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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려면 인문학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인문학이란 국가 권력의 무형적 측면을 보좌하기 위한 기술이자 방법론이며, 외형적으로는 대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역사학은 왕조의 정통성을 기록하는 업무로 시작하였으며, 근대 강대국들의 팽창을 정당화하고 피정복 국가에 대한 첩보 및 심리전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게 무슨 19세기 얘기가 아니라, 1980년대만 해도 서방의 중국학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중공을 공략하기 위한 정보를 가공하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약소국 입장에서는 인문학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으며, 강대국에 영합하기 위한 일종의 실용적인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강대국들의 세계 지배 정책은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식민지를 통한 직접적인 관리가 아닌 경제를 통한 간접적인 지배력 보유가 주요한 이슈가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으며, 약소국의 경우는 강대국의 언어를 이해하는 이상의 처세술을 가질 필요조차 사라졌다.

'우리' 철학, '우리' 예술을 말하지만 애초에 그 '철학'과 '예술'을 해야만 하는 동인이 전혀 외부에 있다. 서양 교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요하게 여기니 나도 대학 교수가 되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칠 뿐이고, 서양 사람들이 베토벤이 좋다고 하니 나도 열심히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외부의 압력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 철학과 예술을 유지해 나갈 아무런 이유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철학, '우리'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은 우리 '권력'을 꿈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자'나 '단군'으로 바꾸면 우리가 철학할 당위가 생길까?

힙합, 비보잉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인문학도 그냥 여가 선용을 위한 취미로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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