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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글의 탄생(2011)

kabbala 2012.11.15 00:43


1.

난 이 책이 무서운데, 한글이 더이상 대한민국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과 한국어에 대해서는 북한과, 연변주민과, 재일교포와, 고려인들과, 몇 세대 전에 이민간 미국인들이 모두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옮긴이가 붙어있지만, 모두 대한민국에서 국문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지은이가 직접 한글로 다시 썼을 법한 부분이 적지 않다. 서장은 원본에 없는 것을 아예 새로 쓴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이 우리의 가장 내밀한 부분인 언어를 더 넓은 시각에서 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영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어를 가지고 외국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고, 예비고사 맞춤법 문제 같은 쪼잔함으로는 더이상 발전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2.

아마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지은이의 의도로 추측되는데, 전반적인 예시가 한국인이 이해하기 쉽게 바뀌어 있다. 이런 것들은 거리감을 줄여줘서 이 책의 낯선 느낌을 반감시키다.

1장 2절에 하카다와 요코하마는 서울과 부산으로, 1장 4절의 제목 '조선어=한국어는 어떤 언어인가'(朝鮮語=韓国語はいかなる言語か)는 '한국어는 어떠한 언어인가'로 번역해 의미가 매우 희석되어 있다.

반면 의미 전달에는 세밀한 신경을 쓰지 않은 거 같은데, 1장 3절에 '한편 방언도 군대를 가지면, 종종 언어라 불리운다.'라는 문장은 한국어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어로는 문제가 없는데, 왜냐면 '군대'를 한자로 쓰기 때문이다.(一方で、方言も軍隊を持つと、しばしばそれは言語と呼ばれる。) 군대의 의미를 알았다고 해도 한국어 문장은 아닌 일본어 직역투인 거 같다.

1장 4절에서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느낌'(似ていながらどこかしら異なる、そういった感触. 원문에는 강조 표시가 없는데 번역판에는 있다)으로 지적되듯이 일본어 직역의 문제가 있다. 일본어로 한국어를 설명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일본어 직역의 예시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또 한자어는 일본어와 동일한 것이 많기 때문에 어떤 것을 일본어 독음으로 옮겨야 하고, 또 어떤 것은 한국어 독음으로 옮겨야 할 지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일본어 독음으로 하면 더 좋았을 것을 한국어 독음으로 옮긴 경우가 많은 거 같다.

3.

지은이가 역사에 대해 약간 무지한 면이 있는 거 같다. 우선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공과 대만의 근대 한자 조어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연히 일본어와 같을 수 밖에 없다. 한자어는 근대를 기준으로 분리해서 이해해야 할 거 같다.

입말인 한국어 역시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여러차례 한자의 가차를 통해 표현되었다. 훈민정음에 이르러 처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일본어도 마찬가지로, 히라가나 이전에도 가차하여 자신의 말을 표현한 것이다.

지은이의 핵심적인 논제이기도 한데, 한자는 형음의로 분리되어 있는 말이 아니라, 원래 하나의 말이었던 것이 후에 문어로 변화한 것이다.

4.

한국어 '글쓰기'는 불어 'écriture'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오히려 에크리튀르를 원래 의미를 살려 외래어 자체로 사용하는 일본어가 어떤 면에선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훈민정음 창제에 데리다를 접목시키기 위해 좀 억지로 끌어들인 거 같은 느낌이다.

'평면'과 '레이어'라는 말의 혼재도 굉장히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후기를 보면 이런 용어들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했다는데, 결과물은 공역자들이 각자 알아서 번역한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5.

총평을 하자면, 생각보다 내용이 알차지 못하고,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대해 세밀하게 고찰하지 못하였다. 게슈탈트, 형태음운학 등 외국의 이론을 들이대지만 그냥 자의적인 소개일 뿐이다.

저자 경력을 보면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도 있는데, 한국 학계의 주장도 별로 반영되지 않은 거 같다.

소재 자체들은 흥미있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도 훈민정음 소개 책자로 권하기 좀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럼 훈민정음을 잘 소개한 다른 책이 있는가? 아쉽지만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이 책이 상을 받은 거겠지.

어쩌면 한국 사람에게 너무나 중차대한 주제이자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주제라서 섣불리 종합한 사람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각 부분의 전문서를 찾아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6.

한문에 토를 다는 방법을 더 찾아볼 것.

아 그리고 책 두께와 크기가 일본책의 2배다; 한글이 히라가나보다 정보 전달 효율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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