허허벌판에 씨를 심는다. (원래 있던 식물이라고 우기면서) |
| You don't need a Ph.D. to Change the World |
http://www.phdcomics.com/comics.php?f=1094 오바마는 박사라던데? 그것도 하바드? 부인도. |
| 공부 |
졸업 전후와 그 이후의 만남에서 나눴던 진로에 관한 대화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연극, 출판사, 오따꾸, 있는 돈 굴리기. 내가 공부에 적당하지 않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었을까? 학교 다닐 때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몇번 했었는데. 하긴 내가 그리 충실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직종 이야기를 교수에게 듣는 것이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그 교수를 변호해 준 것이 후회된다. 오히려 그 교수를 쫓아내려고 갖은 험담을 하던 녀석들, 인신공격을 일삼던 놈들만 학교에 남아 있다. p.s 만약 내가 사람을 여럿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수첩에 각각과 한 주요한 대화를 메모해 두어야 겠다. 대화를 이어서 할 수 있게. 그리고 내게 돌아오는 이득도 없이 권력자를 비호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자리를 찾아 간다. |
| 펌 |
왜 이럴까? 부교수·정교수 승진 등에 필요한 연구 업적 평가의 기준이 해외 SCI급 저널에 실린 논문 횟수이기 때문이다. 국내 학술지보다 미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3~5배 이상 높은 점수를 받는다. (신호철, 시사IN, 58호, 2008년 10월 21일) 한국 학계(라고 쓰고 교육부라고 읽는다)가 기존 제도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학계의 지향은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효율성이나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장점을 살릴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현실을 미국 시장에 팔면 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그리 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한국 학계는 미국 시장의 철저한 소비자들일 뿐이다. 아니참 충실한 소비자라면 그 내용이 사회에도 반영이 되고 있을텐데, 그도 아닌 거 같고. 그냥 철저히 추종할 뿐? 빠? |
| 유학생활 |
80년대 중반에 11시에 만납시다라는 TV 인터뷰(?) 프로에서 꽤 유명한 교수가 출연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방송 내용의 절반은 그(녀)의 유학시절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는데, 대충 이런 것이다: 유학 처음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저기서 웃통을 벗은 백인 남자가 달려와서 타더라고요. 혹시 나쁜 일이나 당하지 않을까 무서웠어요. 그런데 가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친절해서 오히려 오해를 한 제가 부끄러웠어요~ 미국의 아름다움을 뼈속 깊이 체험하고 온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은 얼마나 지저분하고 후진적인 곳일까. 그 아름다운 미국에 대항하는 유학도 못 가본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일까? 미국의 선진기업과 선진금융에 의문을 던지는 놈들은 얼마나 유행에 뒤쳐진 놈들인가? |
| 글 |
글에 작가의 인성이나 사회의 단면이 드러나는 것은 연극 배우의 연기 속에 그 배우 본래의 성격이 잠깐 묻어나는 정도의 애매모호함. 그래서 글을 객관적인 객체로 다루고, 또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근데 그런거 하기에는 나이 먹은 거 같다. |
| 서양 지식인들 |
요즘 서양 지식인들이 했던 반기독교 선언들이 가끔 생각난다. 예전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던 것들인데, 서양인에게 기독교(유대교 포함)를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전통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니 보통의 용기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리처드 도킨스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의 주장에 대한 가부를 떠나서 그 역시 서양 지식인의 전통과 용기를 따른 것이리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정도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게 다행일지도. 그러고보면 한국은 참 붕 떠있다. |
| 글 |
이걸 발표한다는 게 끔직하다. 난 글도 잘 못 쓰는구나. 대체 잘 하는게 뭘까. 이 나이 먹도록 할 줄 아는게 없다. 머리가 어지럽다. 만약 공부를 하고 싶다면 오늘부터 도서관을 출퇴근 할 일이다. |
| 『인텔리겐차』 |
| 강의 능력이 탁월한 스타 교수 |
이에 대해 사립대학들은 "강의 능력이 탁월한 '스타 교수'를 연구 부담을 지우지 않고 섭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대학에서 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
| 내가 싫어하는 대학 목록에 하버드 추가. |
한국에서 활동 중인 졸업생: 이동관, 홍정욱, 김용옥 등. p.s 영화 Conspiracy Theory(1997)에 하버드대학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언뜻 나왔던 게 생각난다. |
| 공부와 생활 |
| 가볍게 |
| 논문 PDF 관리 |
공부에 생각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아니, 그보다 나혼자 사용하는 컴퓨터가 이제서야 생겼다;;; 컴퓨터는 공부의 필수품이로구나... 지금부터라도 미친듯이 자료정리를 해야 겠다. * 혹시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제품은 EndNote, 그러나 가격이 비싸고 한글 지원이 미비. 정통의 강자는 BibTeX라는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 그러나 좀 어색하게 느낄지도.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든 BibDesk도 있다. 맥에 PDF 관리에 특화된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음: Papers, Yep 등. * MacScience의 다음 항목도 참조할 것: Reference & document management |
| 대학원생 |
Jorge Cham, "Business cards in grad school: Why you need them" (2007/05/14) [질문] 취업을 못했을 때 시간과 돈을 투자해 아까 본 이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저도 '돈버느라 공부를 못한' 사람 중에 하나가 되는걸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