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평전: ‘진리’라고 불리던 사악한 사제가 예수였을까?』(2010)

1.

이 책의 부제는 사해 문서에서 발견된 「하박국서 해석」(하박국 주석서, Pesher Habakkuk, Habakkuk Commentary)에 등장하는 인물을 말하는 것인데, 재미있게도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와 매우 비슷한 행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글이 기원전 수세기 전에 쓰여졌다는 것만 빼고.

저자가 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

2.

이 책은 예수의 생전 상황에서부터 사후(신자들은 부활이라고 하겠지만)까지 인생을 시간의 순서대로 적은 것이다. 사실 예수의 행적은 별로 드러나있지 않으므로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역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예수에 관한 책이 드물다. 대부분은 신앙에 치우쳐있다.(예수에 관한 기록이 신약성서에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종교학에서 언급되는 표준적인(?) 전기(?)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 종교학은 역사나 철학이 아닌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라서 그런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자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신약성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나 비관적인(사실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신약성서의 성립 과정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또 참고문헌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 읽어야 할 자료 소개가 인색하다.(그럼에도 저자를 배척하는 신자들이 있을 듯)

3.

나에게 유대교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자기들끼리 믿는 폐쇄적인 종교이고, 또 워낙에 이스라엘이 지탄 받을 행동을 해서 별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현재의 유대교도 만들어진 과정이 있었다. 그게 우연히 기원전후 지중해 사회와 겹쳐서 매우 흥미롭다.(유대교 입장에선 기독교를 짝퉁으로 여길 만도 할 거다. 그러나 유대교 역시 그 이상으로 자기들을 지배하던 나라들의 영향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의 애국심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겠지만 실은 로마 제국을 먼저 공격한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고, 지금 남은 사람들은 그들과는 대립적인 입장에서 로마에 투항한 사람들이다.(우리로 치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친일파만 남아서 애국애국 하고 있는 격이랄까?) 오죽하면 결정적인 투항을 이끈 랍비가 미래를 보는 초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이완용 후작이 미래를 보는 식견이 있어 한일합방을 추진했다고 후손이 역사학자가 되어 꾸준하게 주장한다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일까?)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제국의 노예로 끌려다니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는 평화를 강조하고, 남을 노예로 삼지 않을 것을 가르치나 이 역시 현실에서는 굉장히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4.

신의 이름을  ‘주님YHWH’와 같은 식으로 옮겼는데, 참신하면서도 아쉽다.

우리가 너무 ‘하느님’, ‘하나님’ 하던 것을 적당히 타자화해서 좋긴 한데, 내 생각엔 각각의 이름을 써서 개념을 더 명확히 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대의 신에 대한 개념도 기원 전후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유대교(히브리어)의 개념으로 보면 쉽게 이해되는 구절이 신약성서에도 많이 있다.

마가복음의 ‘조상들의 전통을 따라 걷는 길’이 ‘토라’임도 예시하였는데(64쪽), 아닌게 아니라 그 비슷한 구절들을 ‘토라’로 새기니 매우 명확하게 읽혔다.(저자는 일러두기에서 『개역한글판』을 쓸 것이라 명시했는데, 이 구절은 『개역한글판』이 아닌 『공동변역성서』의 번역이다. 하긴 『개역한글판』에는 ‘장로들의 유전’으로 옮겨져있어 이해가 매우 난해하다.)

요한복음의 ‘다른 위로자’도 유대의 예언자인 메낙헴(menachem, 므나헴 등으로 읽힘)을 말하는 것이고,(149쪽) 요세푸스의 저술에 따르면 1세기 중반에 유대교 대사제 중에 메낙헴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자는 그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그런데 이 구절도 일반적인 번역이 아니다. 일반적인 성경에는 ‘보혜사’(保惠師)로 옮겨져 있다. 이해하기 진짜 힘들다. 게다가 이건 라틴어 paracletus를 옮긴 건데, 그 의미가 또 다르므로 사람 헷갈리게 만들기 딱 좋다. 영어 성경들도 라틴어를 중심으로 번역해서 딴 의미로 적고 있는 거 같다.) 묘하게도 이 사람도 다른 사제들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후 사흘 후에 승천했다.

우리가 보는 성서라는 것이 히브리어를 중역, 삼역, 사역한 것이라 답답한 점이 있다. 기독교의 대중화가 한국에서는 어느정도(심하게) 이루어졌으니, 원전(신약성서의 히브리어 원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에 더 가깝게 번역한, 원전을 느낄 수 있는 성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관련된 글이 있어 옮겨 놓는다. 아쉽게도 누가 쓴 글 인지 모르겠음:

도스토예프스키 사상의 원류인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한글성경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라틴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글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도 독학했던 나는 히브리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히브리어를 익혀 자신있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그후 15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대학시절 성경공부를 지도해 준 선교회의 지도자에게 히브리어 공부를 해서 성경을 제대로 읽고 싶다고 했다. 히브리어를 공부해 본 적도 없는 그는 이미 영어 번역본도 수십종이 나와있어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충분히 알 수가 있는데 그 어려운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뭣하겠느냐고 충고를 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서히브리어라는 것을 공부했는데 여기서 히브리어에 질리고 말았다. 교수방법이 엉터리였던 것이다. 수백 페이지나 되는 문법책을 삼주간에 걸쳐 달달 외워 히브리어를 통달하라고 윽박질러 대니 이런 교수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리고 모르면 말이나 하지 말지 현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와 아주 달라서 현대 히브리어 가지고는 성서를 읽을 수 없다나?

나는 이스라엘에 가서야 비로소 현대 히브리어를 배우면 히브리어 성서를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성서를 읽어야 성서가 제대로 머리속에 들어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도 본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히브리어를 잘 모르거나 무시하는 인간들이 헬라어 번역본과 라틴어 번역본을 가지고 서구 기독교 신학의 뼈대를 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서구 기독교 신학이 히브리어를 무시했기 때문에 비성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서구신학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다른 종교에서 진리를 찾는 혼돈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나는 신약성서신학연구를 포함해서 모든 영역의 신학연구가 히브리적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히브리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유대인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 히브리어를 배워서 그것으로 성경을 읽은 사람 만이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성경보다 헬라어 신약성경의 현대 히브리어 번역본이 읽기가 더 쉽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도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 유대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적어도 히브리어와 독일어를 섞어 만든 이디쉬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 인용문에서도 느껴지지만 유대교는 현대 한국의 기독교도나 사서삼경교 신자보다 더욱 심하게 경전을 절대시한다. 이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까.

6.

이 책은 신약성서를 유대교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지식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유대교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은 그간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밝혀준다.

다만 저자 자신이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어서인지 신약성서를 오류가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견강부회한 것이 없지 않은 거 같다.

예를 들자면 누가복음에서 심온은 왜, 어떻게 아기 예수의 미래를 예언했는가? 저자의 답은 어머니 마리아의 혈통이 다윗과 아론 양쪽에 있어서 혼란을 야기할것이라서. 굉장히 믿음이 안 가는 해설이다. 사실 저자 역시 글의 처음에는 후대에 맞춰 적은 거 같단 말도 한다.

아마도 가장 정확한 예수의 전기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손에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 문화를 생각하면 신자가 이런 해설서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신앙을 모두 걸고 쓴 것인 거 같기도 하고, 그냥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학술적으로 쓴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7.

이제 기독교 성경에 대해 아는 척 하려면 히브리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대가 왔음. 불교계도 팔리어 경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을 보면 시대가 같이 바뀌는 듯.

이 책의 주요 논제 중 하나는 예수가 사두개냐 바리새냐 엣세네냐 하는 건데, 보면서 드는 재미있는 생각은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였 듯 예수도 바리새였을 것이라는 거.



* 이 책을 읽으려는 분께: 만약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교회에서 추천하는 간증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으세요. 믿음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믿는 사람이 누군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아니라면 저자가 예전에 번역한 『선조들의 어록』도 한번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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