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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에스페란티스토(Esperantisto)와 아나키스트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아나키스트들이 좀 언행일치하는 거 같다. 1920~30년대 한중일의 아나키스트들 역시 에스페란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일 것으로 추측되는 홍명희의 호 벽초(碧初)가 에스페란토어의 상징인 녹색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폐허」, 「개벽」 등 잡지에는 ‘LA RUINO’, ‘LA KREADO’라는 에스페란토어 제호가 나란히 써 있기도 하다. 1924년 홍명희가 편집국장으로 재직시 동아일보에는 「에스페란토 난」이 연재되기도 하였다.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김산도 에스페란토에 능숙하였다고 한다. 홍콩에서 발행된 에스페란토 잡지 『遠東使者』(Orienta Kuriero)  1939년 5월호 18~21쪽에 실린 김산의 글 「La Teatra Movado dum la Milito」(전쟁 중 연극운동)이 장정열의 번역과 함께 실려있다.(인용된 번역과 설명이 구별되지 않아 약간 혼란스럽다.)

참고: 최대석, ‘에스페란토’로 항일을 노래하다—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우생의 창작 · 번역물 40편 유럽 도서관에서 최초 발굴(한겨레21, 제504호, 2004년 4월 15일 발행)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실천문학사, 2005)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오스기 사카에(大杉栄(おおすぎ さかえ), 1885~1923)가 에스페란토로 쓴 글도 남아있다. 원문은 http://homepage3.nifty.com/neperio/(책에는 ‘homepahge3’로 오타)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중 El "Internacia Socia Revuo", Majo 1908, El "Heimin Sximbun" (Jxurnalo de popolo) 1914AL FREMDLANDAJ KAMARADOJ」(El "Heimin Sximbun" (Jxurnalo de popolo) 1914)를 번역하여 책에 실었다. (번역 제목에 좀 일관성이 없다)

아쉬운 점은 장 구분이 일목요연하지 못 하고,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글은 아나키즘 홍보(?)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 (특히 3장 「노자와 아나키즘」은 좀 주제에서 많이 동떨어진 듯 하다) 내용도 에스페란토를 중심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 운동사와 구분 없이 섞여 있어서 나같이 이런 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보기 좀 불편하다.

차라리 아나키즘과 에스페란토에 대한 간략한 소개—한/중/일의 에스페란토 도입사—아나키즘과 에스페란토 홍보 이런 식으로 깨끗하게 분리되어있으면 정보를 얻는 데 아주 편리한 책이 되었을 거 같다. 에스페란토에 대한 고려가 적은 기존 ‘아나키즘운동사’을 보충하는 것이 서문에서 밝힌 집필 의도였으나, 그 배면에 흐르는 에스페란토 부분만 딱 떼어내서 풍부하게 만들긴 역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영어가 판치는 현실 속의 세상을 에스페란토로서 유토피아적 꿈의 연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나키스트이어야 가능하다. 아나키스트는 에스페란토를 하여야 하며 에스페란티스토는 아나키스트여야 하는 것이다. (서문, 19쪽)

* 안종수가 쓴 『에스페란토, 아나키즘 그리고 평화』(서울:선인, 2006)을 읽고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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