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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를 설명하는 글들을 보면 저자인 사마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자료가 많았다거나, 사마천 스스로 유적들을 돌아보며 실증적인 역사 연구를 한것처럼 설명한 경우가 많다. 또한 그것이 사마천이 궁형을 선택한 이유로 지목된다.


그러나 사기를 읽다보면 그 내용이 대부분 저자거리에서 유통되던 ‘카더라’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책들은 진한교체기에 이미 다 사라진 판국인데 사마씨 집안이라고 뭐 딱히 자료가 더 있었을 리도 없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국의 역사기록이나 한 학파의 전적일 수는 있어도 삼황오제부터 육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내용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야사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아마도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취사선택해서 모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마천이 직접 취재한 것은 사기 집필과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이 대부분이며 지리적으로도 장안에서 가까운 사건들 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이렇게 직접 보고 들은 일들에 대한 평가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객관적인 느낌이 든다. 가까운 시대여서 많이 이야기되었을 진시황과 항우에 대한 이야기가 어쩌면 가장 환상적인 묘사일 수도 있다.


사기의 읽을거리로서의 매력과 시대를 뛰어넘는 입체적 구성 역시 그것이 저자거리의 이야깃거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자료 수집 역시 현재의 엄밀한 과학성을 추구했다기보다 각 지역에서 전해오는 전설들을 귀히 여겨 모았다고 가정하면 역시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사기』는 어떻게 정사(正史)로 인정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나라 이전의 역사는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전설의 시대였고, 사기 역시 전설을 모은 것이기 때문 아닐까? 반면 객관적인 역사서라는 평이 자자한 『춘추』는 어째서 역사책으로서 취급은 사기보다 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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