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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석가모니의 사상

kabbala 2017.05.12 02:33

석가모니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끔 상상해본다.

(1) 1차 자료라고 할 수 있는 팔리삼장에는 석가모니가 왜 출가를 결심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팔리 삼장에는 석가모니의 개인사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당시 인도 문화를 기준으로 후대에 미화된 것이다.

아마 실제로도 석가모니는 자기의 과거사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출가자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당시 예의이기도 했을 것이다.(종교인 학벌 따지는 요즘과는 참으로 다른 풍습이다)

이렇게 동기 파악에서부터 실패를 하게 되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내면을 짐작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보통 30살 즈음에 출가한 것으로 보는데, 이 나이면 특별한 목적 없이 관례적으로 출가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석가모니는 환속, 재출가에 매우 관용적인데, 어쩌면 석가모니 자신도 몇 년 정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2) 난 육사외도를 석가모니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석가모니와 동시대, 같은 지역에 불교와 구분하기가 힘든 종파가 6개나 더 있었다는 것. 이것은 근대 서양학자들이 팔리어 문헌을 연구할 때 자이나교와 불교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또한번 반복되기도 한다.

우연히 동시대에 비슷한 사상이 7개나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석가모니가 최신 유행하는 6개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최소한 그 7개 종파가 상호 영향을 미쳤다.

다른 종파에서 넘어온 제자 몇을 석가모니는 특별히 총애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 7개 사상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아쇼카 왕에 의한 전례없는 통일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3) 동기나 당시 환경을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결국 팔리 삼장을 건조하게 읽는 것 만이 석가모니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팔리삼장을 정리한 무애해도, 청정도론도 '어떻게'를 정리한 것이지 '왜' '무엇을 목적으로'를 설명하는데는 인색하다.

그런데 팔리 삼장에는 지금의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비한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다. 전생과 같은 기존 바라문교 개념들은 석가모니가 모호하게 말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지만, 천인(天人)과 대화를 매일같이 하고 그걸 또 주위 제자들이 함께 듣는 것 같은 일들은 지금의 우리가 받아들이기 매우 곤란하다. 팔리삼장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걸까?

(4) 지금 생각에 석가모니가 중시했던 것은 감정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화내는 것, 이것은 세상의 실재가 그래서가 아니라 별것도 아닌 자신의 감정을 태우는 것이다.

그 감정을 조금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서로 싸우며 사는가? 욕심을 조금만 줄이면 그런일은 없을텐데.

인간의 감정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육사외도와 동일한 맥락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것이 육사외도와의 변별점인 거 같다.

팔리삼장에서 석가모니는 실로 많은 주제를 다루는데, 감정을 제어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의 언설은 석가모니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설득을 위한 언설일 수도 있고, 그것이 현대과학과 합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석가모니가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알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은 관점일 수도 있다.)

(5) 석가모니의 사상을 이렇게 보면, 대승불교도 약간 변용되긴 했지만 석가모니의 적절한 후계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그 감정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과 인식 체계에 더 치중해 있기 때문에 감정 자체를 중시했던 석가모니와 거리가 멀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6) 내가 팔리삼장에서 느낀 석가모니는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팔리율장을 보면 분명히 교단에 얽힌 여러 문제를 겪었고 그때마다 분명히 고민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회의를 해서 답을 도출해 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팔리경장에 묘사된 것 이외에도 많은 크고작은 육체적인 문제를 겪었음이 분명하다. 즉 석가모니는 피로와 병이 없는 초인도 아니다. 율장에는 약의 사용과 요양, 치료에 관한 규율이 많다. 즉, 제자들도 병이 없는 건강체질이었다거나 죽음을 피해가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그런 면에서 태국 등지에 있는 와불은 불교 교리에 대단히 합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연민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문제에 개입하는 경우가 팔리삼장에도 나온다. 세상과 단절된 모습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을 만났을때 뭔가 대단한 구루의 모습을 보여줬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 또한 초능력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예의를 갖춰 대화를 해서 남을 설득했다는 내용이 팔리경장의 대부분이다.

특별한 관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이걸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은 팔리삼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야 할 정도로 미세하고 전문적인 특성이었을 뿐더러, 이 이야기 자체가 후대의 가필일 가능성도 있다. 석가모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저 소문을 듣고 오는 것이고, 석가모니 앞에 와도 주위 사람에게 묻거나 본인에게 확인을 해야 석가모니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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