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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에 작은 읍성을 국가라고 부른 조상들을 무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고대국가들은 대부분 그런 작은 도시국가였다. 그리스·로마·페니키아가 그랬고,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주나라 봉지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그런 작은 읍성들이었다. 후대에 큰 성을 짓게 된 것은 그런 곳보다 큰 도시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삼한의 도시국가들 역시 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읍성은 국가가 될수있네 없네 하는 말은 자기 학문이 얕음을 드러내는 소리라고 하겠다. 또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조상에 대한 무시가 드러난다.


유교가 과연 그런 읍성은 무시하는 거대 국가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공자 생전에는 그런 작은 도시국가들이 많이 남아있을 때이니 그런 나라들을 무시한다거나 겸병해야 한다거나 나라는 무조건 커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없었을 것이다. 맹자나 순자도 이런 국가관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그런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국이라는 것이 조선처럼 큰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시국가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국가관은 유교에서 어느 시점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생각해본다면 한나라 때일수 밖에 없겠지만 어떤 사람이 이를 공식화 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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