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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태경, 박경민 졸업연주회
시간: 2006/11/23 목요일 19:10
장소: 한국예술종합학교 KNUA 예술극장

졸업논문 준비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올해는 학교의 졸업연주회에 가지 않았는데, 책상에 앉아있다가 공연이 있는데도 공연을 보러가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공연을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이겠느냐?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뛰어가서 보고왔다. (실은 낮에 내(;) 공연을 도와준다고 하고 도와주러 오지 않은 후배에 대해 너는 공연에 대한 태도가 글러먹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좀 찔렸나보다) 특히나 올해 졸업연주는 나랑 같은 학번의 친구들이었는데 많이 못본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연주자들의 기량은 내가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그들과 보낸 지난 4년간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후회가 든다. 설령 곡을 틀리게 연주하더래도 내가 악보를 외우고 있는게 아닌 이상 실수를 알 수 없고, 악보대로 연주가 안되는 것이 사실 또 무슨 문제상황도 아니다. 다만 그 기량에 비해 흡입력이 없었다.

이유를 이래저래 생각해봤는데 우선은 극장의 문제가 있다. 오랜만에 KNUA예술극장에서 국악공연을 봐서 그간 잊고 있었는데, 이 극장은 뻥 뚤린 것이 연극에 적합하지 국악이나 음악 공연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음향의 반사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음악이 썰렁하게 들린다. 여기까지는 이 공간에서 국악공연을 처음 봤을때도 들었던 생각이고, 몇년이 지난 지금의 생각으로는, 예술가는 이 공간을 어떻게든 자신의 의도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마이크(앰프)를 이용하는 것. 이번 연주에서는 비교적 음량이 작은 대금과 소금에만 마이크를 대고, 피리와 생황에는 마이크를 설치만 해놓고 켜지 않았는데, 아마도 시각적인 면을 고려한 것 아니면 진행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다. 마이크를 언제나 대금의 취구에 놓아 숨소리가 어색하게 섞여 들어가는걸 나는 싫어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패스. 한 악기는 마이크를 사용하고, 또 하나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인 음향의 정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연주자의 위치. 객석과 가까운 곳에서 연주한다던지 하는 방법. 그러나 이상하게도 객석과 가까운 곳으로 오면 천박하게 보일 우려가 있다. 또 졸업연주회라는 공간이 그런 파격을 시행하기에 여러가지 면에서 적당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문뜩 저기 무대에서 관객석과 분리되어서 공연이 되기 때문에 고급예술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를 다양하게 꾸미기 위한 몇가지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무대에 매달려 있던 전구, 두개의 전구가 두명의 연주자를 상징하였다. 독주가 있을때는 하나의 전등을 껐다. 이거 이외에는 이렇다할 장치가 없어서 어쩐지 썰렁했지만,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하지만, 연주자들이 등퇴장을 하며 전구를 만진다거나 하는 것이 오히려 진행이 방해가 되었다. 또, 계속 매달려 있는 전구가 연주가 진행될수록 눈에 거슬렸는데, 각 스테이지마다 적당한 의미부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처음의 연주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촛불의 이미지. 독주 부분은 고독함. 창작곡을 연주할때는 재즈풍이니까 술집의 등 등으로 약간씩 변화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든다.

또 조명이 굉장히 어두웠다. 좌측 사이드 하나, 정면 하나 정도인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매우 어두운 느낌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곡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 좌측의 조명때문에 연주자의 얼굴이 아무래도 좀 기괴하게 보였다. 그러고보면 별 변화없이 밝은 모습인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오히려 음악에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자의 모습을 눈으로 봐야 음악에 집중하는 속성이 관객에게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밝은 조명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개인적으로 어설프게 어둡게 조명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건 사실 연주자의 역량 뿐이다. 레코드로라도 예전의 명인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상하게 귀에 확 띄는 무엇인가가 있을뿐더러, 심한 경우엔 중독 증상까지 생기는데, 오늘날의 우리들이 쫓아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야 할 거 같다.

우선 전반적인 음색을 조정할 수 있는 음악 혹은 음향 감독이 필요한거 같다. 지휘자라기 보다, 청중의 자리에서 들었을때 소리의 특성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 연주자의 위치나 연주의 세기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

다음으로 음악이 시작할 때, 처음 등장할 때, 관객의 이목을 잡아야 한다. 이번 연주회에서 특히 대금산조 첫머리에 음향사고가 있었는데, 관객의 집중에 치명적이었던거 같다. 현대의 관객들은 꾸준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거 같지 않다. 시작이 반이라는 느낌은 혹시 음악용어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이 큰소리를 내라는 것은 아니다. 작은 소리로도 작은 몸동작으로 가능하다. 중요한건 음악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연주자가 인지하고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거 아닐까?

물론 중간중간에 적당한 변화도 필요하다. 이번 연주회의 전통 곡들은 짧지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서 음악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는데, 그 변화의 각 부분의 낙차가 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도적으로 더 낙차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산조 등에서 흔히 쓰이는 새소리 같은 것도 어쩌면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객은 일상에서 들었던 자연의 소리에 민감한 법이니까, 예를 들어 관악기로 자동차 경적 소리를 낸다면 관객은 관심을 분명히 끌 수 있을 것이다. 산조의 새소리 등도 관객을 끌겠다는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공연이 전반적으로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던거 같다. 만약 전통적인 연주라면 또 다른 생각이 들었을 듯)

1. 청성곡 + 상령산 (구성: 김태경, 박경민) / 피리: 김태경, 대금: 박경민

나를 국악으로 이끌어주는 곡이기도 하였던 상령산과 청성곡. 나도 이 두 곡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을 자주 했지만, 직접 이렇게 섞어서 두명의 연주자가 하나의 곡으로 묵어내는 것이 느낌이 괜찮았다. 소극적인 창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전통적인 연주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적극적인 반항일수도 있겠다. (시김새(articulation) 하나 틀려도 뭐라고 이야기 듣는 분위기를 상상해보라) 아무튼 구성이 나쁘지 않았다. 곡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좀 가볍게 느껴졌을수도 있었겠으나,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핵심적인 구절들을 잘 섞어서 구성한거 같다. 정악도 어떻게든 새롭게 창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원래 기획안에서는 '청성곡 meets 생황/상령산 meets bell'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원래의 기획도 매우 궁금하다. 좀 바뀌었더래도 제목을 아예 '청성곡 meets 상령산'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 서용석류 피리산조 / 피리: 김태경, 반주: 우민영(장구)

3. 한범수류 대금산조 / 대금: 박경민, 반주: 오단해(장구)

4. 태평소 시나위 (구성: 김태경) / 태평소: 김태경, 반주: 신동은(장구), 우민영(징)

개인적으로 태평소에 관심이 많다. 이래저래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악기라고 생각한다. 가락이 바뀔때 관객을 더 유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사말 / 김태경)

5. 초소의 봄 / 개량대금: 박경민, 건반: 정송희(피아노), 타악: 우민영

팜플렛에 작곡가의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았다. 찾아보니 작곡가 미상의 북한 곡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6. VELOCE (작곡: Claude Bolling, 편곡: 정송희) / 개량대금, 소금: 박경민, 생황: 김태경, 건반: 정송희(피아노), 타악: 신동은, 우민영

이걸 왜 편곡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원곡을 국악기로 동일하게 연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악기로 어려운 서양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원곡과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편곡을 한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국악공연은 대체적으로 전환이나 무대진행이 어색한 면이 많은데, 나는 그간 이것을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공연을 다시 생각해보니 국악계의 특성내지는 문화인거 같다. 아마도 연주자 개개인의 역량에 많이 기대다 보니, 무대적인 요소들에 신경을 안쓰는거 같다. 연극의 경우는 연극 자체가 워낙에 협업적이고 이런저런 약속에 기대다 보니, 무대전환등이 정밀해지는거 같다. 서양음악의 경우는 워낙에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고 전형화되어 있어서 이런 문제가 없는거 같다. 즉, 국악은 무대전환이 어색한 것으로 전형화된 상태인거 같다.

스탭들의 준비도 좀 의심스러웠는데,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는 스탭은 대체 뭐란 말인가? 가서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얼굴도 모르고 해서 관뒀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리는 대기실 문여는 소리. 욕나왔다. 또 무대쪽에서 들리는 추임새. 국악의 입장에서 이게 참으로 자연스러운건데, 추임새는 관객석이나 무대의 다른 연주자에게서 나와야 하는거 아닐까? 가뜩이나 좀 거리가 먼 듯한 공연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무대 좌우에서 추임새가 나오니까, 더 멀어지는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연주자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조명: 김상호
음향: 김상욱
무대디자인: 배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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