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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내각제는 나쁜 것인가?

kabbala 2018.09.28 04:09

0.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내각제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에 대해선 무엇이든 한번 의심해봐야 하는 시대 아닌가? 내각제가 과연 나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1. 의외로 우리 전통에서는 내각제가 이상적인 제도로 간주되었다. 조선이 건국될 때 정도전이 제시한 재상 중심의 체계는 내각제와 통하는 면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초안도 내각제였고, 제2공화국 헌법도 내각제였다. 임시정부가 대통령제였던 거 같은 인상을 주지만 1925년 개정한 헌법에서 내각제를 채택한다. 오히려 이러한 내각제가 파괴될 때 정치적인 위기가 더 많았던 것이 우리 역사다.

2. 많은 사람들이 내각제의 문제점으로 계층의 고착화를 들며, 그 예로 일본 자민당을 든다. 그런데 대통령제를 하면 우리의 계층 고착화가 지연되거나 역행될 수 있는가? 또 일본의 정당정치는 그렇게 고정되어 있기만 한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은 대통령제에서 파생한 것 아닌가?

3. 내각제에 대한 문제점이 유포된 시기를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승만은 내각제를 강하게 반대하였고,(논거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승만이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고 내각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감정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박정희 시대에는 혼란을 이유로 내각제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1987년 전후로는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내각제 반대가 유포되었다.

4. 이것이 현재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정권에서 내각제가 나쁘다고 홍보했고, 80년대부터는 민주화 세력과 운동권 세력이 내각제가 나쁘다고 홍보하였다.(우리 사회 정치 세력들이 일반적으로 전혀 반대되는 정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이렇게 의외로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5.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의 내각제 반대는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 직전에 정권에서 추진한 내각제 개헌에 대한 즉자적인 반발일 것이다. 당시 내각제는 유신 체제의 대통령 간선제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전 독재 정권과 동일한 정치 체제를 요구했다는 점이 아주 재미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가 집권당의 10년 추가 집권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도 어떤 점에선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6. 대통령 권력은 탄핵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최근에 2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고 1번은 실제로 탄핵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탄핵 발의를 해야 하는 의원들이 대통령과 같은 편이라면 탄핵은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정치체제는 대통령을 견제하기가 상당히 곤란하고 대통령이 권한이 상당히 광범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려고 하고 중임을 막는 것이 당연한 반응일 수 밖에 없다.

7. 언젠가부터 선거에서 대통령의 '중간평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중간평가를 해봤자 바뀌는건 없다. 중간평가를 의미있게 하기 위해 임기를 줄이고 중임이 가능하게 바꾸자는 식의 주장도 나오는데, 그렇게 따지면 내각제가 훨씬 더 편하지 않은가. 4년 중임제가 물론 지금보다는 더 유연한 정치체제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체제를 더 좋게 만드는 걸 약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8. 문재인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문 대통령은 두 번의 대선후보 시절 현재의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선 내각제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내각제를 현재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듯 하다.

9. 우리 사회에서는 내각제를 실행하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의 정당들이 내각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적응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인 만큼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0. 주의해야 할 점은 정치체제에 대한 용어들은 그 정의가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나도 여기서 내각제, 대통령제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정의내리기도 힘들 뿐더러 실제 적용되는 경우도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보론] 만약 대통령 중임제가 시행된다면 당시 대통령은 물론 전임 대통령들조차 재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불문율인 것처럼, 만약 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당시 국회의원과 정당 간부들, 과거 내각제 반대 투쟁을 하던 정당에 소속되어 있던 의원, 국회를 파괴하려고 했던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들은 향후 국회의원 출마를 하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나 정당 간부를 하지 않을 것을 법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범위를 정하기 어려우면 명단으로 만들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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