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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런너(표준어는 러너)」(1982)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아주 잘 각색했다. 힌트만 얻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블레이드 런너」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원작 소설을 지금에서야 보다니.

소설의 몇가지 중요한 요소는 영화에서 생략되어 있다. ‘감정 이입’(empathy)이 소설에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영화에서는 과감히 생략. 아마 이건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한 듯. 감정과 관련된 ‘보이그트-캄프 테스트’(Voigt-Kampff Empathy Test)도 영화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시험인 거처럼 설명. ‘감정 이입기’(empathy box)에 관한 부분은 영화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를 연상시킴. 제임스 캐머런이 이거 보고 베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듬.

소설에서는 애완동물이 무척 중요한 요소임. 인간들이 모두 갖고 싶어하는 것. 애완동물이 없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 안드로이드는 애정이 없어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음. 낙진(radioactive dust)으로 멸종한 동물이 많아서 사치의 상징이기도 함. 그래서 ‘전기’(electric. 모두 ‘가짜’로 번역되어 있음. 그럼 제목도 ‘가짜양’으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동물을 키우기도 함. 이 ‘전기’ 동물은 마치 살아있는 거 같은데, 이런 점에서 안드로이드의 은유가 됨.

영화에서 올빼미는 발달된 기술을, 백마 꿈은 이상향을 의미하지만 소설에서는 소유욕과 연관되어 있음. 책 제목의 ‘전기양’(‘가짜 양’)은 주인공의 애완동물이 양인 것을 의미.

『높은 성의 사나이』(1962)보다는 재미있으나, 추리소설 치고는 재미가 좀 떨어짐. 실존적인 독백들. 사건의 진행이라기보다 설정의 서술. 첫번째 안드로이드의 습격 같은 박진감 넘치는 사건도 너무 단순하게 넘어감. 필립 K. 딕의 단편을 볼 때는 몰랐는데, 장편을 보니까 이 사람은 흥행보다는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듬. 어쩐지 남들이 원하지 않던 그림을 그렸던 H. R. 기거(H. R. Giger)가 연상됨.

1970년대에 안드로이드가 제작되기 시작해서 2018년(초판에서는 1989년)에 T-14라는 쓸만한 모델이, 2020년(초판에서는 1991년. 아마도 해를 거듭하면서 출판사에서 연도를 늘린 거 같다)에는 ‘넥서스-6’(Nexus-6)이라는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모델이 생산된다는 설정. 게다가 로봇이 아니라 골수 검사(bone marrow analysis)를 해야 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유기체임. 2011년인 지금에 보니 참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있다. 1960년대의 과학에 대한 기대 같은 게 느껴진다.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도 그렇고 쏘련에 대한 무게있는 묘사가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어렸을 때는 쏘련은 무서운 적이라고 배웠었는데.(그 쏘련이 없어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적들을 무서워하고 있다.)


* 이선주가 옮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환상문학전집 11, 민음사, 2008)을 읽으며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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