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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높은 성의 사나이』(1962)

kabbala 2011.02.09 05:22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사건은 ‘민들레 작전’(Operation Dandelion)이라는 독일의 수소폭탄 사용계획과 ‘높은 성’(High Castle)에 살고 있는 『메뚜기 두껍게 가로눕다』(The Grasshopper Lies Heavy. 「전도서」(코헬렛)의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라는 구절을 이상한 번역을 보고 옮긴 것이라는 것이 정설. 번역도 ‘메뚜기 살찌다’ 정도로 했어야 할 듯)의 작가 호손 아벤젠(Hawthorne Abendsen)의 정체일텐데, 전혀 흥미롭게 진행되지가 않음. 한마디로 재미가 없음.

아마 내용들이 철저히 은폐되어 있기 때문인 거 같음. 반전도 뭔가 얘기가 진행되다 나와야 하는데, 변화없는 어떤 상황만 나열되다보니 아무리 큰 비밀이 숨겨져 있어도 전혀 놀랍지가 않음. 단편에서는 이런 진행도 꽤 재미있는데, 장편에서는 지루할 뿐임.

자아의 이중성이 필립 K. 딕의 특징인 듯 함.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행동과 달리 속에서는 실존적인 독백을 함. 근데 인물들의 개성이 그닥 살아있지 않아서 목소리 톤이 다 똑같음. 그 인물이 그 인물. 이런 이중성이 단편에서는 과학 기술이라는 소재로 등장하는 듯.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 만주 이야기가 없어 좀 아쉬움. 심지어 이야기의 핵심적인 축인 일본을 포함해서 아시아 쪽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음. 『역경』(易經, The Book of Changes. 인용된 문장은 Richard Wilhelm의 1950년 번역)에 대한 관점도 동양인 입장에서는 좀 낯섬. 이 책의 백미는 미국 백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벌벌기는 묘사인 듯.

이 작품을 ‘대체 역사’(alternate history 또는 alternative history의 번역어일텐데, ‘대체’라는 말이 한국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특히 한국에서 발표된 이 쟝르의 작품들은 한국의 강성함을 그린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라는 쟝르의 효시로 보는 거 같다.

* 오근영이 옮긴 『높은 성의 사나이』(시공사, 2001)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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