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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천국과 저승

kabbala 2011.01.26 00:23

1.

초기불전연구원에서 펴낸 불경들을 읽다가 머리에 어렴풋이 생긴 개념이 있는데, 외람되게도 불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통해 수입된 ‘천국’에 대한 개념이었다.

석가모니가 꾸준히 반론을 제시하는 3천년 전 인도의 종교에서, ‘범천’ 즉 천국은 너무나도 명확해 손에 잡힐듯한 존재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천국의 존재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인식이 나에게는 매우 낯설고도 신선했다.

인도 종교에서 이 천국의 세계는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가려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법칙에 의하여 그곳에서 새로 태어나는 방법 밖에 없다. 즉 천국에 갈 수 있는 필요조건은 이 인간세계에서의 죽음이다. 범천에서 인간계로 올 수도 있는데, 그 과정 역시 범천에서의 죽음을 조건으로 한다.

천국에서의 보상은 현실 인간계와는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다. 인도의 종교 관념을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친 서구와 중동을 포괄하는 근원적인 종교 관념이라 가정한다면, 기독교의 천국 관념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시오.
— 마태오의 복음서

이 문화권의 종교 관념에서는 현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저 천국에 가기 위한 업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인 것 뿐이다. 현실에서의 모든 고난은 죽고 나서 천국에서 보상받는 것이지, 죽기 전에 세속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위의 구절을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 헌금 많이 하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분들은 골룸)

왜 그럴 수 있느냐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날 천국의 존재를 그들은 너무나도 확신하고 있으니까. 흑인 노예들의 영가는 자식놈 좋은 대학 보내 출세시키겠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인도, 중동, 서구의 종교 관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 박창학, 「달리기」

난 이 노래 가사가 기독교의 천국 개념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아무리 현실이 괴로와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한다는 거. 그리고 그 뒤에 천국에서 보상이 있으리라는 거. (이 노래가 자살을 주제로 했다는 근거없는 루머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라는 후렴구도 왠지 그런 걸 연상시킴. ‘five five five’ 말만 바꾼거겠지만.)

2.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의 개념은 뭘까? 내가 보기에 그건 ‘저승’이다. 난 이 저승이라는 것이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유래했다고 보는데, 저승은 천국과 달리 무당이나 혹은 일반인도 우연한 기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길을 잃으면 돌아오지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숙달된 무당의 경우 저승에서 얻은 지식이나 예지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복이나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저승은 이승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죽으면 저승사자를 따라 걷다가 강을 건너서 저승으로 간다고 믿는다. 즉 저승에 가는 방법은 물리적인 이동이다. 조상들 역시 특별한 기회에는 이승에 와서 제사를 받거나 후손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구원을 해주기도 한다.

반면 천국으로 가는 방법은 불가해한 것이다. 그 기준은 세속적인 가치와 무관하다. 심지어 사제들 조차 천국에 간다고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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