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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문선명(1920~2012)

kabbala 2012.09.03 19:23

누군가 죽으면 그의 인생이 쉽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살아있을 때는 결말을 알 수 없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뭐라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고인이 되면 지난주에 본 영화 줄거리처럼 친구에게 몇마디의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선명도 그렇다. 70~80년대 문선명은 안개 속에 있는 최고 지도자처럼,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도 힘든 정말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다. 문선명을 김일성에 비교하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그러나 그의 부고를 듣자 그간 들었던 정보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정렬된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그의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의 관심을 강하게 끈 것은 매우 활발했던 한국의 개신교였을 것이다. 지금의 대형교회 같은 규모가 큰 교회가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신앙이 불타고 있는 몇몇 교회를 접했다. 아니면 개신교 측 주장대로 김백문, 박태선 등과 교분이 있어서 처음부터 그런 계통의 종교를 접했던 것일 수도 있다. 통일교 교리에서 김백문의 영향을 느낄 수도 있다.

해방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작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거기서 경제적인 성공을 얻으려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일천하더라도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다. 문선명도 아마 기존 교단에서 목회자로 일하는 자신의 꿈을 펼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왜 기존 교단에서 독립해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통일교 측에서 나오는 자료는 신격화된 내용이고, 반대로 한국 개신교에서는 왜 통일교와 척을 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젊은 문선명이 다녔던 교회의 목사나 장로조차 개신교의 역사에서 지워질 정도로 정보를 조작한다. 짧지 않은 북한에서의 수감 생활 중에 생각을 정리했을 듯 하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김백문 등의 조직과 경쟁 관계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 기복적이고, 집단 소유를 통한 공동체 생활로 성공한 종교가 통일교 만은 아니다. 문선명이 왜 미국으로 중심지를 옮겼는 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는데, 아마도 더 넓은 시장을 찾은 거 아닐까? 이전 단계에 이미 일본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70년대 미국은 동양의 신비주의를 팔기 좋은 곳이었다. 거기에 한국인 특유의 조직 관리 능력(?)과 창의력(?)으로 조직을 키우고 정착하긴 어렵지 않았을 거다. 몇몇 선교(?) 방법과 신도에게 행한 요법(?)은 당시 통일교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문선명 만큼 성공적인 경우는 드물다. 70년대 문선명의 조직이 놀랍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기업체의 운영과 정치권과의 밀월 때문 아니었을까. 냉전 시대에 반공 캠페인을 조직했고, 자유로운 종교 단체의 장점을 이용해 돈을 움직였다. 80년대에는 레이건 정부 최대의 스캔들 이란-콘트라 사건의 주축이 되기에 이른다.

통일교와 한국 정부와의 관계에 관한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고,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과 일본의 정부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남북한과 일본, 미국 정부를 연결시키는 놀라운 조직이 된 것이다.



* 뉴욕 타임즈의 댓글들이 미국 사람들의 관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 같다: http://www.nytimes.com/2012/09/03/world/asia/rev-sun-myung-moon-founder-of-unification-church-dies-at-92.html

* 해방 전후 한국 개신교 이단사(?)에 대한 간략한 정리: http://kcm.kr/dic_view.php?nid=3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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