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F

『러브크래프트 전집 1』 #1

kabbala 2011.09.26 00:43

1. 나름 SF를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러브크래프트(Lovecraft)를 이제서야 보다니… 지금 시점에서 정확한 판단을 하기는 어렵지만 SF의 시조 중 하나임이 분명. 고전은 역시 봐주는 게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2. 영어나 일어 전집을 옮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역자 정진영이 직접 편집한 거 같다. 정보가 부족하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 쓴 작품 설명과 주석이 값지게 느껴진다. 매니아의 힘.

서문의 내용을 참조하면 1권은 크툴루 소개, 2권은 우주적 공포, 3권은 환상소설, 4권은 고딕 계열, 풍자 계열로 기획되었는데, 특히 1, 2권이 러브크래프트를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한 개론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5권짜리 동서문화사 「러브크래프트 코드」를 선택하지 않은 건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2권으로 분량이 작아 보여서였는데, 원래 4권으로 기획한 것인데 2권만 나온 것이다. 어쩐지 ‘전집’치고 너무 얇다했어.

2009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3, 4권의 출판은 좀 어려운 상황일 것으로 추측된다.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은 다시 「러브크래프트 코드」로 채워야 할 듯.

4. 러브크래프트의 특징은 과격한 환상 묘사인 거 같다. 일반적인 문학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명확하거나 환상과 현실이 큰 차이가 없어 모호함을 보여주는데, 러브크래프트는 환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환상이 매우 기괴하지만 서술 속에서 현실과 구분이 어렵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그런 서술이 많이 보이며, 이 책에 실린 비교적 분량이 긴 「벽 속의 쥐」(The Rats in the Walls, 1924)나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 1928)에서는 중간중간 긴장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도 그런 표현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러브크래프트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 거 같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기술적인 장치들을 보면 진지한 대중문학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묘사한 기괴한 환상과 공포의 특이성 속에서 작가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5. 번역된 글이지만 읽으면서 에드거 앨런 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서 누구누구의 작품보다 기괴하다라는 식으로 동시대 많은 예술가들이 언급된다.(굉장히 3류 스러운 표현법이다) 실제로도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벽 속의 쥐」에서는 Gilles de Retz, 사드, E. T. A. Hoffmann 등이, 「크툴루의 부름」에서는 Algernon Blackwood, Sidney Sime, Anthony Angarola, Arthur Machen, Clark Ashton Smith 등이 언급된다.

6.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니까 그 시절이 참 평화로왔던 거 같다. 제1차 세계대전과 막나가는 과학문명, 제국주의의 발호 등을 이미 겪었지만 사건은 평화를 깨는 악마와 정신병자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추리 역시 과학이나 폭력이 아니라 고전적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그의 인종차별적 표현을 어느정도 수긍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악마를 따르는 건 괴상한 혼혈인이나 진화 이전의 유인원으로 묘사된다.(그가 인종차별적 표현을 자주 사용했지만, 타인을 모욕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의도가 없는 듯 하다는
옮긴이의 의견이 131쪽 주33에 실려있다.) 아직 지구가 넓은 시대였던 것이다.

7. 삽화가 없는 것이 아쉽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