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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주의(主義)

kabbala 2014.09.05 10:59
(1)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많이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진리인양 외치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한국에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크스를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던 지식인들을 알아야 한다. 왜냐면 마르크스는 그들과의 논쟁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독일 철학을 바탕으로 꽤 어려운 논의를 펼쳤는데, 당시 철학 조류를 알지 못하면 마르크스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후대에 남은 것은, 현실 활동에 바빴던 다른 사람들보다 말을 더 어렵게 해서인 것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는 자기의 주장을 완전히 정리하기 전에 죽었고, 그의 자료는 무조건적인 추종자들에 의해 정리되어서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마르크스를 공부했을까? 아마 장담하건데 마르크스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철이 지난 이론을 누가 공부할 것이며, 빨갱이에 대한 터부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누가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마르크스주의를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서로 싸우고 죽였는지 영원히 원인 파악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미래에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지도 모른다.

(2) 기독교는 또 어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헤브라이즘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다.

그런데 시계를 조금 돌려보면, 1980년대 이전에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는 한국 사람은 극소수였다.

문익환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가 행한 불법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아니면 80년대 이전 기독교 해석의 역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들어온지 100년이네 200년이네 다투는 기독교이지만 최의원(崔義元)의 히브리어 해설이 출판된게 21세기인 2005년의 일이다.

한마디로 21세기 이전엔 성경도 모르면서 목숨을 바치고 또 경쟁자를 공격하면서 내가 신심이 깊네 너는 이단이네 하며 싸웠던 것이 바로 우리나라였던 셈이다.

(3) 즉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론에 희생하고 자기의 목숨을 바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악을 저지르거나 선행을 하고 있는 ‘주의’(主義)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 주의의 진짜 속성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고,

심지어 그 결과는 ‘주의’와 무관한, 사람들의 정치적 상황과 군중심리가 선행도 하고 악행도 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 사람이 하는 거’고, ‘사람은 미워하되 이념은 미워하지 말자’고 할 수도 있겠다.

주의를 강조해서 사람을 나누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아민 말루프의 말이 맞는 거 같다.

물론 무조건 판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행한 악행에 대해 다른 기독교인인 ‘일부’라고 핑계를 대는 것은 어느정도 맞는 말로 볼 수 있겠지만, 어느 교회를 가나 배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걸 보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주의는 이렇게 표피적인 모습으로만 평가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4) 반면 ‘주의’ 자체를 깊이 고민하는 개인은 그 ‘주의’를 믿는 집단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행동력을 얻기 위해선 주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쉬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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