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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아버지가 정약용이었다면 짜증났을 거 같다.
 
나라에서 믿지 말라는 천주교 믿고, 친척은 역적질해서 직장 짤리고, 그러면서 왕 타령은 맨날 하지. 얼굴 보기 싫은 친척들 매일 만나라고 하지.
 
연좌제로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도 없는데 교도소 면회가면 말끝마다 공부하라고 하지, 숙제 검사까지 한다.

심지어 무슨 돈벌이를 하겠다고 하면 성리학으로 사업하고 그에 관한 책을 쓰고 시까지 지으라고 한다.

2.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글을 쓰고 책을 펴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구나.

매우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가난해서 살림이 구차해 종일 홀로 지내며 사람이 떠드는 소리라든가 수레가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각에야 경전이나 예(禮)에 관한 정밀한 의미를 비로소 연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란게 이렇듯 교묘할 수 있겠느냐? 옛날 경전을 고찰하고 나서 정현이나 가규의 설을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이 잘못되었구나. 글공부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 132~133쪽

참 대단한 학자 나셨다. 그죠?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김영희 톤으로)

3.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편지 부분이 최근 왜이리 많이 번역되었는 모르겠다.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가?

4.

52장 「문명세계를 떠나지 마라」(176~178쪽)은 다산의 교육관을 나타내는 구절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글인데 번역을 부드럽게 해서인지 성리학적 도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어가 생각난다. 번역을 잘한 거 같다.(그런데 과연 지은이가 번역을 했는 지는 의심스럽다. 다산의 글을 읽을 정도의 한문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문 번역서는 없다. 교수가 원래 남의 이름으로 책 잘 내는 직업이라 더욱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나 이솝 우화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원본을 직접 번역했는지 확실치 않다)

다른 글들에서 자식들이 성리학에서 멀어지는 것을 무척 걱정하는 걸 보면 논리적으로 맞는 해석 같다.

사대부의 집에서 벼슬살이해서 녹을 받는 길을 한번 잃게되면 몰락해 유랑하는 거렁뱅이가 되머 무지렁이들 속에 섞여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는 자포자기해 경서나 사서(史書)를 내던져 버리기 때문이며, 또하나는 놀고먹고 놀고 입는 생활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음풍농월하면서 어려운 운자(韻字)를 넣어 시의 우열을 겨루어 한때의 헛된 명예를 얻는다 해도 떠내려가는 물거품 같은 것인지라 곧 없어지는 것이니, 근본이 없고 근원이 없는 학문이 어찌 크게 이름을 떨칠 수 있겠느냐!
— 72장, 「음풍농월을 삼가라」, 221~222쪽.

언젠가 다산의 글을 조용히 앉아 읽으면서 정확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5.

다산이 성리학적 원리주의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어쩌면 천주교 이원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좀 찾아봐야겠다.

6.

이렇게 성리학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자 이전의 유학을 탐색한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안 맞으면 주자는 물론이고 고전적인 대가(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들 까는데 주저함이 없음. 심지어 공자 말도 의심함.

자기 땅의 선배들 글을 찾는 걸 강조하기도 함. 그러나 그 이유도 성리학자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음.


* 강정규가 옮긴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 편지』(영림카디널, 2009)를 보며 든 생각을 적었습니다. ‘아동문학가’가 번역해서 그런지 비교적 윤문이 잘 되어 있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가 읽을만큼 쉬운 말로 일관성있게 번역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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