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F

『러브크래프트 전집 1』 #2

kabbala 2011.09.29 00:13
1. 이 작품들이 요즘 나왔다면 흔한 3류 환타지 소설 중 글이 좀 잘 된 것 정도로 취급받았을 거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는 아마도 그런 종류의 시도를 처음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일 거다.

그러니까 공포물이나 SF 매니아가 아니라면 굳이 러브크래프트를 일부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류문화로 취급되는 쟝르니까 시험 문제에도 안 나올 거고.

2.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독특한 느낌과 뒷끝(?)이 있다. 유사한 소재를 여러 작품에서 반복해서 다루다보니 그 효과들이 중첩되서 독자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현대에 나와도 독특한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3. 난 왜 러브크래프트를 보는 걸까? 매니아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SF를 즐겨읽기 때문일 거다.

사실 러브크래프트를 SF로 분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SF라는 쟝르 자체가 구분이 모호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직 쟝르로 인정받지 못한 추세고.

그럼에도 SF를 구분짓는 특성. 나같은 팬이 SF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우선 전통 순수(?) 문학(?)보다는 말도 쉽고 구성이 단순하며 읽기 쉽다. 기본적으로로 SF는 읽기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대중소설이다.

소재면에서는 현실과 다른 환상적이거나 기과한 소재가 등장한다. 일종의 전기문학(傳奇文學)이다. 이 역시 꾸준히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형식. 크게 보면 대중소설의 하위 쟝르.

4. SF를 읽을 때는 약간 덜 다듬어진 나무 막대를 훑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5. 그 외에 SF만의 특징을 또 생각해보면, 우주나 물리법칙 따위의 거창한 인식틀인 거 같다. 러브크래프트도 우주적 스케일의 외계인 도래와 지구 탄생에 이르는 연표를 언급한다.

어떻게 보면 신화가 없어진 세상에 신적인 전능함을 적용하는 새로운 신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은 거의 전부 화자의 시점에 혼란이 있다. 번역 탓도 있겠지만 주석에도 여러번 언급되는 걸 봐서 원문이 가지고 있는 특성 같고, 내 생각엔 작가가 일부러 사용한 혼란을 주기 위한 기술인 거 같다.

네크로노미콘, 올드 원 같은 작품마다 반복되는 소재들도, 작품마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를 뿐더러 서로 바꿔서 사용되기도 한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다면성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지명에 있어서도 같은 지명이 동일한 위치가 아니라 약간 빗겨난 다르지만 비슷한 곳인 경우가 많다.

이런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설정들이 러브크래프트 작품 전체에 강하게 여운을 남기는 요소인 거 같다.

7. 다른 작가들의 설정도 자주 차용하는데, 이것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후대 작가들이 부담없이 복제할 수 있는 허가서 같은 느낌이 든다. 일종의 오픈소스랄까.

다른 작가들 작품들과 가상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더 큰 세계관을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을 거다. 무조건 가져다 쓴다고(예: 팬픽)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얻는 건 아니라서 이 역시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독특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