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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2일 토요일
지난번 제주도 여행 때 유적과 문화 중심의 관광안내서가 없음이 매우 아쉬웠는데, 알고 보니 이런 책이 나와있었다. 여행 전엔 왜 못 봤을까?

이 책은 제주의 역사 유적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다. 그 소개가 단순한 관광안내가 아니라 고향으로 되돌아 온 저자의 절절한 애정으로 쓰여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역사책이다. 제주도의 역사를 구성하려는 엄청난 시도를 하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 『새로 쓰는 제주사』는 본격 역사서인 듯 하다)

… 특히 제주도의 역사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과서로 배운 중앙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아니 어쩌면 그걸 완전히 뒤집어버릴 변방의 역사, 민중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국가주의에 충실한 역사만을 배워 온 게 사실입니다. 왕과 귀족, 제도와 명령만이 있을 뿐, 웃고 울며 삶을 만들어가던 서민들의 구체적 생활은 없다는 말이지요.

제주의 역사는 이걸 채워줄 겁니다. 변방의 시선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역사를 뒤집어 보여줄 겁니다. — 「변방의 시선으로 새롭게 만나는 제주도」(머리말), 5쪽.

나도 제주도에서 마치 식민지로 병합된 옛 나라에 온 거 같은 인상을 받곤 한다. (오키나와 같은)

이 책이 역사서이기 때문에 갖는 단점이 있다. 답사 코스가 시대별로 13개로 나뉘어 있어서, 나같이 외지인이 이 책을 참고하여 잠깐 여행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제주에 사는 사람이 한나절 짬을 내서 다녀올 만한 코스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서귀포시청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yjeju.com)

다음으로 ‘강의실보다는 동아리방과 거리에서 주로 지내며 많은 걸 배’운 80년대 대학생답게, 당시 운동권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책날개의 이 소개는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옮긴 거 같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174433.html)

전체적으로 굉장히 성의있게 만든 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여행 답사용으로 사용하기는 그리 편리하지 않을 거 같다. 가장 큰 단점은 유적 자체에 대한 소개가 부족하다는 점. 역사 서술과 어우러지게 쓰려고 했던 거 같은데, 좀 산만하게 느껴진다. 좋은 책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제주도 여행을 하려는 사람은 여행 전에 한번 보고 유적들이 어떤 게 있는 지 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저자의 홈페이지가 있다: http://jejuhistory.com/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제주 역사에서 가장 짜증나는 것 중에 하나는 천주교의 행태다. 이재수의 난 당시 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 동네에 해놓은 작난질을 보면 목에 하얀 칼라 하고 다니는 새끼들 정신 싸가지가 어떤지 대충 감이 온다. 천주교가 한국 사회의 점잖은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 그리고 비석 뒷면을 둘러싸고 해괴한 사건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낮에는 천주교측이 비문을 가리기 위해 종이를 붙였고,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그 종이를 찢어버리던, 괴상한 숨바꼭질이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약 4개월 뒤에 천주교측이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의 신경전에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1997년 8월 13일 늦게나마 제막식은 거행될 수 있었다. — 「삼의사비」, 223쪽.

황사평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지금은 천주교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재수의 난 당시에는 천주교도들을 치기 위해 모여든 민군(民軍)이 주둔했던 장소이다. 민군의 주둔 터에 거꾸로 그들에게 살해된 천주교인들이 묻힌 것이다.

… 관덕정 앞에 방치된 시신들은 처음엔 지금의 제주교육대학교 근처인 사라봉 밑 언덕에 가매장되어 있었다. 그 시신들이 황사평으로 옮겨진 건 프랑스가 외교 압력을 가한 결과였다. 프랑스의 요구를 수용해 이 일을 처리한 사람은 제주 목사인 홍종우였다. 그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암살한 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

… 처음엔 민란 과정에서 죽은 교민들만이 이곳 황사평에 묘를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현재에는 일반 천주교 신자들도 묻히는 천주교 공동묘지로 탈바꿈하 것이다.

그러면서 천주교측에서는 이곳을 성역화하였다. 지금은 천주교인들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 — 「황사평 천주교 공동묘지」, 226~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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