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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머 중에 유비패왕설이란 것이 있다. 유비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관우, 장비와 의병들을 얻었으며 공손찬의 휘하에 들어갔을 것이냐는 농담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아무리 혼란기였다고 하지만 평소 신망이 없었다면 고향에서 의병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며, 본인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면 어떻게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었겠는가. 말을 잘 탔다는 전설을 믿는다면 병법 또한 연마했을 것이므로 역시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라고만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고, 체력 또한 약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만약 유비라는 이름을 지우고 이러한 이력을 본다면 항우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보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신과 비슷하지 않은가.

연의에 유비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쓰여진 것은 아마 몇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로는 실제로 유비의 어린시절에 대한 자료가 남은 것이 없다. 촉지(蜀志) 선주전(先主傳)이 있지만 어렸을 적 가정 환경과 성장 배경을 짐작할만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연의 때문에 생긴 유비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선주전을 본다면 전형적인 소년 군벌 영웅의 성장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유비의 어린시절에 대해 특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어린시절에 대해 특기할만한 일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몰락하긴 했지만 한왕조의 후손이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고 친족들에게 자부심을 배우면서 자랐을 것이며, 아마 어려서부터 용기를 보여주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둘째로는 소설의 기교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주인공이 주위의 도움을 얻어 천신만고 끝에 성공을 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인기있는 소설의 작법이다. 그런데 이 기법은 과거로 갈수록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부모 없이 자란 오이디푸스가 문무가 뛰어나고 시골 고아원에서 자란 올리버 트위스트가 런던 토박이보다 정확한 표준어를 쓰듯이, 연의 역시 개연성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오이디푸스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핏줄을 더 중요한 요소로 보았을 것이다.

특히 핏줄 중에서 한고조와의 유사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낮은 관직을 하다가 관청에 죄를 지어 수배를 피해 달아났다거나 지역 상인의 지원을 받았다거나 싸움 잘하는 동생을 얻었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한고조와 충분히 겹쳐 보인다. 그러나 유비는 우리가 알고있는 한고조의 이야기와는 달리 매우 능동적으로 군을 통솔했으며 권력의 의지도 강했고 한고조보다는 남을 더 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비가 항씨였고 나라를 지키라고 비(備)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해도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항우도 양손에 무기를 들고 싸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들도 후대에 한고조와 일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꾸며냈거나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초한지에서 말하는 덕이라는 것은 한고조가 창업하게 만든 불가사의한 운명이지만, 연의에서 말하는 유비의 덕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베푼 것이다. 한고조의 덕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독선적이었음에도 인재를 모아 강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된 조조에게 덕이 있었다고 해도 되는것 아닌가. 그러나 역시 글자가 같기 때문에 한고조와의 유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요소로 사용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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