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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관한 자료는 4복음서를 제외하고는 없다. 너무 허구적이지만 그래도 이 복음서들의 내용이 뭔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믿고 실제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해봤다.


예수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유대교를 제대로 전달해줄 어른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도 겹쳐서 예수는 당시로서는 꽤 나이를 먹은 20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유대교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자 그대로 어깨 너머로 유대교를 익혔을 것이다.


아마 이러한 결핍이 남들과 다른 종교에 대한 열망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당연한 교양이었던 타나크가 엿듣고 배운 예수에게는 너무나도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어른이 된 예수는 어느순간 에세네파 같은 수도자 단체에 투신하였을 것이다. 아마 이 시기에는 동생들도 어느정도 자라서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생각하는 것이 많았던 예수에게는 전통적인 수도원의 가르침도 결국 부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사막에서 명상을 하기도 하며 결국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다.


전통적인 입장의 사제들과 보수적인 일반 유대인들은 당연히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곳은 오직 이런 일반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잠깐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사실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이미 힐렐이 완성시킨 유대교 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유대교 입장에서 예수의 이론은 사실 힐렐 학파의 끝자락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의 특징은 이런 이론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런 이론들을 사회에 직접 적용시켜 보려고 했던데 있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예수는 신통력을 중시하며 마술사를 꿈꾸었고 이런 이론은 부차적인 요소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예수의 돌발 행동은 정체되어 있던 유대인 사회에 파란을 일으켰고, 몇명의 추종자도 거느리게 된다. 아마 가장 빛다던 때는 몇백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러 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종자의 규모는 몇십만명의 신도를 거느리는 현재의 목사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규모였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로마의 재판을 받고 사형 당했다고 적혀있지만, 기록도 없을 뿐더러 형 집행 과정도 알려진 바와 다르다. 아마도 예수는 유대인들에 의해 종교재판을 받고 사형 또는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욕을 주기 위해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았을 것이다.


하박국서 해석에 등장하는 인물도 아마 이런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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