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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눈물이 난다.

이순신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 한국에 나 하나 뿐은 아닐 것이다. 엊그제 개봉한 영화 「명량」을 보면서 눈물 흘린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도 또다시 위험한 곳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간다. 뭐 물론 유교적 이상에 전도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사람이 너무나 성실하고, 인간적인 고뇌를 가슴에 안고 있다.

영화 「명량」 시기로 생각해보면 나 같으면 일단 권율 싸닥션부터 올리고 복귀했을 거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순신에게 어떤 교훈과 영향을 받았을까?

내 생각엔 없다. 그냥 지휘관이 병신이던 아니던 보급이 있던 없던 전쟁 나가서 너도 죽어라. 오직 이것만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494853517647962112

이게 단순히 우리 근대 교육의 문제도 아닌 것이, 조선시대 수군절도사 박문수의 장계에 이금(李昑)은 이렇게 대답한다.

忠武公李舜臣干戈搶攘之中能造戰船瓮津雖疲弊不能辦四百兩錢而有此請乎帥臣推考其令自備造船

충무공 이순신은 간과(干戈)가 극렬한 가운데에서도 능히 전선(戰般)을 만들었었는데 옹진이 아무리 피폐되었다고 해도 돈 4백 냥을 마련하지 못하여 이런 청을 한단 말인가? 수신(帥臣)은 추고(推考)하고 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게 하라.
— 국사편찬위원회 옮김

(추고(推考)하라는게 스스로 반성하라는 뜻인지, 현지 관리들을 쪼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조선후기 그나마 빤짝했다는 영정조 시대, 이순신 짱이라고 입만 열면 칭찬하던 시절에도, 수군에 예산을 배정해 강화하겠다거나, 군인들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국방을 강화해야 겠다거나, 우리 어민들이 고기좀 잘 잡게 해주자는 생각을 한 우리 조상님은 별로 없었단 얘기.

1744년에 너무나도 당연히 박문수가 지적했던 ‘唐船漁採’는 ‘無夏不來’ 뿐만 아니라 이제 사시사철 오고 있다.

그나마 아이디어를 냈던 박문수도 10년 후 정치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고, 죽고 나서야 왕이 립서비스하는 어쩌면 이순신과 같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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