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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다루는 주요한 대상은 ‘사’(士)다.

‘사’는 지금으로 치면 엘리트 관료로, 지배계층 즉 왕공(王公)의 입장을 대변한다.

공자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지만, 백성들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중간 관리자인 ‘사’가 잘하면 백성들은 자연히 평안할 것이라고 여긴 거 같고, 이 ‘사’의 교육에 힘썼다. 백성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맑은노래 고운노래 캠페인 송을 정리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교육의 대상으로 삼진 않았던 거 같다. 공자가 말하는 교육은 지금의 의무교육이 아니라 관리가 백성을 계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실 사회에서도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어려서 고생하고, 부모님 잘 모시고, 혼자 공부해서 노력끝에 좋은 직업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인격적으로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들이겠지만, 이분들이 얻은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 결국은 대기업 간부로서 갑질 하는 것이고, 변호사 되서 비싼 수임료를 부담할 수 있는 돈 많은 고객들 편 들어주는 거다.(거기다가 자기 고생했던 거 생각해서 아랫사람들 쪼면 금상첨화…)

‘군자’(君子)라는 말에 임금이란 글자가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니체의 ‘Herrenmoral’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맹자의 주요 대상은 ‘민’(民)이다.

이건 아마 시대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텐데, 공자가 죽고 100년 남짓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맹자 시기에 오면 이미 계급 자체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사’나 주(周) ‘왕실’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미 넌센스인 시대.(반상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상한 거.)

그래서 맹자는 ‘민’ 전체의 생활을 고민한다. 병력 동원이 잦아지다 보니 백성들에 대한 중앙(?) 정부의 장악력도 강해졌을 것이다.

‘민’은 개인이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다수이므로, ‘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왕’(王)에게 맹자는 집중한다.

‘왕’에게 ‘민’의 생활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敎育)’이라는 일본식 한자 조어가 『맹자』에 근원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확실한 건 아님;)

맹자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손자병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백성들에게 밭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법가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기(氣)로 천지를 채우는 호연지기는 도가와 같은 것 아닌가.

맹자가 공자의 후예임을 자처하지만 이 시기에 접어들면 유가, 법가, 도가가 사실상 큰 차이는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치열하게 논쟁했고, 어쩌면 양묵(楊墨)도 맹자와 별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고, 나아가 맹자가 양묵을 종합한 것일 수도 있다.

주장들이 비슷비슷했다고 가정한다면, 맹자의 주장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왕들이 받아들이지 못한게 아니라, 어짜피 그 왕들은 변법도 시행하지 못할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다.

실제로 『맹자』에 등장하는 왕들은 소국인 경우가 많고, 대국도 뭔가 일을 잘못하고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 잠시후면 대국들도 합종연횡책에 휘둘리다 쓰러질 타임이니 왕들이 많이 모자랐었다고 하기도 어려울 거 같다.

공자는 인이고, 맹자는 인의, 사단칠정 같은 요약은 공자와 맹자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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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gahae 철왕정치를 꿈꾼 플라톤이 공자랑 닮았군요. 플라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디오네게스가 맹자랑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겠지요. 2014.07.28 10:04 신고
  • 프로필사진 kabbala 플라톤이 말한 지도자는 세속과 격리되어 키워진 사람이며,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을때 관직을 얻습니다. 그러나 공자나 맹자가 말한 지도자는 일반인이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경지이고, 관직에 있을때도 자신의 잘못을 계속적으로 고쳐나가는 사람입니다.

    또 공자와 맹자 모두 현실 정치 참여를 중시했습니다. 맹자는 소박한 생활을 주장한 농가(農家)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2014.07.29 22: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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