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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2)

kabbala 2016.11.03 23:51
  • 1984년 만화영화가 개봉하고 10년 후에야 완결이 되서 당시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 학생과학에 연재되었던 것이 원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만화영화판을 옮긴 것.
  • 복식과 메카닉은 물론이고 역사와 전설에 이르기까지 설정이 무척 자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물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인물의 내적인 부분이나 윤리, 철학적인 부분에는 별 생각이 없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인 거 같다. 작품 진행의 모티브나 이미지들이 창의적이라기보다 기존에 있던 통속적인 이미지들, 일부분은 문제가 있는 일본의 국가주의적 이미지를 그대로 비판없이 차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 이런 식의 인물 창조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물들의 평면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나 일반성이 가지고 있는 깊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보고 있으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술적인 면이 강한 연출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면들을 미술적인 이미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며, 인물의 내면적인 동태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하다.
  • 1980년대초, 이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올드한 느낌의 작품을 느낄 수 있다.
  • 몇몇 장면은 확실히 데츠카 오사무의 영향인 거 같다.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할 수 밖에 없겠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글쎄 나는 잘 못 느끼겠음. 그냥 펜 터치 때문에 나온 말 아닌가 함.
  • 그림 자체가 아니마쥬 연재 판형을 기준으로 작업을 한 거 같다. 일반적인 문고판 판형으로는 그림을 감상하기 어려울 거 같다. 다행히 2004년에 나온 학산문화사 판이 아니마쥬 코믹스 와이드판을 따라서 약간 큰 판형으로 나왔다. 1996년에 잡지 게재 크기와 동일한 판형으로 전 2권으로 나온 것이 있는데 기회가 있으면 소장하고 싶다.
  • 1990년대초에 한국에서 만화영화가 이슈가 되었을 때, 환경주의를 옹호하는 작품으로 소개되곤 하였는데, 원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반복해서 말하는 거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떤 ‘주의’나 ‘철학’에 큰 관심이 없다. 작가가 믿는 일본의 전통 이미지를 재구현 하는 것일 뿐.
  • 파이널 판타지(1987) 초코보는 이 작품의 토리우마(鳥+馬)를 따라한 것.
  • 날아가는 비행선 이미지를 포함해서 Arzach(1975)에서 차용한 이미지가 많음.
  • 이정도로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미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전작품인 코난(1978)에서 등장한 것이었으며, 砂漠の民(주로 ‘사막의 백성’으로 번역되는데 정확한 번역은 아닌 거 같다. 1969)에서도 같은 이미지가 발견된다. 또 바로 다음에 만들어진 라퓨타(1986)에서는 워낙에 많은 이미지가 재사용 되서 두 작품을 헷갈릴 정도다.
  • 애니메이션화를 고려하지 않고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연출을 보면 사실상 애니메이션 연출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어쩌면 데츠카 오사무와 마찬가지로 영화나 디즈니 작품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수도 있지만.
  • 만화영화가 원작의 일부 만을 다루기 때문에 후속작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 일본과 우리의 문화적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언제나 고민된다. 예를 들어 천인침 같은 것은 이 작품은 물론이고 일본 영화나 소설에서 언제나 정성이 담긴 긍정적인 물건으로 묘사되지만 한국인으로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 말풍선 사용에 일관성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간혹 화자가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는 거 같다. 텔레파시(?)까지 표현하다 보니 복잡해져서 그런 점도 있고, 그보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가 이미지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는 거 같다.
  • 다른 일본 만화들보다 의성어·의태어가 적게 나오는 거 같다. 하지만 나올 때는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예: 거신병의 소리) 역시 이것도 전체 이미지를 중시하기 때문 아닐까 생각된다.
  • 못알아 듣는 말은 기호로 표시되는데 이게 굉장히 정성들여 만들어져 있다. 주로 한자를 변형시킨 것인데 같은 말에는 같은 글자가 반복해서 사용된다.
  • 주인공이 어지간한 무협지 주인공의 기연(奇緣)을 넘어선다. 주인공이 유파를 구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유파는 최고의 검술 고수인 동시에 주인공의 스승이다. 스토리를 깊이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범상찮았다.
  • 유파가 사실상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단순히 무공만 높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과거의 지식도 대부분 알고 있어서 정체가 의문에 쌓여 있다. 책에서 봤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유물을 첫눈에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100년 넘게 생명을 연장한 신성황제 밖에 없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나오지 않고, 평소에는 세계의 비밀을 조사하러 다닌다. 단순한 무술 고수가 아니라 마법사 간달프에 가깝다. 그리고 초인적인 체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옆에 끼고서 지붕을 넘고, 날아가는 비행기에 한손으로 매달린다. 설정을 따져봐야 의미는 없겠으나 앞뒤를 맞추려면 신성황제와 마찬가지로 개조된 신체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 지식도 상당할 것으로 추측되며, 나우시카가 과학 연구를 혼자서 진행하는 것도 유파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나우시카가 거신병 이빨에 새겨진 고대문자를 보자마자 상표라고 알아차리는 것도 유파한테 배운 것이라고 봐야 할 듯.
  • 그러고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에서는 러브 라인이 잘 안 나온다. 그냥 갑자기 돌아보면 애인이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다. 이 작품도 당연히 옆나라 왕자이자 나우시카에겐 없는 기계 수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스벨과의 러브 스토리가 나와야 정상일텐데,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숲의 사람 세름의 청혼도 급작스러운 면이 있다. 달달한 연애 이야기가 없는 것도 국가주의의 영향일 수 있다.
  • 나우시카는 족장의 딸로, ‘공주님’(히메사마)이라고 불리며, 처음 만난 전투 상대는 토르메키아의 4황녀이자 유일한 왕가 혈통인 크샤나, 처음 만난 남자는 페지테의 왕자인 아스벨, 모험 도중 얻는 조력자 치크크는 크루발카 왕가의 마지막 후예, 중간에 만나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은 토르메키아의 1, 2황자. 청혼하는 세름도 위치가 숲의 사람의 대표급. 한마디로 왕자와 공주들이 판치는 얘기고, 혈통이 중시된다.
  • 토르메키아 왕 이름이 ᄫ왕(ヴ王)이라서 한국어로 읽을 때 부왕(父王)과도 헷갈리고 번역이 어렵다. ‘부우왕’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 단행본 5권을 전후로 그림체와 연출, 스토리가 크게 바뀐 거 같다. 컴퓨터 작업도 사용하게 된 거 같다. 후반부의 연출이 좀 아쉽다.
  • 멸망 직전의 인류 기술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유전자 조작 정도는 우습고,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유체이탈이 가능한 인조인간을 만들었다.(이런 기술이 있다면 아예 인조인간으로 인류를 대체해도 될 정도일 거 같은데.) 텔레파시는 인공생명체들이 기본으로 탑재할 정도로 일반적이고, 인간의 마음을 쉽게 읽고 조작할 수 있다.(이런 기술이 있으면 당시 인류의 마음을 바꾸지?) 거신병에도 이런 기능들이 기본 탑재되었을 뿐 아니라 공간을 왜곡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거신병 손에 타고 비행을 하면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거신병은 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왜곡해서 공중에 뜨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직으로 서서 비행하나 후에 연출상의 이유인지 수평으로 비행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정원 역시 공간을 왜곡에서 장소를 은폐한다. 거신병은 산 뒤에 있는 비행기에 무기가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산이 가로막혀 있으므로 레이더는 아니다.
  • 이런 기술들의 상성 관계가 좀 불분명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정원의 주인은 묘소와 거신병을 둘 다 잘 알지만 묘소의 주인은 거신병을 잘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을 보면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신경쓰지는 않는 거 같다.
  • 이 작품에 희한한 기술들이 많이 나오지만 정작 전기나 화석연료는 사용되지 않는다. 전등은 전기 없이 영구적으로 빛을 내는 물질이고 비행기 엔진은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비행기들의 이착륙 거리도 무척 짧다.
  • 나우시카(ナウシカ)의 ‘카’는 단음(短音)인데 로마자 표기는 언제나 ‘Nausicaä’로 원래의 그리스 신화 인물 이름을 따라 장음으로 쓰인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악인으로 나왔던 사람이 나중에는 악인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대표적으로 토르메키아의 황녀인 크샤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수천의 목숨을 빼앗은 그의 악행이 후반의 배경 묘사와 후에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되었다는 후기로 해소가 될 수 있는걸까?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런 묘사에 언제나 의심을 갖을 수 밖에 없다. 제위 초기에는 선정을 베풀었지만 본인의 잘못된 종교관으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왔고 이 작품의 가장 큰 갈등과 희생의 시작인 생물병기를 사용한 신성황제 미랄파의 영혼이 낙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구성도 받아들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 스토리에서는 지구 전체 차원의 이야기인 것처럼 진행되지만 진행을 보면 작은 크기의 대륙이나 큰 섬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해 속에서 사는 종족도 있는데 다른 곳에 사람이 살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국지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스포일러

  • 스포일러라서 그런지 거신병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알려져있지 않다. 거신병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조정자였다. 작중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으며 냉소적인 면이 있다. 자신의 판결을 집행할 때 파괴적인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 후반에 밝혀지는 인류 멸망의 이유는 ‘불의 7일’이라는 파괴적인 전쟁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점 전후로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파괴가 일어났기 때문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여러 그룹이 활동하게 되고 그것이 각각 지구 탈출 우주선, 묘소의 정화 계획, 정원의 종자와 예술품 보관소, 인간 개조 등으로 남은 것이다. 거신병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도구일 수도 있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류 문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고 활동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작품 전반에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대사가 많은 걸 봐서 이런 기술들의 일부 또는 전부가 종교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 인공생명체들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작품에는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남아있는 인류는 조작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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