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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우연히 만년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몇십년 만에 노트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또 예전엔 잘 몰랐던 노트 정리의 비결 같은 게 떠오르게 되었다.

1. 노트는 왜 하는가?

난 학교에서 교사가 칠판에 쓴걸 베끼는 것을 노트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1차원적인, 출판기술이 발달하기 전 10세기쯤의 교실에서나 있었을법한 일이다.

물론 귀한 책이라면 필사해야 하고, 교사가 책에 없는 말을 한다면 그걸 받아 옮겨 적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작업이고 현대에는 대부분 책이나 디지털 자료로 갖춰져 있고 녹음도 쉽기 때문에 개인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노트는 수업이나 독서 과정에서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데 의의가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떠오른 자신만의 생각도 적는 일기장이자 장래의 출판 준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과거에 이 정리 작업을 잘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어떤 책을 완벽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그 책을 그대로 옮겨야 가능한 일 아닌가? 잘 쓴 책일수록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환언하는 것일 뿐인 것이니까 정리라는게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할 수 있다. 왜냐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하나 만을 골라서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보배로운 전개과정은 버리는 일이다. 미래의 내가 그 전개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질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 베껴쓰는 것보단 저자의 핵심적인 결론 하나라도 정리해두는게 낫지 않겠는가.

또 이렇게 정리하기 위해선 그 책 자체가 하나의 주제 만을 위해서 논리적으로 아주 잘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즉 나쁜 책은 요약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2. 어떤 방법으로 정리하는가?

최근 미국 대학에서 제시하는 정리법등이 널리 소개되었다. 물론 글쓰기 훈련과 독서력 향상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목적으로 노트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수업 필기라면 단순한 요약으로 족할 것이다. 또 그림과 같은 자유로움도 필요하다.

단, 무엇인가를 서술할 때는 완전한 문장으로 적는게 좋다. 몇 년 후에 자신이 보았을 때도 내가 무슨말을 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3. 어떤 노트를 써야 하는가?

나중에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선 바인더로 철할 수 있는 노트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여러 과목의 노트를 일일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단, 정리를 안하면 오히려 정보가 흩어지게 되고 일반 노트를 쓰는 것만 못하게 된다.

행여 사고로 흩어지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각 장에 주제와 날짜를 적어둬야 한다.

4. 어떤 크기의 노트를 써야 하는가?

* 3공 Letter지 — 미합중국 표준 노트다.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단점은 구멍이 잘 찢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레터라는 비표준 규격이라서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미국 대학의 정리 방식은 정확하게 이 크기의 종이에 맞춰 정교하게 제안되어 있으므로 그 방법을 시험하는 사람들은 레터지를 써보는 것이 좋다.

* 4공 A4지 — 서유럽에서 많이 쓴다.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나, 3공 제품보다 종류가 적다.

개인적으로 A4가 노트로 쓰기에 너무 넓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 좌우 여백을 이용해서 정보를 정리하는데 쓸 수도 있다.

바인더의 종류가 적어서 실제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

* 30공 A4지 — 사용자가 적다.

* 26공 B5지 — 일반적인 노트 크기에 가까워서 친숙한 느낌이 든다. 국산도 있지만 Kokuyo, Maruman 같은 일본 제품이 많다. 참고로 Lihit Lab 제품은 같은 B5라도 독자규격을 사용한다.

단점은 한국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A4와 크기 호환이 안 된다는 것. 또 A4나 레터지와 달리 테마를 가지고 좌우 여백을 활용하기 조금 좁게 느껴진다는 것.

또 3공 레터지나 4공 A4지처럼 절취가능한 스프링 제본된 노트가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처음부터 바인더에 넣어서 쓰거나 낱장으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나는 당분간 26공 B5 노트를 쓰려고 한다.

(추가: 2018년 현재 나는 34공 A4를 쓰고 있다.)

* 20공 A5지 — 공부하면서 쓰기에는 크기가 작다. 한국 회사 중에 3P Binder라는 오거나이저 제품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다. 참고로 플랭클린 플래너 클래식은 7공에 레터지를 반으로 자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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