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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이순신의 충효

kabbala 2014.08.24 15:27
1597년(정유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백의종군을 하게 되자 일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 많이 나온다.

또 자기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처럼 상중에 임명을 받은 이계명과. 아버지가 병중이라서 변명하고 작전에 빠지려는 홍우공.

현재의 우리가 충을 효에 앞서는 윤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르다. 이순신과 당시 사람들에게는 효가 충에 앞서는 인간 본연의 감정인 것이다.

충은 공자가 했던 말대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는 것일 뿐이다. 신하는 신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왕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다.

신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이순신은 금나라에 대항하던 이강(李綱)의 경우도 화친을 해서 후일을 기약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전황을 생각하면 이 역시 절박한 말이었을 것이다.

p.s 나중에는 선조가 상중이라 이순신이 육식을 안한다는 소문을 듣고 고기를 하사하기도 하는데, 뭔가 아니러니한 느낌이 들고, 이순신도 그닥 즐거워 하지 않는다.

초서본에는 이때 감정을 ‘悲慟悲慟’이라고 적었는데, 재미있게도 이충무공전서에는 ‘感慟感慟’이라고 활자화되었다.

정조는 희대의 명군이고 유득공은 최고의 학자였다지만 한계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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