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복지부동(伏地不動) —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다는 뜻으로, 1993년 김영삼 정권에서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비판하는 말로 널리 알려졌으나, 원래 군대에서 동작을 지시하는 말로 사용하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식이위천(食以爲天) — 먹는 것이 최고다. 즉 잘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말이다. 1920년대 신문에서도 검색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던 말로 추측되며, 과거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의미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마 이런 뜻의 말이 잘 먹자라는 뜻으로 변형되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에 이렇게 의미를 변형하여 쓴 광고의 용례가 있다. 한문으로 이런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 식즉명야(食卽命也)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이 역시 근거가 불확실하고 해석이 어려운 한국식 사자성어로 보인다.
  • 예시예종(禮始禮終) —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낸다는 뜻으로, 시종일관 예의를 지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자로는 그렇게 해석하기 어렵다. 주로 무술 도장에서 사용하는 말인데, 무술을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낸다'는 말은 1970년대부터 유포되었으나 이 말을 예시예종이라는 사자성어로 만든 것은 1980년대 같다. 현재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이 말이 사용되는데, 태권도와 함께 수출된 거 같다. 언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以를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以禮始以禮終 역시 한자로 해석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 운칠기삼(運七技三) — 운이 7이면 기술은 3이란 뜻으로, 운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자로도 그렇게 해석 가능할 수 있으나 자연스럽진 않다. 요재지이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며, 주로 바둑, 장기, 마작 등에 사용한다. 어느 나라에서 먼저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용 빈도는 한국이 높다.
  • 유성필성(有誠必成) — 성실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 그러나 한자로는 그렇게 해석하기 어렵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말로, 199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
  •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 — 판소리에서 북잽이(鼓手)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소리꾼이라는 뜻으로 북잽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자로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다. 1960년대 신문에서도 이 말을 찾을 수 있다. 아마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던 말일 것이다.
  • 주경야독(晝耕夜讀) — 아마 고전에 근거가 있겠지만,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사자성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경야송(晝耕夜誦)이라는 말이 쓰이며, 이마저도 잘 쓰이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에서 익숙한 개념은 청경우독(晴耕雨讀)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생각해보면 저녁시간에 공부하기 보다는 휴일에 공부하는 것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 가을이라는 뜻으로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추고마비(秋高馬肥)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며, 이것도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일본어에 ‘天高く馬肥ゆる秋’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의 영향을 받은 거 같다.
  • 초년성공(初年成功) 또는 초년출세(初年出世) — 젊어서 출세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한자로는 이렇게 해석하기 어렵다. 여기에 중년상처(中年傷處), 말년무전(末年無錢) 또는 노년빈곤(老年貧困)을 더하기도 하는데, 이 말들 역시 한자로는 한국어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다. 이 말들이 한국어에서 널리 사용하는 단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언제 만들어졌는지 추적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1980년대 정도에 널리 퍼진 말이 아닐까 싶다.
  • 초부득삼(初不得三) 또는 초불득삼 — 첫번째 실패한 것을 세번째에 성공한다. 즉,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한자로는 그렇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김동인의 1919년 소설 '마음이 옅은 자여'에도 나오는 걸로 봐서는 아마 조선 후기에 이미 널리 퍼진 말인 거 같다. 1990년대까지는 '안되면 한번더', '모든 일은 삼세번'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3번이라는 횟수에 제한없이 많은 시도를 하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2000년대에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 사회에 유행하면서 의미가 변화한 것 같다. 일본어 웹에서도 이 말이 검색되는데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강연에서 한국 속담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계속 추가할 예정입니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