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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뿐만 아니라 서사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예술 작품에서는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은 특정한 직업이나 신분이 있기 마련이고, 또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박묵시록 카이지』로 널리 알려진 후쿠모토 노부유키(福本伸行)의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카이지』의 주인공 카이지는 우연히 도박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그에게 어떤 돌아갈 일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박을 벗어나면 백수로 지내다가 돈 때문에 다시 도박을 하는 반복을 하게 된다.


같이 도박을 벗어난 캐릭터들은 어디서든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그것을 기회로 새로운 도박에 연결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고 카이지가 전문 도박사인 것도 아니다. 전문가 수준의 도박 기술을 연습하거나 전문 종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은과 금』의 주인공 ‘金’ 모리타(森田鉄雄) 역시 어떤 직업이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18살에 독립해서 자취를 하고 있었지만 그가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 사이의 몇개월 간의 기간에도 무엇인가를 특별히 하지는 않는다.


모리타를 이끌어주는 ‘銀’ 긴지(平井銀二)는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특정하기가 어렵다. 도박사, 사기꾼, 사채업자, 해결사, 주가조작세력 그 어느것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정치에도 뛰어난 수완을 보인다.


긴지 패밀리도 마찬가지다. 각각 경찰, 기자, 검사 등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전문 지식이나 과거의 인맥을 활용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후반부 에피소드는 아예 도박이나 내기도 아닌 생존극이 되어버린다.


『도박패왕전 제로』에서는 더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데, 어쩔수 없이 도박에 참가했던 주인공 제로(宇海零)는 큰 에피소드가 끝난 후엔 사실상 탐정으로 활동한다. 물론 제로 역시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또 이 작품들에서는 주인공의 가족관계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일본 만화에서 클리셰처럼 되어버린 숨겨진 가족이라는 설정이 나오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심리 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이 이렇게 인물 설정이 거의 없다시피 한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모호한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 빠져들수 있는 것인가? 작가 입장에서는 위기 상황만 만들면 되니까(제로의 경우에는 미스테리를 풀어야 하는 상황)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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