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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서양의학의 역사』

kabbala 2012.08.23 16:02

살림지식총서의 주제 선정은 탁월하다. 시사성도 강하고,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주제를 정말 잘 뽑아낸다.

그런데, 읽고 나면 만족스럽지가 않다. 너무나 축약되어 있어서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이 책, 살림지식총서 273번 『서양의학의 역사』도 서양의학사의 주요 사항을 거의 나열식으로 서술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초심자는 알 수가 없다. 이 분야를 모르는 나에게는 마치 시험을 위해 요약 정리한 수험서처럼 느껴진다.

의학 전문용어에 대한 해설이나 주석도 없다. 서양의학사가 결국은 전문 기술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된 의학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대에는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독자에게 최소한도의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의대나 약대를 다닌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의학사를 깊이 공부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어쨌거나 각 시대 기술에 대한 개관이 필요할 거다.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내가 가장 관심있던 근대화에 대한 관점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초반에 의학은 산업의 발전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 및 민주주의와 국가주의의 발달을 배경으로 과학이 되었다.'(48쪽) 이게 끝. 서양의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라면 이걸 또 자세히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 단락은 '기초의학에 대한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이 시대 임상의학의 한계다.'(51쪽)라는 말로 끝을 맺는데, 그렇다면 의학은 과학인가? 과학이 의학이 전부인가? 의학은 궁극적으로 과학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 의학은 과학이고 19세기는 과학을 잘 몰라서 의학이 부족했다는 너무나 단순한 발상. 19세기면 19세기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역사 서술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무엇이 과학 지식 습득을 방해했는지 사회적인 면도 적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마지막 장이 '현대의학의 성립'인데 언제부터인지, 무엇이 기준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직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91쪽) 20세기 후반을 현대의학이라 지칭하는 건가? 아니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신대륙으로 옮겨간' '의학의 중심'이 기준인가. 전반적으로 근대화라는 주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인 거 같다.

책 말미에 저자 본인이 쓴 책과 번역한 책의 소개가 있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훑어봐야 겠다. 『근세 서양의학사』(디엘컴, 2002), 『의학의 역사』(광연재, 2004). 아마도 이 책들에는 문고판에서 생략되고 축약되었던 설명이 들어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한글로 쓴 책 소개가 자기가 쓴 게 전부라는 것도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부족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볼만한 책들이 있을 거 아닌가.

소개된 영어 책은: Ackerknecht, A Short History of Medicne, Garrison, History of Medicine, Sigerist, The Great Doctors. 근세 의학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유럽 책이 없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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